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8일 자유걷기 섬진강편이 진행되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신청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아직도 섬진강을 가보지 못했고, 섬진강이 낳은 김용택 시인도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전라남북도를 관통하며 끄트머리에서 경상도와 만나는 500리에 이르는 섬진강은 한국에서 4번째로 큰강이지만 한번도 역사의 주류무대에 등장해보지 못한 변방의 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더 애틋하면서도, 그 강이 흐르며 어루만진 곳이 더 아름다웠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섬진강 오백리, 박목월이 <나그네>에서 예찬한 “길은 외줄기 / 남도 삼백리 / 술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놀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처럼 목가적이지도, 한센병을 앓은 한하운 시인이 노래한 <전라도 길>에서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중략)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千里 먼 全羅道길
고행이나 천형의 길도 아니지만, 섬진강 오백리길은 전라도의 가장 내밀한 곳을 젖줄처럼 흐르며 속살을 채우며 풍요롭게 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젖줄은 시인, 문사들의 자양분이 되었으며 김용택 시인을 만나 매화꽃처럼 활짝 피웠는지 모릅니다.
섬진강과 김용택 시인을 만나러 가는 날, 때늦은 꽃샘추위가 물러간 화창하고 온화한 전형적인 봄날이었습니다. 가는 길 <봄날>을 읊어봅니다.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춘삼월 호시절 서재에 앉아 시심을 가다듬고 있을 시인은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했습니다. 이젠 정년퇴직하고 고향에 계시니 동네어귀에서라도 마주치지 않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조금 이른 11시 20분경 오수면에 접어들어 이른 점심을 하고 시인의 고향인 진메마을로 갑니다. 오수면은 주인을 구하고 대신 죽은 견공(犬公)의 전설이 있는 곳이죠.
진메마을로 들어서니 2007년 제13회 풀꽃상을 받은 정자나무가 반겨줍니다. 풀꽃상은 환경단체 풀꽃세상을위한모임에서 제정한 것이고, 정자나무는 “이 땅의 마을 어귀마다 서 있는 정자나무를 대신”해서 진메마을 정자나무에게 상을 준 것입니다. 정자나무가 살아있는 마을이 바로 아름다운 공화국이라는 것이죠.
김용택 시인이 나고 자란 곳, 그리고 평생에 걸쳐 교직에 몸담고 수많은 작품을 낸 생가는 어느 집과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이곳저곳 셔터를 누릅니다. 그런데 유유자적 40여 분이 한번에 들이닥치니 정신이 없더군요. 생가를 나와 징검다리 건너는 순간 가장 중요한 사진을 안찍은 것이 생각나더군요. 생가 마당 구석에 있던 <농부와 시인>이란 작품입니다. 가장 중요한 작품이고 돌에 새긴 시비를 안찍고 나오다니... 후회막급이지만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 제가 찍은 사진이 없어 다른 분의 사진으로.
농부와 시인
아버님은 풀과 나무와 흙과
바람과 물과 햇빛으로
집을 지으시고 그 집에 살며
곡식을 가꾸셨다.
나는 무었으로 시를 쓰는가
나도 아버지처럼
바람과 나무와 흙과
바람과 물과 햇빛으로 시를 쓰고
그 시 속에서 살고 싶다.
저는 시에 문외한이지만, <농부와 시인>이 시인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와 아들, 농부와 시인이지만 모두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속에서 살아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무대는 바로 섬진강이죠. 이 시를 보면 미국대통령이 땅을 사겠다는 제안에 대해 "땅과 물과 공기는 사고파는 것이 아니다"라며 거절한 시애틀 인디안추장의 글보다 더 선명함을 느낍니다.
시인은 섬진강을 두고 이렇게 노래합니다.
“강물이 흐르는 산 아래 작은 마을, 가난이 아름다웠던 작은 마을, 내 숨결이 살아난 작은 마을에 나는 세상과 숨을 쉬며 살았다네. 나는 산다네.”
그런데 왜 섬진강일까요? 다시 시인의 말을 들어봅니다.
