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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영성 덕후의 삶 (170906)_A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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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 뭔가 변화를 주려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여야 돼요. 기존 정보로는 답이 안 나오는 거잖아요. 기존 정보로는 답이 안 나온다는 걸 다들 아시는데, 또 하려고 합니다 사람은. 또 그대로 하면서 이번에는 운이 좋아 되지 않을까? 그런 건 없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정보로 새롭게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지금 우리나라도 앞으로 지금 정치나 다 난리입니다만. 지금 북한 문제만 해도 시끄럽고 우리나라 내부적으로도 정치적으로 많은 이슈들이 있는 거 압니다만, 기존 방식으로 그대로 생각하셔서는 절대 답이 안 나옵니다. 답 안 나오니까 이렇게 살고 있죠. 생각을 바꾸셔야 돼요. 생각을 바꾸려면, 학당식으로, 항상 내 생각까지도 다 모른다 한번 해보시고, 상대방 말이 맞을 수도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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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모른다 하시고. 이 과정을 거쳤느냐는 거예요. ‘그래도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아’ 지금 얘기를 하는 게 아니고, 그 결론을 내리기까지 충분한 객관적 실험을 하셨느냐는 거죠. 그 결론이 타당한지 스스로 실험이 뭐냐? 하면, 자기가 남의 입장까지 진심으로 돼 보는 거예요. 나를 비방하는 사람 입장이 진심으로 되어보는 연습을 해야 돼요. 그러니까 나를 일단 내려놔야죠. 몰라 괜찮아 해서 내려놓고 정신을 맑게 한 다음에 상대방도 돼 봐야 돼요. 상대방이 돼서 나를 비판도 해보고, 내가 또 상대방을 비판하면서 서로 토론을, 자기 내부에서 해보라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자기가 한층 성숙돼 있으면, 그 얘기들이 밖으로 발표가 돼야 돼요. 자기 내부적으로 변증법적으로 한번 음양을 충돌시켜 본 뒤에, 자명한 걸 밖으로 내놔야, 사회가 더 맑아지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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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거 안 가르쳐주고, 그냥 ‘생각만 바르게 하라!’ 이렇게 생각을 바르게 하는 연습이 안 됐는데 어떻게 합니까? 양심 분석하셔야 생각이 바르게 되고, 양심 분석하실 때 항상, 나와 남 입장을 바꿔놓기, 역지사지라고 하죠. 역지사지를 항상 기본으로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남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100% 이해가 안 되더라도, 남이 돼서 내 입장을 한번 바라보시면, 또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요. 그리고 내가 놓쳤던 게 보여요. 이렇게 뭔가 사고가 더 성숙되는 사회로 가지 않으면, ‘나는 옳으니까 내 주장만 할 거야 죽을 때까지. 받아들이든 말건 너네들이 알아서 해.’ 하고 서로 계속 그런 식으로 대화를 하고 있어요. 정치가들도 그렇고, 지겹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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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있으면, 다음에 뭔 소리 할지도 뻔한 캐릭터들이 사회를 이렇게 문제로 이끌어가고 있는데, 대안이 없는 것처럼 하는 것도 잘못된 선입견입니다. 대안이 왜 없어요? 나부터 일단 생각을 바꿔보시면 좋겠습니다. 항상 요 그림 하나(도너츠 그림) 우린 항상 이 그림 그려놓고. 여기 (바깥 원)서는 문제가 안 풀릴지 몰라도요. 여기다 몰라 내가 몰라 하면 자동으로 여기 우리 신성 자리 (안쪽 원)에. 신성한 영역입니다. 우리 민족이 하느님이라고 한 자리잖아요. 부처님도, 석가모니 부처님이 우리의 참나는 아니죠.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오시기 전부터 신성한 자리였던 우리 안의 불성자리, 여기는 불교로 치면 법신불, 비로자나불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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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부처님이 아니라, 불성으로서의 부처님을 말하는 거예요. 여기가 주인공이고요. 주인공. 예전 스님들이 주인공! 이러기도 했단 말이에요. 이 자리가 우리 내면에서 느껴지셔야 돼요. 느껴졌다는 건, 거기에 경배를 하신 겁니다. 에고가 그 자리를 느꼈다는 것은, 그 느끼는 행위 자체가 거기에 몰입을 했다는 얘기예요. 그게 제일 훌륭한 경배입니다. 하느님을 직접 뵙는 게 제일 경배지, 하느님이 어디 계신지도 모르면서 ‘충성합니다. 잘하겠습니다.’ 이건 혼자 하는 소리고요. 하느님을 직접 뵈야죠. 직접 뵜냐는 거죠. 우리 안에서 하느님을 직접 뵙고, 거기서 딱 에고가 확실하게 무릎 꿇고 그분한테 몰입했냐는 거죠. 매일매일 매 순간 사실은 경배가 일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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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하건 의식 못하건. 근데 의식하고 살아가자는 거예요. 그러니까 ‘선가귀감’에 ‘참나 붙잡는 게, 진심을 늘 붙잡고 있는 것이 최고의 정진이다.’ 이게 다른 게 아니라 최고의 경배예요. 그게 최고의 예배이고. 자기 안에 있는 신성(神性)을 못 만나면서 무슨 하느님을 받드니, 위하니… 이건 다 자기 기만이에요. 사람들이 말하는 ‘신성에 경배하네. 위하네. 내가 부처님 예수님 하느님 뜻대로 사네.’ 하는 것은 이 에고의 무지와 아집일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본인 생각이라고요. 본인 생각. 우주의 이 신성과 아무 관련 없는 본인 생각. 언제 한번 신성하고 자기가 똑같이 산 적이 있다고, 갑자기 내 생각이 답일 거라고 왜 생각하시죠? 내가 생각하는 하느님이 진짜 하느님일 거라고 왜 생각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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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에 대해서 그렇게 전문가이시지 않을 텐데… 전문가가 되려면 직접 뵙고 몇 십년 같이 지내보고 해야 돼요. ‘하느님은 이런 분이야. 이런 거 싫어하시는 분. 이런 건 아주 그냥 뭐라고 하시는 분이야. 이건 허락하시는 분이야.’ 이 정도 아시려면 하느님과 다이렉트로, 내면의 불성과 다이렉트로 만난 세월이, 몇십년도 짧죠. 몇십 년 가지고 뭘 얘기해요. 세세생생 만나야 돼요. 사실은 그래야 조금 압니다. 그러니까 화엄경에서 부처님 되는데, 십지보살, 인격으로서 최고의 부처님의 모습을 갖추는데 3 아승기겁, 3 무량겁 걸린다는 게요, 공부 시작부터입니다. 공부 안 하고 있으면 3 아승기겁 아니라 더 많은 세월이 가도 어차피 못 만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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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시작했다고 해도 3 아승기겁이면요,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불성과 함께 지내야 돼요. 최소한 일지보살부터는 불성을 확실히 알죠. 일지되는 데까지가 1 아승기겁이고요. 일지 이후 칠지까지가 또 1 아승기겁, 칠지부터 십지가 또 1 아승기겁. 여러분이 제대로 불성을 만나도, 그 이후 2 아승기겁의 세월이 기다리고 있고. 더 들어가면 그 전 아승기겁 즉, 일지까지 가는 길에도 불성은 이미 봐요. 불성 이해하는데요, 1 아승기겁에 가까운, 1 아승기겁에서 만 겁 뺀 세월이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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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결국 이 얘기는 무량한 세월이 걸려요. 여러분이 눈 뜨고 사물을 보는 것처럼 불성을 보고 살아도, 그 불성 뜻대로 자기가 자기 자신을 바꾸는 데 엄청난 세월이 걸려요. 그런데 대승기신론에 ‘십지보살도 불성에 대해 모르는 게 있다’고 하면, 이거는요 이해되세요? 이건 이렇게 답 없는 얘기라고요. 그런데 내가 본 적도 없는 하느님을 잘 아는 것처럼, ‘내가 교회 몇십 년 다녔으니까. 절에 몇십 년 다녔으니까. 부처님을 내가 더 잘 알아’ 성직자들 이런 얘기 하는 거 많이 봤습니다. ‘제가 전문가예요. 잘 알아요. 부처님은 이런 거 원하지 않아요. 하느님은 여러분이 이러길 바라요.’ 듣고 있으면 저는 되게 놀래요. ‘와 저분들 진짜 대단하다. 본 적도 없는 걸로 저렇게 뻥을 칠 수 있으면 진짜 뭔 짓도 하실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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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로 알 수 있느냐? 본 사람은 알아요. 저 사람이 봤는지 안 봤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보고 사는 사람은 가짜들을 바로 알아요. 속일 수가 없어요. 본 것처럼 속일 수 없습니다. 속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똑같이 못 본 사람들은 속일 수 있어요. ‘오 저 사람 전문가인가봐’ 그러면 진짜 비전문가들끼리 얘기지, 전문가한테 그거는 말도 안 돼요. 