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을 알아누운끝에 어제아침에야 몸컨디션이 좀 회복되었다.
무엇이 그리 급하셨을까?
79년이란 세월동안 삶에 대한 집요한 애착으로 그리도 잘 버티시다가
무엇이 그리급해 임종을 지켜줄 자식 얼굴 한번 보지 않고 쓸쓸히 떠나셨을까?
어머니의 쓸쓸하고 외로웠을 죽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아니,슬프다기보다는 안타깝고 허망했다
가시는 날 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있던 막내동생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께서 갑자기 열이 많으셔서 신플 인가 싶어 동네 내과 전문의를 찾았단다
그곳에서 급성폐렴이란 진단을 받게 되었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호흡곤란 까지왔다
119를타고 급히 원주기독교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기독교병원 응급실로 들어서자마자 마취를한뒤 입으로 코로 호수가 들어가고
종단에는 목중앙에다 구멍을 뚫고 기도삭관 수술을 받았다
나는 서울에서 연락을 받고 원주병원으로 한걸음에 달려갔지만
그땐 이미 눈을 감으시고 혼수상태로 기계에 의존해서 숨을 쉬고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중환자실에 들어가신지 나흘만에 깨어나시지 못하고 영원히 우리곁을떠나 하늘나라로 가시고 말았다
가시기전에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보내드린걸 생각하면 할수록 후회 막급하다
어머니가 살아오신 삶의 굴곡을 생각하면 아련한연민과 애처로움이 떠오른다
그분의 무던한 성품과 수많았던 충돌과 순간들을 생각하면 안탑깝기 그지없다
지난 세월 오랫동안 천식으로고생하시며 약으로 사신분이다
어린시절 어머니의 기억들이 주마등 처럼 뇌리를 스쳐간다
어머니의 고향은 새빗재!!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12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홀아버지와 어린동생들을 돌보며 모든집안살림살이를 도맡아 하시다가
19살 되던해에 새골 이씨집안으로 시집을오셨다
층층시야, 시부모와시동생, 시누이와 함께 사시는삶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을것이다
거기다 우유부단한 성격의 아버지때문에 엄청 마음 고생이 많으셨다
그 당시 아버지께서는 멀리 대구에서 군복무를 하고 계시고
어머니는 함백에서 시부모님 모시고 아버지와 헤어져 독수공방 하시며 사셨다
육군상사로 직업군인 생활을 하시다가 내 나이7살때 제대를 하시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곧바로 광업소에 취직하셔서 돌아가시는날까지 근무하시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어머니께서는농사를 크게 지으셨다
새골 곳곳에 우리밭과 논이 차지하고 있었다
부대골에 있는 옥수수밭과 애매골에 콩밭, 밝은밭 비알에있는배추밭,그땐 농사일이 왜그리 많았는지..
젊으셨을때의 어머니의 모습은 팔팔하고 아름답고 힘이 넘치시는 여장부셨다
그 많은 농사일을 혼자 도맡아 넛근이 해내시는 어머니 셨다
나도 학교 갔다오기 무섭게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어떤날은 일하기 싫어서 꾀를 부린적도 왕왕있었다
사람들은 우리집을 보고 버드나무집 혹은 촌집 이라고 불렀다
어머니는육남매를 낳으셨다
내위로 언니와 오빠가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큰딸은 어릴때 홍역으로 잃고 큰아들은 19살 고3때 황달로....
이렇게 자식을 둘이나 어머니 가슴에 다 묻었다
오빤 함백 중고 광산과에 다녔다 공부를 남달리 잘하는 오빠는 부모님의 꿈과희망 이었다
아버지 당신이 못이룬꿈을 아들이 이루어 주기를 바랬다 그래서 아버지의 소원대로 육군사관학교에 지망 하기로했다
광산과 에서 배운 실력으로는 대학에 들어가기 힘들어 여름방학때부터 서울에 있는 입시학원으로 유학을갔다
학원에서 무리하게 공부하던 도중 황달이란 병이 온것이다
그때 당시 예비고사가 그해에 처음 생겼을때다
병에 걸린줄도 모르고 예비고사를 치르고 본고사 일주일 앞두고 그만 세상을 떠났다
그때 일을 다시 기억하고 싶지않다
가족들은 물론 온동네가 슬퍼했다
그로인해 매일매일 우리 집안은 먹구름이 끼어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매일 술로 사사다가 10년만에 아들의 뒤를 따라 돌아가셨다
어머니께서는 10년안에 아들과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슬픔과 실의에 빠져 헤메이셨다
그때 당시 큰어머니께서 교회를 다니셨는데 큰어머니의 권유로
하나님을 마음속에 영접하게 되어 마음의 평정을 서서히 찾으셨다
그후로 쭈욱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자식넷을 모두 공부시켜 출가 시키셨다
그렇게 열심히 사시다가 6년전 불의의 사고로 허리를다쳐 힘들게 사신 어머니의 삶을 생각하면
가슴한쪽이 싸~아 하고 찬바람이 지나간다
어머니의 삶을 되짚어보면 애처롭게만 느껴진다
어머니와 나의 53년 시간들...
