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대화 1229(소설 신라미인의 비밀 제 2회)

[김광윤]

1500년전에 신라에서 개발된 전통화장품을 픽션으로 구성한 소설입니다. 전통의학은 허준, 전통 식품은 대장금 여기에 전통화장품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초안은 적었지만 계속 수정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좀 읽어주실래요? 그리고 극적인 코멘트를 해주시면 여러분과 제가 완성하는 소설로 시중에 그리고 인테넷서점에 그리고 저의 오랫동안 소망한 내용이지만 드라마에 나가면 참 좋겠습니다. 소망이고요. 아뭏든 읽어보시고 코멘트 달아주시면 제가 또 잘 수정해보겠습니다. 24회 연재가 될 것 같고 400페이지 분량입니다. 이것은 제2회분입니다.

(2) 미본가의 아침

서라벌에 아침이 찾아 왔다. 초봄의 햇살은 따스하게 미본가를 감싸고 있었다. 북천의 중류에서 토함산 가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미본가에서는 멀리보이는 금성과 월성이 오늘처럼 날이 좋은 날은 훤하게 더 잘 보였다. 월성을 감싸고 남천이 흐르고 있었고, 서천을 양변으로 해서 모량부와 급량부 그리고 사량부가 있었다. 모량부에는 박곡촌 등의 서촌이, 급량부에는 파잠, 동산, 피상 등 동촌이 있었고, 남쪽에는 담엄사가 있었다. 그리고 북천의 중류이고 남천의 아래쪽에는 한기부가 있었다. 한기부는 분황사와 낭산을 잇는 선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천 중류지점에는 본피부가 있었는데, 시파 등 동남촌이 본피부에 해당되었다. 북천의 상류지역에는 습비부가 있었는데 물이촌, 잉구미촌, 궐곡 등 동북촌이 습비부에 해당되었다. 미본가는 습기부의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미본가의 아침은 분주하다.

붉은 햇덩이가 하루 일과를 시작하려고, 남산의 산등성이를 기웃거리기 시작하면 대여섯의 제자들과 서넛의 일꾼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일꾼들이 싸리빗자루로 마당을 쓸 때 마다 땅이 긁혔다. 일꾼들이 흰천 두건을 쓴 것과 대조적으로 제자들은 청색 두건을 쓰고 있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구분되었다. 일꾼들은 수십개의 약초를 말리고, 걷고, 자르고, 보관하고, 실험실로 운반하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스르렁. 스르렁.”

연구실 바로 옆에 있는 제조방에서는 커다란 나무통 안에 들어있는 화장품 원료들이 대량으로 저어지고 있었다. 제조를 맡고 있는 일꾼이 물레방아처럼 돌아가는 회전대를 돌리자 나무통 속의 교반봉이 돌아가면서 골고루 내용물을 저어주면서 내용물들을 잘 혼합시키고 있었다.

연구실의 제자들은 만선의 가르침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대문에서 들어오다 보면 좌측에는 담을 헐고 상점이 들어 앉아 있다. 그날 상점을 담당하는 일꾼들은 물건을 진열하고, 의자를 배치하고 문을 열고 내부를 정리하느라 분주하였다.

“향장품 좀 주이소.”

"잠시 기다리시우. 아직 일 시작할 시간이 안됐으니께.”

벌써 상점은 손님과의 실갱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소지마립간 12년인 490년에 처음으로 시장이 설치되었고, 시사라는 관영상점도 시장 안에 최초로 설치되었다. 지증마립간 10년인 509년에 동시가 설치되었으며, 날로 늘어 가는 교역량과 백성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 순차적으로 서시와 남시가 추가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한기시는 동시의 별칭으로 한기부로 확대된 왕도의 동쪽에 들어섰다. 그러다 관영시장 외에도 경주 동쪽 벌판에 민영시장이 자생적으로 들어서게 되었고, 짧은 시간에 그 규모가 폭발적으로 커지자 나라에서도 시장 구역을 별도로 지정하고 보호하기 시작하였다. 왕도는 왕권이 안정되면서 상업적으로 크게 번영하면서 시장의 기능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인 상업의 발전에 덩달아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서라벌 사회에서 화장품과 향품과 미용도구 관련 산업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시장에는 비단이나 무명을 파는 포목점, 각종 그릇을 파는 옹기전, 곡식이 거래되는 시게전, 생선을 파는 생물전, 수저를 파는 시저전, 떡 집, 음식점 등 엄청난 규모의 장이 열리고 있었고, 신라뿐 아니라 백제나 고구려, 왜국 그리고 멀리 서역나라에서 온 진귀한 물건도 판매대에 오르고 있었다.

아랍-페르시아 상인들의 신라 진출이 본격화되진 않았지만 서서히 상인들이 신라에 물품들을 건네오기 시작하였다. 공작새 꼬리털, 비취 모, 공예품, 보석류, 여성소모품들가 장신구, 바그다드 일대의 페르시아 카펫, 모직 말안장, 카펫장식품, 아라비아 남부의 유향아 몰약, 옥 빗과 에메랄드 제품, 유리 제품, 금속 수공예품 등이 신라로 흘러 들어왔고 이속에 들어온 진귀한 수입품과 사치품들은 신라 귀족 사회의 고급문화를 일구었다. 시장은 온갖 물건들이 춤추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만선은 신라가 워낙 남녀의 외모를 강조하였으므로 화장품과 향품 그리고 화장품 도구 및 용기를 묶어 하나의 점포를 형성할만한 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그는 화장품의 제조와 연구시설을 기반으로 하여 뛰어난 제품을 생산하여 만선 상단을 꾸리고 있었고, 서라벌의 몇 개 시장에 10개의 상점을 거느리고 있었고 점점 그 점포수를 확장하고 있었다. 미본가는 화장품을 개발하여 그 상점에 지속적으로 제품을 공급하였다.

신라의 문물이 발전하면서 지방에도 또한 상점이 들어서야할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화장품 산업의 전망이 밝았다. 다른 상점을 내기 전에 만선은 미본가에서 신제품을 전시하여 소비자의 반응을 점검하였다. 제자들은 여기서 제조와 연구와 판매까지를 전체적으로 배우게 되는 셈이다.

청색 두건을 머리에 두른 제자들은 연구실로 부지런히 모여들었다. 그들은 일정기간 미본가에서 숙식을 하면서 화장품의 전반적인 것을 배웠다. 배움의 끝은 만선이 결정하였다.

“이제 되었다.”

만선이 그리 판단하면 제자는 만선상단이 운영하는 상점 중의 한 곳에 지정되어 일정기간 실습을 하였다.

“이제 되었다.”