딱 보면 말도 안 된다는 것도 나와요. TV에 ‘세상에 이런 일이’ 이런 데 보면, 말도 안 되는 발명하시는 분들 나오죠. 비전문가들은 속아서 거기 돈까지 투자합니다. 전문가가 보면 어떨까요? 이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말이 안 되는 얘기인데, 그게 답이에요. 말이 안 돼, 사기당하는 경우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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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 TV 고발 프로 이런 데 보면요 그런 말도 안 되는 걸로 사기당하죠, 왜? 일반인이 보기에는 그럴싸하니까. 진짜를 알고 싶으셔서 여기 오셨다면, 다른 가식이나 이런 거 다 버리시고 쓸데없는 얘기 다 빼고, 하느님과의 만남, 부처님과의 만남, 이것만 가지고. 소통 이게 주제입니다. 이거 양심 노트를 왜 만들었을까요? 소통하려고요. 여러분 양심하고 소통하려고요. 저랑 소통하는 게 아니고요. 여러분 양심하고 소통하는 법, 여러분 안에 있는 신성과 소통하는 법이에요.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지 않으면 소통이 안 일어나요 그리고 여러분은 아상만 생겨요. 무지와 아상만 이렇게 커져요. 약간의 체험이 더, 약간의 외유라고 하죠? 바깥 구경이 오히려 여러분을 망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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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봉우 선생님의 글을 보다가, 옛날 말이죠. 한문이죠. ‘약간의 외유로 방약 무인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자기가 만나본 도인이라는 사람들, 만나 보면 약간의 바깥 체험이라는 게, 약간의 신비 체험으로 우리 일상 바깥의 체험을 한 덕에, 방약 무인, 아주 그냥 남들을 깔보고 무시하고, 나밖에 이런 거 못한다! 하는 그렇게 거만해진 사람이 너무 많다.’ 만나보면 다 허상이고 실체가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 사람들이 계룡산 이런 데 다 포진해 있었죠. 뭔가 있어요. 신비한 건 하나 있어요. 그 사람도 신비한 거 하나가, 사실은 도(道)에서 볼 때는 아주 빵부스러기죠 도의 본질하고는 아무 관계없는. 약간의, 우리 에고가 신성과의 만남에서 얻는 약간의 결과물들이 있어요. 빵부스러기들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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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 집착하는 순간, 여러분은 이쪽으로 가는 길을 또 잃어버립니다. 하느님이 던져주는, 신성이 던져주는 신비한 것에 딱 몰두하는 순간, 여러분은 본질을 놓쳐요. 참… 중생이 깨닫기 어렵게 돼 있는 게 이런 것 때문에… 깨닫는게 어려운 거 아니에요! 이론적으로 보시면, 여러분, 몰라 괜찮아 해서 신성하고 소통하고 늘 몰라 괜찮아 매순간 하시면서, 놓치면 또 하고 하시라고요. 안 끊어져야 된다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지금 이 순간은 깨어 있으십니까? 지나간 얘기는 하지 말고, 매 순간 매 순간,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깨어 있으면서 신성의 뜻대로 살아가면 그만이에요. 여기 뭐 더 보탤 게 없어요. 매순간 내 안에 있는 신성을 자각하고 에고의 뜻대로 말고 신성의 뜻대로 살아가시면 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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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쉽죠. 이게 다에요. 이걸 여러분, 인간이 무량한 세월을 닦아야 조금씩. 닦은 만큼. 왜 이게 무량한 세월을 닦아야 되는지 아세요? 끝이 없는 게, 닦으면 좀 나아져요. 더 좀 닦으면 또 좀 더 나아지니까 무량하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는 게, 끝이라는 건 없는 거예요. 중생한테 끝은 없는 겁니다! 중생은 무량한 세월이에요. 무량이라는 건 끝이 없어요. 그런 걸 생각하시면 지금 조급하실 일이 없어요. 무량한 세월이라는 건 끝이 없다는 얘기예요. 그러면 여러분 조급하실 일이 없고, 오늘을 즐기세요. 무량한 세월을 가지고 계획을 짜실 필요는 없죠 오늘을 즐기시면 돼요. 다만 ‘어떤 식으로 나는 이 무량한 세월을 살아갈 건 가?’만 지금 정하시면 돼요. 무량한 세월이라고 해도 매 순간은 그 순간 그 순간이 흘러갈 뿐이니까, 매 순간 입장에서는 지금이죠. ‘지금 여기서 뭐 할 거냐’만 연구하시면 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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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실지 그 태도를 정하시면 됩니다. 무량한 세월을 가지고 고민하실 필요는 없죠. 지금 어떻게 하실래요? 지금 내면에 있는 신성과 만나셨습니까? 지금 못 만나셨으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습니다. 지금 만나셔야 돼요. 모른다 하시고. 모른다가 별 게 아니라, 판단 중지. 여러분 익숙한 기도문을 외우셔도 되고, 부처님 이름을 외우셔도 되고, 기독교 같으면 아버지 그냥 하셔도 돼요. 하느님 하셔도 되고 보편적으로. 기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냥 우리가 쓰던 거잖아요. 우리 애국가에 있잖아요. ‘하느님이 보우하신 나라’입니다. 하느님, 우리 민족이 원래 쓰던 신성에 대한 표현이에요. 기독교가 빌려 쓴 거지. 하느님 기독교도 쓰라고 하죠 뭐. 하느님 그 자리가 느껴지세요? 하느님. 제가 하느님 그런 건 기독교적 용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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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이 쓰는 신성한 표현이에요. 부처님도 하느님이에요 사실은. 그러니까 동학이 나와서 ‘사람이 하느님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죠. ‘우리가 하느님이다. 우리 안의 신성.’ 여러분! 신성이 없다면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고 할 수 없어요. 여러분 안에 신성이 없다면, 무슨 재주로 보고 듣고, 이 흙덩어리(육체)를 들고 다니실 겁니까? 이거 탁 안 움직이면 죽은 거죠. 여러분이 지금 정신으로 이거 (육체) 들고 다니시는 거에요. 다 염력이 있으세요. 염력이 다들 있으세요. 뭔 염력이냐? 정신으로 지금 이거 움직이시잖아요. 이거 여러분! 못 움직이시면 죽은 거예요. 여러분 갖다 어디다 묻어야 돼요. 태우든가. 이거는 흙이니까. 흙으로 돌려보내고 끝낸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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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러분 살아계신 동안, 이 흙덩어리를 움직여서 별 짓 다 하고 다니시죠. 만난 것도 먹고 뭐도 하고, 이걸로 사람도 만나고. 눈앞에 있는 게 지금 흙덩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지금 흙덩어리예요. 흙덩어리가 살아서 막 얘기하고 있죠. 뭔 재주로 제가. 이게 신통이죠. 이런 게 진짜 신통이죠. 정신으로 이걸 다 하고 있어요. 요즘 기계 로봇도 꽤 발전했어요. 뇌파만으로 움직이는 로봇들이 나옵니다. 여러분 생각만 해도 그 뇌파의 변화를 가지고. 아무튼 우리는 그냥 쓰고 있잖아요. 신통을 이미, 연구 안 해도 지금 잘 쓰고 사시죠. 그러면 결국 이 근원의, 생각 감정 오감이 어디서 일어나는가? 더 파고 들어가면, 이 자리가 나옵니다. 여기 여러분, 우주의 근원을 여러분 안에서 발견하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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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안 나가셔도. 여러분이 우주인데 이미. 이 우주에서 제일 신통한 자리를 찾아 들어가면요, 여러분 정신의 근원이 나옵니다. 여기가 신(神)이에요. 역대 모든 신을 찾은 사람들은 밖에서 신 찾은 분이 아무도 없어요. 다 자기 안에서 찾았어요. 가장 밖에서 신 찾는 종교가 기독교인데, 기독교의 성자인 예수님도 내 안에 아버지 계신다고 했죠. 그리고 이미 그대들 안에 천국이 있다고 했죠. 다 우리 안에서 찾으라고 했지, 밖에서 찾으라고 하지 않아요. 왜? 밖으로 찾아나가면 오감밖에 없어요. 오감의 대상에서밖에 신을 찾을 수가 없어요. 아무리 어떤 교회를 잘 지어서 거기에 신의 모습을 진짜같이 그려놨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불상을 잘 만들어 놨더라도, 결국 그거 보고 자기 안에 있는 신성 찾으라고 해 놓은 거지, 그게 신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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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이 너무 존경스럽다 그래도 그건 그냥 불상이지, 오감의 대상이지, 신성은 오감의 대상이 아닙니다. 모든 것의 근원이지 단순한 오감의 대상이 아니에요. 근원이죠. 오감의 근원이죠. 자기 정신의 뿌리를 찾아 들어가시면, 누구나 똑같이 만나요. 모든 종교인들이 다 찾았어요. 성자 소리 듣는 분들은 다 찾으신, 이거 찾으신 분들입니다. 지금 저는 그래요. 우리는 그냥 빨리 여기서 찾자! 여기서 지금 여기서 찾자. 여러분이 배우셔야 할 것은 무량한 세월 동안, 제가 화엄경 강의에서 얘기하면 승단도 얘기하고 일지, 이지도 얘기해야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근데, 저는요 항상 덕후의 마음으로 하라고 하잖아요. 덕후는 뭡니까? 매니아라는 거는 그냥 그 자체가 좋은 사람이죠.