“섬진강은 마을과 산과 나무와 바위와 소나무와 느티나무와 작은 풀꽃들, 그리고 그 그림자들을 자기 몸 안에 조용히 담고 그저 소리 없이 흐르다 부서지고 또 모였다가 부서지고, 부서지면 굽이치다 쉬고, 다시 흐른다. 섬진강은 그래서 통곡의 강이 아니라 흐느낌의 강이다. 그것도 크게 후드득거리는 흐느낌이 아니라, 여인네들이 잔잔한 어깨로 흐느끼는 것 같은 강이다.
섬진강 마을 사람들의 삶은 강물을 닮았다. 어느 마을을 가나 강과 사는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의 삶 이야기가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었다. 강에 몸을 적시고 강물 소리를 듣고 사는 사람들의 마을 문화는 소박하고 조촐하고 순박하다. 꾸민 듯 꾸민 것 같지 않은 농민 공동체 문화는 말 그대로 자연이었다.“
저는 김용택 시인도 시세계도 감히 알 수도 없고 논할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알겠더군요, 자연의 위대함을 가장 겸손하게 체득한 분이라는 것. 그리고 그런 심성이 시로 승화되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문득 김용택 시인이 더 궁금해지더군요. 그순간 떠으른 시는 <선운사 동백꽃>이더군요. 매화는 지고 동백이 절정인 이때 혹시 동백을 보러 가셨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선운사 동백꽃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그여자네 집』(창작과비평사, 1998)
섬진강을 닮아 수줍은, 서정적이며 농촌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 시인에게 이런 격정이 있는지 깜짝 놀랐습니다. 봄날 매화꽃 같이 보러간 그 여자에게 버림받아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시인이 엉엉 울었다는 것이 상상이 잘 안되네요.
시인이 “그까짓 사랑 때문에 / 그까짓 여자 때문에” 엉엉 울었을까요? 섬진강을 닮은 시인이라면 “여인네들이 잔잔한 어깨로 흐느끼듯이” 울었을 것 같은데 시인도 펑펑 우나 봅니다.
그런데 아무리 수줍은, 여성적인 강이라 하더라도 섬진강에 어이 상처가 없었을까요? 시인이 나고 자란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은 한국전쟁시 빨치산이 최후까지 저항한 지리산 자락 회문산이 가까운 곳이죠. 시인은 과거 이광웅 김남주 시인과 교분이 두터웠습니다. 특히 시인이라기 보다 ‘전사’, ‘혁명가’로 불리길 원했던 저항시인 김남주와는 살붙이 같은 정을 나누었지요.
김용택 시인에게는 섬진강 시인, 서정시인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면 결기가 그윽한 시인이죠. 1982년 당시로서는 문단의 비주류인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하고, 80년대 후반에는 전교조에도 참가, 활발한 활동을 합니다. 이 시기 김남주 시인과의 교분이 시작하죠.
시인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폭악성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물론, 농촌생활을 예찬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농촌생활의 신산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죠. 시인은 그런 부조리, 불합리를 섬진강에 기대어 서정적으로 표현할 뿐이죠.
진메마을 나와 시인을 키워준 섬진강을 따라 시인이 가장 사랑한 구담마을에 갑니다. 시인은 섬진강 오백리 물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천담마을에서 구담마을을 거쳐 장구목(장군목)으로 흘러드는 물굽이를 꼽았죠. 구담마을 전망 좋은 곳에 이르니 시인의 시비가 반겨줍니다.
강 같은 세월
꽃이 핍니다
꽃이 집니다
꽃 피고 지는 곳
강물입니다
강같은 내 세월이었지요
역시 시인입니다. “꽃이 피고 지고 (그 모든 것이) 강같은 내 세월”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섬진강은 조용히 흐르며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받아주고 되돌려주는 그런 강인지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강물처럼, 자신의 세월을 함께 부대끼며 상처조차 속으로 삭이면서 보낸건지 모르겠습니다.
