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菜食主義者
지난번에 아직 부실한 몸으로 「채식주의자」를 사러갔다가 허탕을 쳤다고 썼더니, 출판업을 경영하는 40대 여사장으로부터 6월5일에 발행된 27쇄본 한 권을 택배로 보내왔다. 그의 맘이 하도 고마워 서둘러 읽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51AAD3E5754C53921)
소설은 한마디로 월남전에서 무공훈장을 받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고집스런 아버지가 거느린 2남1녀의 가족사를 엮은 집안이야기이다.
특별한 매력이 없었어도 특별한 단점이 뵈지 않아 둘째 딸과 결혼해서 감사한다던 어느 회사 중견간부가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어느 날 그의 아내 영혜가 갑자기 냉장고 안에 있는 고기류를 모조리 버리고, 일체 고기를 먹지 않아 앙상히 메말라 가는데, 그것이 꿈! 선혈이 낭자한 꿈 때문이라니 도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소식을 들은 친정 식구의 설득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품가게를 운영하는 맏딸이 아파트 평수를 늘려 이사하며 온 가족이 한데 모이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 자리에서 고기를 먹으라는 지시에도 말을 듣지 않자 화가 난 아버지는 그의 뺨을 때리고 탕수육 한 점을 들어 입술에 짓이기자, 이에 흥분한 딸이 벌떡 일어나 교자상 위의 과도를 들어 제 손목을 그었다.
그의 손목에서 솟구친 붉은 피가 하얀 접시위에 쏟아진다.
미대를 나온 작가인 형부가 그녀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정도면 채식주의자라기 보다 결사절육(決死絶肉)주의자가 아니랴?
그녀의 병원생활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퇴원을 하려던 날, 보호자석에서 늦잠을 잔 남편이 눈을 떠보니 식판을 받아놓은 채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병원 뜰 분수대 옆 벤치에 앉아 웃옷을 벗어 앙상한 젖가슴을 들어 내놓고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결국 그녀는 이혼을 하고 홀로 살기에 이른다.
맏딸인 언니가 딱한 처지에 놓인 동생의 걱정을 늘어놓자, 그럼 내가 처제를 한 번 만나볼까? 하는 남편의 말에 선 듯 동의하고, 그는 과일을 사들고 처제의 다세대주택을 찾는다.
잠기지 않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처제는 알몸으로 욕실 문을 열고 나오며 “혼자 있을 땐 그냥 이게 편해서요.”라 말한다.
예술가인 그는 우연히 아내로부터 들은 처제의 엉덩이엔 몽고반점이 있을 거란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있었던 터다.
그는 처제와 함께 나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언니한테는 비밀로 하고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는데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며칠 뒤, 작업실에 찾아온 그녀는 옷을 벗으라는 형부의 요구에 순순히 응했으며 이때 그는 왼쪽 엉덩이에 찍힌 엄지손가락만한 반점을 본다.
그는 그녀를 엎드리게 하고 바디페인팅을 시작한다.
오른쪽 허벅지를 지나 발목까지 이어지는 긴 줄기의 잎사귀를 그렸다. 그리고 캠코더로 몽고반점을 클로즈업하여 테이프에 담는다.
차 한 잔을 마신 다음 이번에는 천정을 향해 드러눕게 하고 쇄골부터 가슴까지 커닿단 꽃송이를 그렸으며, 주황색 원추리는 오목한 배에 피웠다.
허벅지 안쪽에 붓끝이 스칠 때 약간 떨림을 보였지만 그녀는 잘 참아냈다.
이것이 그의 작품 「몽고반점 1」인데 그는 차마 시도하지 못했던 「몽고반점 2」즉 온몸에 꽃을 그린 남녀가 실제 교합하는 장면, 그 성기를 담은 작품의 구상을 떠올리고 다음날 한 번 더 작업실로 나오도록 한다.
그리고 그 상대역으로는 잘생긴 젊은 후배 J를 택한다.
그리하여 그의 검은 음모가 꽃받침처럼, 성기가 꽃술처럼 보이도록 그것을 중심으로 거대한 진홍의 꽃을 그의 몸 중앙에 그렸다.
그리고 두 남녀가 서로 끌어안고 엉클어진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잡다가 마지막 것을 요구하자 J가 발끈하여 포르노를 찍자는 거냐며 거절한다.
그 모습들을 너무 리얼하게 그려 읽는데 조금은 권태로웠으나, 젊은 나이에 참으로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긴 J의 예술혼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화가는 옛날 서로 사랑했던 유부녀 P를 불러내 자기 몸에 꽃을 그리고 처제 집을 찾아갔는데 역시 문은 잠기지 않았고 처제는 빨가벗은 채였다.
그는 삼각대를 세워 캠코더를 고정시킨 뒤 길게 드러누운 그녀의 몸 위에 자기 몸을 겹쳐 짐승 같은 괴성을 지른다.
예술의 알짬을 내 어찌 알랴만 이 장면은 J의 퇴장으로 끝나도 모자람이 없을 텐데, 그 이후는 어쩐지 외설(猥褻)같이만 느껴진다.