그러니까 어떤 취미에도 거기도 고수가 있습니다 하수가 있고. 화엄경처럼 승단 얘기를 안 할 수는 없는 것은 거기에도 고수가 있고. 고수는 이런 짓도 하고, 하수는 이렇게 역량 차이가 난다. 이 얘기는 드리지만, 하지만 덕후가 아닌 분들은 이 얘기를 듣고 나가떨어집니다. ‘언제 고수가 되지? 아 못해 먹겠네.’ 그런데 그게 그냥 좋은 사람은 어쩌죠? 상관이 없죠. 하수면 하수대로 누리는 겁니다. 할 수만 있다는 것으로 이미 기쁘기 때문에, 즉, 이 신성에 대해서도 여러분 그렇게 생각 안 하시면 가짜 공부자예요. 일지, 이지 얘기한다고 스트레스받고, 내가 이번 생에 칠지는 가야 되는데, 이런 생각하신다는 건 이미 하수예요. 즉 성취에 집착하고 계시죠. 뭐에 집착해야 진짜 진정한 매니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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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덕후는 참나와 함께하는 것으로 이미 만족할 줄 알아야 돼요. ‘아 난 너무 행복하다 이 순간이. 함께 할 수 있어서… 함께 하면서 실력까지 늘면 더 좋겠지만, 함께 할 수 있다는 데서 이미 나는 행복하다. 내 안의 불성을 느낀다는 것으로 이미 행복하다. 내 안에 신성을 느낀다는 것으로 이미 행복하다. 신성과 함께 살아간다는 게 이 우주에서 축복이다.’
이 기분을 못 느끼신다면 엉터리입니다. 지금 다른 목적으로 수행을 하고 계신 거예요. 에고를 즐겁게 해 주는 어떤 방편으로 수행을 택하신 거예요 단순히. 에고를 돋보이게 하는 방편으로. 내가 수행을 해서 견성을 하면 사람들이 나를 받들어 주겠지. 저는 이런 식으로 수행하는 분들도 많이 봤어요. 자기 에고가, 자기가 볼 때, 마음에 안 들어요. 그런데 이 수행이라는 것은 내가 한번 도전해 볼 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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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를 돋보이게 할 어떤 수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수행하는 분들 많아요. 믿으면 이루어진다 이런 것은 또 수행을 뭘로 이용하죠? 기복. 기복적인 걸로. 내 에고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성취시키는 도구로 수행합니다. 애초에 신성에 대한 어떤 사랑과는 상관이 없는, 신성에 대한 순복과는 관계가 없는 수행이죠. 이런 수행들은 자기가 얻는 거 얻으면 끝납니다. 그런 걸 저희는 덕후라고 안 해요. 그건, 목적이 다른 분들이기 때문에 제가 뭐라고 말하기 그래요. 제가 얘기하는 진정한 구도자라는 것은 그냥 도를 구하고 싶은 사람, 진리에 대한 사랑, 진리를 알고 싶은 거고. 진리에 맞게 살고 싶은 것뿐이에요 지금. 내 가족과 함께 울고 웃는데, 진리에 맞게 울고 웃고 싶은 것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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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인이야’ 하고 집에서 폼 잡으려고 수행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요. 남한테 인정받으려고 수행하는 것도 아니고. 내 만족이죠. 내 만족인데, 어디서 만족이 오느냐? 진짜 진리를 알았을 때, 진리와 하나 될 때 감동 때문에 가시는 분들, 이분들을 제가 대상으로 얘기하는 겁니다. 다른 목적 가지신 분은 조금만 같이 걸어보면 다 티나요. 처음에는 바로 발각이 안 돼도, 조금만 걸어보면 목적이 다르다는 거 다 나옵니다. 그래서 여기 수행하러 오신 게 아니라, 수행자라고 인정받고 싶어서 오신 분이 있어요. 간단합니다. 그런 분들은 바라는 게 인정이에요. 저희가 인정을 안 드리면, 바로 짐 쌉니다. 여기는 좀 이상하군! 수행하러 오신 게 아니에요. 인정받고 싶어서 오신 거죠. 또 ‘왜 여기서 시키는 수행을 했는데, 왜 돈이 제 통장 잔고가 늘지를 않죠?’ 무슨 상관이죠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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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계속 기도를 했거든요. 여기는 좀 기도발이 좀 별론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나은 기도발이 있는 곳을 찾아 또 수소문해서 떠나십니다. 목표가 다른 데 계신 거예요. 물욕이건 성취욕이건 인정욕구건, 도(道)적인 외에 대한 그런 것들은요, 그런 욕구 가지실 수 있는데, 그것을 도로, 수행으로, 성취하고 싶으신 것뿐이에요. 즉 이게 편리한 것 같아서 방편을 쓰시려는 것뿐이에요. ‘돈 써서 하는 것보다 기도하는 게 더 싸게 먹히고 할 만한 것 같아’ 혹시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고 계시면, 그쪽 학원을 다니세요. 여기는 그런 학원이 아닙니다. 여기는 그냥 지금 이 순간 진리에 대한 사랑, 하느님에 대한 경외, 우주와 함께 걷고 싶고, 진리에 맞게 걷고 싶은 소박한 소망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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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제가 일지, 이지 얘기한다는 것도 우리가 경외하면서 들어야 돼요. ‘놀라운 얘기다. 인간이 이런 성취까지 가능하다는 건 놀라운 얘기다. 하지만 거기에 욕심낼 필요는 없다. 왜? 내가 원래 하려는 게 진리를 따르는 거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참나의 소리, 양심의 소리 따르는 게 목표여야지, 다른 게 목표면 안 되죠. 그래서 소박하게 따르면서 행복감을 느끼실 수 있는 분이라야, 사실은 이분들이 제일 고수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신 거예요. 놀랍게도 지금요, 가장 초심자의 마음으로 소박하게 ‘모른다 괜찮아’ 해서 신성과 만나고, ‘신성과 함께 하면 이미 됐지, 뭘 더 바래’ 하지만 함께 움직이려다 보니까, 나의 무지와 아집이 방해가 되니까, 양심 분석을 해 가면서 내가 욕심 안 부리고 내 편견에 안 빠지게 다스릴 뿐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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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뜻을 더 이해하고 더 구현하고 싶어서. 이 마음으로 접근하시는 분은, 지금 아주 소박한 마음으로 그렇게 수행하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제가 볼 때 그분은 장차 크게 될 분입니다. 진짜 고수의 반열에 들어가실 분이고, 그 외의 목표를 가진 분은 한참 헤매셔야 돼요. 때를 벗기기까지. 다른 욕심으로 하고 계신다면,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갈지도 일단 의문이고, 걸어가려면 한참 많이 다듬어져야 되겠구나. 그런데 아까 그런 태도는 가장 훌륭한 태도입니다. 그런 분 중에 고수가 나오는 거예요. 딱 보면 알죠. 싹수가 노랗다 이런 말. 거기서 나오는 싹수가 됐다는 게 지금은 싹밖에 아닌데, 이 싹은 크게 되겠다. 크게 될 싹은요, 지금 이 순간 참나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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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되건 말건 역경이 오건 순경이 오건, ‘나는 늘 양심대로만 살 거니까 이제 인생에 대해 걱정도 없다. 뭔 일이 나건 나는 참나와 함께 할 거다.’ 내 힘으로는 못 해요. 내 힘으로는, 에고의 힘으로는, 희노애락에 빠지고 결핍감에 빠지고 탐진치에 빠져서 힘든데, 참나와 함께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이건 기본입니다. 이렇게 됐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면 항상 참나한테 맡기고 참나와 함께 해요. 참나한테 맡긴다는 게 내가 논다는 게 아니라, 이 일의 근원이 결국 다 참나에서 이루어진다는 걸 알고, 모든 일은 참나에서 결국 이루어지는 거니까, 항상 근원을 주시하면서, 참나의 뜻에 맞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처리할 뿐, 내 욕심대로 안 됐다고 이렇다 저렇다 라고 말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분명히 세우셔야 돼요. 이렇지 않으면 공부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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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버지한테, 아버지 믿고 맡겼는데 세상에! 그렇게 처리하실 줄을 몰랐어.’ 내 에고한테 하나도 득이 되지 않은 방식으로 하느님이 일을 처리했다고 불만 가지실 거면, 맡기지 마세요. 맡긴 것도 아니죠. 그런데 대부분 지금 종교단체에서 ‘아버지! 부처님! 우리 집, 우리 집을 좀 집값 올려줄 걸 믿습니다.’ 그래서 집값이 진짜 올라요. ‘아버지!’ 합니다. 그러면 이때 ‘아버지! 부처님!’ 합니다. 그러면 이거는 다 허상입니다. 이해되시죠. 허상이에요. 지금 이분들이 수행을 하고 있다고요? 아닙니다. 이분들은 욕망을 성취시키는 방편으로 신성을 이용하는 최악의 짓을 저지르고 있는. 진짜로 이거는, 신성을 이용해서 욕망을 성취시키겠다는 입장은, 중생이니까 할 수는 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깜짝 놀랄 짓이에요.
