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장 외진 구석의 언어
잘 알려진 것처럼, 우산은 유럽이 원산지가 아니다. 유사 이래, 동양에서 수입된 것인데, 과거부터 전해 내려온 쓰임새는 오늘날의 쓰임새와 달랐다.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북쪽으로도 이동하다가 악천후가 나타나서야 우산이 나쁜 날씨와 연관되었다. 하지만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사실, 목적을 달성한 그것의 현재 이름은 비가 아닌 햇빛을 가리키고 있다. "작은 그늘”은 그 의미와 반대로 숨이 막힐 듯한 나른함 속에서, 눈부심과 열기로 가득 찬 넓고 지친 세계를 암시한다.
우리는 일본에서도 이중으로 쓰이지만 비슷한 이름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비슷한 기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것은 ”히가사” 또는 "해-모자”라고 불리지만, 태양 광선이나 소나기를 번갈아 막는다. 비록 일본으로부터 우리에게 온 것은 아니지만, 그 기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 합성어의 전반부는 우리에게 그것의 쓰임새 대한 정보를 주지만, 두 번째 부분은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말해준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모자 민족에 속한다고 인정한다. 일본에서 이름의 증거는 논쟁의 사슬에서 연결 고리로 조선에서 사실의 증거와 관련이 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가장 독특하고 매력적인 학문인 일본어의 특이성에 대해 잠시 살펴봐야할 것이다.
일본어는 알파벳이 아니라 음절문자다. 모든 일본어 단어들은 48개의 가능한 음절 중에서 선택해서 만들어 진다. 그들의 단어가 우리말의 글자 수만큼 긴 음절로 되어 있다면, 조합은 사실상 무제한으로 우리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단연코 많은 수의 단어들은 이음절어 또는 삼음절어 인데, 이 단어들보다 더 긴 단어들은 대부분 오래된 합성어들이고, 몇몇은 여전히 초기 뜻을 유지하고 있고, 다른 단어들 은동사의 굴절 어미들과 같이 그것을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우리말이 두세 글자밖에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자연히, 조합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런 제한 때문에 비록의미가 상당히 다르지만 같은 소리의 단어들은 필연적으로 엄청나게 많다. 이 특성으로 인해 모든 언어 중에서 이중의미에 가장 적합하다.
정말로 우리가 들은 대로 말이란 신들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일본어는 말장난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특별한 진미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악의에서 비롯된 생각에서 그것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 외에도, 파생된 것에 손대는 것을 즐기는 학생이라면 가장 우스광스러우면서도 가장 그럴듯한 실수에 계속해서 유혹된다. 그는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곧 판명될 기발한 발견을 끊임없이 할 것이다. 때때로 그것들은 의기양양한 발견자에게 실망감을 주기도 하지만, 때때로 활자화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후자의 경우 예를 들어 보겠다. "메이"라는 단어는 "눈”을 의미하고, 또 다른 "메이”는 "명료하고, 주목할 만하고, 뛰어나다”는 뜻이고, "부츠”는 "때리다”를 의미하며, 또 다른 "부츠”는 "물건”을 의미한다. 이제, "메이(뛰어난)"와 "부츠(물건)"를 합성한 "메이부츠”라는 단어는, 한 장소의 주목할 만한 물건, 즉 여행자가 낯선 마을에서 즉시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명소를 나타낸다. 번역자가 알고 있는 합성어의 의미. 그러나 이어지는 다른 합성어는 다음에 보이듯이 구성적인 면에서 엉터리다. 안타깝게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는 꽤 기발하게 "메이(눈)”와 ”부츠(때리다)”로부터, 그의 설명처럼 그것이 눈을 때린다는 뜻의 합성어를 이끌어냈다.
여기서 문제는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왜 이러한 파생이 전자만큼 정당화되지 않았는가? 그러한 가능성의 선택에서, 결국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해답은 그러한 탐구의 두 번째 단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 해답은, 그 단어를 나타내는 한자메 대한 언급이다. 파생어의 정확성 또는 부정확성은 이 외국 표의문자의 시금석을 통해 입증된다. 일본어의 "가나” 즉, "빌린 문자”는 자주 쓰이지만 단순히 표음문자이기 때문에, 뜻은 없고 발음만 표시한다. 외국인에게 ”bear”(곰)와 ”bear”(나르다)는 소리상으로 모호한 만큼 글자로 써도 완벽하게 모호한 것과 같다. 그런 모호함은 우리에겐 드물지만, 그것들은 일본어에는 늘 존재한다. 이러한 위급상황에서 일본의 글이나 인쇄에서 공통적으로 중국 한자가 개입하여 다소 새로운 방식으로 정확하게 표현한다. 이러한 두 번째 탐구 단계로 인해, 일본인들 스스로가 멈칫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사실 이것이 이 문제의 끝은 아니다.