만선이 일선 상점주의 보고를 받거나 자신이 직접 근무하는 모습을 챙기다가 거기서도 그리 판단하면 이제 제자는 서라벌의 다른 새로운 곳에 세워지는 만선상단의 상점주로 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본가에서의 수업은 상인으로서의 첫 관문이었다.

그들은 여기서 약초 선별, 약초 채집, 약초 전처리, 물질 추출, 물질 분리, 물질 혼합, 그리고 화장품 제조, 동물 및 임상 실험, 화장품 역사 연구, 화장품 사용법, 화장품 도구 제조 기술 등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화장품의 영업과 상점 운영법 까지 배우게 된다.

제자들은 실습과정에 화장품을 서로 체험하게 하면서 효과를 확인하는 과정도 있었다. 연구실 안에는 제자들이 의자에 앉아서 스승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위 아래 흰 복장을 하고 머리에는 곤색 두건을 쓴 만선이 들어왔다. 제자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깊이 머리를 숙여 인사하였다. 만선은 연구실 앞의 맨 중앙에 서서 제자들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린 후에 강의를 시작하였다.

“영육일치사상이란 무엇이냐?”

느닷없는 질문에 제자들은 스승을 맥없이 쳐다보거나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숙이곤 하였다. 한참 조용하더니 맨 뒤에서 손이 올라갔다.

“말해보거라.”

“예. 전해 내려오는 설화에 의하면 신라 이전의 여섯 소국가의 왕의 추대로 강력한 새 국가의 임금이 된 박혁거세는 아름다운 남자였다고 합니다. 그의 왕비 역시 빼어난 미인이었다고 합니다. 박혁거세는 뭇사람들이 놀랄 만큼 아름다운 남자였는데, 그를 동천에서 목욕을 시키자 몸에서 광채가 났다고 합니다.

또 박혁거세의 왕후인 알영은 몸매와 얼굴이 남달리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다만 입술이 닭의 주둥이와 같은 결점이 있으므로 북천에 데려가 목욕시켰더니 그것이 빠져 완벽한 미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설화에서 보다시피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사람은 나라의 왕으로 선택될 정도로 아름다운 정신을 갖게 된다는 사상을 영육일치사상이라고 합니다.“

칠보선이었다. 글자 한자 한자 그리고 토씨 하나도 틀림이 없었다.

“칠보선이 잘 말하였다. 우리 신라는 영육일치사상을 철저히 믿고 있는 나라이므로 사람들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신라에서는 영육의 미를 삼국의 어떠한 나라보다 강조하고 있으므로 화장품을 개발하는 이 일은 환자를 치료하는 의원들의 역할 못지 않게 매우 중요하다. 남자들이 화랑이 되려면 얼굴이 잘 다듬어지지 않으면, 다시 말하면 아름답지 않으면 그 선발에서 실격될 것이다. 그래서 미의 도구인 화장품이 얼마나 중요한 지 다들 알 것이다. 자 그러면 화장이란 무엇이냐?”

만선의 질문에 우측에 앉은 여자 제자가 손을 들었다. 혜화였다. 만선상가 1호점 주인 주각의 딸이다.

“이 상점의 대를 잇게 하고 싶습니다.”

주각의 간곡한 부탁으로 들어온 아이다. 얼굴이 둥글고 순박하였다. 주근깨가 양볼 중간에 박혀있었는데, 주각 만큼 성실하고 용모가 바른 아이였다.

“그래 혜화 말해 보거라.”

“예. 화장이란 얼굴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얼굴에 바르는 제품을 말합니다.”

단순한 답변이었다.

“잘 대답했다. 누가 또 말해보겠느냐?”

주위가 조용했다. 잠시 후 칠보선이 다시 손을 들었다.

“화장이란 신체관리와 장식에 관한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그 범위는 목욕, 세안, 이 닦기 등의 일상적인 위생행위와 수염 깍기, 머리 손질과 같은 이, 미용 행위, 그리고 피부관리, 분장, 몸 색칠, 문신 등으로 규정합니다.”

깔끔한 답변이었다. 깊이가 있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렇다. 역시 칠보선이 잘 말해주었다. 우리는 기초 화장과 색조 화장을 화장의 전부라고 할 수 있으나 이것은 화장의 개념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전체적인 관리는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게 되고 자신을 수련하는데도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전체적인 화장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은 앞으로 차차할 것이다. 오늘은 화장품의 원료가 되는 약초에 대해 말하겠다. 먼저 20가지의 약초가 너희들 앞에 놓여있다. 그것이 어떤 약초인지를 맛보고 느껴보면서 토론하는 것이 오늘의 과제이다. 자. 시작하거라.“

6명의 제자들이 한련초, 복분자, 화황, 청대, 과루근, 백동과인, 고본, 백복령, 백부자, 창포, 황기, 감초, 익모초, 오디, 옻, 너도밤나무, 아주까리, 구릿대, 행인 등의 약초를 만져보고, 맛을 보면서 서로 토론하거나, 액즙을 만들어 맛을 보면서 그것이 무슨 약초이고 어디에 좋은지를 토론하기 시작하였다. 만선을 토론을 시작한 제자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이것은 백부자입니다. 진흥왕 시절의 원화였던 남모 즉, 법흥왕과 백제 동성왕의 따님이신 보과공주 사이에서 태어나신 분이 사용하여 유명해진 약초입니다. 이 약초는 가루비누처럼 만들어 사용하면 얼굴에 생긴 기미, 주근깨 등의 잡티를 없앤다는 것입니다. 가루비누를 만드는 방법은...”

역시 토론을 칠보선이 주도하고 있었다. 만선은 백부자와 몇몇 약초에 대해서 이미 가르친 바 있었고, 칠보선은 정확하게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진흥왕이 7세에 법흥왕에 이어 왕이 되자 모후인 지소태후가 섭정을 하였는데 그녀는 인재양성을 기치로 하여 선화와 원화 제도를 만들었다. 그 전에 서라벌은 귀족 출신의 남자들이 개인적으로 여러 명의 사병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었다. 지소태후는 이러한 사병을 혁파하고 중앙집권적인 인재양성을 꾀하였다. 그래서 만든 제도가 선화와 원화였다. 선화는 왕족 출신의 남자가 그 휘하에 귀족출신의 낭도들을 거느리게 하는 조직이었고, 원화는 왕족 출신의 여자가 그 휘하에 많기로는 300여명 까지 많은 낭도들을 거느리는 제도였다. 그런데 원화자리를 놓고 전 원화였던 준정과 새로 원화가 된 남모가 갈등을 일으켜 준정이 남모를 연못으로 밀어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여 원화제도가 없어지게 되었다. 죽은 남모는 얼굴의 주근깨를 제외하고는 서라벌에서 소문난 미인이었다. 그녀가 백부자와 익모초, 황기를 사용하여 주근깨를 없애고 고운 피부를 만들었다고 전해져 왔다.