마침 동생 소식이 궁금하던 언니가 반찬을 챙겨 찾아와 이 불윤의 현장을 보는데, 이런 경우 우선 강샘으로 흥분하는 것이 여성의 본성이거늘 조용히 구급차를 요청하는 성숙함이 예지롭기만 하다.
이렇게 해서 두 남녀는 정신병원으로 실려 갔는데, 남자는 정상으로 판명되어 풀려난 뒤 행방이 묘연하고, 영혜는 자유가 없는 또 다른 고행의 삶을 살게 된다.
만일 그때, 언니가 모든 걸 체념하고 그냥 물러났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독자들은 한 번쯤 떠올려보지 않을까......
병원에서 경증환자들을 산책을 시키던 날, 영혜가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깊은 산속 외진 곳에 나무처럼 서있었던 것을 간신히 찾아낸다.
평소 나무를 좋아하는 영혜는 가끔 물구나무서기를 하는데, 꿈에 물구나무를 섰더니 온 몸에서 입사귀가 자라고 손에서 뿌리가 돋아 땅으로 뻗었으며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났다고 했다.
선승들의 여러 가지 죽음 중에 물구나무서서 죽는 도화(倒化)라는 게 있는데 행여 여기 내가 알지 못하는 깊은 뜻이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채식이 아니라 아주 단식을 해버리는 영혜! 마지막 처방은 코에 튜브를 밀어 넣어 미음을 주입하는 것이다.
의사와 간호사 보호사 수명이 영혜를 침대에 눕힌 다음 팔다리를 묶고 시도를 하다 이를 뿌리치고 뛰쳐나가던 영혜는 붉은 피를 왈칵 왈칵 토해낸다.
“당장 큰 병원으로 옮겨야겠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구급차에 다시 오른다.
모두가 피로 얼룩진 비극으로 끝나는 기구한 이야기가 무었을 의미하며, 채식과 육식이 무엇을 은유한 것인지 작가의 의도가 쉬 풀리지 않는데......
마지막까지 그를 정성껏 돌봐주던 언니가 마지막에 남긴 말!
“영혜야, 어쩌면 꿈인지 몰라. 꿈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 이 한 마디가 가슴에 남는다.
첫댓글 돌뫼님! 아직도 조심하여야 할텐데...
독자들을 위하셔서 소설 한 권을 요약하여
정리해주심에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님의 열정에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내내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임의 글엔 진심이 배어 늘 잔잔한 감동을 느끼곤 합니다.
여러분들의 염려로 많이 회복되었습니다만 항암치료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군요!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올려주신 줄거리로 책한권다읽은듯합니다
제소견으론 갸웃둥해지는 부분있습니다만
이해력 부족이겠지요
아직불편하신몸으로 헛걸음하신터라 선물이
더욱 반갑고감사하셨겠습니다
고마운분 덕으로 저희들 편히 견문넓힙니다
선배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인들 어찌 다 흡족하겠습니까?
그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의 객관적 판정을 받은 한국의 것이라는 점에서 자랑스러울 뿐입니다.
예술이 도덕(윤리)를 넘어선 않된다는 것은 저의 소신입니다.
감사합니다.
제목이 흥미로워 읽고 싶은 책이었는데 선배님께서 읽으신 줄거리를 올려주셨네요.
저도 사실은 채식주의거든요.ㅎㅎ 선배님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주변에 아는 친구들도 채식주의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두 건강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선승들의 말에 의하면 푸성귀가 사람의 혼을 맑게한다더군요......
감사합니다.
'채식주의자' 그런 책이었군요.
기회되면 한번쯤 읽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더니
전해주시는 독후감으로 미루어 제게는 난해한
글이겠다싶네요. 귀한 정보를 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구 방장님! 무슨 말씀을 ......
시대에 뒤처진 저 같은 사람이 읽는 건 오직 호기심에서 입니다.
국내 제 주의에서의 반응보다 영국이 열광하는 이유가 아리송 합니다.
감사합니다.
최근 약간의 뉴스 거리가 되어 관심만 있었는데 이처럼 자세한 내용을 알게되니 그져 고마울 따름입니다
의학과 예술 그리고 포르노 경계위를 곡예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경향이 많고
현실성은 떨어진 느낌입니다
정말 그렇군요!
곡예 참 적절한 표현입니다.
모든 걸 꾀뚫어 보시는 임의 예지가 부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제 딸이 읽고 있던데 다 읽고나면 한 번 읽어보려 했는데
님 덕분에 줄거리를 알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젊은 세대들의 느낌은 어떨지 모르겠군요?
아무래도 노년층과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십습니다.
축약된 채식주의자를 잘 읽었습니다.
한 번 꼭 읽어보려고 했는데
대충 내용을 알겠네요.
기회가 되면 읽어보겠습니다.
읽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겠지만
큰 상을 받은 것에대한 기대가에는 미치지 못한 것 아니냐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댓ㄷ글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채식주의와 성적인 유희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큰 상을 받은 작품이니
함부로 평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궁금하던 내용이었는데요, 감사히 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작품을 읽고 가슴에 와닿는 느낌보다 상의 비중이 더 무겁게 느껴지더군요!
영국이 환호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얼른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