예수는 신화인가 3
- 영지주의(靈智主義)
앞서의 발견은 정말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우리는 초기 교회가 받아들인 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의문을 제기하면서 스스로 증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성자(聖者)와 순교자들이 모두 한결같은 믿음을 지닌 것으로 배워 왔다. 그러나 그와는 전혀 달리, 성자와 순교자들은 사실상 여러 이질적인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했다. 큰 범주로 보면, 이들은 두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우리가 문자주의자(Literalists)라고 부르는 집단이다. 이들은 예수 이야기가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 AD 4세기에 로마제국이 받아들인 기독교가 바로 그것! 이는 로마 가톨릭 신앙이 되었으며, 훗날 여러 갈래로 분화되었다.
이와는 급진적으로 다른 기독교 집단이 있었는데, '영지주의자'(Gnostics)가 바로 그들이다. (영지주의자Gnostics를 소위 '정통' 교회 입장에선 '그노시스파'라고 번역한다. 그노시스파란 ‘그노시스’(gnosis, 靈智)의 개념으로 기독교의 본질을 설명하다가 후일 이단으로 몰린 기독교인'이다.)
오늘날 영지주의자들은 '잊혀진' 기독교인들이다. 훗날 로마교회 문자주의자들의 박해를 받아 철저히 말살되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그들을 추적하는 사람들의 저술 외에는, 세상에서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원래의 영지주의 문서가 한 줌 남아 있을 뿐인데, 그것도 19세기 이전에는 출판된 적이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극적으로 달라졌다. 1945년에 이집트의 한 농부가 나그함마디 근교의 한 동굴에 감춰져 있던 영지주의 장서를 우연히 발견했다. (나그함마디 Nag Hammadi는 나지함마디 Naji Hammadi라고도 쓴다). 이 장서는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배포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 장서는 훗날 신약 <성서>에 포함되지는 못했다. <도마의 복음서>, <빌립의 복음서>, 베드로와 12사도의 행적을 기술한 <텍스트>, <바울의 계시록>, <야고보의 계시록>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예수와 사도들의 가르침을 비롯한 초기 기독교 장서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오늘날의 기독교인들 가운데 그런 문서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알고자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실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인들은 새로 발견된 '말씀들'을 읽어 보려고 안달을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신약 <성서>로 채택된 몇 개의 복음서에만 매달리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물론 영지주의가 추방된 지 2천여 년 가까이 지났고, 그동안 로마교회에서 프로테스탄트(개신교)가 갈라져 나갔으며 그 후 수천의 개신교 집단이 생겼다. 하지만 영지주의는 아직도 합법적인 기독교 신앙으로 간주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영지주의 복음서를 탐구해 보면, 그들에게 친숙한 종교와는 매우 '이질적인 기독교'의 한 형태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집정관들의 본질>, <노레아의 생각>과 같은 낯선 제목의 문서를 연구하게 되었다. 마치 영화 <스타 트랙> 속으로 빨려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지주의는 진정한 '정신의 우주 비행'이었다.
영지주의는 생명의 기원과 의미를 탐색했고, '내면 우주'의 마지막 미개척지를 대담하게 탐구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신비가였으며, 창조적인 자유사상가였다. 그들이 문자주의자 교회의 주교들에게 왜 그토록 미움을 받았는지는 너무나 명백해 보였다. 문자주의자들에게 영지주의자는 이단자(異端者)였다. 그것도 매우 위험한 이단자!
반영지주의 저술들(초기 기독교에서 영지주의자들이 지녔던 힘과 영향력을 반증하는 자료들)을 보면, 영지주의자들은 '토착화된' 기독교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즉, 주위의 이교(異敎) 신앙에 오염되어, '참된 신앙의 순수성'을 포기한 사람들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이야말로 '전통을 지켜 가는 진정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문자주의자 주교(主敎)들을 '교회를 위조(僞造)한 자'라고 생각했다. 또, 문자주의자들이 갖지 못한 '은밀한 기독교의 미스테리아'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영지주의의 믿음과 실천을 탐구하면서, 문자주의자들이 한 가지만은 옳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영지주의자들은 '이교도와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이교도의 미스테리아를 논한 철학자들처럼, 그들은 다시 육체를 부여받음(환생)을 믿었고, 여신 소피아(지혜)를 찬양했으며, 고대 그리스의 신비한 플라톤 철학에 심취했다.
영지주의자(Gnostics)란 '아는 자'라는 뜻이다. 이교도 미스테리아 입문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신들의 '은밀한 가르침'이 영지(Gnosis), 곧 '직접 경험'에 의거한 '신(神)에 대한 앎'을 전하는 힘을 지녔다고 믿었다. 그 때문에 그런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교도 입문자가 하나의 '신(神)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지주의자들이 보기에 기독교 입문자의 목표는 '하나의 그리스도(基督)가 되는 것'이었다.
특히 우리가 충격을 받은 것은, 영지주의자들이 '예수의 역사성'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예수 이야기'가 지닌 의미는, 이교도 철학자들에게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가 지닌 의미와 동일했다. 주 예수 이야기는 '은밀하고 신비한 가르침'을 암호화한 하나의 '비유'였다.
이러한 통찰은 우리에게 주목할 만한 가능성 하나를 보여 주었다. '이교도 신화'와 '예수 전기' 사이의 유사성에 대한 설명은 사실 항상 있었지만, 우리는 그 설명의 진위를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비로소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따라잡을 수 있게 되었다. (계속)
원문; 티모스 프리크, 피터 갠디 공저, <예수는 신화다>
[출처] 예수는 신화인가?(3) | 작성자 프리스트
https://blog.naver.com/jogaewon/110028031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