익모초는 뿌리째 캐어 햇볕에 말린 후 가루내어 물에 반죽하여 달걀크기로 만든 후 이를 말려 태운 후 가루로 만들어 세수하면 여드름을 없애고 피부를 매우 부드럽고 곱게 만든다는 이유였고, 황기는 황기 추출물을 목욕물에 첨가하면 피부를 청결하게 하고 영양을 주며 피부의 병 저항력을 높여서 건강한 피부를 만든다는 이유였다. 남모가 죽은 지 꽤 지났지만 남모, 원화, 사망, 약초, 피부미인 등의 단어들이 서라벌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회자되고 있었다.

‘칠보선.’

만선은 어제 저녁에 몰래 연구실을 들어왔다가 나간 칠보선이 제자들 사이에 섞여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늘도 그의 질문에 가장 정확하게 대답한 이는 칠보선 혼자였다. 영특한 제자였다. 그는 미본가의 미래이기도 했지만 한가지 문제는 그의 성정이 너무 조급하다는 데 있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차분히 미래를 설계하는 침착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것이 문제로고.”

만선은 칠보선을 생각하면 늘 그 부분이 걱정이었다.

‘연구실에 숨어들어 무엇을 했을까?’

만선은 새벽에 일어나서 그리고 아침 내내 그 생각을 하였다. 달빛을 맞으며 연구실로 들어갈 때 문지방에 찰진 흙이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조금 전 사람이 든 흔적이었다. 그가 화장품을 제조하고 있는 반응조 통에 자신이 갖고 온 비밀스런 물질을 첨가하기 바로 직전에 무엇인가 흐릿하게 잡히는 그림자를 맞은 편 책상아래에서 느꼈다. 그가 돌아설 때 그림자가 조금씩 위로 솟아오름도 육감적으로 느껴졌다. 만선은 일을 마치고 곧바로 연구실을 나왔고, 기둥 뒤에서 그가 나오길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칠보선이 옆구리에 종이 뭉치를 싸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무엇인가 적인 흔적인 먹물 글씨 자욱이 달빛에 선명했다.

“무엇인가를 적었구나.”

만선은 그가 적을 수 있는 것은 화장품 제조 제법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 말고 무엇을 도둑 고양이 처럼 몰래 필사하겠는가?

“그런대 지금? 왜?”

그 대목에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계속 숙련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것이 될텐데 왜 몰래 들어와서 도둑처럼 그것을 배끼어 가야 하는 가에 대해 만선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신분상승!”

만선은 미본가의 제자들이 단순한 박물장수로 그치길 바라지 않았다. 신라에서는 골품제도가 워낙 엄격하였다. 왕족은 진골이란 집단이었고, 귀족들의 최상층은 6두품이었다. 6두품의 한자를 뜯어 보면 두자는 맨 앞 또는 우두머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품은 품계처럼 위계질서 속에 등급을 정할 때 쓰는 용어였다. 그래서 6두품이란 귀족집단의 계층 중 최고 우두머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신라에서는 아무리 지체 높은 귀족이 6두품의 최고의 등급에 있다 할지라도 결코 왕족 계급인 진골이 될 수는 없었다.

아무튼 귀족의 최고 등급 6두품 아래로는 5두품, 4두품이 있었고 그 다음 아래가 백성이었다. 골품제를 배경으로 법흥왕 7년인 520년 율령을 반포하여 관등제가 정비되었다. 관등급은 17등급이었는데 진골은 1등급에서 5등급인 이벌찬, 이찬, 잡찬, 파진찬, 대아찬의 벼슬을 하였고, 이들은 6등급에서 17등급의 직위도 임명될 수도 있었다. 6두품은 6등급부터 9등급까지 즉 아찬, 임길찬, 사찬, 급찬에 임명되었고 10위에서 17위의 등급에 임명될 수도 있었다. 5두품은 10위와 11위 즉 대나마와 나마에 임명되었고 12위에서 17위의 등급에 임명될 수도 있었다. 4두품은 최하위 관직으로 12위에서 17등급 즉, 대사, 사지, 길사, 대오, 소오, 조위에 임명되었다. 골품별로는 기와집도 제한이 있었다. 진골은 24척, 6두품은 21척, 5두품은 18척, 4두품은 15척의 크기 내에서 집을 지어야 했다.

골품제 하에서는 신분이 하강될 수는 있어도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상승할 수는 없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진골-6두품-5두품-4두품이 될 수 있는 자는 서라벌에 사는 왕경인, 즉 6부 출신자로 한정하였다. 신라는 지역 차별과 계급 차별이 인도의 카스트 제도처럼 심각한 사회였다. 결국 17등급의 관직들, 즉 경위는 서라벌의 왕경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층이었고, 지방의 관직들은 그 이하로 하대를 받았다. 그들도 등위를 받았지만 7등위부터 17등위 까지에만 해당되었고 경위와 같은 등위여도 벼슬 이름부터 달랐다. 즉, 7등위부터 그들은 악간, 술간, 고간, 귀간, 선간 혹은 찬간, 상간, 간, 일벌, 일척, 피일, 아척이라 불리워졌다.

이런 지경이었으므로 지방인이나 평민들이 골품에 들어가고, 거기서 또 신분이 상승하길 기대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이 있었으므로 만선은 자신과 제자들이 계급적 신분상승은 아닐지라도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면서 명예로운 신분상승을 얻을 수 있길 바랬던 것이다.

기회는 있었다. 신라는 남자까지도 화장을 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길 원했으므로 그것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장인은 곧 계급을 갖고 있는 것과 같은 귀한 대우를 받았다. 미가 권력이었고, 그것을 만들어 주는 자도 간접적인 권력을 갖는 꼴이었다.

‘아름다운 남자!’

그런 남자들을 만나길 여자들은 꿈꾸었다. 신라의 특별한 인재 양성기관 소속인 화랑들은 분단장을 하였고, 장신구로 자신들의 몸을 치장하였다. 갖은 노력으로 그들에게 ‘미’라는 무기를 더해 준다면, 그들은 그것을 배경으로 또 다른 정치적인 여러 가지 야망을 꿈꿀 수 있었다. 재물과 명예 그리고 폭넓은 인적 그물망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여자 왕족이 지도자로 활동하던 원화라는 집단이 없어지고 남아 있던 선화와 원화에서 넘어 온 낭도들을 합하여 세워진 것이 화랑제도였다.