실수를 피하기 위해 그 지침으로 일본인들이 일본어학에서 한자를 도입한 것은 사실일지라도,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일반화에 이르지 못했다. 일본에서 한자는 16세기 전 처음 채택되었고, 그 이전에도 일본어가 존재했다. 그러므로 제기하건대, 언어가 문자화 될 당시, 어떤 단어의 구성요소 중 의미 있는 요소를 간단히 알 수 있다. 그 전에 그들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의미하게 되었는지를 배울 뿐이다.
이제, 모자 우산 질문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우리는 문자가 없던 비 문자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일본어에서 모자를 뜻하는 단어는 "카사”이며, 조선어 "갓”과 정확히 같은 단어다. 이제 ”카사”라는 단어는 하나가아니라 많다. 헵번의 사전에는 7개 이상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7개의 한자가 상당히 다르게 표현되어 있고,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사실 그것들 대부분은, 아마도 전부는, 하나의 어근으로부터 분화된 의미일 것이다. 그 단어란, 현재 우리가 근사하게 판단할 수 있는 한, 머리를 둥글게 감싸는 물건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처음에, 사람이 무언가를 지칭하는 말이 아마도 있었을 것이다. 그 후, 일종의 의인화로 자연의 물체로 확장되었고, 심지어 제조된 물건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원형 덮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카사라고 불렸다. 이렇게 지정된 부품은 상단에 있어야 하며 둥글어야 하며 탈거하기 쉬워야한다. 이 조건을 충족시켰다면 카사는 사람의 모자였다.
8월 하순, 비가 올 때 달 주변에서 보이는 후광을 "카사”라고 부른다. 달은 다가오는 폭풍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일본인들은 환성적으로 상상했다. 그리고 어떤 견과류에는 카사(껍질)가 있다. 어떤 질병의 근원지는 카사이고, 껍질을 의미하는 그 이름은 질병 그 자체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그릇은 카사(뚜껑)로 덮이고, 쓰개로 덮인다고 한다.
예를 들어, 수프 한 그릇은 항상 모자를 쓴 채 당신에게 가져다준다. 마찬 가지로 우산도 카사다. 옛날 말은 너무 빈약해서, 초기의 객관적인 단순함에 놓여 있던 사람들은 많은 형태들을 구별할 수 없었고, 그렇게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중국인들이 나중에 형태들을 차별화하기 위해 일본인들을 가르쳤다.
원래 모자와 우산 모두 ”카사”라고 불리는데, 단독으로는, 언어에서 나온 논쟁은 단지 초기 민족에 있어서, 비록 뜻이야 더 많을지라도 표현상으로는 부족함을 증명하지만, 우리가 조선에서 발견한 것과 관련해서는, 그것은 조선반도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우산과 모자는 원래 하나라는 매우 강력한 증거다. 처음에 우산은 모자였다.
일본인들은 외국의 표본에서도 일치됨을 직감적으로 인정해, 유럽산 우산이 도입되자 단번에 적절하게 “박쥐 모자”라고 불렀다. 포유류와 조류 모두의 가엾은 왕따인 것처럼, 그 종의 매우 우울한 표본은 가늘고 단단한 팔 위에 펼쳐진 가느다란 질긴 막과 함께 햇빛도 어둠도 부정하는 것만큼 흉측한 것도 없다는 것을 시사했다. 그러나 그것은 심지어 일본인들 사이에서조차 비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널리 퍼졌다. 유럽에서 온 흰 꽃 풀이 우리 밭을 차지하여 토착종을 몰아낸 것과 같이, 미국의 밀짚모자도 큰 도시로 급속하게 퍼졌다.
모자는 이만하면 됐다. 그러나 이것은 조선인들이 어떻게 글을 배웠는지에 대한 단어를 시사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중국에 가기 전에는 이웃이나 사촌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인들은 분명히 글을 쓸 수 있는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차용 한자 외에, 두 민족 모두 현재 음성체계를 갖추고 있다.
일본어의 “가나”는 단순히 어떤 한자(여기서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님)의 일부를 떼어낸 글자의 모음일 뿐이며, 조선의 “언문”은 소위 말하는 것처럼 계보가 상당히 다르다. 그것은 십중팔구 외교 만찬의 결과였다.