26:33
원리를 알고 나면 깜짝 놀랄 짓이에요.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차라리 내 힘으로 벌어서 그걸 산 것보다, 신성을 이용해서 내가 고작 한다는 짓이, 죽을 때 가지고 가지도 못할 것, 그거 성취시키는데 신성을 동원했다! 아버지한테 명령한 거죠. 아버지! 이건 아주 불효자들이 할 짓이죠. 딱 집에 전화해서 ‘잘 있냐?’ ‘됐고요. 지금 제가 차가 없는데,’ 이러면, ‘이건 아니죠. 키우질 마시든가요!’ 뭐 이런 식으로 해서 아버지께 땡깡 부려서 딱 끌어냈다! 이건 아닙니다. 그래서 뭐냐면, 비슷한데 달라서, 이 부분을 정확히 제가 구분하시라고, 극단적인 비유를 든 건데요. 설명을 극단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 이런 마음은 아니신 건 알지만, 제가 좀 극단적으로 말을 해 본 거예요.
27:29
구분을 하시라고. 그런데 비슷한데, ‘아버지 살려주세요.’ 하고 맡기고 ’아버지 뜻에 맡길게요’ 라고 맡기시는 거랑은 다르다는 거예요. 하는 말은 비슷할 수 있어요. ‘아버지 저 좀 살려주세요.’ 그런데 나온 결과에 대해서 내 뜻대로 안 됐다고 아버지를 원망하신다는 것은, 전혀 다른 사태에 직면해 있는 거예요. 어떤 분은 어떤 결과가 나오든, 아버지 믿고 그냥 간 거예요. ‘아버지가 최선으로 답을 주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가는 사람은요, 이 사람은 사실 수행을 하고 진짜 구도를 하고 있는 분이고, 한 분은 아버지를 뭐로 생각했는지가 의문이 돼요 이때. 내 말을 안 들었다고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아니면 내가 수행을 잘못했다고 자책을 하는 것도 이상하고. 좀 이상하죠.
28:23
‘ 아 내가 기도를 잘못했나 봐. 제대로 수행했으면 기도가 이루어졌어야 되는데’ 이 말도 지금 이상하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당신 물욕 채워주려고 존재하는 분이 아닌데, 아버지의 존재를 완전히 격하시킨 거예요. ‘너 신앙 왜 가져? 욕망을 돈만으로 어떻게 다 해결해? 신을 통해서 해결해야지. 나 신 하나 뒀어. 유능한 신 하나 뒀어’ 이런 거죠. 발상이 그런 거라고요. 좀 약간 놀래실 필요가 있어요. 내가 생각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진짜 덕후들이 이런 얘기를 들으면 놀랜다는 게, ‘저건 뭐지?’ 신위에 군림하겠다는 생각이에요. 한쪽에서는 ‘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저건 종의 자세야, 나는 신한테 필요하면 그냥 명령하면 되는데, 아버지! BMW 하나요’ 이렇게. 그러면 이제 다음 날 와 있어야 돼요.
29:20
안 와 있으면 짜증내요. ‘아버지!’ 하고 전화해서, 다음 기도부터는 좀 언성이 높아지실 겁니다. ‘아버지! 혹시 못 들으셨나 본데, BMW입니다’ 해서, ‘이번 한 번만 제가 참을게요’ 다음날 또 안 왔다? 다시 화가 나겠죠. 완전히 망상에 빠진 존재가 됩니다. 무지와 아집이 더 심해졌어요. 이게 옅어져야 되고 아주 기본입니다. 무지와 아집이 옅어져야만 신성과 하나 될 수 있어요. 그렇죠. 지금 이 기본공식에 충실한다는 게 세상에서 값어치를 못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이런 21세기 사회에’ 아무튼 그런 마인드는 덕후의 마인드는 아니라는 거예요. 그리고 이쪽 세계는 여러분이 상상하기 힘든 신비한 세계가 있어요. 그 맛을, 전혀 이런 식으로는 맛보실 수가 없어요.
30:15
그러니까 어떤 종교 열심히 믿다가 기도발이 안 먹히면, 절에 다니다가 다음엔 교회 다니고 있어요. 다음에 또 지금 교회 다니는데, 다음에 또 다른 종교 가 계세요. 그런 분들 많이 봤거든요. 나한테 어느 종교 가입하라고 그렇게 열혈 신자가 돼서 전도를 하시더니, 다음에 만났더니, ‘나 다른 데 다녀’ 그럼 ‘뭐지? 그때 말 믿고 갔으면 나 뭐가 되지?’ 허망한 일들이 많아요. 근데 그러면 또 전 교회를 계속 열심히 다니면 옳으냐? 그것도 아니라니까요? 지금 저는 그런 차원의 얘기랑 다른 차원의, 진정한 덕후 얘기를 제가 설명하는데, 진정한 덕후의 길, 불교건 기독교건 뭐 이슬람교건 모든 걸 관통해서, 진정한 영성 덕후의 길, 오늘 강연의 주제는 진정한 영성 덕후라면 요건 기본으로 해야 된다.
31:12
이게 인생 살아가는데 이렇게 살아가시는 게, 영성 생활의 제일 기본이에요. 지금 무슨 일이 생기든, 맡겨서 해결하실 수 있어야 돼요. 맡긴다는 게 내 뜻대로 되리라고 믿고 맡기는 게 아니에요. 신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고, 내가 신의 뜻을 어기지 않기를 맹세하는 것뿐이에요. 몰라 괜찮아 해서, 깨어서 그 자리에 맡기면 여러분 정신이 밝아지고요. 일단 맡기고 있으면, 첫 번째 일단 맡기면요, 무슨 일이 생기건, 아집과 무지로 처리하지 말고, 맡기고 5분만 맡기고 계셔 보세요. 5분만, 5분만 몰라 해 보세요. 무지와 아집한테 몰라라고 하는 거예요. 몰라, 어쩌구저쩌구, 몰라, 이러다 내 손해 보는 거 아니야? 몰라, 이건 내 뜻대로 해결해야 되는데, 몰라 때리고 나면 알딸딸할 때 참나한테 다 맡기고 있으면, ‘아버지 자비를!’ 이러면서 맡겨도 좋고.
32:09
‘주인공! 거기서만 할 수 있어’ 여기가 여러분 인생의 제일, 지금 여기가 제일 주재자 자리예요. 제일 경영자는 참나입니다. 여러분 에고가 떠드는 건, 에고가 떠드는 것 따라 참나가 반응해 주는 거지, 결정권자는 참나입니다. 여러분 우주에. 그걸 아니까 맡기는 거예요. 지금 다 대통령한테 청원하고 난리죠. 거기서 결정할 수 있으니까 맡기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기도할 때는요, 참나한테 맡기는 거예요. 하느님한테 맡기는 거예요. 결정권자가 거기라는 걸 안다는 걸 내가 분명히 인지하고, 내 뜻대로 하려는 노력을 좀 내려놓는 거에요. 그럼 내가 내 거를 좀 내려놓고 확실히 맡기고 있으면, 5분 정도 참나한테 모든 걸 맡기고, 꼭 5분이 아니라 최소 5분 이상 맡기고 쉬고 있으면, 참나가 여러분 마음에 뭔가 답을 줍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자명 찜찜의 신호를 보내요. 어떤 신호 보내냐? 자찜을 보내요.
33:09
이건 찜찜, 이건 자명. 에고의 무지와 아집의 소리를 낮췄을 때 느껴지는 자찜은요, 하느님의 뜻일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100%라는 건 아니고. 왜? 또 미세한 우리 무의식이 욕심부릴 수 있으니까. 100% 믿지는 마시고. 원래 여러분! 무지와 아집만 잡았다면 100% 선명한 소리가 들리겠지만, 또 무의식적인 무지 아집의 작동이 있으니까. 업의 작동이 있으니까. 다 믿지 마시고. 그래도 자명한지 따져보시긴 해야 돼요. 따져보신 뒤에, 자명하면 이게 아버지 뜻이구나 하고 실천할 수 있는 그 힘. 이렇게 했을 때 하느님과 함께 작업을 해요.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게, 인생을 살아가는 일이 나 혼자 쌩으로 겪는 일이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아시느냐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 다 기도를 해도 기도가 그대로 수행이 돼요.