진흥왕 4년인 544년에 시작된 제도이다. 화랑은 원래는 풍월이었다. 초대 풍월주에 선택된 사람이 위화랑이었다. 그는 법흥왕의 후궁이었던 웅진 궁주의 아비되는 자였다. 그의 이름을 따라 풍월이 화랑으로 변하게 되었다. 귀족들은 자신의 자제들을 화랑에 포함시켜 궁으로 보내기위해 혈안이 되었다. 그것은 곧 출세의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주변의 온갖 행상들을 불러 자제들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분으로 만든 화장품으로 얼굴을 화사하고 밝게 하였고, 아름다운 색깔의 옷에 귀거리를 하게 하였다. 구슬로 장식한 모자를 쓰게 하였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굴이었으므로 화장품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왕족출신으로 수백의 귀족자제로 구성된 낭도를 지휘할 수 있는 군사조직의 여자 우두머리인 원화로 군림하다가 전 원화 준정에 의해 살해된 남모의 남편 역시 그렇게 만들어진 아름다운 남자인 미진부였고, 그는 나중에 위화랑에 이어 2대 풍월주에 이르게 된다. 그는 아내인 남모가 사망하자 묘도와 혼인하여 미실이라는 딸을 낳았는데 신라의 3대에 걸친 왕들의 후궁이 되고 거의 40년을 그녀의 치맛자락으로 신라를 통치하는 힘을 갖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의 소유자가 탄생하였다. 그녀의 모든 권력 역시 미진부라는 미남의 아비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녀는 후궁이었지만 정비들을 오히려 다스리는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다. 서라벌에서는 미가 곧 권력이고 모든 것을 소유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아름다움을 관리하기 시작하면 그 상품의 공급자와는 세기의 미인이나 미남들과 평생 인적관계를 끈끈하게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평민인 화장품 제조기술자들이 상류층과 깊은 관계 고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아름다움을 만드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만선은 이미 그런 경지에 들어서고 있었다. 마치 의원이 양반의 병을 고쳐줄 때 그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듯이 5두품이던, 6두품이던, 진골의 양반 벼슬아치들이 그의 제품과 손에 의해 아름다운 얼굴로 변신하는 것이다. 양반들은 만선을 예의있게 대하였다. 미본가의 제자로서 꿈꾸는 신분상승은 바로 그런 의미였다. 신라에서 계급적 신분상승은 벽과 같이 단단하게 막혀있었다.

진평왕이 열세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사도태후가 왕권을 장악하였다. 사도태후는 자기의 오빠 노리부를 상대등, 즉 왕을 제외한 최고의 권력자에 임명하여 국정을 맡겼다. 상대등은 귀족층 대표 의사결정기구이고 병권을 운영하던 화백회의의 대표의장이었다. 그리고 이찬 후직을 병부령에 임명하여 병권을 전문화하였다. 국정을 맡은 노리부는 행정조직을 개편하여 권력분립을 시도하였다. 581년엔 위화부를 설치하여 인사에 관련된 행정을 맡겼고, 그 후로 선서부(선바, 항해 전문), 조부령(납세와부역 전문), 승부령(수레에 관한 일), 예부령(교육, 의례, 외교) 등 총 6부의 전문화를 완성하였다. 이런 과정에 자신보다 못한 자가 골품이 높다는 이유로 진급하여 최고의 벼슬아치 반열로 이동하는 것을 보면서 불만을 품은 자가 생겨났다.

그가 다른 나라로 귀순하기도 하였다. 그는 신라의 적군으로 귀순하여 신라에 대한 핵심적인 군사정보를 제공하여 나중에 그 나라가 신라를 공격하면 가장 선두에 서서 신라와 싸워 많은 타격을 입히기도 하였다. 깨지지 않는 골품제도,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최고 권력층으로의 신분상승 등에 대한 불만이 망국의 한으로 서린 것이다. 진흥왕과 진평왕을 거치면서 왕권과 군사력이 강해지면서 인접 고구려와 백제와 갈등 관계도 강해지면서 서로간의 위협이 극대화되고, 이와 같이 신라를 등진 벼슬아치들이 신라의 위협요인으로 등장하자 신라는 중국의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국교를 맺기에 이르렀다.

수나라는 ‘상개부 낙랑군공 신라왕’이라는 시호를 내렸는데 신라를 신하의 나라로 전락시키는 모멸적인 관계였다. 하지만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위협적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하므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떼국놈들을 몰고 와서 결국 같은 종족들을 멸망시켜야 하는, 가야의 속국이기 까지 했던 아주 작은 시골 나라 신라의 기구한 운명이 구슬프게 얽히고 설키기 시작하였다. 수나라와 신라 연합 그리고 고구려, 백제 등의 전쟁관계가 서서히 구도를 잡아가기 시작하였다.

아무튼 신라에서는 바위와 같은 단단한 골품제도가 고착되어 있었다.

진평왕 시대인 지금 만선은 다시 한번 골품제에 접근하기 보다는 명예적 신분상승(=미를 통한 신분상승)에 미본가가 중요한 역할을 하길 바라고 있었다. 만선은 다시금 칠보선을 바라보았다. 언뜻 고개를 들어 자신을 슬쩍 바라보는 듯 하다가 다시 자신의 일을 하는 그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만선 자신만의 착각이었을까?

만선은 제자들이 자신이 준 과제에 열중하고 있을 때 뒤로 돌아서서 맨 뒤에 있는 연구실 사용일지를 들춰보았다. 그곳에 만복의 어제 저녁 출입기록은 적혀있지 않았다. 연구실을 일과시간 이후에 사용할 때는 반드시 연구실 출입목적과 사용시간을 기록하게 되어 있었다.

‘기록도 작성하지 않고 연구실을 출입했다. 왜 그랬을까?’

만선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만선은 그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런 눈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칠보선은 여전히 제자들 속에 섞여서 약초를 만지고 토론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럴 때의 그는 만선의 충실한 제자였고, 의심할만한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만선은 무엇인가 머리가 개운치 않았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찜찜했다. 칠보선 그로 인하여 왠지 어두운 먹구름이 미본가를 덮칠 것만 같았다. 불안하였고 쉽사리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제자들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였다.

