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광덕산에
산행하러 갔다가
올라가지는 못하고
넘..연애질 한것만 확인하고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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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사 입구
간이주차장에서
바라본 광덕산(699m)입니다.
광덕산 정상에는 재미있는 일이 있습니다.
천안근교에서는 제일 높은 산인데요.
1m만 더 높으면 700m급 산이 된다고 커다란 자연석 한 덩어리를 정상에 올려놨습니다.
헬기로 올렸나요..?
지난번산행은..
서귀봉으로 올라 정상을 지나 장군바위 계곡으로 내려 왔는데요.
오늘은..
헬기장(제1코스)으로 정상에 올라 부용길코스로 내려올 예정입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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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싣고
다니는 등산화가 안보입니다.
전에 신던것은 밑창수리 들어가고 새것으로 하나 더 장만했는데요.
알아보니까..
오전에 직원들이 자재사러 나가면서 짐 싣는다고 내려 놓은걸 깜박 했답니다.
일하다 한 일인데..
어쩔수없고 광덕사 절구경이나 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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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사
입구에 있는
400여년 된 호도나무입니다.
안내문에는
700여년전 고려 충렬왕 16년(1290) 9월에
유청신(柳淸臣:?~1329)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올때 호도나무 묘목과 열매를 가져와
광덕사 경내에 처음 심은곳이라 하여
호도나무 시배지로 부른답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오는길가 가로수가 전부 호도나무입니다.
천안 호도과자가 천안의 명물로 유명해진것이 우연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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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광덕사(廣德寺)..절 꽃이 참 예쁘지요.
꽃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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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마당
잔디가 환상적입니다.
마냥..
절구경만 하기에는 시간이 남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기도 그렇습니다.
가죽샌달 신었다 하더라도
3부능선에 있는 부용묘 정도야 못 가겠나해서 샛길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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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묘(芙蓉墓)로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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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묘
1km 전에 있는
안내판에서 만나는 운초의 詩 부용화(芙蓉花)입니다.
부용이..
자랑하고 있네요.
연꽃(芙蓉)보다 부용(芙蓉)이 더 예쁘다고
부용(芙蓉)이 부용 자신을 표현하는 당찬 모습이
요즘 아이돌스타 소녀시대 만큼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소설이나 기록을 보면..
부용이 한 인물 했던것은 사실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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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옆에는..
운초 김부용(金芙蓉:1820~1869)의 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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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옆길을 따라
함경도 성천기생 김부용이
왜..충청도 천안 광덕산 기슭에서 잠들었는지 알아보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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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묘
500m 전에서 만나는 운초의 詩 자화상(自畵像)입니다.
조선시대를
통털어
시 잘짓고 노래 잘하는 명기 셋을 뽑으라면 송도황진이..부안이매창..성천김부용..인데요.
함경도
성천기생 김부용은
19세 나이에 77세 평양감사 김이양을 만납니다.
성천기생 부용의 문재가 뛰어나 그 소문이 평양에 까지 제법 알려졌던 모양입니다.
김이양의 제자로 새로 부임한 성천부사에게 보낸
김이양의 축하편지 말미에 성천땅에 시재가 뛰어난 아이가 있다고 들었다면서 잘 돌봐주라는
당부와 함께 부용이 지은 詩를 한 귀절 적습니다.
상대가..
북쪽지방에서는 임금 다음가는 평양감사인데요.
안 봐도 뻔한 부용의 벅찬감격이 있었고
안 봐도 뻔한 속보이는 만남끝에
"자네는..대감 곁에서 먹이나 갈면서 대감 적적하실때 수담이나 나눠주시게"
하고 인계하고
"여봐라..이 아이는 귀한 손님이니 거처할곳 특별히 신경 쓰거라"해서 인수 받습니다.
막말로 하면..
조선시대의 성매매(?)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도지사에 서울시장에 내무부장관까지 지냈던 유명인사가 평양시장 임기중에
관내 성천군수로 부터 성상납을 받는겁니다.
누구냐..?
성천예고의 김태희..김부용
비록 조실부모하고 술집 주모의 수양딸로 입양되어 산다지만
연꽃보다 예쁜 얼굴에
한창 피어나는 만 18세 꽃띠처녀
게다가 어찌나 영리한지 내년에는 특차로 서울대음대에 입학예정인 수재중에 수재입니다.
그런데요..
태어나서 어린나이에 양부모를 잃고 험한꼴만 보다가
기생으로 입적된 부용은
자신을 인정하고 딸인냥 귀여워 해 주는 늙은 김이양(金履陽)을 지아비로 모시기로 합니다.
촛대 뒤에서
천장만 응시하던 대감이 가만히 입을 엽니다.
노욕(老慾)...이라 할터인데..
부용이 답합니다.
뜻이 같고
마음이 통한다면 나이가 무슨 상관 이겠습니까?
세상에는 삼십객 노인이있는 반면 팔십객 청춘도 있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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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 왔습니다.
소나무 사이 좁은길로 올라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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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운초 김부용의 묘
(詩人 雲楚 金芙蓉之墓)가 있습니다.
이게 뭔가요..?
조금전 절집마당 잔디하고 너무 비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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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우 흩날릴제 울며 잡고 이별한님.".
주옥같은 시와함께 묘지자체가 시(詩)공원으로 조성된 부안의 매창(梅窓)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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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부용의 묘가
잡초로 덮혀 있습니다.
가관입니다.
큰동네 천안시 부용(芙蓉)과 작은동네 부안군 매창(梅窓)을 비교해보니 답답합니다.
천안시와 예총에서 추모제도 지내고 문예행사도 한다는데요.
이리 방치하면서
찾아가는 산길도 "부용길"이라고 예쁜 이름지어놓고 안내판보고 오라는 것은
천안시 욕하라고 하는건지
아니면..장김씨 집안 망신주자는 건가요..?