어머니에게도 나에게도 참으로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해 나는 결혼을 했다
내 결혼할때는 나의 손을 꼭 잡아 주시고 2달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 당시 나의 동생들은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생과, 고2인 동생과, 막내는 중1학년 재학중이였다
아버지 49세 어머니 48세의 젊다면 젊은 나이였다
어린자식들 품에안고 한없이 우시던 어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머니의 수고로움에 힘입어 자식들은 이렇게 성장 시켰는데
생각해보면 시시때때로 어머니께 대들며 화를내고 너그럽게 대하지 못하고 포옹력도 부족한 내 삶을 인정할수 밖에 없다
가끔씩 모진소리까지 했던걸 생각하면 너무나 후회 스럽다.
이렇게 훌쩍 떠나실줄 알았더라면 잠시라도 마주앉아 따뜻한 말한마디라도 더 건네드릴걸....
사랑한다고 한번이라도 안아드릴걸....
돌아가신 후에야 어머니께 못해드린것 때문에 눈물짓는 이 못난 딸은 남은 평생도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지을 것이다
이제 아버지, 어머니 30년만에 한곳에 편히 누우셨으니 그저 세상시름 다 잊으시고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쉬세요!.....
사랑합니다 어 머 니
첫댓글 어머니는 좋으신 곳에 계실 겁니다~~이렇게 사랑하는 딸이 있으니~~어머니는 딸의 마음을 알고 계실거예요~~~힘내시고~~ 후배님도 자식들 한테 ~~모든 사랑을 주는 그런 어머니 일테니까요~~~^^
선배님~~위로와격려 고맙습니다....
누구나 부모님이 떠나고 나면 후회를 하더라구요.한 치 앞을 못 보고 살아 가는게 우리네 인생이니까요.저는 양가 부모님이 다 계시는 터라 임종의 복을 주시라고 기도를 하곤 합니다. 지금은 황망히 가신게 안타깝지만 오랜 시간 병마로 고생 안 하셨으니 임종의 복을 받은 것이며,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실 것입니다. 마음 추스리고 힘내세요.
후배님의 말대로 어머니께서 살아생전에 늘 임종의복을 달라고 기도 하셨답니다~~자식들 고생 안시킬려고 그려셨나 봅니다 위로글 고마워요....
비오는 오후 맘이 촉촉히 젖어 오네요
그리운 엄니~~~
어머니께 전화라도 한번 해보세요 사랑 한다고.....
며칠전 울오빠도 영월장레식장 다녀오셨다하던데~~~
코끋이 찡하고 눈물이나네요 저도 하늘나라에계신 엄마생각이납니다 선배님 힘내세요
후배님~~고마워요....
늘 인자하시고 너그러움이 묻어나시던 권사님이셨는데....언니 힘내시고 넘 슬퍼하지 마세요...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계실줄 믿습니다..
그려~~옥선아 !! 고마워....
눈가에 눈물이 찡하네요.어머님의 인생을 어찌그리 잘 표현하셨는지? 힘들게만 힘들게만 살다가신 어머님 인생이 넘 가엽네요. 이제 이 나이가 되어 보니 부모님 마음을 조금 알것 같아 모든것이 죄스럽죠.고통없는 편안한 세상에서 편히쉬실 거예요. 힘내셔~~~~~
위로글 고마워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것은 제가 고아가 된다는 사실을 제가 어머니를 여의기 직전 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 입니다~~누구나 아버지 어머니를 어느순간에 여의게 되고 고아가 된다는 간단한 진리를 저는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어머니가 천년만년 함께 사시지 않을수도 있음을 불현듯 깨달았습니다~~제가 고아가 될수 있다는것을 그때야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