(2-1) 신라미인의 비밀

해석은 대전에서 경주로 내려가는 중간 지점인 금강휴게소에서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아서 3시간 만에 경주에 도착하였다. 기와지붕으로 덮힌 경주 인터체인지를 들어서자 고향에 온 안락함으로 마음이 푸근해졌다. 통행료를 지불하고는 자동차는 이내 경주로 들어섰다. 차창을 조금 열자 4월의 다사로운 기운이 온 몸으로 밀려 들어왔다. 기온은 섭씨 15도 정도로 느껴졌다. 20여분 정도 경주로 들어가자 유수한 신라유적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에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관광객도 보였다. 7번 도로를 타고 10여분 더 들어 가자 좌측에는 안압지가 보였고, 그 뒤로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 너머엔 황룡사지가 멀리서 흐릿하게 보였다. 교차된 도로가 나오자 우측으로 한참을 달리자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들이 보였고, 그 너머로 첨성대가 솟아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대릉원과 천마총이 있었다. 여기 저기 나타나는 산채만한 무덤들이 이곳이 바로 신라 천년의 제국의 왕경 서라벌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7번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는 명활산 방면과 진평왕릉을 나타내는 표시가 나타났다. 남천 근처였다. 해석은 4번 도로로 30여분 북천 방향으로 더 달려서 6시가 다되어서 아버지 집에 도착하였다.

아버지는 해석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오래된 기와집에 살고 있었다. 경주 시내에서 북으로 약간 떨어진 외곽지역이었다. 비교적 북천과 가까웠는데, 집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북천, 남으로는 현대병원, 동으로는 경주 세무서가 눈에 들어오는 지점이었다. 기와집은 여전히 허름하게 서있고, 그 앞으로는 텃밭과 빈터들이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해열제로 쓰이는 수국, 타박상과 소화불량에 처방하는 해당화, 소염작용에 좋다는 패랭이 꽃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고, 잎 끝이 가시처럼 뾰죽한 호랑나무 가시도 부근에 듬성 듬성 자라고 있었다. 족히 2000평은 넘어 보이는 좁지 않은 땅이었다. 우측 아래 멀리에 보문단지를 끼고 동천동 앞으로 흘러 시내를 가로지르는 북천이 보였다. 잔디로 조성된 북천변 단지를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도 보이고 다리 아래를 혼자 걸어가는 여자도 흐릿하게 보였다.

아버지는 이제는 이집을 허물고 제대로 된 멋진 목조주택과 잔디 마당을 새로 만들고 싶어 했다. 구상을 해오다가 며칠 전 전화로 아들과 집을 확장하는 것에 대해 의논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온 터라 해석은 오늘 일정을 경주로 정한 것이다. 아버지는 집앞 텃밭에서 해석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 집 앞이 왜 이리..”

해석이 집에 도착했을 때 집 앞이며 그 부근은 온통 파헤쳐지고 있었다.

“어서 오너라. 이 부근이 지금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신라시대의 유적들이 나왔다는 구나. 그래서 우리 땅도 파헤쳐지고 난리가 아니지. 우리 집 주변이 이 지경이라 널 보자고 한 것이다.”

해석은 아버지가 서있는 텃밭을 주변으로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포크레인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곳도 보였다. 여기 저기 줄이 쳐지고,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무엇인가 나온 것은 확실해 보였다.

“아이고 아드님이신가요?”

길가 우측에서 한 사람이 다가왔다. 옆구리에 수첩을 끼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공무원 처럼 보였다. 아버지가 그를 소개하였다.

“인사드려라. 문화재관리청 직원이시다.”

“김해석입니다.”

해석은 공손하게 고개 숙여 인사하였다.

“아 예. 문화재관리청의 정찬석입니다.”

줄이 사각형으로 그어진 곤색 잠바를 입고 있었고 양 눈이 조금 찢어져 있었고, 큰 입을 벌려진 채로 활짝 웃고 있었다. 머리가 약간 희끗거리는 중년의 남자였다. 정창석은 해석에게 다가와서 묻지도 않은 말을 시작하였다.

“신라시대의 유물이 이 근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유물들은 기원전 4세기와 5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주거지가 3개동이 발견되어 종합적인 조사가 필요합니다. 이중 1개는 평면 원형이고, 1개는 방형이고, 1개는 장방형이 포함되어 있는 주거지이고, 그 외의 지역은 대형 공공시설의 단지형으로 보입니다. 주거지는 장방형이 원형으로 변형되가는 자료로 그 중요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갈색 경질토기와 보다 발달된 자기형 그릇들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거지 옆에는 가마유적 1곳이 발견되었습니다. 신라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 가마 유적도 있습니다. 이 가마들의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이며, 규모는 길이 3~5미터, 폭 1~2.8미터, 최대 깊이 0.5~0.7미터입니다. 구조는 아궁이를 점토와 장대석을 이용해 축조하고, 연소실은 바닥을 약간 경사지게 만든 이른바 등요라 불리는 오름식 가마입니다. 그리고 이미 도굴의 흔적도 보입니다. 어느 정도 마무리될 때 까지는 시설을 중단하고 좀 기다리셔야합니다.”

집 앞에 그동안 빈터로 남아있던 해석의 조상이 물려준 땅은 2,000평 정도였으나, 그 땅을 주변으로 에워싸고는 북천과 남천 사이로 연결된 나대지는 거의 수천평에 달할 정도로 넓었다. 그곳은 다른 사람의 땅이었다.

“넓은 부지죠? 궁금해요.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했는지. 이제 학자들이 발굴작업을 시작했으니 곧 알려지겠지요?”

정찬석은 해석의 눈길이 넓은 부지로 옮아가는 것을 보면서 이번에는 경주에 대한 찬가를 늘어 놓았다. 여전히 묻지도 않았는데 마치 누군가를 수행하면서 당연히 자신의 임무는 그래야 하는 것 처럼 보였다.

“고대 경주 정말 멋진 고대도시였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절들은 별처럼 흩어져 있고, 탑들은 기러기가 줄지어 나는 듯 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자기네 나라를 부처의 나라 즉, 불국토라고 자부해 마지않았던 신라 사람들의 영원한 요람 서라벌의 모습입니다. 부처의 힘과 자신들의 자신감으로 서라벌은 영원하리라 생각하였죠. 열 집 건너 절이 하나씩 있고 높은 탑들이 이정표 구실을 했습니다. 바둑판 모양으로 질서정연하게 구획된 도시에는 ‘기와집이 연이어 있고 집집마다 숯으로 밥을 지어 먹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자그만치 17만 8936호가 살고 있었습니다. 한집 당 5명만 계산해도 100만명 이상이 거주한 엄청난 도시였습니다. 게다가 기와집 사이로 귀족들의 화려한 금입택이 39채 있었고, 초가집은 한 채도 없었다고 합니다. 지상의 극락정토. 역사상 모든 부와 화려함이 이처럼 한 도시에 집중된 예가 없었습니다. 서라벌은 엄청난 고대도시였습니다.

