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유감
어제 브리티쉬 오픈 골프대회에서 한국의 낭자군이 1,2,3 위를 휩쓸고 우승하는
장면을 보았다. 박세리 이후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한국 여자 골퍼들이 이제는
명실상부하게 세계에 군림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으로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골프에 대한 우성인자가 있지 않겠나 싶은데
나의 골프에 대해 평가를 해 보자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내 평생에 가장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여 열심히 하였건만 골프는 언제나 나의
기대를 저 버렸다.
내가 골프를 시작한 것은 88 올림픽이 끝나고 물 태우 대통령이 노조에 밀려서
우리나라의 노동 인건비가 한꺼번에 폭등을 하는 바람에 그 당시 년간 100 억불 수출을
달성하던 대부분의 섬유산업이 국내기반을 잃고 해외로 공장을 옮길 수 밖에 없었던 때이다.
나도 내 공장을 인도네시아로 옮기고 그 곳에서 주말에 재 인도네시아 교포들과 골프를
치기 시작하였다.
나이가 들어 시작한 골프는 시작부터 나를 괴롭혀서 몇 달간 매일 한 시간이상 레슨 코치의
지도하에 연습을 하여도 고질적인 슬라이스는 언제나 나를 따라 다녔다.
생각다 못해 한국 프로 정규 투어 선수의 개인 코치를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받아 보았더니
이제까지의 나의 스윙은 다 잘못 되었으니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맥 빠지는 일이었지만 하늘 같은 프로가 하는 말인데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고행을 어언
2 년간 하고 나니 겨우 아마추어들이 동경하는 싱글 스코어를 기록하기 시작 하였다.
그 당시 사업이 바빠서 낮 시간에는 골프를 칠 시간이 없어서 집 근처의 골프장의 회원권을
사서 새벽에 동이 트기 전에 골프 장을 찾아가 친구와 둘이서 라운딩을 하고 클럽하우스에서
식사하고 회사 출근을 하면 딱 9시 출근시간에 맞추곤 하였다.
이 처럼 매일 같이 라운딩을 하다 보니 어느덧 스코어가 칠십대 초반을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내 나이가 60대 후반인지라 잘 하면은 에이지 슈-팅(자기나이와 같은 스코어를 치는 것)
도 달성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내 골프의 목표를 이에 두고 열심히 골프 실력을 연마하였다.
언젠가 이현구 동문이 베트남에서 돌아와 대학교 건축과 동문들과 여주 골프장에서 시합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날 따라 스윙이 잘되고 퍼팅도 생각하는 대로 들어가 전반 9홀을 3 언더
의 스코어로 마감할 수 있었다. 이런 컨디션으로 후반9 홀을 마친다면 대망의 에이지 슈팅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전반9 홀이 끝나고 보니 3 팀이 밀려 있어 우리 일행은
그늘 집에 들어가 간단한 음료를 들며 기다려야 했다. 그늘 집에서 동료들이 내 스코어를 보고
모두 한 마디 씩을 하는데 그러다 보니 은근히 욕심이 생겨 평상심을 유지 하겠다고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스윙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후반 9 홀을 보기 2 언더로 끝내고
나의 에이지 슈팅의 꿈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작전을 바꾸어 70 대에 가서 내가 가끔 치는 70대 초반 스코어를 치는 것으로 목표
수정을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체력을 유지해야 하겠기에 헬스 클럽에 매일
다니며 체력단련에 주력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허리에 이상이 느껴져서 병원을 찾아
갔더니 너무 무리한 운동을 하여 허리관절이 협착증이 있으니 무리한 허리 회전 운동은
하면 안 된다는 의사의 처방이다.
그래도 하루 아침에 내가 좋아 하는 골프를 포기 할 수 없어 무리하게 스윙 연습과 라운딩을
계속하였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스윙은 엉망이 되고 스코어는 이제 보기 풀레이도 유지 하기
힘들어 졌다.
몇 일전 골프 연습장에 맡겨놓았던 골프채를 빼내어 집으로 가져 오면서 이제 골프를 포기하기로
결심하였다. 지난 수 십 년간 나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하였던 손때 묻은 골프채를 바라보면서
그 동안 골프를 위해 받쳤던 나의 허망한 노력과 이제 내 앞에 패잔병처럼 놓여 있는 골프채를
바라보니 인생의 허무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내 나이 50이 가까워 시작한 골프는 지금까지 나의 모든 정열과 노력을 받쳐 왔지만 결국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이 자탄 했듯이 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도중에 접게 되었다.
첫댓글 나의 골프 대부님! 다시 힘 내세요
과유불급이라고 그냥 즐기는건데...
골프장에서 다시 볼줄 알았는데 아쉽군.
좌우간 그 용기가 부럽소.
난 아직도 골프장에서 헤매고 있으니..
오호 통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