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의 좌우명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정신병에 걸리고 주위에 지인이 적었던 관계로 나의 정직함은 이상한 방향으로 왜곡되어 갔던 것이다.
지금처럼 맘이 안정되기 이전부터 나는 병적 증세를 앓고 있던 때부터 난 유명해지고 타인의 비난과 비웃음을 항상 당하고,
조직으로부터의 박해도 당해야 했다. 나는 지인이 없어서, 지인을 너무 의존했고 나와 안맞는 이들도 스트레스 받아가며 사귀어야 했다. 나에게 지인이 너무 없었고, 난 외로움을 견딜만큼 강하지도 못했다. 물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전적으로 나의 잘못은 아니지만
나에게 그 원인이 컸다고 생각한다.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 늘 호의를 가졌지만,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유명인인 나에게 늘 호의를 준 이는 거의 없었다. 물론 나 자신도 타인의 주목을 받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고, 나는 정직하고 현명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늘 유지하고 싶었다. 나는 나에게 호의를 가지지 않는 타인들에게도 호의를 거두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의 이미지와 내가 가진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상처를 받았고, 다른 사람들도 나때문에 상처를 입었다. 그것은 내 능력밖의 일인데, 나는 내 자신의 능력을 늘 과대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에 대한 이상이 너무 컸고, 타인을 늘 필요로 하는 외로움속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주님때문에 병적증세는 많이 사라졌지만, 나는 나자신을 과대평가했고, 착하다라는 것의 교만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에게 상처를 입는 지인들과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썼고, 늘 실패했다. 그건 나 자신의 문제가 컸었다.
난 논리력은 뛰어났지만, 환청으로 사고력이 부족해 절대로 현명한 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난 깨우치지 못했다.
지금 환청에서 벗어나 이렇게 주님의 뜻을 생각하며 살면서, 난 아직도 내가 지혜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나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는 사람에게 난 상처를 받지만, 이제는 주님의 능력으로 상처가 금방 아무는 은혜도 받았다.
그러나 최근까지 이런 은혜가 아무에게나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채 살아왓다.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 부족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산다. 알코올 중독자라 할지라도...그런데 나에게 상처를 느끼는 사람이 나에게 호의를 가지기가 쉽겠느냐..그리고 그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다면 그들의 나에 대한 적의는 당연하다.
난 타인에게 받은 상처가 잘 아물고, 그리고 주님의 은혜로 그들에게 대한 미움에서 벗어난다. 그런데도 최근까지 나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나에게 호의를 가지지 않는 사람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냥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짓이었다.
타인의 아픔을 생각한다면, 필요 이상으로 타인을 자극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사회생활이나 종교적인 모임에서도 그냥 형식적인 관계도 필요한 것이다. 진심을 터놓는 사이가 아니면 안된다는 것은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인들이 너무 부족하고
인간에 대한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나 자신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어리석은 것이다.
이제 주님을 통해 환청에서 벗어나니, 타인의 존재를 극단적으로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타인이 부담되게 하지 않을까 늘 조심한다.
그리고 조금씩 신뢰를 쌓는 것도 노력한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주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진솔해야 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나의 삶의 태도는 결국 나의 외로움과 지나친 자부심에서 온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이제 깨달았다. 나는 타인이 나에게 던지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한때 약장난때문에 나를 속였던 엄마를 때리려고 했을 때, 엄마가 나는 착한 사람이라며 용서해달라고 했을 때,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엄마는 나의 상처를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역시 착한 것에 대한 나의 이미지에 집착했던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순간도 주님의 은혜로 무사히 넘어갔다. 그리고 그 후에 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컸던 엄마의 상처를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정직하도 대단한 사람이다라는 자부심은 결코 주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난 지금도 지혜가 마니 부족한 사람인데 좀 더 깊게 어떤 문제를 바라본다고 어리석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던 것이다. 난 주님의 은혜가 아니었더라면
나의 어리석은 자부심으로 인생을 위선되고 현명하지 못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난 언제나 인간관계에서 실패하고 결국은 상처받고 타인을 원망하며 살았을 것이다.
