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와 수동 3-7
마가복음15:21~24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21)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어둠에 사로잡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흠이 없는 어린양이 우리 죄를 대신해 스스로 제물이 되셨습니다. 양이 제물이 되면 수동적이 됩니다. 무죄한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뜻 앞에서 ‘수동’이 되셨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고통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는 마음과 인간을 향한 사랑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병사들은 희롱하며 예수님의 옷을 가져가기 위해 제비까지 뽑았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참혹함 속에서 예수님은 묵묵히 십자가의 고통을 감당하셨습니다. 철저히 수동적이 되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자신의 원대로(능동적으로) 움직이셨다면 우리의 구원은 없었을 것입니다.
내 뜻이 하나님보다 앞서서 능동적으로 걸어가는 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구레네 시몬은 아프리카 동북쪽에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예수님이 수일간의 굶주림과 고문으로 기진하여 골고다 언덕을 올라갈 수 없게 되자, 로마 군인은 군중 틈에 있던 시몬에게 십자가를 지게 했습니다. 이때 그의 뜻이 앞섰다면 도망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 앞에서 자기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이끌려 갔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사형 틀인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내 자아와 죄의 뿌리, 근본을 완전히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이끌린다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플렛 목사의 책 『팔로우 미(Follow Me)』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누군가와 점심 약속을 하고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상대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도착한 그는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미안합니다. 오는데 갑자기 타이어가 터졌지 뭡니까? 정신없이 바퀴를 갈아 끼우는데 집채만 한 트럭이 마구 달려오더군요. 피할 새도 없이 정면으로 부딪히고 말았어요. 트럭은 박살났지만 난 얼른 털고 일어나 이렇게 달려왓습니다.” 저자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약속에 늦어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처럼 행동한다면, 그는 크리스천이 아닌 게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말하면서 내 뜻이 앞서고 있다면 잘못된 십자가를 붙들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내 원대로가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십자가를 말하면서도 여전히 내 계획과 욕심을 앞세우는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해 주소서. 내 생각보다 크고 위대한 주님의 뜻에 묵묵히 순종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