경주의 한 가지 흠은 경주 시내가 남고 북저라는 것입니다. 경주가 고도의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는 평지 한가운데 있거든요. 게다가 중심지의 바로 남쪽, 서쪽, 북쪽에는 모두 하천이 흐르고 있고, 이 지형이 산을 끼고 잇거나, 산 바로 밑에 들어서 있는 유형도 아니쟎아요? 그로 인해 실제로 대규모 홍수가 경주시내에 많이 생겼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와 있지요. 아달라니사금 7년인 160년엔 알천 즉 북천이 물이 넘쳐서 금성 북문이 무너졌고, 유례니사금 7년인 290년엔 여름에 큰 물이 나서 월성이 무너졌고, 흘해니사금 41년인 350년에는 평지의 물이 3~4척이나 흘러 산이 13개소나 무너지고, 소지마립간 18년인 496년에는 알천 즉 북천의 물이 불어 무려 200가구가 표류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럼에도 경주가 신라의 수도로 건재했다는 것이 대단해요. 다 이유가 있었지요. 그들은 물이 넘칠만한 곳에 숲을 조성했어요. 동쪽과 북천 쪽에는 오리에 걸쳐서 오리수, 북천의 한쪽 구석엔 고성수, 남천 북쪽에는 남정수를 그리고 남천가에는 천경림을 조성하였어요. 모두 숲 이름이지요. 경주가 그랬다니까요? 대단한 사람들 아닌가요? 하하하.“

그는 자신이 서있는 지점을 중심으로 사방을 요리 조리 보면서 상당히 전문적인 식견으로 끊임없이 조잘대었다. 해석은 이제 머지않아 허물어질 자신의 어린시절을 보냈던 오래된 기와집을 바라보면서 정찬성이 말하는 경주의 영화로움보다는 씁쓸함을 갖고 경주를 생각하고 있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 김부가 왕건에게 항복하면서 식읍으로 하사받은 곳이 바로 동경유수관 경주였다. 그는 경주 김씨인 해석의 백촌파의 시조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고려왕건의 딸과 혼인하고 자손을 낳았는데 백촌공파의 뿌리는 바로 그 후손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신라 천년왕국을 고려에 그대로 바친 왕의 후손인 해석은 자랑스럽게 경주를 치켜세우는 정찬성의 설명을 덤덤하게 들으면서도 마음 속이 그리 개운하진 않았다.

그의 부친은 빈 뜰로 되어 있는 자신의 땅이 파헤쳐지는 모습을 묵묵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우리 땅이 한가운데 있네요?”

해석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래 주변은 모두 다른 사람의 땅이라는 구나.”

“아주 넓은 땅이네요?”

“그래. 엄청나지. 저 땅 주인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텃새를 부리는지 가관이 아니다. 가운데 우리 땅이 알박이가 되어 있다나? 그래서 자신들의 땅이 가치가 떨어진다고 집을 팔라고 얼마나 욱박지르던지.”

해석은 아버지의 땅이 큰 도로와 연결되어 있고 그 땅을 지나야만 그 위의 땅들로 진입할 수 있어 땅주인이라는 사람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 방법이 문제였다. 아버지의 땅을 거저 먹으려는 심보를 갖고 있었다. 해석은 아버지와 멀리서 이곳 땅을 탐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남자들 몇몇을 바라보았다.

“게다가 저 놈들이 얼마나 조상을 팔아대던지.”

“조상을 팔다니요?”

아버지가 해석에게 전한 조상을 파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이보시오. 우리 집안은 말이요. 대대로 경주에서 아주 많은 토지를 가진 집이요. 조상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올린 공으로 왕에게서 하사받은 땅들이지. 우리 조상들은 대대로 조정에서 높은 관직을 제수받은 어른들이다 아이가. 그 대가로 이런 넓은 땅을 받아 평민들에게 농사를 짓게 하여 많은 세금을 거두어 들였지. 그뿐이 아니야. 조금 멀지만 남해 연안의 섬에 목장도 갖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소나 말, 돼지 등을 길러 필요할 때 마다 식용으로 가지고 있단 말이요. 또 이렇게 넓은 토지를 경작하려면 노비도 많았지. 노비가 50명이 넘었고, 머슴은 100명이 넘었어. 개다가 우리 조상들은 한번 식사를 하면 50가지 이상의 반찬을 매끼마다 먹을 정도로 지체가 높았단 말이야. 그리고 당신 땅과 집 말이야. 이것도 원래 우리 조상의 것이었을 지도 몰라. 틀림없이 그럴거야. 그렇지 않고서 이렇게 우리 땅 가운데 턱 박혀있을 수는 없지. 모르지 당신 조상이 우리 조상의 하인이나 종이었는지도. 그러니 대충 가격을 쳐줄테니 본 주인인 우리에게 당신 땅을 넘기란 말이요.”

해석은 터무니 없는 논리로 협박을 해대는 그 사람들이 비정상적으로 보였고 그대로 두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깡패같은 사람들한테 아버지가 오랫동안 시달릴 것만 같았다.

“그래 아버지 어찌 하실 건가요?”

“어림도 없지. 조상들의 기운이 숨 쉬는 이곳은 절대로 안팔거다.”

해석은 아버지의 결심을 들으면서 먼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버지가 무엇인가를 들고 해석에게 다가왔다.

“이것은 우리 땅에서 나온 항아리라는 구나.”

“뚜껑이 있네요?”

“조심해라.”

해석은 조심스럽게 항아리를 받아서는 발아래에 내려놓고 뚜껑을 열어보았다.

“이게 뭐지?”

그 속에는 부패를 방지하려는 듯 무엇인가로 포장된 책이 한 권 들어 있었다. 아주 오래되 보이는 책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문화재청직원은 다른 곳으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해석은 포장을 벗기고 책을 꺼내 표지를 보았다. 부드럽고 얇은 연한 노란색을 책이었다.

‘신라미인의 비밀.’

“신라미인의 비밀?”

해석이 책의 제목을 읽은 것과 그 책을 좌측에 둘러멘 가방에 쑤셔넣는 것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연구소에 근무하신다면서요? 언뜻 봐도 아주 오래된 항아리로 보이지요?”

책을 넣자마자 문화재청 직원이 다시 다가왔다. 언제 왔는지 연기처럼 소리없이 다가와 와있었다.

“예. 예. 그렇네요.”

해석은 순간 당황하면서 그렇게 얼버무렸다.

