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스탬프’
살다보면 어떤 일을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을 하고 시작한 경우도 있지만, 우연히 시작된 경우도 적지 않다. 적어도 나에게의 국립공원 투어는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안내 산악회 버스를 이용했던 작년의 덕유산 육구 종주 후 구천동에서 멍때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저긴 뭐 하는 곳일까?” 하고 들렀던 곳이 마침 탐방 지원 센터였다. 겸사 화장실도 찾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친절한 직원이 계셨었는데, 국립공원 등산을 자주하면 이것 한번 해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국립공원 스탬프를 건내 주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건 매우 놀랄만한 일이었다. 왜냐면 국립공원 스탬프 북은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와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일 예로, 북한산 국립공원 탐방지원 센터 곳곳의 창문에는 종이로 아예 써 붙여 놓았다. “스탬프 북 없음.” 아마 서울이 아닌 구천동 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스토리가 아닐까 싶다.
각설하고, 마치 초등학생이 선생님 앞에서 무엇을 배운대로 하듯 국립공원 탐방 지원센터 스탬프를 그 분 앞에서 “꽝” 눌러 찍었다. 사람들이 별로 찍지 않은지 선명한 도장이 찍혔다. 그리고 시작된 작년의 몇 개의 도장 찍기..
그런데 국립공원 스탬프도 라이프 타임이 있는지, 작년 연말 또는 올해 초? 개편이 되었다. 대략2~3년에 한 번씩 디자인이 바뀌는 것 같다. 그런데 디자인뿐 아니라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그 동안 “따로 놀던” 한라산 투어 인정이 국립공원 스탬프 안으로 편입된 것이다. 그 동안 한라산은 국립공원 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홈페이지도 다르고 성판악이나 관음 지역의 탐방 예약도 기존의 국립공원 탐방 예약과는 별개로 진행되어야 했다. 나도 처음에는 이것을 알지 못했는데, 올해 초 2월 한라산에 갔을 때 비행기 안에서 확인해 보니 국립공원 스탬프 안에 한라산 페이지가 없었다. 그리고 공항에 도착하여 여러가지 검색을 통해서, 한라산 탐방 예약이, 북한산의 우이령 탐방 예약하고는 시스템이 다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올 4월, 한라산을 다시 탐방 하기 위해서 방문 했을 때에는 스탬프 북을 챙겨 넣지 않았다. 그런데 돈내코에서 한라산에 입산하여 어리목으로 하산하여 탐방 지원 센터를 방문 했을 때, 그곳에서 기대치도 않게 새로운 국립공원 스탬프 북을 건네 받았다. 그리고 이제는 한라산 방문 인증 페이지도 국립공원 스탬프 북에 포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리목 탐방 지원 센터는 나름 방문객이 많지 않았는지 대부분의 – 북한산, 지리산, 하물며 성판악 등도 포함된 유명 장소 – 의 탐방 지원센터에서 스탬프 북이 모두 소진되었으나 그곳에는 아직도 스탬프 북이 있었다. 생각하지도 않다가 스탬프 북을 받아서 기뻤고 그렇게 올해 새로운 스탬프 북으로의 도장 찍기 놀이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은 스물 몇 개.. 애당초 한해에 그 모두를 찍을 자신은 없었다. 주말만 시간이 가능하고, 또한 몇몇 공원에는 초겨울부터 경방 기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방문 인증이란 공원 입구에서 도장만 달랑 찍는 것이 아닌, 산의 정상까지 다녀오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스탬프 북이 대략 2~3년 동안은 유효 하니 시간을 갖고 천천히 도장 찍기 놀이를 하기로 했다.
