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브
문희봉
염기 먹은 뻣뻣한 군청색 방한복이 갯바람에 흔들린다
하늘나라로 떠난 사람의 초라한 행상을 닮았다
염전 일 거들며 소일하던 노파
떠난 사람을 처음 발견한 것은 그녀의 분신이었던 누렁이였다
한 사람이 가고 나니 허전하고 후회막급이란 생각만
그녀는 누구를 그토록 그리워하며 구부러진 허리 펴며 염전 일을 했을까
기별을 넣은 지 하루가 지났는데도 상주의 모습은 없다
이윽고 도착한 검은색 승용차 한 대
그 속에서 떡대 좋은 남녀 다섯 명이 내리고
‘아이고, 울 엄니, 애고 애고 어머니!’
그들은 진심으로 어머니를 사랑했단 말인가
퇴색되지 않은 부모의 절대적 사랑과 계산된 자식들의 존경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몇 명 안 되는 문상객들은 갈등한다
부모를 공경하라 가르치는 십계명
마당 끝자락에 빈 깍지들만
헐렁하게 매달고 있는 등나무가 을씨년스럽다
노파의 마지막 모습으로 보여 눈동자가 젖는다
막내는 정신지체자다
노파가 선창하는 찬송가를 따라 부른다
가사, 박자가 겉돈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소리의 집합으로 부르는 찬송가다
노파는 백마 타고 온 멋쟁이 왕자에게 시집 보낼 생각을 한다
염전에 출력했던 일자와 노임 액수가 꼼꼼이 적혀 있는 공책이 머리맡에 있다
염전 품삯, 그물 추려 받은 품삯, 막내 이름으로 통장에 넣어둔 사랑
마디마디 굵어진 다 닳은 쇠갈퀴를 생각해내고는
자식들은 참았던 눈물을 기어이 쏟아낸다
어머니의 사랑은 어디가 처음이고 끝이더란 말인가
늘 소중하게 다루던 문갑
어머니를 보내드린 후 열어본 문갑 속엔
자식들의 성적표
막내가 그린 빨간 입술의 선친 초상화
노파의 일기 ‘바보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이니 잘 길러야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아하브의 시작은 어디이고 끝은 어디인가
황량한 바람이 무릎 연골을 스치고 지나간다
※ 아하브 : 히브리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