34:07
솔직하게 얘기하시는데, 이때 아버지 앞에서 숨기는 건 다 부질없는 소리죠. ‘아버지! 솔직히 나 저거 갖고 싶어요. 저거 없으면 진짜 내 인생 아닐 것 같은데, 아버지! 갖든 말든 아버지가 하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한테 맡길게요’ 이 맡기는 힘이 있냐는 거죠. 내 에고의 솔직한 욕심 표현하시는 거에 대해서 제가 뭐라고 하는 게 아니고. ‘저는 솔직히 갖고 싶어요. 이걸 못 갖게 하시면 아버지는 아버지도 아닙니다.’ 이게 아니라, ’아버지 뜻에 맡길게요’ 이게 있냐 없냐예요. 이게 있으면 도이고 이게 없이는 도가 아닙니다. 이거 없는 신앙을 오래 했다? 그건 도 닦은 건 아니에요. 욕망이 되게 강화돼요. 그런데 이거 있는 사람은 기도를 들어줬네 안 들어줬네도 없는 거예요. ‘하느님이 내 기도 들어줬다’ 벌써 이것부터가 아상이에요. 하느님을 자기가 어떻게 지배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뭐예요? 로비를 잘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35:03
뭘 얘기하고 싶은 거에요? 그런 게 먹히는 건 누구한테 먹히죠? 욕심꾼들한테 먹혀요. ‘우와 최고인데?’ 욕심꾼들이 부러워할 만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영성 덕후들한테 그거는 별 의미가 없죠. ‘저거 불효자일세’라고 보일 수도 있어요. ‘나는 우리 아빠가 내가 얘기하면 다 사줘’ 그러면 효자로 보이세요? 불효자로 보이세요? ‘야 저거 부모들 힘들겠구만’ 이렇게 보겠죠. 지금 그런 말이 전혀 올바른 말이 아니라고요. 올바른 말은 ‘나는 아버지한테 내가 하고 싶은 얘기 다 해. 솔직하게. 그런데 아버지께 선택을 맡겨. 결과를 나는 흔쾌히 받아들여.’ 성숙한 사고죠. 이게 영성 덕후에요. ‘이게 너무 재미있어’ 이게 영성 덕후입니다. 이게 재미있어요. 이런 분들은요, 제가 장담하건데 그분들은 장차 큰 고수가 되실 분이니까.
36:00
싹수가 아주 좋은 분들이니까. 그런 분들이 제가 보는 상근기예요. 즉 이 맛을 아실 수 있는지?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욕심이 없어야 돼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또 엄청난 욕심이 있어요. 더 신성을 구현하려는 욕심이 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또 욕심이 없어요. 이런 일반인들의 그런 욕심에 안 빠져요. 이런 사람 구하기가 힘들죠. 사실 기독교 몇 천 년 해도 이런 사람 많지는 않아요. 불교,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린 건, 영성 덕후는 이런 모습을 가져야 돼요. 이러려고 노력하세요. 자기가 불필요한 것에 집착하고 있다는 걸 알고, 조금씩 힘을 빼세요. 힘을 조금씩 빼시면 자연스러워져요. 힘이 좀 빠진 상태죠. 아시겠죠? 영성 덕후는요, 이 사람도 처음엔 쓸데없는 걸 추구했겠죠. 근데 언젠가, 진실을 알고 힘이 빠진 사람이에요.
37:00
이런다고 되는 게 아니고, 이게 올바른 모습이 아니구나. 하느님의 효자가 되려면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란 걸 알고, 힘 뺀 거예요. 자기가 그렇게 해서 일을 처리한다고 해서, 옳은 것도 아니고 그래서 뭔 일 생기면 아버지! 하고 아버지를 부르고 아버지랑 하나가 된 다음에, 아버지 뜻대로 일을 처리할게요. 자찜 신호 딱 받아서, 이게 더 자명한 것 같으니까 이쪽으로 해 볼게요. 결과도 아버지한테 맡깁니다. 아무튼 ‘이런 모든 일은 아버지를 근원으로 해서 내가 마음을 쓰는 게 옳은 거니까’ 이렇게 마음을 씁니다.
37:38
무슨 일이 생기든 내 뜻대로 판단하기 전에, 아버지와 하나가 되는 시간을 가진 뒤에, 거기서 양심을 써서 문제를 풀어가는 것. 이 기술을 익히셨으면 지금 인생에서 뭐가 달라져야 되냐면, 지금 이 순간부터 삶에 만족하면서 살아가실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이게 없으면 매 순간순간이 결핍감에 쌓여서, 수행에 있어서도 결핍감에 빠져서 시달려요. 이 순간 참나와 함께하는 기쁨보다는, 즉 이 순간 하느님과 함께하는데,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쁨보다, 내 뜻이 안 이루어진 것에 대한 결핍감이 더 크다면, 이분이 올바른 신앙인인가요? 믿음이 있는 사람인가요? 하느님을 전혀 안 믿는 사람이에요. 본의 아니게, 자기도 믿고 싶은데 마음이 안 믿어지고 있는 상태. 진짜 아버지를 믿는다면, 아버지를 본 것만으로도 확 힘이 빠져야 돼요. 아버지 봤으니까 살았다.
38:38
아버지가 나한테 해를 주실 분이 아니고, 아버지가 어떤 결과를 제시하건 아버지가 제일 최선의 답을 내실 수 있는 분이라는 걸 믿기 때문에, 흔쾌히 그 결과를 따를 수 있는 겁니다. 이런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자기 뜻이 있어요. 그래서 요거를 고집해요. 아버지가 이걸 꼭 해 주기만을 바라요. 우리는 중생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없다고 하면, 말이 안 되는 소리고, 저도 다 있습니다만, ‘나 뭐 원합니다.’ 이 얘기는, 할 건 하자는 거예요. 솔직히 할 건 하는데, 근데 그거 되고 안 되고는 아버지한테 달렸으니까. 아버지가 잘 감안해서 하세요. ‘저 그거 없으면 죽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뜻대로 할게요. 아버지 알고 계세요.’ 이렇게. 요 정도 요 정도 던지고 나오는 결과를 OK. 아버지 씁쓸하지만 OK.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버지가 저보다 더 멀리 보시고 내린 결론일 테니, 받아들이겠습니다.’
39:40
이 정도는 해줘야 되지 않냐! 이거죠. 철저히 중생심을 제가 가정하고 얘기하더라도, 요 정도로 자기 생각과 감정을 꾸려가실 수 있으면 영성 덕후입니다. 훌륭해요. 방금 제가 말씀드린 이 정도로 살아가실 수 있으면, 여러분은 아주 훌륭하게 영성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할 얘기는 하되 결정은 맡긴다! 내 생각에 빠져 있지 않는다! 이게 아주 포인트들입니다. 결과도, 아니 결과도 아버지가 내린 결정인데, 우주적 데이터를 다 점검해서 내린 결론인데, 내가 내 데이터 조금 갖고, 지금 그걸 가지고 잘했네 못 했네를 따진다는 게, 코미디죠. 믿음이 없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세상이 바라보는 기도 잘하는 사람, 믿음 있는 사람과 제가 얘기 드리는 건, 너무 다르다는 얘기를 드리는 거예요. 저는 철저히 하느님 입장에서 봐 보는 겁니다.
40:38
참나 입장에서 하느님 입장에서 볼 때, 어떤 분이 진짜 훌륭한 영성을 갖춘 분인가? 한번 생각해 보시면, 그러니까 대행 스님처럼 아파도, 몸이 아프고 안 아프고 결정권자는 참나죠. 물론 아프게 내가 노력했겠죠. 아프게 변수를 많이 썼으니 아프다고 했겠죠. 그러니까 이걸 ‘당장 안 아프게 해달라’ 이거는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인과를 부정하는 소리죠. 아무튼 나는 ‘내가 아플 짓 해서 아픈 건 알겠는데, 아버지! 안 아프게 하실 수 있는 분도 아버지니까, 아버지가 알아서 하세요’ 주인공! 대행 스님은 아빠! 그러죠 아빠! 엄마!라고 해도 되고. 아빠가 좋으면 아빠하시고, 하느님은 ‘자웅동체’시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하느님 자리에 남녀가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그냥 여러분 방편으로 쓰시는 거니까. 예수님도 아버지! 그랬죠. 똑같습니다.
41:36
이 원리를 안다는 게 영성이 있는 게, 일단 이 원리를, 내가 아플 때 왜 기도해야 되는지부터 알아야 돼요. 모든 생각 감정 오감의 근원은 그 자리이기 때문에, 인과법을 집행하는 자리도 그 자리이기 때문에, 다 거기서 한 것을 압니다. 그러니까 내가 뭐라고 궁시렁거리는 것보다는 난 내려놓고 ‘거기다 다 맡길게요’ 다만 ‘맡겼으니까. 내가 원하는 결론 내주세요’ 이건 엉터리라고요. 그건 망발입니다. 그런 소리 하면 안 되고, 맡긴 건 그냥 맡긴 걸로 의미가 있는 거예요. 맡겼고, 왜 맡겼어요? 애초에 내 뜻대로 안 하고 아버지 뜻대로 하려고 맡긴 거예요. 맡겼으면 거기서 자명찜찜의 신호가 오는 것을 잘 주시하면서, 하느님 뜻을 잘 읽어내면서 걸맞게 행동하면 그만이에요. 눈치가 영 BMW를 안 사주실 것 같아요.
42:29
그러면 눈치껏 티코에 만족하는 모습도 보일 줄 알아야 된다고요. 이런 영성이 안 돼 있는 사람들이 영성을 얘기하면서, 딱 티코 타는 사람 옆에서 BMW가 와서 ‘넌 기도 안 통하나 봐’ 그러고 지나가면 이 사람은 망가지는 거 아닙니까? ‘넌 기도빨… 나는 아버지가 사주셨는데’ 그러면 이 사람은 ‘야 저쪽만 편애하고 나는 친아들이 아닌가 보다’ 뭐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이게 공부 못하는 사람이 잘하는 사람을 망쳐버릴 수도 있다고요. 이런 데 신경 쓰시지 말고요. ‘야 너는 아버지가 BMW 먹고 떨어지라고 했구나’ 이렇게 생각하시고, 난 아버지 재산을 그대로 아버지의 모든 걸 상속받을 수업을 지금 받고 있는 사람이 BMW 하나 먹고 떨어진 사람을 왜 부러워하냐고요. 여러분은 지금 우주를, 지금 우주를 경영하는 수업을 받고 있는 거예요 한 분 한 분이 다.
