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요약분, 거대한 최면, 시원하게 부숴버립시다! | [유식 30송] 18절 쉬운 강독 | 2023.11.25.
https://www.youtube.com/watch?v=x20bj-DLHjU
텍스트 요약분:
1. 삶의 족쇄(足鎖)와 죽음의 족쇄(足鎖)
(가) 죽음의 공포(恐怖)라는 족쇄(足鎖)
- 우리는 물질 몸 + 정신 의식 + 자아(Personality)
- 우리는 이 세 가지 측면의 복합체
- 유식으로 이야기하면 전5식 + 6식 + 7식
- 우리 = 5, 6, 7식의 임시 결합체
- 죽음이란 생명현상이 더 이상 기능하지 않음(공포(恐怖) 야기)
- 물질 몸은 원자 분자 소립자 하나도 죽음을 알지 못함
- 죽음이 물질 하나도 전혀 다치게 하지 못함
- 정신 의식은 당연히 죽음과는 무관
- 자아(개인)은 임시로 설정된 복합체(탄생 할 수도, 죽을 수도 없다)
- 진실(지혜)는 일심 반야 프라즈나 파라미터로 부터 옴
- 지혜 도피안으로 단일의식의 가리킴을 들을 때 죽음의 공포(恐怖)는 즉각 해결됨
(나) 삶의 의미와 가치라는 큰 족쇄(足鎖)
-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야 자유와 평안과 행복에 이른다고 들어왔으나,
이에 대한 어떤 의심도 가져보지 않았다.
A)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 했으나, 의미 가치가 없다는 판명이 나는 경우
- 어릴 때부터의 가르침에 따라 추구해야 하는 줄로 만 알았다
- 지옥의 절망으로 나락으로 추락
B)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해서, 의미와 가치가 있다라고 판단 되는 경우
- 어릴 때부터 가르침 받은 대로 되었기에
- 지옥이 아닌 천국의 만족일까? 아니다
(다) 의미 가치 획득을 위한 세상(세간)의 추구 경우
- 세상(세간) : 돈, 권력, 명예, 여자남자, 여행, 술, 기호식품, 운동 등을 추구
a) 의미 가치를 찾아도, 돈 권력 명예 등을 획득해도 천국은 오지 않음
b) 오히려 획득하면 할수록 기대했던 의미와 가치없음을 뒤늦게 알게 됨
c) 결국 고통(苦痛)과 공포(恐怖) 더욱 증가
- 세상(출세간) : 영적인 무엇, 숭고 순수 고매한 부처되기, 그리스도 영접,
하나님 알라신 만남, 신비주의, 탄트리즘, 금강승 등을 추구
a) 아무리 추구해도 목표 했던 바가 성취되지 않음
b) 성취 된 듯이 보이는 때가 옴(어떤 체험 비일상적 체험, 범상한 체험,
범상치 않은 체험, 신비 체험 등등)
c) 체험이 오히려 족쇄(足鎖)가 되어, 체험이 없을 때보다도 더 사람을
망가뜨리고 위선의 가면을 쓰게 하기 쉽다
d) 결국 삶의 의미 가치가 있다 할 때도 여전히 고통(苦痛)과 공포(恐怖)다
(라) 왜 성취했을 때 조차도 고통(苦痛)과 공포(恐怖)인가?
-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하는 자가 개인(個人) 자아이기 때문이다
- 개인자아는 임시설정(臨時設定)인데 이 설정의 실상은 단일의식, 일심, 반야
- 개인 자아는 왜 죽음의 공포(恐怖)를 벗어나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 할까?
그것은 개인 자아가 자신의 실재성(實在性)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기 때문.
