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a-RkKWnbtJQ
1 복종하지 않으면 자신의 의를 세우는 중이다
사도바울의 간절한 소망과 기도 제목은 유대인이 구원받는 것이다. 그 당시 유대인의 상태는 지나치게 율법에 순종하여 사랑이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율법과 사랑은 반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비례한다. 왜냐하면 율법은 사랑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 당시 유대인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했지만 지식을 따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식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말일까? 말씀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로움은 버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의로움을 세우려고 불순종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명령들은(율법) 불순종하면서 의로와 지려고 했던 것이 그 당시 많은 유대인들의 모습이었다. 즉,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었고 심지어 의로와질 수 있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식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에 그리고 의로움을 얻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만약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의 계명, 명령들, 율법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당시 유대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롬10:1~3)
2. 그 당시 많은 유대인들은 외식하는 불법의 사람들이었다.
이사야 선지자도 지키는 척하는 가식적인 사람들에 대해 예언했다. 예슈아께서도 이런 자들을 책망하셨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진짜 사랑하지는 않던 자들이었고 헛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었다. 즉, 입은 하나님을 시인하지만 마음은 없었던 자들이다. 이들은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쉽게 버렸던 자들이다. 다시 말해,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세운 교리를 지키느라 율법을 쉽게 버리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은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아니라 교리로 율법을 지키도 않아도 되게 만든 자들이었다. (막7:6~9)
그런데 우린 바리새인들을 율법주의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율법주의가 율법을 안지키는 자들인가? 우리는 율법주의를 너무 열심히 지키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들은 전통주의자로서 율법을 폐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전통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더 바람질 할 것이다. 율법주의는 반율법주의에서 생긴 단어이다. 교회에 지나치에 열심이라고 해서 교회주의라는 단어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3 예슈아와 모세의 메시지는 대립할 수 없다
불순종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잘못된 지식과 방법에 대해 책망하던 바울은 두가지 근거를 들었다. 한국어 성경은 접속사를 번역하지 않았지만 분명 헬라어와 영어는 이유에 대한 접속사를 사용하고 있다. 첫째 이유는 예슈아께서 율법에 마침이 되었기 때문이고 둘째 이유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로 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모세의 가르침 때문이기도 하고 예슈아의 가르침 때문이기도 하다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모세의 가르침과 예슈아의 가르침은 서로 대립할 수 없다. 그러면 율법의 마침은 무슨 뜻일까? 마침이 만약 끝내는 것이라면 그래서 더이상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면 바울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율법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책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마침은 끝내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목적과 결과를 의미한다. 즉,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가져야하는 최종적인 결과, 목적, 본보기라는 말이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예슈아처럼 살아야 하기 때문에 불법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아야한다. 또한 모세가 순종하는 자가 생명을 얻는다고 선언했으므로 불법하면서 의로와진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두 가르침은 결코 부딪힐 수 없다. (롬10:4,5)
4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 vs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모세는 율법을 지킴으로 얻는 의로움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누가 하늘에 올라가고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라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말씀이 입에 있고 마음에 있어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인용하고 있는 신명기 30장 말씀을 살펴보자(롬10:6~8)
5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누구의 메시지일까? 모세가 율법에 순종함으로 얻는 의를 가르쳤다면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해 최초로 가르쳤을까? 구약은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고 신약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일까? 우리는 그렇게 오해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모세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가르쳤으며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도 함께 가르쳤다. 다음과 같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은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며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누가 거기까지 가서 배워다가 우리를 가르치고 행하게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지 말라. 말씀은 우리 입에 있고 마음에 있으므로 너무 가까워 행할 수 있다. 어려운 것도 먼것도 아니다. 바울은 이 모세의 가르침을 '율법을 지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라고 하는 믿음에서 나오는 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가르침에는 순종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생사화복중에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생과 복을 택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생과 복을 택할 때 구원의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신30:11~16)
6. 지킬 수 있는 율법을 주셨다는 믿음은 여호와께 돌아가게 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복과 저주가 실제로 삶에 나타나 다른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 고난당할 때 말씀이 생각나면 여호와께 돌아와 그분의 명령을 온 마음과 온 뜻을 다해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다시 자유와 회복을 주시고 소산을 많게하시며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렇게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분의 명령들이 지키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지킬 수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킬 수 있는 율법을 주셨다는 믿음은 여호와께 돌아가게 한다(신30:1~14)
7 말씀과 하나님은 동일하다
온 나라에서 가장 거룩한 나라는 어디인가? 이스라엘? 이스라엘에서 가장 거룩한 곳은 어디인가? 성소! 성소중에 가장 거룩한 곳은 어디인가? 지성소! 그렇다. 그러면 이렇게 물어보자. 하나님의 말씀 구약과 신약중 더 거룩한 부분은 어디인가? 구약? 그럼 구약의 말씀 중 가장 거룩한 말씀은 어디인가? 모세오경! 모세오경중 가장 중요한 말씀은 무엇인가? 계명과 율법..?
왜냐하면 다른 부분은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썼지만 계명과 율법은 여호와께서 친히 써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출24:12)
이처럼 얼마나 중요한지는 비교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율법중에 지극히 작은 것을 지키지 않고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말하는 있는 것이다.(마5:19) 그러므로 우린 율법의 아주 작은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고 무시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샤밧 준행의 계명이 돼지고기를 금하는 계명보다 더 중요한 계명일 것이다. 그러나 덜 중요하다고 해서 결코 무시될 수 없다.
이처럼 말씀이 곧 하나님이고 말씀중에 말씀이 율법이고 하나님이므로 율법을 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과도 같다. 이 때문에 수많은 유대인들은 율법을 수호하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그들의 생명을 버렸다.
헬라는 유대 관습을 버리게 함으로(이때 당시 유대 관습은 계명을 지키는 문화였다) 제우스라는 태양신을 섬기게 하고 돼지피로 제사를 드리게 하고 돼지 고기를 먹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없애려 했다.
이 역사가 다니엘에 예언되었던 수전절의 실제 이야기이다.
샤밧 예배: 토요일 10시 30분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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