43:29
그러면 생각 굴리는 게 일반인하고는 달라야 된다고요. 뭔 일이 있으면 아무리 힘든 일이 있고 진짜 죽을 일 생겨도, 참나한테 맡길 수 있어야지 어떡하실 거예요. 다른 수가 없는데. 맡겨서 돌려서 거기에 맞게, 내가 이 상황에 맞게 처신하는, 양심적으로 어떻게 처신하는 게 제일 나와 남 모두에게 옳은가? 하는 그것만 읽어내시고, 그대로 살려고 노력하실 뿐인 거죠. 그게 다예요. 이게 영성의 핵심인데, 영성의 핵심은 어디 가고, 계속 신통력, 기적 이런 것만 추구하고 있는 것부터가 에고를 위한 방편들이지, 그게 진실은 아니라는 것. 그렇게라도 해야 에고가 조금이라도 반응하니까, 정말 사탕 꿀 엄청 발라놓은 거죠 약에다가. 약의 본질은 그게 아닙니다. 담담 무미한 거예요. 사실 꼭 쓰다고 할 필요는 없고, 담담 무미한 거예요.
44:24
여러분 에고의 뜻대로 안 살고 아버지 뜻대로 사는 것. 예수님이 와서 딱 그러셨잖아요. ‘나는 아버지 뜻대로 살기 위해서 왔다. 나의 언행은 다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이다.’ 이 말 하실 수 있기 위해서 수행하신 영성 덕후의, 아주 레전드들의 말씀입니다. ‘여래(如來)’라는 게 뭔지 아세요? ‘내 뜻대로 말고 진여 그대로 왔다’는 겁니다. 진여 그대로 왔다. 법대로, 우주 진리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수행을 꼭 그런 욕심으로 한 건 아닌데요’ 하면 지금 제 강의 안 들으셔도 돼요. 제 강의는 그런 목표로 수행하시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는 거예요. 진정한 영성덕후. 그런데 이 길이 진짜 더 편해요. 왜? 욕심을 내서 뭘 하려고 하면, 힘듭니다.
45:22
늘 자기 욕망의 결핍감과 싸워야 되는데, 지금 이 길은 지금 이 순간부터 평안을 얻으면서 가는 길이에요. 아버지 안에서 쉬면서 일도 해결하는 길이에요. 아버지 안에서 바로 쉬어요. 지금 뭔 일이 생겼어요. 죽겠어요. 몰라 괜찮아 했더니, 알딸딸하고 기분이 좋아요. 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하고 만족합니다. 일이 내 뜻대로 되고 안 되고가 아니라, 난 할 도리 했다는 데서 만족을 얻자. 이게 기본입니다. 이거를 매일매일 누려가다 보면, 영성이 엄청나게 높아져 가고,
삶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재건돼요. 그래서 완전히 여러분 삶의 진짜 기적이 그때 찾아옵니다. 이 방식이 아닌 방식은, 세상의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거기 때문에 ‘기도발로 나는 욕심을 채웠다’ 어차피 욕망 충족이라는 트랙을 달리고 있죠. 어차피 그거는 몰래 속임수 쓰는 것밖에 안 돼요.
46:13
나는 신한테 뇌물을 좀 줘서 게임을 좀 더, 남들이 볼 때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게임을 풀고 있을 뿐이지, 그 게임은 똑같은 게임이에요. 중생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게임이에요. 거기서 기도발로 내가 좀 더 우위를 점했다. 이 차이예요. 그런데 이거는, 완전히 다른 트랙을 달리는 거예요.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것 같지만, 모든 걸 맡겨 버리고 ‘아버지! 자명한 것만 제가 할게요. 메시지 꼭 주세요!’ 몰라 괜찮아 하고 느긋하게 명상하고 있다가, 자명한 신호 오면 그것은 꼭 하고. 이렇게 하고 나중에 보면, 자기가 엄청나게 신성에 부합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경험적으로도 알 수 있어요.
46:57
내가 뭔가 다르게 살고 있구나, 내 일상이 다른 사람들의 일상과 달라졌구나. 그러면 여러분 이미 영성의 삶을 살고 계신 거에요. 이런 삶을 안 살면서 수도원에 있다고 어디에 있다고 본인이 영성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착각입니다. 이렇게 사는 삶만이 진정한 영성 덕후의 삶입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뭔가 제 말에 양이 안 차요. 결핍감에 시달립니다. 결핍감은 기본으로 깔고 가자는 겁니다~
47:36
결핍감이 없을 수는 없고. 그래도 또 몰라 해야죠. 다시 또 하느님 안에서 쉬었다가 ‘뭔가 더 있는데, 표현을 더 잘할 수 있는데’ 제가 한계가 있어요. 제 지식과 정보와 아무튼 기술을 다 써서 말씀드립니다. 이 느낌을 어떻게 전달해야 될지… 하여튼 그래서 제가 좋은 글들 보면 소개해 드리는 게, 제 힘으로 어떻게 다 해요? 역대 이런 영성 덕후들의 글들을 제가 소개해 드리는 걸로 많이.
예전에 이런 덕후가 계셨습니다. 부활의 로랑 형제, 니콜라 에르망이라는 거 유명하죠. 제가 책 많이 소개해 드렸어요. [하느님의 현존 연습]이란 책이 다양한 버전으로 나오니까, 이렇게 얇은 책도 좋고. 좀 더 두꺼운 버전도 있고 그림책으로 그림 있는 것도 있어요.
48:28
다양하게 많이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고. 이런 분들 특히 기독교 분들 글도 보셔야 되는 게, 이분들은 진짜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만족하는 분들이에요. ‘나 죽을 때까지 이생의 지옥골을 겪어도 하느님과 함께 한다면, 나는 OK. 영성의 진보 있건 말건 난 상관없음’ 이런 분들이에요. 진짜 덕후들이라. 각 기독교 덕후, 불교 덕후 조금씩 맛이 달라요. 도교 덕후는 또 죽어라 호흡하고 있고, 불교 덕후는 마음 닦고 있고, 하느님 덕후는 아버지! 하고 그냥 엎어집니다. 그래서 각자 좀 맛이 다른데, 각자 다 취할 부분도 있어서, 또 그분들 각자 자기가 더 전공하는 분야에 대해서 설명을 되게 잘해 주거든요. 그래서 이런 말씀도 들으시라고 제가 다양한 종교를 읽어 드린 이유가, 다양한 종교가 진리의 한 모습들을 표현하고 있어요. 결국 이 모든 걸 아우르는 게 신의 자리입니다.
49:29
그니까 신의 자리에 대해서, 도교가 표현하는 부분도 있고, 불교가 표현한 부분, 이슬람, 기독교 뭐 우리 민족의 동학이나 예전에 대종교나 이런, 다 각자대로 표현하고 있는 게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걸 다, 이런 신한테서 나온 이런 알맹이를 수집하는 게 취미입니다. 왜? 그걸 모아서 신에 대해서 더 이해할 수 있을까? 해서. 내가 모르는 신의 모습도 있어요. 다른 종교에서 얘기하는 신의 모습은 여러분이 모르는 신의 모습입니다. 내가 내 종교에서 믿는 신의 모습만 전부라고 아시는 건요, 그건 정말 오만한 거에요. 여러분은 이 신을 헤아릴 수도 없어요. 신이 던져주는 것, 그 생각 감정 오감에 던져주는 일부를 맛볼 수 있을 뿐이에요. 거기에 집착하실 필요가 없어요. 이런 걸 아는 분들이 각 종교에도 있어요.
50:18
진정한 덕후들, 이분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성 덕후니까. “은총의 열매를 절대로 갈구하지 말아야 된다. 은총이 하느님은 아니다” 하느님이 아무리 놀라운 은총을 우리한테 던져줘도, 그것을 갈구하지 마라. 거기에 집착하면 하느님을 버리게 됩니다. 하느님이 더 중하다는 얘기예요.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느님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크시고 전혀 다른 분임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받은 은총을 가지고 하나님을 재단하지 마라는 거예요. 은총에 집착하지 마라는 거죠.