전에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던 타인의 말들이 연관되어 진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인류의 비애는 어 퓨어 굿맨에 있다는 지도교수님의 말...그리고 인간은 이해의 대상이지 신뢰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친구의 말...그리고 인간은 감성적인 존재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나의 생각...모두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좁은 길로 가라는 주님의 말씀과 모든 이를 구원하고 싶다는 주님의 소망까지 말이다....타인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면 우리가 어 퓨 굿맨이 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타인이 어 퓨 굿맨이 아니라서 결코 친해질 수 없을 때, 우리는 슬프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신의는 지켜야 한다. 그리고 나 자신도 어 퓨 굿맨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앞서 고백한 것처럼...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결국 오만과 과장된 이미지로서의 자신을 상정한 나의 위선때문이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평범하다면 어 퓨 굿맨에 해당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집중된 사회의 관심은 나 자신의 모든 욕망의 표출이 되었고, 난 결코 나의 위선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친구가 고백한 것처럼 이해의 대상이지 신뢰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도 이성의 존재가 아닌 감성의 존재였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지인들에게 같은 유혹을 주었던 것이다. 나의 지인이 된다면, 어 퓨어 굿맨에 해당되는 사람도 쉽게 변질한다. 나에 대한 열등감과 우월감에 사로 잡히고 상처를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의 지인이 된다는 것도 결국 모든 욕망이 표출되고 나와 마찬가지로 사탄의 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결코 이 상황에서 절망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겐 주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위선을 깨닫고,
주님을 통해 상처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악마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회개와 주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이다. 우리가 자신의 죄악과 죄성을 주님께 고백하면, 우리는 늘 새로와지며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에 대한 주님의 계획이 있다. 주님도 모순된 것을 바라신다. 우리로 하여금 좁은 길로 가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세상사람 모두를 구원하고 싶어하신다. 그러나 난 주님의 이 모순된 말씀이 이해가 된다. 그리고 나역시 지금처럼 주님으로 인한 나의 깨달음과 변화를 쓰는 이유도 주님의 이 말씀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기 위해서다.
민주적으로 우한폐렴에 대해 적극적의 방역활동을 할 수 있는 나라는 현재 우리나라 뿐이다. 그래서 어느 유명한 이스라엘 학자는
중국이 바이러스를 일부러 퍼뜨렸다고 주장하면서, 우리나라가 입국금지를 하지 않는 것이 옳고 대단한 일이라고 칭찬하더라...
나의 주장과 배치되지만...난 입국금지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런 타인의 평가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스라엘의 학자는 칭찬을 토대로 자신들의 이해를 추구하는 듯이 보인다. 물론 우리나라의 방역활동과 그것으로 드러난 우리나라의 힘은 대단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방역활동에 실패한 다른 선진국에 대한 자부심을 보이는 것은 열등감에 찌들은 졸부의 태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타인의 평가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방역이 중요하다. 다른 나라의 평가는 죽어가는 우리국민 한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하지 않다.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공산주의 국가인 것이다. 중국과 북한 같은....우리는 실질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의 실력 이상으로 우리를 과대평가 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까지 국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실정으로 위축된 여권이
이 계기를 토대로 필요이상의 평가와 국가이미지에 목숨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마치 지난날 자신의 대한 과대한 이상과 자부심으로 내가 주님의 뜻을 저버리고 살았던 나의 어리석음을 여권이 따라해서는 안된다.
정부의 실수는 대다수 국민의 고통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평가에 목말라하는 것은 우리의 어리석은 열등감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 국민을 위해 먼저 애써야 한다. 그리고 다른 나라를 돕는 것이다. 그것이 순리이자 올바른 것이다.
다른 나라에 대한 평가에 목말라..한사람의 국민의 목숨을 소홀히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모든 것을 관장하는 것은 주님이다.
그렇지만, 외국인에 대한 지나친 환대와 입국허용은 우리국민의 삶을 너무 아슬아슬하게 한다. 이렇게 위험요소를 퍼트려놓고,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어리석은 짓이다. 나조차도 기도밖에 할 수 없는데, 정부도 기도하는 것말고 대책이 있는가...
자신에 대한 정확한 평가...우리의 국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무엇이 국민을 위한 것이고 위험을 줄일 수 있는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중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은 일시적인 다른 나라의 찬사에 기인해서는 안된다. 그 헛된 자부심이 결국
우리나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 대한 찬사보다 노령이고 기저질환있지만, 20년동안 정신병을 앓는 환자 하나하나의 목숨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고 이것이 민주사회의 가치이다. 난 우리나라 사회가 진정한 민주사회의 가치를 지켜
내는 나라로 바뀌길 기도한다. 사소하게 보이는 국민 하나의 건강담보가 결국 우리나라를 지켜내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길이다.
주님은 사소한 것을 잘 처리해야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모두 거짓된 위선과 열등감에서 나오는 위선된 착한 이미지에서 벗어나...진정한 의미의 자신을 찾는 나라가 됐으면 하고 기도하며
글을 마친다.
첫댓글 위기상황에서 공포를 느끼면 대다수의 인간은 비이성적인 판단을 한다 앞의 울림의 말과 일치한다 묵시록에서도 적혀있다 안타깝지만 현실을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