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정태성 목사
제목: 소금과 빛이 된 자들의 착한 행실!
말씀: 마태복음 5장 13-16절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라는 산상 수훈의 가르침에서 제일 첫 가르침은 가르침을 받는 자들의 상태에 대한 것입니다. 즉, 가르침을 받은 존재를 명확하게 세상과 구분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세상과 구별된 첫 존재들이 이 땅에 탄생한 것입니다. 그 존재들의 상태는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는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
위에서 말하고 있는 팔 복의 사람은 사람의 성품이 아니라 상태입니다. 인간이 열심히 노력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의해 만들어진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팔 복의 사람은 예수님에 의해 만들어진 사람의 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들은 율법과 연관된 이스라엘과는 전혀 다른 상태가 된 자들입니다. 이 상태의 특징은 율법에 벗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한 것은 팔 복의 상태는 율법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가능케 된다는 사실입니다. 율법을 가지고 있다면 팔 복의 상태는 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율법에서 벗어난 팔 복의 상태가 된 자들을 통해서 비로소 새로운 기독교 신앙을 전개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러한 상태의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출발하게 됩니다.
기독교 신앙은 율법에서 벗어난 팔 복의 상태의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출발을 한다!
이제 이들은 과거의 율법 신앙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첫 신앙의 삶을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그 출발점에서 예수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들의 상태, 즉 존재를 한층 더 실감 나게 그 존재성을 명확하게 규정합니다. 그 내용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 13-16절>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기독교 신앙의 그 첫 신앙의 출발은 소금과 빛으로의 삶입니다. 이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예수께서는 그들의 환경과 상태와는 상관없이 그들을 빛과 소금이 된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기독교 첫 신앙의 출발은 소금과 빛으로의 삶이다!
예수께서는 이들을 일컬어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소금과 빛으로 말씀하신 이유는 팔 복의 상태를 더욱더 가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팔 복의 상태가 내적 표현이라면 소금과 빛은 완전한 외적 표현입니다.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소금과 빛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자는 예수를 믿는 그 순간부터 그 존재는 소금과 빛입니다. 이 상태에서 기독교 신앙을 전개해 나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빛과 소금이 된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삶이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5장 16절>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너희에게 있는 착한 행실을 세상에 보여 세상 사람들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라는 것입니다. 즉, 너희에게 있는 착한 행실을 세상에 보이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삶이란? 너희에게 있는 착한 행실을 세상이 보이는 것이다!
착한 행실을 세상에 보이는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살아가야 할 신앙의 삶입니다. 그동안은 율법을 세상에 보였다면 이제는 그것이 아닌 착한 행실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착한 행실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보편적으로 기독교 신앙에서의 착한 행실이란 율법적 삶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에서 말한 착한 행실은 율법 행위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나타낼 착한 행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소금과 빛의 삶, 곧 세상에 맛을 내고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착한 행실입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세상에 맛을 내고 세상에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착한 행실이자, 기독교인의 신앙의 삶입니다.
예수님에 의해 제시된 이 삶은 율법적 삶을 살았을 때는 전혀 없던 삶입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율법 신앙은 소금과 빛의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착한 행실은 세상에서 말하는 착한 행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착한 행실은 율법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또한 이웃이라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즉 구제, 봉사 등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나타낼 착한 행실, 곧 맛을 내고 빛을 비추는 소금과 빛의 삶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세상에서 나타낼 착한 행실, 곧 소금과 빛은 예수의 말을 들은 즉시 행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착한 행실은 착한 행실을 실행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그것은 오순절 성령강림입니다.
착한 행실은 아무 때나 누구든지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이 임해야 비로소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착한 행실의 전제는 성령강림이고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착한 행실의 전제는 성령이 임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 1-4절>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착한 행실, 곧 소금과 빛으로의 삶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인해서만 실행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착한 행실은 인간의 의지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비로소 임해야 실행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성령을 받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착한 행실, 소금과 빛을 나타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착한 행실은 그 전제 조건이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만 실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받아야만 행할 수 있는 소금과 빛으로의 삶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을 받은 후에 행할 수 있는 착한 행실이란 예수의 증인으로의 삶을 말합니다. 세상의 소금으로 맛을 내고, 빛으로 빛을 비추는 것은 오직 예수를 증거 하는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을 팔 복의 상태가 되게 하고 소금과 빛으로의 삶으로 착한 행실을 하게 하는 삶의 목적은 자신을 증거 하는 증인의 삶을 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소금과 빛으로의 착한 행실은 예수 증인으로의 삶이다!
기독교 신앙의 출발이 이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시작이 이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출발이고 기독교 신앙의 목적입니다. 예수께서는 기독교 신앙의 출발과 목적을 이것에 두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교회가 이렇게 하고 있습니까? 교회의 모든 신앙 목적이 무엇입니까? 기도, 예배, 봉사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다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신앙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교회의 목적은 착한 행실, 곧 소금과 빛으로의 삶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나와 하나님, 혹은 나와 예수 사이에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나’라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래서 특이하게도 기독교 신앙은 인간을 위한 신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신앙만 존재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출발은 이것입니다. 곧 증인으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모습이고 본질입니다. 이것으로 출발하지 않는 기독교 신앙은 허구입니다. 산상 수훈을 통해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기독교 신앙의 허구를 더욱더 실감 나게 알게 될 것입니다. Amen!
첫댓글 소금과 빛이 된 자들의 착한 행실이란 율법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예수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들이 팔 복의 사람들, 곧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들이다. 이들은 '예수께서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라는 그 예수의 말을 받고 가진 자들이다. 이것이 이들 속에서 나와 증거 되면 이것이 맛을 내고 빛을 비추는 착한 행실이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 너희는 소금이고 빛이라는 팔 복의 사람이라는 그 정체성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다.
아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