“역사학자들은 이 주변이 신라시대의 주거지가 넓게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지요. 그런데 조금 전에 말한대로 경주 시내가 남고 북저라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실제로 대규모 홍수가 경주시내에 많이 생겼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와 있어요. 이 지점이 경주의 북저 지점입니다. 저 아래에 북천이 있지요. 북천이 있다는 것은 홍수 피해를 많이 입을 수 있다는 의미이지요. 언젠가 서라벌에서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군에게 이 근처 토지를 왕이 하사하였는데 그는 다른 위쪽의 땅을 요구한 것으로 보아도 이곳이 주거지로 아주 적당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물이 있어서 사람들이 생활하기에는 편리했으므로 아주 북천과 가까운 것도 아니고 약간 위로 올라온 지역이라 주거지가 있을 법도 한데요? 게다가 확실한 주거지의 흔적이 있어서 지금 학자들이 고증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유적지를 향한 정찬성의 설명은 끝이 없었다. 해석은 시계를 보았다. 아버지 댁에서 하룻밤 자고 갈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바로 떠나야할 분위기였다. 가방 속에 든 책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빨리 여기를 벗어나라고. 정찬성과 조금이라도 빨리 헤어지라고.

“저는 대전에서 급히 또 할 일이...”

해석이 조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서 헤어지려고 하는데, 그때 자신이 조금 전에 황급히 쑤셔 넣은 그 책이 툭 떨어졌다. 급히 서두르느라 책이 미처 가방 속으로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런, 책이 떨어졌네요.”

정찬성이 책을 주우려고 허리를 굽혔다.

“아니. 제가.”

해석은 허둥거리면서 급히 책에 손을 뻗혔지만 책을 먼저 잡은 사람은 정찬성이었다. 순간 해석의 등에서 식은땀이 한줄기 주루루 흘러내렸다.

“가만. 이 책은? ‘신라미인의 비밀’이라. 아니 이것은 신라시대의 책이쟎아요? 1500년 전의 책이라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것인데, 당신이 이것을 어떻게. 혹시 여기 유물중에서 몰래 빼낸 것인가요?”

정찬성은 책 제목을 읽자마자 고개를 들고 살모사처럼 눈을 흘기면서 꼭 그렇게 추궁할 것만 같았다. 만일 그렇다면 아버지 앞에서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순간 해석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메모호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한국의 천연약초’라 약초 공부를 하시는 분이군요?”

“아. 예.”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정찬석에게 잡힌 책은 한문으로 적힌 ‘한국의 천연약초’란 서적이었다. 누렇게 된 것이 신라고서와 흡사해 보이기도 하였다. 해석은 더듬거리며 대답을 하면서 그 책을 받았다. 천만 다행이었다.

“감사합니다.”

제발이 저려서일까 해석은 정찬석에게 물었다.

“만일 이런 곳에서 신라시대의 고서가 발견된다면 그 소유권은 어찌되나요? 개인인가요 아니면 문화재청인가요?”

“하하하.”

그는 이유 없이 너털웃음을 웃고는 말을 이었다.

“소유자의 지역에서 발견되면 그분의 소유이지요. 억지로 개인의 물건을 정부가 빼앗지는 않죠. 그런데 제3의 공간에서 발견되면 그 사람과 관련된 책이라도 꼭 개인의 소유라고 단정하진 않습니다. 한마디로 좀 애매하죠? 책은 그렇지만 도굴에 대해서는 엄청 규제가 엄합니다. 1927년 경주의 금관총 유물이 도난당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의 큰 사건이었는데 당국이 재치를 발휘해 유물을 되찾은 사례가 있습니다. 당시 당국은 ”천 년 넘은 금 세공품은 아무리 녹여도 금방 알아본다. 무덤에서 나온 물건을 집에 두면 식구 중에 누가 몸이 아프다“등의 사실을 소문으로 퍼뜨렸지요. 그러자 겁을 먹은 도굴꾼이 수개월 뒤 훔쳐간 유물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고 하는 사건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 당시 그 말을 지어낸 분이 바로 제 아버지입니다. 우린 대대로 유물 관리 담담 집안이지요. 하하하. 고서도 어느 정도로 귀한 물건인가가 중요하겠지요. 그런 게 있다면 사전에 문화재청 직원과 상의하면 개운하겠지요? 하하하.”

정찬성은 또 한바탕 웃어재끼면서 해석의 눈을 찬찬히 쳐다보았는데 마치 가방에 그런 보물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냐고 묻는 것처럼 보였다. 해석은 자신이 몰래 넣은 책이 자신의 조상의 땅에서 나왔으므로 정찬성이 말한 대로 정부 소속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자 한가닥 죄책감에서 벗어난 듯 하여 마음이 홀가분하였으나 여전히 정찬석의 말투며 허풍쟁이 같은 상황에 맞지 않는 공허한 웃음소리는 꺼림찍 했다. 게다가 도굴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에게 들려준 것도 왠지 협박으로 보였다. 최대한 빨리 그와 헤어지는 것이 최선이다 싶었다.

“그럼 대전으로 가야하므로. 저는 이만..”

해석은 책을 받아들자 마자 급히 일어서면서 말했다.

“아예. 미안합니더. 바쁘신 분을 붙들고.”

“아닙니다. 그리고 아버지 그럼 올라 갈께요. 도착하면 전화드릴께요.”

직원과 아버지에게 번갈아 인사를 하고는 해석은 급히 그곳을 걸어 나와 길가에 세워진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부웅!”

키를 꽂고 악세레타를 조금 밟자 부응소리를 내면서 자동차는 연기를 뒤로 뿜었다. 아버지는 왜 이리 급히 가느냐는 눈치였지만 이유가 있으려니 하면서 멀리서 손만 흔들어 보였다. 해석은 자신의 얼굴이 화끈거리고 있다고 느꼈다. 신라시대의 유적들이 나오고 있다는 그 지점을 떠나는 기분이 묘했다. 1500년 전의 신라왕조로 복귀한 느낌이랄까. 비록 조상의 유물이지만 고서를 정부직원 모르게 갖고 나온 것은 여전히 뒤통수가 무거웠다.

‘혹시 문제가 되면 되돌려주지. 뭐.’

해석은 그리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 기간이 아주 오래 걸릴 것이라는 것을 해석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책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건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역시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해석은 집에서 서북방향으로 자동차를 달렸다. 경주의 남천의 물결이 바람에 조용히 하늘거리고 있었다.

“근데 이것이 뭐죠?”

해석이 떠나고 나서도 정찬성은 여전히 해석의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그는 항아리 부근을 쳐다보다가 약간 솟아나온 바닥의 흙덩이 주변을 살살 긁어보았다. 그 속에서 나온 것들은 빗, 가리마꼬챙이, 머리가 흩어지지 않게 머리에 꽂는 동곳 등이었다. 동곳은 청동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것들 역시 6세기경의 신라시대의 제품으로 보였다.

“무슨 화장용품 같은데? 이것들이 왜 여기 묻혀있지?”

정찬성은 중얼거리면서 한참을 그것들을 내려다보고 만지작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일어나서 파헤쳐진 부지 여기저기를 바쁘게 오갔다. 특별한 무슨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무원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듯한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는 듯 싶었다.

