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이다
라는 말씀에 토(討)를 달아야 할 건덕지가 없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오늘을 살아 가고 있나를 생각 할때
나 아닌 많은 내가 된 사건이나 사람들 과의 관계 에서
오늘의 내가 되었음을 알아 내게 된다
나는 오늘 뭘 위해 살았는가?
그리고 내일을 뭘 위해 살아갈 것인가?
그러면
그 중심에는 누가 뭐라 해도 내가 가운데 있게 되는데
중심의 나는 나의 가치를 어떻게 올려야 하는가?
그리고 그 가치라는게 뭔가?
가치는 내가 만들어 낸다고 해서 진정한 의미의 가치 있는
일이나 성과 가 될수 있는건가를 생각 하게 된다
이냐시오 성인은 말씀 하셨다
나는 오늘 누구를 섬기며 살았는가?
나를 섬겼는가?
아니면 하느님을 섬기며 살았는가?
라는 성인의 질문에 나는 나를 섬기며 오늘을 살았다
라는 자백을 하게 되는데
그런 삶이 과연 진정한 의미 에서의 삶의 가치로
존중 받을만 하고 지속적으로 행해야 할 만큼의
의미가 있는 일들인가?
이웃을 섬기며 살아보았는가?
그 이웃은 누구인가?
나의 하루는 식별과 성찰을 통해 하루의 삶을
살아 가게 되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
나는 성장과 존경 받아야 할 일을 하는가?
존경 이란?
뜬 구름 같은 신기루 로써의 존경이 아니라
진실로 그럴만한 의미 있는 삶 이었나를 평가 받게 되었을때
점수 높은 진정한 의미 있는 삶 이었을까?
식별과 성찰을 통해
빈틈 없이 꽉 채워진 나의 중심의 나의 자리를
비워 내고 걸러 내야할 그런 여유를갖여 보았는가?
그 비워 논 그 자리에 이웃을 초청 하고
하느님의 자리로 만들어 놓을 그런 일에 얼만큼의
정성을 기울였는가?
그 정성을 통하여 한결 여유로워진 나는
그런 여유를 진정으로 향유할 만큼의 그릇이 되었는가?
소소하고 시시하고 하잘것 없어 보이는일
그 일들로 채워진 나의 자리를 돌아 보면서
비울것은 비우고 유치한 것은 버리고
작은 사랑은 소중히 담아서 싹을 틔울 준비는
하려고 하였는가? 라는 질문 앞에
그렇다
아니다
어떤 답변을 할수 있었는가를 헤아려 봐야 하는데
혹시 변명이나 내탓은 아니고 네탓 이었읍니다
라는 마음의 발로(發路)는 없었는가?
이런 식별과 성찰의 시간을 갖여 봤는가?
나는 나를 들어 내는 삶을 위해 오늘을 살고
나의 뻣뻣해진 목에 힘을 더주기 위해 기도 하고
불룩한 뱃가죽에 욕심을 더 넣어
터질때 까지 더 먹으려는 욕심의 자루는 아니기를
위해 어떤 기도와 노력을 해왔는가?
공허한 하늘을 바라 보면서
지나온 날들에 대한 실망과 보람을 잘 구분하여
향기로운 탑(塔)을 쌓기 위해
오늘을 식별의 능력을 키우는
성공 하는 날로 만들어 가야 할텐데
그런 준비를 위해 다지고 불룩한 곳을 깍아 내어
평평 하고 단단한 나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데
공감을 하면서
기도와 식별 그리고 성찰로 그 분이 가신 길에
진달래 꽃잎을 뿌려 즈려 밟고 가실수 있도록
성심(聖心)으로 준비에 게으리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는 봄날의 오후를 맞고 있다
내안에 나 있음을
나를 내안에서 내가 가꾸고 있음을
알아 가는 오늘 이었으면 좋겠다
꽉찬 그 공간을 비우는 작업 부터 출발을 하면서....
첫댓글 버리고 비우기가
제일 힘든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