섬진강 오백리, 진메마을에서 구담마을 까지 시인의 작품이 돌에 새겨져 함께 간길을 따라갑니다. 오백리를 다 채우고도 남을만큼 시인의 섬진강 사랑은 넘치고 눈을 돌리면 주옥같은 작품들이 이곳저곳에서 반겨줍니다. 작품 배열을 보니 그런대로 이해가 가더군요.
저 자신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한 <농부와 시인>이 안마당에,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봄날>은 진메마을 초입에, 그리고 <강 같은 세월>이 구담마을에 있더군요. 물론 군데군데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작품의 배열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구담마을 내를 건너면 바로 순창군 적성면입니다. 그래서 시인의 작품은 구담마을에서 끝납니다.
구담마을을 지나 장군목-요강바위로 넘어갑니다. 순창군이 시작되는 이 길은 걷기보다는 자전거 종주길 성격이 더 강하지만, 시인의 자취 따라 가는 길이라 힘들지는 않습니다. 다만, 자전거를 위한 길이다보니 걷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는 드물더군요.
지리산 자락이지만 섬진강을 닮아서인지 산세도 부드러운 곳, 유난히 해가 길어 보입니다. 그림자가 아주 길어질 때 까지 걷습니다.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신 봄날님 덕분에 정확히 오후 5시경 귀미마을에서 걷기는 끝났습니다.
섬진강과 김용택.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자 어머니입니다. 그 자연을 몸으로 체득한 시인이 있어 섬진강이 더 아름답고 행복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서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섬진, 아름다움 그 너머에 있는 무엇을 알려준 시인이 있어 빛나는 곳. 그러고 보니 섬진강은 시를 쓰고 시인은 강물이 된 그 곳.
다음에 진메마을에 가면 <농부와 시인> 시비는 사진이 아닌 가슴에 새기고자 합니다. 그래야 섬진강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섬진강은 그 모든 것을 받아 주겠지만...
좋은 길 열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어느 4월의 멋진 길을 함께 해주신 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 좋은 길에서 뵙겠습니다.
낙화는 유수처럼
오수면 미미회관에서 이른 점심을 하고 진메마을로 갑니다. 저렴하고 푸짐한 점심입니다.
시인의 마을 입구에 있는 큰 느티나무입니다.
살아있는 시인의 생가라고 표현하는 것에 어느 분이 어색하다고 하시는데, 낳고 살아가는 있는 집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네요.
처음에는 이 시비도 김용택 시인의 작품인줄 알았는데 김도수님의 부모님 사랑비라고 하네요. 진메마을에선 누구나 시인인가 봅니다.
김용택 시인이 독서하고 시를 쓰던 방, 시인은 이곳에 앉아 섬진강을 바라보며 그토록 아름다운 시를 썼을 것입니다. 서재 이름은 '섬진강의 물결을 바라본다'는 뜻을 지닌 "觀瀾軒(관란헌)입니다.
서재에 매달려 있는 옥수수를 보니 시인의 시심이 영글어 있는 것 같네요.
단아합니다. 서재를 열면 섬진강이 보입니다.
생가 앞 섬진강 징검다리 앞에서...
부드러운 섬진강이라서 그런지 징검다리들은 대부분 S라인(?)입니다.
광양만까지의 자전거길도 함께 갑니다.
흐르는 강물, 시인의 향기 따라 걸어갑니다.
어쩌면 시인의 숲길을 걷는지도...
어느 4월의 멋진 날입니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걷는 길. 환상적입니다.
이 길에는 나무마다 노란 리본이 달려있어 약간 의아하기도...
농촌은 가장 바쁠 때. 등이 굽은 할아버지가 힘겹게 삽질하지만 흙은 기름져갑니다.
길마다 사연이 참 많습니다.
구담마을 가는 길, 시인은 풍경이 아름다워 환장했다는 길입니다.
지난 주 까지 매화가 절정이었다는데, 몇 안남은 매화송이가 힘겹게 나그네를 반겨주네요.
아스팔트를 벗어나 강가의 소담스러운 길을 걷습니다.