51:02
“그럴 때 하느님과 영혼 사이에는 놀라운 싸움이 벌어진다” 하느님은 주시려고 하고 어떻게든 이 친구한테 더 주려고 하고 뭔가. 이 사람은 은총은 다 하느님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런 놀라운 싸움이 인간의 영혼에서 벌어져야 된다는. 그러다 보면 “영혼은 하느님만큼이나 아니 그분보다 더 강해진다”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영혼은요, 하느님보다 더 강해질 수도 있죠. ‘저한테 뭐 엄청난 은총을 다 줘보세요. 난 아버지만 사랑할 거예요’ 무서운 사람이죠. 아버지가 BMW 사줬더니만 ‘전 그건 중요치 않습니다. 아버지!’ 이분이 사실 더 많이 받아요. BMW만 닦고 있는 아들보다 BMW사줬는데 그걸 헌신짝처럼 여기면서 아버지!하고 엎어지면, 다음에 이 친구한테 또 뭘 사줘야 되지? 하고 고민하게 된다고요. 근데 BMW 딱 사줬는데 어느 날 아버지 방문도 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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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찾아오지도 않고 자나 깨나 비 오면 BMW 닦을 생각에 걱정하고. BMW를 우리 아버지보다 더 모시고 있다. 그러면 아버지가 볼 때는 쟤는 끝난 거예요. 더 사줄 이유가 없는 애죠. 이분이 훨씬 현명한 분입니다. 어떤 은총이 내려와도 아버지를 바라보는… ‘금 만드는 손’ 있죠. 금 만드는 손. 어리석은 사람은 그 사람이 만든 금덩어리에 집착하고요. 고수는 그 손을 달라고 합니다. 그 손을 원합니다. 우주의 모든 은총이 아버지로부터 나오는데, 이 자리를 더 중시해야지, 여기다 비료를 줘야지. 자 여기가 뿌리고 여기가 꽃인데, 꽃과 열매에다가 비료 주고 있는 사람입니다. 얘는 글렀죠. 현명한 사람은 여기 (뿌리)다가 비료를 줍니다. 그래서 이런 원리를 알고 있어요. 이분들은 그러니까 무조건 아버지! 심지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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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황홀경이라는 거, 우리가 명상 중에 얻는 기도 중에 얻는 황홀경이라는 것도, 영원히 하느님께 주신 것에만 몰두하는 소치이다. 아주 어리석은 짓이다.” 황홀경에 빠져 있다. 어리석은 짓입니다. 아버지를 놓쳤다는 거에요. 이 사람은 아버지를 놓친 황홀경은, 엉터리다. 필요 없다. 그것도 은총이죠. “하느님이 주신 주신 것을 던져버리고, 곧장 그것을 넘어, 곧장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대신에 말이다” 그래야 되는데 그런 짓 안 하고 황홀경에 빠져 있다. 이것은 이 사람한테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놀라움 너머로 그저 끌려가지 말 일이다 그럴 때도 주인은 하느님이시다” 하느님 자리 놓치지 말라고, 그래서 이분은 오히려 피정 가서는 더 영혼이 메말라서 오고, 일상생활에서 신성을 더 잘 느껴요. 그랬던 분이에요. 이 수도사가 대단합니다.
53:52
이분은 평수도사였는데 지금까지 어떤 수도사보다 이분 책이 세계적으로 읽히고 있습니다. 대단하죠. 직위가 높아서도 아니에요. 이분이 이렇게 산 걸 주변에서 보고 다 놀래서, 이분의 말을 적어서 읽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그 평범한 사람이 이렇게 놀랍게 우리랑 다른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이런 데 좀 관심 가져주세요. “내가 신앙인이 된 것은 오직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서였다. 난 오로지 그분을 위해 행하고자 했다. 내가 저주받았건 구원받았건 간에, 난 순전히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위해 행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적어도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그분을 사랑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삶을 추구하다 보니까, 이분이 그런 자유를 얻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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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영적 안식을 얻은 뒤에는, 천국도 지옥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천국 지옥도 따지고 있다는 게, 조금 찜찜한 거 아시겠죠. 지금 이 순간 아버지 뜻을 구현하는 게 최고인데, 결과를 지금 보상을 신경 쓰고 있는, 이렇게 내가 일을 해드렸는데 아버지가 혹시 지옥에 버리는 건 아니겠지? 천국은 당연하겠지? 이런 생각 자체가 부질없는 짓이죠. “그래서 그의 전 생애는 항상 자유롭고 즐거운 것이었다. 늘 자유롭고 늘 즐거웠다. 그는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항상 말하려는 듯, 자신과 하느님 사이에 죄악을 두었다” 늘 자기 죄를, 죄에 대해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느님으로부터 내가 이렇게 멀리 있다는 것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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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하지만 그걸 넘어서서, 하느님이 내가 어떤 죄악을 짓더라도 하느님이 계속해서 은총을 내려준다는 것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구현하는 데에만 집중했어요. 은총에도 집착하지 않고. 그러니까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진다는 거예요. 이분의 살아가는 모습이. 똑같아요. 대행스님이 주인공! 아파도, ‘아프면 주인공이 할 일을 내가 다 못하지, 주인공이 알아서 해’ 그러면 낫게 해버리는 경우도 많다는 거예요. 100%가 아니라. 주인공이 알아서 할 일이니까. 여러분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에요. ‘그러면 다 낫나요?’ 자꾸 급해지세요. 주인공이 할 일을, 주인공을 안 믿고 계세요. 주인공이 알아서 한다잖아요. 알아서 하라고 맡겼잖아요. 그러면 안 물으셔야 되는데 ‘그럼 100% 낫나요?’이런 소리 하고 계시면 안 되는 거예요. 믿고 맡기는 거기에서 이미 신통이 일어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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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삶은 이미 달라요. 여러분 상상만 하지 마시고, 그렇게 직접 맡겨버리세요. 진짜로 맡겼을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분요, 이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행복한 시절이 지나가면, 자신도 고통을 겪을 때가 또 올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근심을 안 했다 “일 잘될 때 있잖아요. “그럼 또 일 안 될 때가 올 거라는 걸 자기는 알았다. 하지만 그는 근심하지 않았으니,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므로, 사실 자기가 뭘 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이 하시는 거니까. 하느님께서 그에게 그런 불행을 감당할 힘을 주시리라고, 반드시 주시리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진짜 믿음이죠. 이런 정도 아니면 믿음이라고 하는 거 아닙니다. 이런 것보다, 어떤 사람은 칼날을 밟고 설지도 몰라요. 너무 하느님을 믿어서, 그건 광신이라고 해요. 광신. 광신과 진정한 믿음은 달라요. 광신은요, 자기가 만든 신념에 몰입하고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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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아니라 자기가 만든 어떤 생각에 몰입하다 보면, 목숨도 내놔요. 사람은 그걸 사람들이 신앙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카톨릭에서요, 우리나라에서 순교했던 분들을 계속 그렇게 파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분들 사실 하느님을 제대로 알고 믿었을까요? 조선 말에 하느님을 진짜 제대로 알고 믿었을까요? 그걸 올바른 믿음이라고 지도해 버리면, 믿음이 틀어집니다. 자꾸 죽음으로, 순교로 종교를 영업하고 있다는 건요, 저는 옳게 안 봐요. 기쁨으로, 자유로, 진정으로, 하느님 만나서 행복을 얻은 사람들 얘기를 해주세요. 영성생활을 그렇게 협박해서, 뭔가 그런 감정적인 어떤 그런 동요를 이용해서, 여러분 뭔가 하시려는 거 옳은 짓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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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볼 때마다 참… 그렇게 자살을 자살하지 마라고 강요하는 종교가, 어떻게 보면 그것도 자살이죠. 자기가 자기 생을 결정한 거죠 나 죽기로. 순교라는 것도 자살입니다. 사실 되게 모순적이에요. 자살하지 마라 자살하지 마라 그러면서, 동시에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 기리는 데 엄청난, 순교한 사람들 팔아서 뭔가 종교를 영위하려고 황당한 짓들입니다. 인간적인 그런 걸 가지고 영성생활을 오도하지 마세요. 그분들이 진짜 하느님을 알고 가신 분도 계시겠죠. 아닌 분도 계시겠죠. 일괄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진짜 신성 안에서 하나 된다는 그것을 추구하게 만들어야 돼요. 왜? 대부분 여러분 종교 때문에 순교한 경우도 대부분은 광신의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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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신념 때문에 죽었지, 하느님과 하나 된 마음에서 하느님이 죽으라고 해서, 죽은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그중에? 다른 문제예요. 고민해 보시라고요. 이건 내 뜻대로 죽어도 안 되는 거예요. 자살을 원래 반대하는 이유가, 내 뜻대로 죽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우리 종교를 위해서 죽었으면 괜찮아’ 라는 건 또 다른 얘기예요. 이해되세요? 자살이 안 된다는 건, 하느님 뜻에 다 맡기라는 거예요. 네가 아무리 힘들어도 하느님 뜻에
