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진 지음『교회 밖에 핀 예수꽃』을 읽고
유전(流轉)하는 사랑/이향아
민영진 지음『교회 밖에 핀 예수꽃』의 출판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민영진’이라는 고유명사 뒤에는 수많은 접미어가 후속되는데 이들은 모두 사계의 최고 수준에 이른 사람을 일컬을 때 쓰는 접미어들이다.
그는 대학에서 성서학을 강의하는 신학박사이며 교수, 기독교 교단의 목사님이다. 그는 대한성서공회의 총무를 지냈으며, 지금은 다시 세계성서공회연합회(United Bible Societies)의 컨설턴트로서 성경번역을 위해 라오스, 베트남, 몽골 등 전 세계의 오지까지도 누비다시피 강행군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이다.
그는 또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시인이다.
그러나 나는 이들 명칭들을 잠시 젖혀 놓고 그의 이름 뒤에 ‘선생’이라는 말을 붙이려고 한다.
‘선생’이라는 말은 내가 가장 큰 존경을 표시하고 싶을 때 선택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세상의 모든 직함으로부터 분리하여 자연인으로서 바라보게 하는 편안한 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나는 그를 여러 분야의 일에서 잠시 자유롭게 하여 단지『교회 밖에 핀 예수꽃』, 그 책의 저자로서만 대하려 한다.
‘님’자를 붙여서 ‘선생님’이라고 할까 하다가 사석이 아닌 공적인 글에서는 ‘님’자를 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어서 빼었다. 혹시 당돌한 어조로 흐르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기도 하다.
나는 민영진 선생을 <창문회>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창문회>는「창조문예」출신의 작가회의를 이르는 명칭이다.
월간 <창조문예>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문학으로써 전하려는 이상을 저변에 깔고 15년 가까운 세월 그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는 문예 월간 간행물이다. 따라서 <창문회> 구성원들 역시「창조문예」의 이념에 동조하고 협력하는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창문회>가 실시하는 작품합평회에 참석하면서 ‘내가 무슨 연유로 이분들과 연관을 맺게 되었는가, 연관을 맺고 이토록 오래 동행하게 되었는가.’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결국은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이 또한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이라고 결론을 내리면서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내가 감사히 여기는 것은 <창문회>를 통하여 민영진 선생처럼 온유하고 겸손하며 신앙이 도타운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영진 선생은 지금 <창문회>의 회장직을 두 번째 연임하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시작하기 전 어떤 형식의 글로 써야 할까, 오래 망설이고 궁리하였다.
작가가 심혈을 쏟아 엮어내는 저서의 한 자리에, 초대받은 사람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경하하는 일이다. 그리고 초대에 감사하는 일이다. 그런데 너무나도 당연한 경하와 감사만으로 지나갈 경우 그것은 별 의미가 없을뿐더러 중후한 이 책의 품격을 훼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
성경지식도 신통치 않은데 가벼운 시의 이론만 들고 ‘교회 밖에 핀 예수꽃’을 분석하거나 논평한다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발문 역시 논평의 성격을 크게 벗어나는 글이 아니므로 본문의 이해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혼란만 야기할 수가 있다.
내 힘에 과히 버겁지 않은 감상문 정도의 에세이로 초대에 응할까 한다. 그 편이 그 중 무난할 것 같다.
신앙시의 경우는 자칫하면 격한 마음을 생경한 그대로 노출하기 쉽다. 시인의 분출하는 감정을 아무런 여과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토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성령에 접합된 듯 불붙는 순간을 만나, 시를 쓰겠다는 의지와 무관하게 계시처럼 언어들이 터질 수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신앙을 토로하는 일과 시의 완결성을 갖추는 일은 별개의 것이다.
인위적으로 어휘를 선별하여 맞추고 조직하는 시작행위의 도정에서 시인은 일정한 범주와 도식에 구속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김춘수 시인은 이런 점에서 매우 자유로웠다. 그것은 그(김춘수 시인)가 민영진 선생이 지적한 대로 ‘교회 밖’의 시인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교회 밖에서 거주하는 사람이었지만 교회 안에 상주하는 사람 이상으로 기독교적인 시각, 기독교적인 사색, 기독교적인 고뇌를 나타내었다. 그가 설령 기독교를 잘 몰라서 다소 어긋난 기술을 했을지라도 기독교는 ‘교회 밖’의 시인인 그에게 책임추궁 같은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춘수 시인은 교회와 수시로 내통하고 있는 것처럼, 교회 안에 있는 자가 예언하는 것처럼 하였다. 숨어서 하는 사랑처럼 오히려 더 은밀한 뜨거움을 표현했던 것이다. 주소는 교회 밖이어도 실제상의 거주지는 ‘기독교의 안’, ‘교회의 안’, ‘예수의 안’이었음을 알게 한다.