겨울 그리고 초봄 한라산부터 시작하여, 그 이후로 경방 기간이 풀리며 지리산 그리고 설악산으로 도장 찍기가 계속 되었다. 그 다음에는 덕유산 등등. 역시 빅 3 종주 코스가 가장 중심 테마인 것 같다. 그리고 이 빅3를 제외하면 작년과 비교하여 올해는 교통이 애매한 곳에 있는 국립공원 투어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빅3 대비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은 투어가 몇 번 있었다. 주왕산이 그랬으며, 월악산도 그랬다. 사실 속리산도 이 부류인데, 천왕봉과 문장대 투어만으로는 거리가 조금 부족하여 정이품송을 살짝 넣어 조금 더 보충을 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스탬프 북이 나의 손을 잠시 떠났던 때도 두 번 정도 있었다. 한번은 지난 5월이었는데, 설악산의 대청과 공룡 능선을 투어 했을 때 5시 넘어 하산한 탓에 백담사 탐방 지원센터는 이미 문이 닫혀 있었다. 그래서 인증 도장을 받지 못했다. 다행히 서울로 돌아온 후 탐방 지원 센터 직원과 소통이 되어, 우편으로 스탬프 북을 설악산으로 보낸 적이 있다. 물론 GPS 궤적과 증명 사진 몇 장도 동봉 했음은 물론이다. 한 달 전쯤 설악산 서북 능선을 걸어서 남교리 탐방지원 센터에서 인증 도장을 받을 수 있었는데,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우편으로 스탬프 북을 보내고 받을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이 외에도 한번이 더 있다. 지난 계룡산의 소위 “3사 5봉” 탐방시, 계룡산을 하산하여 동학사 부근의 탐방 지원 센터에서 인증 도장을 받은 후 서울로 향했다. 공주와 유성을 다니는 버스를 타고 다시 유성에서 고속버스로 환승하여 한참 서울로 가고 있는 중이었는데 042로 시작되는 전화가 한통 걸려 왔다. 아니 이건 뭐지? 전화를 받으니 상대방은 젊은 여자였는데, 나더러 계룡산에 왔다 가셨죠? 하는 것이었다. 난 깜짝 놀라서 아니~ 그걸 어떻게 아세요? 했다. 속으로 코로나 때문인가? 요즘은 첨단 시대라 방문자 전화번호까지 모두 tracking 하나? 아~ 하는 것 같다. 왜냐면 코로나 관련 문자 날라오는 것 보니~ 그 짧은 시간에 머리 속에는 온갖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전화 내용은, 탐방 센터 앞에 인증 수첩을 두고 왔다는 것이었다. 허걱~ 스탬프 북에 전화번호를 적어 두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연락을 준 것이었다. 그 연락을 받고서야, 배낭을 뒤적여보니 수첩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아고~ 하산해서 빨리 버스 타고 서울 갈 생각에만 몰입되어서, 스탬프만 찍었지 스탬프 북 챙겨 넣을 생각은 안하고 스탬프 북을 책상 위에 그대로 두고 왔던 것이었다. 내참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는지 원~
그런데 문제는 수첩을 찾으러 지금 동학사 탐방 지원 센터로 오라는 것이었다. 아마 내가 서울에사는 사람인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 순간 마침 지난 설악산 경험이 있어서, 서울로 가는 도중이라 어렵다고 이야기를 했고 혹시 우편으로 보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다행히 그 직원의 수고로움의 덕으로 다시 한번 우편으로 무사히 스탬프 북을 건네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감사의 마음으로, 그 분에게 온라인 기프트를 보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처럼 요란한 목표 없이 틈틈히 그리고 조용조용 한 장 두 장 국립 공원 스탬프 북을 채우고 있는 중인데, 설악산이나 계룡산처럼 도장 하나 하나에 여러 사연들이 오롯하게 달려 있다. 그래서 스탬프 한 개만 봐도 “그” 산을 오르고 내리던 사진 수 백장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이제 다시 돌아온 겨울, 국립공원이 있는 높은 산에는 하얀 서리와 눈이 내려 앉는 계절이 왔다. 그 만큼 산행의 위험성이 증가해서 산을 오르고 내리는데 부담스러운 계절이다. 배낭 속에 챙겨야 할 생수 양은 줄어서 좋지만, 대신 옷과 아이젠 등 장비의 무게가 더해진다. 좋아지는 것, 그리고 그 반대인 것..
그렇지만 분명 겨울에 가기 좋은 국립공원도 있을 것 같다. 눈꽃 여행이 좋은 곳, 아니면 눈이 아예 없는 곳... 아니면 오히려 이럴 때 바닷가 국립공원 여행도 좋을 것 같다.. 물에 들어갈 일은 없으니 위험성은 거의 없을 터이고... 그리고 남들은 평소에도 멀리 해파랑길, 남파랑길도 가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20년 사이에 국립공원 16곳이 20 몇개로 늘어났군요. 그리고 스탬프 북에 얼킨 사연이 참 많이 있군요.스탬프 북 채우는 맛 알고있습니다. 강화나들길을 걸으면서 트랭글 인증받는 것과는 또 다른 국립공원 스탬프 인증 받는 것이겠지요. 어쩌다 보니 예전과 달리 인증받는 재미로 걷는 우리들이 된 것 같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스탬프 북인데
하다보니 이렇게 하나둘씩 늘어 납니다.
의식적으로 다니려고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곳에 매몰될 까봐…
그렇지만 기회가 다으면 한번씩 가볼까 싶습니다.
내년에는 올해와는 조금은 다른 스케줄로 다닐 수 있을것 같은 느낌이고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