- 이 사실이 모든 문제의 단초이며 출발이었음
- 단서(端緖):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무아(無我)/ 무위(無爲)
- 선각들의 가리킴이 소문, 풍문정도로 알려지고 전락
- 대중은 고매한 특별한 사람들의 몫으로 돌리며 회피 전략
(마) 의미와 가치로 부터의 진정한 해방(解放)의 시작은
- 설정의 실상이 단일의식, 일심, 반야임을 알 때 시작 됨
- 진정한 해방(解放)의 시작은 어떤 계기(契機)와 인연과 단서(端緖)가 있어야 한다
- 개인(個人) 스스로는 절대 이 프레임(생각의 틀)이 마인드셋 되어 있어,
이 족쇄(足鎖), 이 굴레, 이 멍에(맥거핀)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함
- 우물안 개구리는 진정한 해방(解放)의 시작이 비로소 펼쳐질 가능성 임
- 이 가능성은 필연적인 단서(端緖)가 나타날 때 진정한 현실로 발현 됨
- 우리가 초발심 순간, 즉 우리가 편안한 집을 떠나 이 길을 걷는 순간
이미 단서(端緖)와 인연은 즉시 멍에를 단박에 부서뜨리게 된다
- 실은 늘 들어왔으나, 귀를 닫고 있었다
- 다른 말로 하면 호모사피엔스 문명의 프레임 안에 있었기에
들려도 들리지 않았고, 정신이 딴 데가 있어 듣지 못함
- 진정한 해방(解放)의 시작인 단서(端緖)는 아무도 주지 않는다.
즉 사람이나 개인(個人)이 아니다.
선현 선각이 주시는데 선현 선각은 사람이나 개인(個人)이 아니고,
의식의 자기자각(自己自覺)이다
(바) 중요한 2가지 단서(端緖)의 상기(想起)
- 간단하게 살펴봄(황벽불법 무다자: 黃檗佛法 無多子)
- 보조 스님께서 먼저 “지옥 고통(苦痛)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부처를 찾아라” 했을 때,
그 부처 즉 의식 마음의 위치 이게 어디에 있느냐? 그리고 그 개수는 몇 개냐?
- 이것이 첫 번째 단서(端緖)
- 요즘 용어로 하나의 의식, 단일의식이라는 이 단서(端緖)를 우연히 듣게 됨
- 두 번째는 이 단서(端緖)를 듣고 관심의 초점을 이동
- 일체 모든 일과 모든 관계는 바로 일심 단일의식의 자기자각(自己自覺), 자기깨달음
- 지금 진행형으로 모든 일이 대오각성이고 모든 관계가 대오각성
- 이렇게 알게 됨으로써, 행복 속에서 모든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됨
(사) 생명파티에 있음을 앎으로서 전도몽상(轉倒夢想)에서 풀려남
- 모든 관계가 다 편하고 내 마음대로 되야 한다는건 개인적 관점,
- 어떤 일도 개인(個人)이 하는 것이 아닌 단일의식이 함
- 모든 일과 모든 관계가 생명 파티 속에 있음을 앎
- 개인(個人), 행위자, 아는 자는 없으며, 앎만 있음
- 앎만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단일의식의 자기자각(自己自覺)
- 즉 이해함으로써 풀려남
- 진정한 해방(解放)의 시작이며, 이 시작은 시작 없는 시작
(아) 일체는 단일의식의 자기자각
- 삶의 의미와 가치, 삶의 무의미와 무가치의 알아봄을 통해
결국은 이 궁극의 진실 지혜에 도달할 수 있었다
- 그것은 도일체(度一切) 의식이었다
- 자기자각을 이론으로 받아들여서 안 됨
- 현재 진행형이며 자기 깨달음
- 자기자각(自己自覺) = 자기 각성 = 자기 깨달음
(자) 태어남과 죽음
- 태어남은 태어남이 아니고
-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음
- 죽는다는 것은 죽음이 아니고, 서서히 잠에 빠져들어 휴식 취함과 같다
2. 유식30송(18절) 9페이지
(가) 원본
일체 종자식이
이렇게 저렇게 전변함에 의거해서
전전하는 세력 때문에
이러저러한 분별이 생겨난다네.
由一切種識 如是如是變
以展轉力故 彼彼分別生
(나) 쉬운 현대 한글 번역
일체 모든 것의 근본인 단일의식에는
본래 주관과 객관이 없는 것인데
스스로 자변(自變)하여,
일인다역(一人多役)의 드라마로 전개되고
흘러가는 힘이 있기에
주객, 정신물질, 몸 시공간 등의
임시 가상의 이원성이 일어난다.