그도 저도 아니면
충청도 양반 정서에는 미천한 기생출신 부용을 아끼고 사랑하기엔 창피하다는 애긴가요?
부탁합니다.
조선시대에 살았던 기녀(妓女)가 아닌 조선시대 여성 문인으로 대우해 줍시다.
이런 소망이 널리 알려져
부용묘(芙蓉墓)자리가 부용 詩공원으로 자리매김 하는날이 오기를 꿈꾸어 봅니다.
다행히..
무덤가에 핀 이름모를 꽃송이가 부용을 동무해 주고 있습니다.
정비석 소설에는
바로 뒤에 김이양의 묘가 있다고 해서 찾아 보았는데요..역시 소설입니다.
판서를..네번이나 지냈고
한성부윤 두번에 부용 챙긴 평양감사에다가 벼슬을 그만두고는 봉조하까지 제수받은 대감인데요.
천하의
장김시대에
천하권력 김조순의 숙부인
김이양이 쓸 묘자리로는 너무 협소합니다.
기록대로
같은 산줄기 조금 떨어진 곳에 김이양의 묘가 있다는것이 맞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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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뒤에 서있는..
이 소나무는 모든것을 알고 있겠지요.
김이양의
인물됨은..대체적으로 긍정적입니다.
80세 넘게한 벼슬살이에 봉조하까지 제수받은걸 보면 무난한 성격의 소유자 같습니다.
기생 신분인 김부용을
진정으로 아끼고 시인으로 대접하고 사대부와의 만남에도 격의없이 대해 주었다 하고
후에 호조판서로 재직 할때에는 정식 소실로 삼아
한양으로 데려와서
남산중턱에 초당을 지어주고 녹천당(綠泉堂)이라 이름짓고 살게 하는데요.
기적에서 벗어난 부용은
판서대감의 비호아래 초당마마가 되어 상승된 신분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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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양은..
태어나서 복이란 복은 다 누리고 갑니다.
과거장원 복을 시작으로
권력복 재력복 장김복 벼슬복 첩복..등등 게다가 장수복까지 있어 92세까지 살다 갑니다.
그중에 으뜸인 복은..
뜻밖에도 슬하에 자식이 없다는 無子福(?)인데요
無子복 때문에 한양 최대의 스캔들은 대를 잇기위한 노인네의 살신성인(?)으로 비추어지고
저 어른의 아들소식을 언제 들을수 있느냐가 장안 초미의 관심사가 됩니다.
늙은이 주책이 어르신이 과연..하는
호기심으로 바뀌었으니 같이 늙어가는 본부인 인들 무슨 대책이 있었겠습니까?
(아니 그럼..자식 못낳은 처복까지..?)
녹천당(祿泉堂)은
날아가는 새도 떨어 뜨리던 세도정치의 거두 김조순을
필두로한 장김의 사랑채 역활을 하면서 권력의 중심축으로 태어납니다.
재미있는것은..
술과 안주가 셀프이었다지요.
먹고 싶으면 먹고싶은 사람이 가지고 와서 먹는것이 녹천당 시스템이었답니다.
역시..부용의 총명함이 묻어납니다.
그래서
녹천당은..
최고의 권력에 名酒에 진기한 음식이 넘쳐나는 조선 제일의 요정이자 사교장으로 이름을 떨칩니다.
부용의
시와 술과 함께 거문고와 노래 그리고 그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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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마을을 지나갑니다.
한시절
천하의 세도를 가졌던 김이양(金履陽)도
결국에는 부용(芙蓉)으로 살다 운초(雲楚)라 불리어졌던 기녀(妓女)의 허수아비 였음을..
........
끝으로..
보탑시(寶塔詩)라고
보탑하듯이 줄 내려가면서 좌우로 한자씩 늘려가며 쓰는 형식인데요.
일자이구(一字二句)로 시작해서
십팔자이구(十八字二句)로 끝이나는 장편의 층시(層詩)입니다.
부용의 보탑시
"부용상사곡"(芙蓉相思曲)은 좌(左)로 18자 우(右)로 18자..36字에서 끝이 납니다.
물론..처음에는 一字로 시작하고요.
탑을 쌓는 간절함을 담아 한양 김대감에게 보내는 부용의 연서(戀書)를 읽어봅니다.
"別"
"헤어짐에"
ㅣ
ㅣ
思
그립고
路遠
길은 멀어
信遲
소식이 늦네요.
念在彼
생각은 당신에게 있는데
身留玆
몸은 이곳에 있구요.
.......
비단수건은 눈물로 젖는데
가까이 모실날 기약이 없구요
향각에서 종소리 들려오는 이밤
연광정에서 달이 떠오르는 이밤에
잔꿈에 놀라깨어 외롭게 베개 껴안을때
돌아오는 구름을 바라보며
멀리 떨어져 있음에 소녀는..가슴만 저려 옵니다.
.
...
.....
예를들면
굳이 예를 든다면..
김종필에게 후처로 시집간 김태희가 쓴 연시(戀詩)인데요.
이유없이 성질나서
차마..
차마 더는 못 읽겠습니다.
.
...
.....
詩人
雲楚 金芙蓉은
四十九年의 짧은 生涯동안
雲楚詩集 五江樓 등의 文集에 三百五十餘 首의 漢詩를 남깁니다.
金履陽과
死別한 金芙蓉은
貞節을 지키면서 남은 餘生을 보내다가 運命을 달리합니다.
天安
廣德山자락
金履陽의 墓옆에 묻어달라는 遺言을 남기고..
첫댓글 조용한 천안 광덕사의 정취가 마음을 한가롭게 만들어줍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해~병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