민영진 선생이 시인 김춘수를 간파하여 발굴해 낸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숨어서 사랑하는 자, 김춘수 시인의 내면에 있는 아픈 사랑이다. 이를 간파하고 발굴하여 해석하는 민영진 선생의 마음 또한 김춘수 시인의 그것처럼 아프고 저리다는 것을 독자들은 충분히 느낄 수 가 있다.
민영진 선생은 시를 직접 쓴 김춘수 시인과 한통속이 되어서 사물을 바라보고 느끼고 시를 쓴 듯이 그의 시를 읽어내었다. 시의 해설자가 시인보다 한 발 앞서서 시를 사랑해야 한다는 진리를 증명한 것이다.『교회 밖에 핀 예수꽃』을 읽는 독자들은 김춘수 시인보다 한 발 앞선 민영진 선생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민영진 선생은 자신이 목사요 신학자라는 사실에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쉽게 말해서 전혀 ‘티’를 내지 않고, 교회 밖의 시인의 기독교적 사고를 최대의 긍정과 환대로 맞아들여 그와의 대화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시가 좋은 독자를 만나게 되는 것은 시인의 행운이다. 한 편의 시는 독자의 시각과 해석에 따라서 시인의 창작의도, 그가 전달하려는 정서, 시의 지향점과 섬세한 색체가 천차만별 달라진다.
나는 민영진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Poem과 Poetry에 대하여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작품(Poem)은 시인이 썼으되 시인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 거기서 어떤 시 정신(Poetry)을 발견하느냐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 공식에 대입하면 김춘수의 Poem은 김춘수의 것이 아니라 민영진의 Poetry를 통해 다시 태어난 것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독자를 만난 김춘수는 행복한 시인이다.
성실한 독자는 시에 접근하여 그가 가진 사랑, 그의 양식과 이해로써 시인이 못다 표현한 이면의 목소리까지 보충하고 윤색한다. 시인이 아무리 현저한 표현으로 효과적인 전달을 바랄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독자의 반응과 해석 없이는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문학 중에서도 현대문학, 현대문학 중에서도 현대시를 25년여 강의해 왔다. 특히 김춘수의 시는 예문으로도 다루기에 적절하여 많이 인용했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있던 시기까지 합한다면 40년 넘게 그렇게 한 셈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의 시에 기독교적 색채가 이토록 깊은 뿌리에 닿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겉으로 외치지 않은 시인의 은근한 진실. 지성으로 곰삭아서 돌출되지 않았지만 밑바닥까지 닿아서 중심을 흔들고 있는 힘을 간과했던 것이다. 내가 강의실에서 기껏 역설한 것은 그가 은유의 명수요, 서술적 이미지의 창시자로서 무의미시의 존재를 합리화한 기수라는 것이었다.
나는 공공연한 상식이 되어 새롭지 않은 것을 마치 새로 발견한 진리라도 되는 것처럼 강조하는 일에 급습했던 것이다. 창조성과 독창성이 부족한 강의였음을 교수의 위치에서 반성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신앙인의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믿어 세례를 받고 교회에 출석한지 수십 년이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공고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염치없는 행위다. 혼인식을 치른 아내라도 남편의 수난과 질고에 함께 울지 않는다면, 그를 닮은 자식을 낳은 적 없으면서 낳으려고 마음먹지도 않는다면 무슨 얼굴로 아내의 자리를 지키겠는가. 숨어서 우는 진실한 연인에게 감히 대적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인입네 하는 명찰이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나는 김춘수 시인에게 호감을 가지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가 국내 유수한 대학교의 문과대학 학장자리에서 문득 물러나 당시 군부의 잔재였던 여당의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실망하였던 것이다. 나 하나 잠시 돌아선다고 그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다. 객기로 충만했던 젊은 시절의 감정으로 흘러가버린 일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하든 김춘수 그는 한국 현대시에 중요한 획을 그은 사람이다. 그는 독창적 이론과 함께 그에 적합한 시작품을 발표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사물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스케치하듯 내놓아야 한다는 서술적 이미지’의 시들과 서술적 이미지로 쓴 무의미시론에 흥미를 가져왔다.