(다) 해설
- 임시가상이 가짜, 쓰레기, 무가치하다는 게 아님
- 임시적이지 않은 진짜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의 하나로서
- 자기 체험의 방식으로서 임시 가상의 이원성을 사용
- 즉 임시 가상의 이원성의 실상은 영원한 진짜
- 개인(個人)은 자기의 실재성(實在性)에 대한 아무런 의심이 없기에
고통(苦痛) 공포(恐怖) 발생
- 개인(個人)은 임시설정(臨時設定)이란 말을 들으면, 개인(個人)은 무의미
헛깨비 꿈으로 받아들이는 경향
- 그래서 삶의 의미와 가치는 절대적으로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다고 하면
오해할 가능성이 높다.
- 개인(個人)은 절망에 빠지지만, 우리의 진정한 무엇은 참으로 본래의 근원으로부터
자기 모습의 회복으로 진정한 해방(解放)의 기쁨을 느낌
(라) 결론 요약
- 우리는 생사 굴레를 벗어나고자 초발심을 일으킴
- 두 가지 큰 족쇄(足鎖)를 발견했는데 이 족쇄(足鎖)를 발견했을 때
타파하고자 이리저리 긴 세월 했지만 타파 되지 않았음
- 이 족쇄(足鎖)의 타파의 단서(端緖)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나옴
- 족쇄(足鎖)를 타파하기 위한 그 전제가 잘못되었다는 앎을 접하고
개인적으로 꼬꾸라져 절망하게 됨
- 이 이야기가 도마복음에서는 이렇게 표현
- “찾아라 진정으로 찾아라 열심히 찾아라
그러면 반드시 찾게 되는데“, 찾은 다음에는 묘한 얘기가 나옴
- “기뻐하는 게 아니고, 바로 절망하고 엄청난 고통(苦痛)과 근심에 휩싸일 것이다“
이것을 해석하기 매우 어렵다
- 그래서 복음서 마가 마태 누가 요한에는 “그냥 두드려라 열릴 것이요,
찾아라 찾아질 것이다“ 로 표현
- 원전 내용의 왜곡이 있으며, 본래 이야기는 ‘찾아야 한다’.
- 마치 보조 스님이 "지옥 삼계의 지옥 고통(苦痛)을 벗어난다고 할 것 같으면,
부처를 먼저 찾아라, 부처는 마음이니 이 마음은 하늘과 땅을 뒤덮고 있다." 라고 함
- 2천년 전에 살았던 팔레스타인 땅의 선각도 이야기는 동일
- 먼저 찾아라 진짜를 먼저 찾아라, 그럼 반드시 찾을 수 있다
- 그것은 네가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발견 될 것
- 만들어 내거나 조작하는 것이 아니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
- 깨달음은 만들거나 발명하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
- 티칭(Teaching)이 아니고 포인팅(Pointing) 이듯이 발견하는 건데,
“찾아라 반드시 찾아라, 그러면 반드시 찾아질 것이다.
- 그런데 묘하게 찾은 뒤에는 너는 큰 고통(苦痛)과 절망과 근심 걱정에 빠질 것이다“
- 왜 그럴까? 모든 행위자와 모든 선택자를 나, 개인(個人)인 줄 알았는데,
모든 행위와 모든 선택은 내가 함이 아니요, 하나의 지혜가 모든 것을 운영
- 문제해결의 중심에 나섰던 개인(個人)을 비켜나라 하니
개인(個人)은 걱정에 빠지고 혼란스러움
- 개인(個人)은 고통(苦痛)과 공포(恐怖)의 노예였는데,
공포(恐怖) 고통(苦痛)을 잘 사용할 수 있는 그 매뉴얼을,
단서(端緖)를 비로소 읽고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니,
“이런 고통(苦痛) 뒤 잠시 후, 네가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라고 도마복음은 언급
(마) 중간 결론
- 우리의 삶과 죽음 일체 모든 일, 일체 모든 관계는
이 하나의 의식의 자기 깨달음 즉 우리의 깨달음이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