경주를 빠져나온 해석은 부지런히 서울로 향하였다. 중간에 휴게소가 있었다. 여기서 간단히 요기를 하려니 생각하였는데 갑자기 배가 부글거려 화장실로 향했다. 해석은 긴장을 하면 그것이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배를 부글거리게 만들고 가스가 차곤 하였다. 거북한 뱃속을 비울 필요가 있었다. 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가판대에서 들려나오는 네박자라는 노래가 화장실 안까지 들려왔다. 속을 비우자 다행히 배앓이는 이내 사라졌다.

힘없이 터벅 터벅 자동차로 돌아오는데 무엇인가 이상했다. 옆으로 누군가가 달려가고 있었는데 왠지 자신의 차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급히 운전석 문을 여는데 분명 잠겨야할 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운전석 창에는 문을 딴 흔적이 역력했다. 운전석의 유리창 사이가 조금 훼손되어 있었다.

‘신라미인의 비밀!’

해석은 그 책 생각이 났다. 그리고 뛰어간 사내를 눈으로 찾았는데 이미 그는 보이지 않았다. 해석은 급히 차로 들어가서 가방을 찾았다. 다행히 조수석에 가방은 있었다. 해석은 여러 책 중에서 안에 자크를 열고 넣어둔 고서를 확인해보았다. 그대로 였다.

‘그러면?’

해석은 다시 천연물연구라고 한문으로 적어져 있고 고서처럼 비슷한 색을 내는 그 책을 찾았는데 그런데 아. 그 책은 없었다.

‘그렇다면?’

해석은 급히 자동차를 운전하여 휴게소를 벗어났다. 누군가가 그 책을 노린 것이다. 해석은 빠르게 고속도로로 진입하였다.

‘누가?’

해석은 그 책을 직접 본 사람은 아버지이고 근처에서 얼쩡거린 사람은 정찬성, 그리고 혹시라도 멀리서라도 보았다면 그 아버지 땅을 빼앗으려는 이상한 사람들. 그런데 그들은 너무 멀리 있었다 그러면 결론은 정찬성?

해석은 머리끝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 경주에서 자기 가방을 조사해보지 왜 이제와서 자신을 추적하여 그리고 차를 털면서 그랬나? 아니면 다른 누가 그랬나? 해석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책을 누군가가 노리고 있음이었다. 해석은 일부러 복잡한 차선으로 들어가고 몇 번을 추월하여 누군가 뒤를 따라온다면 자신을 추적하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하였지만 특별한 징후를 보이는 차량은 발견되지 않았다. 마지막 까지 조심하기 위해 해석은 일부러 대전의 모 아파트에 차를 주차하고 자신은 택시로 집으로 돌아오는 치밀함을 보였다.

해석이 집에 도착한 것은 경주를 떠난 지 무려 6시간 후였다. 새벽 2시였다. 아내는 곤히 잠들어있었고 천지는 고요했다. 서재에서 고서를 꺼내보았다.

‘신라미인의 비밀. 이 책은 진평왕 40년 서라벌의 화장품 장인 만선의 기록이다.’

온통 한문인데 첫 장에는 그런 내용이 적혀있음을 어렵사리 읽었다.

‘아!’

해석은 머리가 쭈삣해짐을 느꼈다. 1500년 전의 신라시대의 화장품 장인의 기록이 지금 자신에게 들어온 것이다. 해석은 책꽂이에 꽂힌 족보를 뒤적거렸다. 아버지부터 계속 위로 추적해 올라갔다.

‘만선, 만선 조부!’

만선을 울렁거리면서 1대, 2대, 5대, 10대를 계속 올라갔다.

“아. 여기.”

그랬다. 정확하게 27대에 만선의 이름이 있었다. 진평 10년생이라고 기록되어있었다.

‘진평 10년이면 그가 기록한 것은 진평왕 나이 40년. 그러면..’

아. 만선조부가 30세에 이 기록을 작성하여 항아리에 묻은 것이다. 그런데 해석은 자신도 지금 30세라는 것은 인지했다. 정말 우연한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만선은 신라시대의 장인이었고 자신은 1,500년 후 지금 연구원이고. 그것도 동일한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이고. 해석은 만선이 자신과 같은 연구자였음을 확인하고는 말로 표현못할 동질감과 가족애를 느꼈고 이것은 자신을 위해 남긴 조부의 유산임을 확신했다.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조상의 유산. 해석은 깊은 감격을 느꼈다.

‘이건. 굉장한 책이다!’

연구원인 그에게 다가오는 어떤 영감과 같은 긴장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언제까지 우리가 외국의 논문을 참고로 하여 그들의 뒤를 따르는 연구만 해야 하나요? 좀 우리의 가장 강한 경쟁력 즉, 우리 것으로 세계로 나갈 수는 없을까요?”

언젠가 학회에서 누군가가 주장하던 그 말이 생각났다.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세계로 나가자. 해석은 지금 자신의 손 안에 그 가장 한국적인 것이 들어온 것에 대한 무어라 말로 표현하지 못할 벅참이 다가왔다. 누군가에게 이 말을 해야 하는데 해서는 안될 그런 묘한 기분. 해석은 한동안 침묵 속에서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 명상을 하였다. 그리고는 눈을 떴다.

다음 장을 펴보았다. 제목이 있고 한문이 빽빽이 이어졌다. 나머지 기록들은 도저히 해독할 수가 없었다. 300여 페이지였다. 모두가 하나같이 완전히 어려운 한문 원문이고, 고문이었다.

‘이것을’

해석은 두리번거리다가 책장 아래의 서랍을 열고 깊숙이 그 책을 넣어 두었다. 그리고는 비로소 침실로 향하였다. 아내가 숨소리를 고르게 내면서 잠들어 있었다. 해석은 가만히 침대로 들어가 모처럼 몸을 뉘었다. 긴 하루였다. 긴장된 하루였고. 연구원에서 경주로, 경주에서 책을 발견하고, 다시 휴게소로 오면서 도둑이 자신의 차를 뒤지고 그리고 지금 침대로 까지, 한편의 드라마 같은 하루였다.

‘쿨..’

몸을 침대에 눕힌지 불과 몇 분 만에 해석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세상은 해석을 안고 깊은 고요 속으로 빠르게 아주 빠르게 들어가고 있었다.

[카이스정옥성]

너무좋아서 다른곳에도 알립니다

[김광윤]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꼬박꼬박 읽어주시고 코멘트 해주셔서 도움이 많이 됩니다. 역사소설과 제품을 연결한 소설 그리고 1500년전의 신라와 현대를 연결하는 소설을 이어나가자니 벅차긴 하지만 게속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카이스정옥성]

힘내세요

[김광윤]

감사합니다. 잘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