그가 시에서 현실을 배제하고 의미를 무화시키려는 ‘무의미시’를 시도한 것은 물질만능의 현실에서 속물적 대중이 이끄는 상업주의를 배격하고 고급한 문학의 예술성을 지키려는 노력의 하나였다. 너무나도 낯이 익은 길로부터 일탈하여 새로운 것을 모색하고자 하는 실험정신의 소득이요, 순수를 지향하는 시인의 본능에 충실한 결과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무의미시를 진실로 의미 없이 음송할 때는 마술적 흥취가 일어났으며, 그것은 충분히 시를 강의하는 즐거움과 행복을 주었다. 그리하여 김춘수에 대한 더 깊은 탐색은 할 생각도 않고 한 학기 시론은 흥분으로 들떠 몽롱한 가운데 아쉽게 마감되곤 했었다.
수십 년 시를 강의하고 더러는 분석비판하기도 하면서 보냈지만, 나는 민영진 선생의 전율과 희열에는 도달하지 못했었다. 어느 날 내가 김춘수 시를 소개했을 때 다만 귀로 듣고 느꼈다는 민영진 선생의 그 전율과 희열 말이다.
내가 민영진 선생을 보면서 낭패감에 가까운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는 성서학자요 목사님이니까’, ‘나는 그저 보통으로 감상하고 분석하는 수준이니 어쩔 수 없지’, 하는 식의 변명으로 자위해보려고도 했지만 그것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민영진 선생은 무엇보다도 학구적이다. 희열을 희열 따로 놓아두거나 감격을 감격 따로 간수하지 않고 그는 곧바로 연구에 들어갔다. 그리고『창조문예』에 1년 동안 연재하였다.
그는 김춘수시론전집과 김춘수 시집, 김춘수 대표에세이, 기타 수많은 논문들. 김춘수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은 책이나 사람이나 장소나 소문을 가리지 않고 찾아 나섰던 것이다. 나는『창조문예』에 연재했던「민영진의 시 읽기」를 <연지당 문학회>에 소개하고 강의하면서 김춘수 시인에 기울이는 그의 애정에 감동하였다.
그는 김춘수 시인에 빠진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 있어서 드러나지 않았던 김춘수의 예수 사랑을 발굴해 내는 일에 깊이 빠졌던 것이다.
민영진 선생이 처음 만난 김춘수의 시를 아무래도 다시 옮겨 말해야 할 것 같다.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詩人 릴케가 만난
슬라브 女人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또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 어린 純潔이다
三月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둣빛 바람이다.
현대시론 강의실에서 탁월한 은유의 예를 제시해야 할 때면 나는 으레 이 시부터 인용하였다. 인용할 때마다 내 목소리는 한 옥타브 격앙되곤 했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탄력이 있고, 유추해 내는 과정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참신한 시다.
‘늙은 비애’라고 표현되는 하나님의 슬픔은 장구한 세월 속에 누적된 슬픔일 것이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인 하나님은 자기 살을 아깝지 않게 분배하여 희생을 불사하는 하나님이며 놋쇠항아리처럼 속이 깊은 인내로 기다리는 하나님이다.
찔림과 상함과 온갖 멸시. 손바닥에 못을 박아도 죽지 않는, 옷을 벗겨 조롱하여도 옷을 벗었기 때문에 오히려 순결한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가 바라볼 오직 하나의 희망 하나님이다.
시인 김춘수는 이 시의 제목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아! 교회 밖에 서 있는 김춘수 시인의 하나님, 마치 나의 하나님을 그에게 내어 준 듯, 그에게 빼앗긴 듯하다.
하나님만은 빼앗길 수는 없는데, 나는 그 동안 무슨 짓을 하였는가, 어쩌자고 이 시인은 나를 이렇게까지 왜소하게 하는가. 그가 부러우면 부러울수록 내 능력이 절망스럽다.
시를 읽는 일은 사랑을 나누는 일이다. 한 사물에 꽂힌 시인의 사랑이 독자에게 흘러 전해지고 독자의 그 사랑이 다시 시가 되는 끝없는 흐름, 그것은 자연스럽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순환이다. 심장에서 시작된 피가 모세혈관에 도달할 때까지 피의 흐름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 시를 쓰는 일은 사랑을 나누는 일, 이 순환에 애로가 없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살 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김춘수 시인의 예수사랑이 민영진 선생의 예수사랑으로 흘러 내 가슴까지 흔들었다. 수혈을 받은 환자처럼 나도 조금씩 소생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