01:00:00
맡기고 살아가라. 고 말을 하고 싶었던 거 아닌가요? 고게 더 강조돼야 될 부분입니다. “어떤 덕을 실천할게요 불행히 찾아올 것도 이런 식으로 마음을 이미 먹고 있었고, 자기가 좋은 덕을 실천할 때도요 하느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로 하여금 그 일을 하게 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못할 겁니다” 하느님이 허락하셔야 좋은 일도 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항상 자기의 모든 일에 근원에 하느님이 있다는 걸 정확히 알고 살아가는 것, 말을 이렇게 한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게 중요해요. 나 잘나서 이런다는 게 아니에요. 나한테 불행이 와도 내가 잘났으니까 이겨낼 수 있다가 아니라, 하느님을 믿으니까 난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고. 좋은 일도 하느님이 있어서 나온다. “실족을, 자기가 잘못을 하면요, 실수를 하면 하느님께 자신의 죄를 다 고백한 다음에 이렇게 얘기하셨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저는 그렇게 안 행할 수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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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막으실 것도 고치실 수 있는 분도 하느님입니다” 하고 딱 하느님한테 딱 책임을 전가해요. 고도의 수법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과오에 대해 더 이상 상심하지 않았다” 몰라 해버린 거예요. 아버지 이거를, 이걸 이런 짓 안 하게 할 수 있는 분도 아버지입니다. 하고 딱 맡기고 또 즐겁게 살아가는 거예요. 왜? 거기서 인상 쓰고 있다고 실족을 다시 안 하는 게 아닙니다. 또 해요. 그럴 바에는 ‘아버지가 이것도 다 아버지가 막을 수 있습니다’ 하고 더 깨어서 아버지와 함께 그냥 살아갈 뿐이지 거기에 대해서 더 상심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하느님한테 이렇게 단순하고 솔직하게 할 얘기 다 하면서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는 거. 이 사람이 포도주 업무를 맡았는데 아주 잘하지 못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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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수완도 없고 한데 일은 잘 처리됐대요. 그런데 이분 마음은, 잘 처리됐다는 데 집중하지 마시고, 그 마음이 이분은 그런 것에 대해서 힘들어하지 않았고. 포도주 사는 일에 대해서도 걱정을 안 했대요 “그는 이 모든 건 하느님의 일이라고 하느님께 말씀드렸다” 아버지 이 포도주 건, 아버지 일인 거 아시죠? 그래서 아버지가 잘하셔야 돼요’ 이분들 오히려 더 배째라 하지 않아요? 이분이 더 무섭지 않아요? 주인공! 여기 아프면 내가 일을 못하지. 주인공! 하고 딱 이렇게 ‘주인공만이 아프게도 안 아프게도 할 수 있어’ 대행스님이랑 말이 똑같지 않아요? 고수들은 영성 생활을 하면 다 이렇게 돼요. 진짜 정확히 알고 하면, 광신에 빠지지 않고 정확하게 신을 알고 신과 수작을 한다는 건 이런 거예요. 아버지! 하면 돼. 이미 내가 아버지예요. 아버지랑 둘이 아니에요. 말을 어떻게 하건 간에, 믿습니다 안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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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이 중요한 게 아니고, 딱 깨어서 아버지랑 하나가 된 상태에서 이건 아버지 일이니까. 아버지! 내가 안절부절 안 하겠습니다 하는 거예요. 아버지 일이니까. 아버지랑 함께 내가 일을 하지 나 혼자 일하지 않습니다 라는 거예요. 매 순간에 이 사람은 이걸 정확히 알고 있어요. 내가 혼자 이 일을 처리하는 게 아니다는 거예요. 아버지와 함께 한다는 걸 아니까 든든한 힘이 나오는 거고. 거기서. 그러니까 내 뜻대로 일을 마음대로 처리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자명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할 뿐이고 결과에 대해서도 아버지랑 함께 했기 때문에 내가 궁시렁거리지 않는 거예요. 토 달지 않는 거. 그리고 지금 나의 현실의 솔직한 내 수준에 대해서도, ‘아니 아버지도 알고 있죠? 내가 요 모양인 거 아시죠? 좀 쓸만하게 만들어 놓으시든가요 아니면 나랑 계속 이렇게 일하시는 거 익숙해지셔야 됩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아버지한테. 멋있잖아요. ‘아버지! 저랑 이런 식으로 일하시는 거 익숙해지셔야 돼요.
01:03:52
제가 못하는 거 너무 요구하시면 안 되죠. 고치실 수 있는 것도 아버지인데’ ‘그런가?’ 이렇게 딱 만들어야죠. 이렇게 정신이 무장된 사람들은 살아가는 게 매 순간순간 인간이 자유롭고 즐겁고. 재미있지 않습니까? 이런 얘기들? 그런데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현존 연습] 재미있어서. 고수들은 이 정도 살아야 불교의 확철대오입니다. 확철대오 했으면 이 정도 살아야 돼요. 일체가 공이지 하는 것 똑같은 소리예요. 일체가 공이지. 만법이 공이지. 색수상행식이 모두 공이지. 그 모두 그게 이 불성에서 나온 거라고 보기 때문에. 진리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파도들 때문에 거기 골몰하지 않는 거예요. 거기에 신경을 다 집중하지 않는 거예요. 파도 치는 것 또한 파도를 보는 게 아니라, 바다까지 보고 있단 말이에요. 이 사람들은 확철대오 한 사람들은 뭔 일이 일어나고 해도, 빨리빨리,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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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는 됩니다만, 주인공! 하고 다시 그걸 수습해 버립니다. 주인공! 하고 일체가 주인공이 한 거잖아. 지금 내 눈앞에 벌어진 일 다 주인공이 만든 거잖아. 그럼 주인공! 다 주인공이 한 거잖아. 잘 하게 하는 것도 못하게 하는 것도 주인공이 할 수 있잖아. 주인공 그런 식으로 주인공한테 맡기고 진짜로 일체가 공인 줄 알면서 내가 수작을 부리는 건 다른 사태라고요 전혀. 가짜들은 ‘아버지 이 모든 일은 아버지 뜻대로 아버지께서 하실 수 있는 걸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BMW!’ 하고 ‘아버지!’하고 외치는 거는요, 지금 뭔가 다르죠. 모르는 거예요. 사실은 이게 왜 엉터리 신앙인지 아세요? 하나님에 대해서 몰라요. 전혀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도 모르고 있는 거예요. 진짜 효자는 아버지를 정확히 아는 데서 오는 거예요. 지혜에서. 알고 있어요. 아버지! 내 인생 내가 살지만, 내 인생 내 거 아닌 거 압니다. 아버지랑 함께 살아가는 거 압니다.
01:05:53
그러니까 내가 힘이 빠지는 거죠. 몰라 괜찮아 하면서 힘을 빼고 자명하게만 처리할게요 결과는 아버지께서 알아서 해 주시고. 이렇게 사실 수 있으면 그냥 여기서 이미 천국이 펼쳐지고 정토가 펼쳐지고 열반이 온다니까요? 확철대오니 아라한이니 이런 성자니 하는 분들은 그냥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거예요. 여기에 대해서 정확하게 소개를 받으신 적이 있냐는 거죠. 이런 소개를 못 받고 여러분 바로 신앙 생활에 들어가서, 믿음으로 신앙으로 또 남과 경쟁하면서 교당만 또 이쁘게 치장해 가면서 신도수 늘려가면서 그거 다 부질없는 소리. 신도수 뭐 우리나라 전체를 한번 다 교화해 보세요. 그런 식 신앙으로 교화했으면 악업만 엄청 지은 거예요. 선업 지은 게 아니에요. 내가 이렇게 했으니 하느님이 날 이뻐하시겠지 다 지 생각이죠.
01:06:53
하느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OK 하느님이 여자 좋아하실 거야. 구약에 보면, 처녀를 잡아서 하느님한테 바쳐요 하느님이 왜 도대체 처녀를 왜 필요하는 거예요? 다 자기 인간의 못된 에고 생각으로 꼼수를 부려요 꼼수를. 그런 거랑 아무 상관이 없어요. 하느님을 조금만 알아도 그런 소리 안 할 텐데 영 모르는 사람들이 막 지껄이는 말들이 지금 영성의 표준이 돼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제가 안타까워서. 믿으면 이루어진다 그런 개소리를 왜 해요? 영성에서 그런 건 다 개소리입니다. 욕망의 세계에서는 달콤한 아주 혁신적인 말이 될 수 있지만, 진짜 영성의 영역에서 그런 건 다 개소리죠. 믿으면 이루어진다. 지가 아주 하느님보다 상전이죠. 그렇죠. 그런 망상을 품지 않은 바에는 그런 말 안 합니다.
01:07:49
나는 아버지 뜻대로 살고 있는가 이것만 딱 관심가져요. 예수님도 그것만 관심 가져졌는데. 예수님보다 훨씬 높은 분이죠. 예수님마저도 ‘아버지 뜻대로 하세요’ 그랬는데 예수님은 공부가 낮아서 그런 거고. 나는 아버지가 내 뜻대로 해. ‘아버지 내 뜻대로 하소서’ 이걸 기도할 사람들이죠. 심각한 거라는 거 아셔야 돼요. 제가 좀 부풀려서 얘기했습니다. 극단적으로. 왜? 심각하다는 걸 좀 보여드리려고요. 보통 이렇게 세게까지는 안 하시겠죠. 양심은 있으셔서. 하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사태일 수 있다는 거. 제가 세게 말씀드린 거랑. 이거 한번 느끼시면 좋겠어요. 진짜 영상생활은 몰라 괜찮아 하면서 양심 성찰하는 데서 옵니다. 결론은, 학당에서 왜 그렇게 지도하는지도, 이런 내용을 이론적 배경으로 가지고 하고 있다는 것. 영성생활에 대한 이런 그림을 갖고 저희가 말씀드린다는 거. 제 강의 중에 ‘내 안에 하느님 모시기’강의가 유튜브에 있으니까. 그것 좀 다시 들어보세요.
01:08:49
오늘 내용이랑 통하니까요. 마치겠습니다.
[출처] (녹취) 진정한 영성 덕후의 삶 (170906)_A532 (홍익학당) | 작성자 ㅣ문사ㅣ머루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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