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속에서 하루하루 희희락락함은 지고의 거룩함이다
금강경에 '1250명의 대중'이 나온다
나 혼자는 살수 없다는 것이다
대중이 있어 그들과 울고 웃으며
대업(일과 수행)을 펼쳐 나아갈수 있으니
대중은 필수요
나를 받쳐주는 정초석이다.
세상에 제일 두려움이 무엇이랴
마음의 늙어감과 자기포기다
세기적 변환의 시대에 사회와 대중을 포기한
한국과 일본의 사회포기 청소년들.
많다. 혹은 늙어감으로 해 육신과 관심의 포기
ㅡ어쩔수 없는 노화지만 마지막까지 '중생대중'의
현장에서 '배우고 익히고 먹고 놀고'라는 의제는
변할 수 없으니,기원정사 1250인의 시회대중이 있어
부처님과 불법이 2600년 면면히 이어왔듯
지금의 대중은 내 고귀한 삶의 바탕이자 내가 즐거워
할(법희-진리의 즐거움) 현장이다.
그러면 왜 부처님과 행자들이 깊은 산속,석굴속에서
은둔의 세월을 보냈냐고?
담금질이다. 결국은 일체대중과 함께 '희희낙락(상락
아정-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세상에 맑게 상응함)'하
기 위한 수련의 여정이다. 보검은 수회의 담금질을 통
해 빛나는 칼이 되듯,긴 공부와 숙성을 통해 박사가 되
듯,박사나 도사,행자나 보살은 깊고 고독한 번뇌와 수
행의 시간을 거쳐 결국은 '중생대중'의 현장에서 혹은
그 구성원으로써의 책무와 권리가 있으니,그들이 나를
지켜주고 또한 보살인 내가 그들을 주시하는 가운데
정토가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바닷가의 수많은 몽돌이 파도가 치면
'돌의 화음'을 내듯
하루하루 희희낙락하는 대중속의 현장을 떠나
그 어느 구름속의 불국토는 특별히 따로 없다는
것이다.
번뇌 즉 보리다
희노애락의 현실을 정제하고 정화해 대승의 사유로
승화시키니 해탈이다.
어찌 현실과 중생을 떠나 불국토를 논할 것이며
어찌 지금의 국토와 인연을 벗어나 꿈의 세상을 논하랴
부처님은 '고행'과 '중도'를 통해 자신을 더욱 향상시킬
것을 부촉하셨으니,내게 닥친 고난과 고행은
부처님께 다다르는 계단이요,자양분이지
거부할 일이 아니요
결국 중도의 사유로 자신과 세상을 통합해 보는
깨달음과 대승의 안목은 지금의 어려운 시국에
긴요한 감로수라 사료된다.
대중(중생)이 있어
나의 의식주가 편히 해결되고
그 대중 때문에 공부하고 운동하며
성숙과 도약을 도모하니
그들이 곧 불보살이다.
중생 없는 부처님 없고
대중이 없는 나는 곧 진흙이 없는 연꽃과 같다.
밉고 고운 주변의 대중이 있어 나의 희로애락이
전개되니 그 대중이 버팀목이다.
코로나 이후 힘든 사람들이 많아졌다
현재의 상황에 불만을 갖기보다
더욱 일신해 '대중을 위한 나의 울력과 헌신'으로
대중도 좋고 나도 유익한 정토를 위해
다시금 불심기도를 집중해 나아가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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