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위로의 실험
240616_이인현
문학의 근원적인 욕망 중 하나는 정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래서 훌륭한 작가들은 정확한 문장을 쓴다. (…) 결국 문학은 언제나 ‘근사치’로만 존재하는 것이리라.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 사랑과 문학의 공통점으로 정확함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에 가장 적확한 문장을 찾았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마침표를 찍는 사람. 그러나 그게 완전함에 이르기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작가라고. 정확함이 필요한 건 사랑과 문학에서뿐만이 아닐 것이다. 내게 절실하게 정확함이 요구되는 말은 ‘위로’였다. 사랑과 문학은 추동하는 힘이 있다. 어떤 지점을 향한 강력한 이동의 에너지, 욕망, 다다름의 기대. 그러나 위로에는 그런 힘은 없다. 위로는 부끄러움과 상대방을 구원해주고 싶은 마음, 나의 기준이 아니라 오롯이 상대방에게만 존재하는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다. 불완전하고 치명적인 상처를 줄 것을 각오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일. 자꾸만 숨고 싶은 나와 너의 상처를 동시에 마주해야 하는 일. 그래서 위로에는 무엇보다 정확함이 필요하다.
2022년 어느 날, 카페 반대편 멀찍이 세 명이 앉아있었다. 이태원 참사 후 몇 주가 지난 때였는데, ‘세월호처럼 장사를 하려고 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저들은 저렇게 쉽게 이야기하는데 나는 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가. 불현듯 떠오른 기억들을 주체하지 못하고 목포로 내려갔다. 세월호가 인양되어 지상에 놓여지고는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곳. 네비게이션에 나오지 않는 세월호의 위치를 찾아 헤매다가 파란색 컨테이너 두 개를 발견했다. 위치가 반대쪽으로 옮겨졌을 뿐 과거에 보았던 그때의 컨테이너였다. 철조망에는 여전히 노란색 리본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리본이 샛노란 색을 잃고 누렇게 변색되었고 오래되어 쇠고리만 남기고 바닥에 떨어진 리본도 많았다. 세월호 선체로 가는 길에 보안업체에 신분증을 제시하고 문서에 서명했다. 멀리 보이는 세월호 선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음이 들끓었다. 저렇게 큰 배였구나. 바닥에 쓰러져 있던 붉은 영역과 불법 중축된 객실, 큰 프로펠러, 세월이라고 쓰여있는 낡은 글씨. 많은 게 지난 것 같아도 그리 변한 것 같지 않기도 했다. 주위에는 그때의 유가족도, 세월호에 관심을 두는 이도 없었다. 그 자리에서 과거의 기억을 더듬었다.
나는 2015년경부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을 했고 세월호를 취재하던 피디님과 일하게 되면서 세월호와 관련된 여러 현장에 가게 되었다. 단원고에서 유가족들을 만나고, 시위현장에 가고, 오체투지를 따라다니고, 동거차도에 가서 숙식하기도 했다. 모든 촬영현장에 전력으로 임하지는 않았지만 띄엄띄엄 서로 연결되지 않는 현장들에 계속해서 찾아갔다. 세월호 인양선 바로 앞에서 작은 어선을 타고 인양선에 타지 못한 유가족들과 인근을 맴돌았던 게 기억난다. 배를 집어삼킨 바다는 새카맣고 거칠었다. 나는 그 시절을 떳떳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유가족들과 자주 만나면서도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했다. 그들을 위로가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고, 나는 내 위로의 방법이 어설플 거라 걱정했다. 작은 실수라도 할까봐 잔뜩 몸을 사렸다. 영상에 필요한 질문만 하고, 카메라를 켜지 않을 때면 멀찍이 떨어져 상황을 관찰했다. 가끔 유가족들이 주는 음식과 관심에는 가능한 큰 미소와 함께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그건 명백히 손님의 행동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카메라는 항상 그들과 멀었다.