구담마을의 원래 이름은 안담울이라고 하네요. 구담은 이곳에 자라가 많아 거북 구자를 쓴 것이라고도 하고, 섬진강 연못이 9개나 있어 九담이라고 한답니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입니다. 영화 제목은 아름다운 시절이지만 한국전쟁 직후 어린이 눈에 비췬 어두운 시절의 혼란상을 그려낸 영화이고, 이곳을 촬영지로 한만큼 수려한 영상이 화제가 됐죠. 외국영화제에 초청되어 상도 많이 받은 영화입니다.
시인이 2년간 출근을 하면서 건넜다는 징검다리. 가끔은 산수국에 취하고 때로는 이름모를 들풀에 넋이 빠져 학교에 늦기도 했다는... 시인이 가장 사랑한 길입니다.
내를 건너면 순창군 적성면이 시작됩니다.
내를 건너서 바라본 구담마을. 차도 근접 못하는 오지입니다.
장군목(장구목) 가는 길의 인도교. 길이 107m. 폭 2.4m 인도교이면서 자전거길입니다.
장군목에서 바라본 섬진강 현수교.
요강바위입니다. 폭은 1.6m, 깊이 2m이며 특이한 형상입니다. 도둑들이 밤에 훔쳐 갔는데 마을주민들이 되찾아 왔다고 할 정도로 영험있는 바위랍니다.
섬진강이 부드럽기만 한 강은 아니겠죠. 때로는 격렬한 분노와 용틀임도 할 때가 있었나 봅니다. 장군목에 있는 기암괴석 지대입니다.
자전거길 인증센터입니다. 처음에는 공중전화 부스인줄 알았네요.
자전거길로 걷습니다.
길 위에 또 길을 만들고 보행길은 없는 자전거길... 이곳은 가장 아름다운 길에 선정될 만큼 좋은 길인데 보행길이 없는 것은 문제가 있네요.
오수면 견공 고사를 말씀드렸지만 여기는 흰개들이 눈에 잘 뜁니다. 이 개도 장군목부터 따라오면서 많이 챙기는 것 같은데 무심한 걷기팀들이 걷기만 하자 발걸음을 돌리는군요.
북대미 숲은 가보지 못했습니다.
맨 오른쪽이 운정님입니다. 운정님과의 인연은 이때부터...
380년된 귀미마을 보호수입니다. 이번 여행은 진메마을 정자나무에서 시작하여 귀미마을 정자나무로 끝납니다. 그만큼 역사와 문화가 유구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이곳은 남원 양씨 집성촌, 고려 조선시대 유물이 많더군요.
첫댓글 호밋자루만 보이거든
잘익은 술향기에 취해
남도 삼백리길 흘러간다
생각하세...
아직은 낙화님과 서먹하던 시절, 저 커다란 느티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어주시던
낙화님의 모습이 생생하네요. 매화꽃이 시들어 가던 늦은 봄날이었
었죠. 올 봄엔 옥빛 섬진강물 따라 화사한 매화꽃 길을 걸을 기대로 설레이네요!
'예쁜 여자(멋진 남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제 마음의 한 구절은 이것입니다.ㅎㅎ
낙화님과 함께하는
섬진강 문학여행..
기대하겠습니다^^
겨울이 오면 눈속에 핀 설중매를 떠올리곤 하는데...
겨울지나 초봄이 돌아오면 섬진강 물줄기 따라 피고 지는 매화가 늘 그리워 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년 섬진강의 봄을 기다리겠습니다^^
걷고 느끼고 배우고 행복한시간이였네요.
그시간이 다시 오겠죠~^^
내년 이 길을 다시 걷는다면 무조건 참석입니다.
섬진강 하면 바로 떠오르는게 김용택시인이죠~
그 시인의 시가 가득 올라와서 좋네요^^
읽고, 보고, 느끼고, 행복하게 머물다갑니다.^^
섬진강에서의 어느 좋은 봄날을 기다려봅니다..
낙화님의 글을 읽고 있노라니
빨리 봄이와서 섬진강에 가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