조선은 1년에 한 번 북경정부에 특사를 파견했다. 조선의 특사들은 연간 공물을 중국에 전달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그들은 북경에서 며칠을 머물렀고, 그들이 머무는 동안 정기적으로 궁전에서 식사하도록 초대받았다. 조선이 외국 사회를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에 외교관들에게 이 날은 기억할 만한 날이었다. 그곳에서, 몇 시간동안, 조선의 특사들은 넓은 동양의 모든 지역에서 온 저명한 방문객들, 즉 일본과 만주에서 온 사절들, 아라비아에서 온 여행자들, 인도에서 온 현자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중국 궁전은 그 당시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외딴 장소가 아니라 알려진 세계의 중심지 중하나였다. 연회 참석자들 역시 서로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현대 유럽 정부에 걸맞은 상대적 입장을 가지고, 그들의 할당된 의석에서, 실수가 있으면, 옥신각신했다. 당연히 조선인들은 귀를 기울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각 손님들은 있을 수 없는 국가 이야기를 늘어놓고, 국가적 호기심을 뽐내면서 이웃과 경쟁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한 것은 허풍이므로 놀랄 필요는 없었다. 대화하는 동안 그들은 많은 새로운 생각을 주고받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것을 장미빛으로 물들였고, 그것을 바람직하게 보이게 했다. 이렇게 해서 어느 해, 조선 사절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산스크리트 문자의 사본을 넉넉한 통옷 소매 속에 집어넣었다.
이 선물은 조선의 학자들의 마음을 끌었고, 변화를 거쳐 현재의 "언문”으로 채택되었다. 그것은 알파벳이었고, 이론적으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조선어는 소리상 너무 빈약하여 정교한 체계에 맞지 않았고, 쓸려 나간 씨앗은 다시 진창에서 뒹굴었다. 실제로 알파벳의 가능성은 음절문자의 족쇄로 전락했고, 요즈음도 이것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정당성보다 애국심이 강한 다음 세대는 훌륭한 발명품을 만들어 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신화를 시작했다.
어떤 왕이 있었는데, 일반적인 왕의 관례와는 달리, 자신의 지위의 의무를 어느 정도 깨닫고 사회개선을 위한 계략을 짜는 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이 현명한 군주에게 한자에 대한 고된 암기를 대체하기 위해 한자의 발음체계를 도입할 수 있다면, 배움이 일반 백성들 사이에 더 쉽게 전파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한자를 배우기 위해서는 오랜 공부와 기억력이 필요했다. 반면에, 그들이 말한 대로 읽는다면, 두 연구는 당연히 손에 손을 잡고 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최대한으로 간단한 매개체를 발명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을 그는 곧 만족스럽게 성공했다. 그러나 고급 문학작품에서 익히 알려진 보다 어려운 문제가 발생했다. 백성들의 원성을 어찌 할까? 물론, 그는 자신의 승인으로 그것을 선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받아들여질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 선례에 중독되어 변화에 순응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초자연의 지원을 받아 익명의 효과를 시도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몇 개의 잎을 모아, 공부 대신에 무엇이 그를 서 있게 했는지에 대한 비밀 속에, 그가 고안한 기호를 꿀로 그리고 그것들을 그의 정원에 뿌렸다. 벌레들이 꿀을 먹을 때, 잎에 기호의 흔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벌레들이 길래 그렇게 단것을 좋아했냐고 묻는 것은 신화에 실례가 될 것이다. 본능이든 아니든, 벌레들은 이 경우 기대한 일을 충분히 할 의무가 있다고 해두자. 벌레들이 구상대로 제 역할을 다했을 때, 왕은 매우 순진하게 그의 관리들을 초대하여 정원을 거닐게 했다. 그들이 걷는 동안, 그들은 우연히 잎사귀를 보았고, 상궁들 중 한 명이 허리를 굽혀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조사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이런 기이한 표시는 처음 보았다. 왕은 그 표시들이 아마도 신들로부터 숨겨진 계시를 포함하고 있을 것이며, 그것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그것을 해독 할 것을 제안했다. 어떤 설명도 없자, 왕은 친절하게도 그들에게 3일 동안 그 문제를 고려하도록 했다. 그 시간이 지나도 그들은 당연히 아우 말도 없었다. 한 젊은이만 예외였다.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몇 년 더 젊다는 이유로 호기를 부려, 어떤 생각을 떠올린 척 했으나, 그는 사흘을 더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그를 받아들였다. 만기일에 그는 사흘을 더 달라고 했다. 이것 역시 받아들여졌다.
담합이 있었든 없었든 간에 이 이야기에서는 슬기롭게 생략되어 있다. 침묵은 물론 의심과 동의어다. 9일 후에 그는 잎들이 왕이 그곳에 그린 것을 나타냈을 뿐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므로 확실한 계시를 믿는 것만이 필요했고, 왕과 예언자는 함께 나타내야 할 여러 소리들을 발명했다. 낱낱이 독립된 활자도 같은 왕이 발명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