그때 나에게 작동했던 수십 겹의 마음 목록. 능력주의와 성공 욕망, 회사가 원하는 자극적이고 전투적인 영상을 만들어 내는 것, 능력을 인정받아 다큐멘터리 연출자로 성장하려는 마음, 촬영하기에 좋은 자리를 몸싸움으로 얻어내고, 유가족과 관계를 맺어 영상을 위한 말을 유도하기. 그리고 동시에 나의 부끄러움. 외부에서 쏟아지는 폭력 응시하기, 그런 기레기와는 달라지고 싶은 욕망,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적 고통, 나의 부모님과 자꾸만 겹쳐지는 그들의 비탄과 절규, 거기에 반응하지 않고 카메라 들기,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생존과 진상 규명에는 다가가지 못할 막막함, 월 백만원의 소득, 24시간의 노동,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나의 상처. 이 모든 게 무엇을 위한 것이냐는 물음.
목포에서 세월호 인양이 진행될 때가 기억난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게 나의 마지막 세월호 관련 촬영이었다. 목포신항, 철조망이 처져있는 구역에서 파란색 컨테이너를 두 개 놓고 유가족들이 모여 인양선에서 들려올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유가족들과 조금 멀찍이 떨어져 앉아있었다. 날씨가 쌀쌀했고 바닷바람이 계속 불어왔다. 유가족 아버지 한 분이 나를 보며 말했다.
- 이쪽으로 와. 그렇게 하지 말고.
모닥불을 피우고 있는 따뜻한 곳으로 다가와 가까이 앉으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이 나의 실패를 증명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엉덩이를 들어 조금 더 다가갔으나 끝내 섞여 앉지는 못했다. 이런 마음으로. 이런 몸으로는 무엇도 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만두자. 그렇게 결심하고 세월호와 점점 멀어졌고, 2017년 말에는 다른 일을 하게 되면서 세월호 현장에 더는 가지 않게 되었다.
그 시절을 나는 숱하게 반복해서 생각했다. 이제야 깨닫는 건 내가 무엇을 했든, 어떤 말을 했든, 그 모든 위로의 시도는 실패했을 거라는 것. 내 위로는 정확한 위로와는 분명한 격차가 존재했으리라. 중요한 건 정확함 그 자체가 아니라 정확함의 불가능을 인정하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격차를 인정하며 좁혀나가려는 시도, 그렇게 가닿으려는 노력, 어떤 방법으로도 그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아가기였다. 무엇보다 유가족들은 마냥 위로가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으므로. 최근의 304낭독회에서 들은 이야기다. 한 작가 분이 오랜만에 유가족을 만나 이렇게 물었다.
- 저희가 뭘 해드리면 좋을까요?
그분은 이렇게 답했다.
- 저희가 뭘 하고 있는지 지켜봐 주세요.
그들은 어떤 면에서 진정으로 강한 사람들이었고, 내가 해야할 일은 단지 계속해서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재난을 기억하자는 말이 어느덧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세월호 참사는 10주기이고 이태원 참사도 2년이 다 되어 간다. 새삼스레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고 한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쉽게 잊어버리고 마는 죽음. 나는 이 이야기를 새롭게 말할 수 있을까. 이것 또한 또 다른 되풀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인간의 뇌는 가혹하리만치 지루한 것을 금방 잊는다. 정말 중요하고, 아름답고, 새로웠던 것들도 잊혀진다. 지고지순한 연인관계도 지루해지면 끝이 난다. 어쩌면 삶을 살아가는 일이 이렇게 순식간에 지루해지고 잊혀지는 것들에 맞서며 무언가를 기억하고 되풀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비록 그 안에 들어있는 메시지는 수차례, 수백번 혹은 수천년동안 반복되었던 것일지라도 그렇게 다시 이야기하고, 쓰고, 말하고, 중얼거리고, 건네는 동안 지루한 것이 새로운 것이 된다. 다시 기억이 된다.
0에서 1로. 침묵에서 발화로. 무에서 유로. 정확한 위로에 다가가기. 실패한 지점에서 다시 나아가기. 그럼 다짐을 되풀이한다.
첫댓글 합평때 좋은 얘기들이 많이 나왔는데요, 다시 읽어봐도 역시 제일 궁금한 건 인현님의 위로의 방식이네요. 한번쯤은 인현님이 깊이 깨달은 위로에 대한 관념을 바탕으로 인현님께 깊은 위로를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