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에서 참패한 정부와 여권이 민심을 추스를 첫 단추는 총리 교체 카드일 것일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으로선 사의를 표명한 한덕수 총리 후임에 누구를 발탁할지가 국정수습 및 쇄신의지를 드러낼 기회이고, 향후 대통령의 국정 협치 의지를 평가할 가늠자이기도 할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임기 5년 전부를 여소야대, 그것도 이번 22대 국회에선 ‘반윤석열’로 뭉친 야권 192석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거국내각에 준하는 효과를 낼 총리가 요청되는 정치지형이라고 합니다.
국민의힘이 개헌저지선을 단 8석 넘긴 위중한 상황까지 감안하면 단순 ‘관리형’보다 강한 변화를 상징할 ‘정무형’ 발탁이 필요해 보이는데, 국민적 신망과 개혁성·도덕성을 겸비했다면 야권 인사에게라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언론에 거론된 몇몇 인사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에서 “용산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반응이 나온 것을 대통령실이 흘려들어선 안 될 것입니다.
야당의 허를 찌를 만큼 이념·지역·세대갈등을 넘어선 국민통합형 총리가 절실하고 또 실제로 총리 후보자 임명은 야당이 다수인 국회에서 과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통합형 총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총리 지명이 국민이 공감할 수준이라면 악조건 속에 국정동력을 찾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상황에서 총선 민의를 고려하면 속도감 있는 조치가 이어져야 할 것인데 지금 하마평에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 좀 황당합니다.
무슨, 권영세, 김한길, 홍준표 같은 사람들 이름이 나오는지 걱정입니다. 왜 폭 넓게 찾지 않고 주변에서만 사람을 선택하려한다면 또 다른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더불어민주당의 살짝 과반승 정도로 봤다.
여기에 조국혁신당 등을 합쳐 반윤 진영이 다시 국회 주도권을 유지하겠지만 그래도 21대 총선만큼의 일방게임은 아니라고 예단했다. 그동안 대통령과 대표를 필두로 양당이 쌓아온 적폐의 총량을 비슷하게 본 때문이었다. 이 정도로도 윤석열 정권엔 끔찍한 결과였을 터였다. 그런데 이조차 대단한 착시였다.
집권 2년까지는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웬만큼은 유지된다. 이 시기 선거면 당연 여당에 유리해야 마땅하다. 집권 4년 차 초입에 치러진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의 이례적 압승은 코로나19 방역이라는 특수상황에 힘입은 것이었다.
대북 굴욕과 조국 장관 임명 건으로 정권 지지율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이를 반전시킨 건 전적으로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 공이었다.
그러므로 집권 2년도 되기 전인 이번 총선 결과 또한 이례적이다. 차마 안 된 말이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파면에 가깝다. 최근 호남 정계에 밝은 지인이 이낙연 같은 거물이 어떻게 10%대 지지율에 묶여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 명료하게 답했다.
“윤석열과 치열하게 싸우지 않았기 때문.” 호남에서 조국당 지지세가 유독 강한 만큼 반이재명 정서도 큰 걸 감안하면 진보적 지역 특성으로 보아 넘길 것도 아니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전반적 반감이 이재명 대표의 그 많은 흠결도 묻을 만큼 깊고도 넓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그렇게 당이 가장 큰 선택요인이 됐다. 그 안에서도 투쟁성이 두드러진 후보들이 거의 살아남았고, 지독한 막말과 편법대출로 지탄받았던 김준혁 양문석까지 고지를 넘었다. 윤석열 심판 공약만으로 3당을 꿰찬 조국혁신당의 기막힌 성공은 말할 것도 없다.
묻지마식 무조건 심판선거였던 것이다. 반대편도 마찬가지다. 이준석도 윤 대통령과의 당돌한 맞짱으로 평가받은 셈이고, 기억엔 없지만 안철수가 “대통령에게 쓴 소리했다”고 강조한 것도 난적 이광재를 제친 요인이 됐다. 대통령에게 욕하고 대든 경력이 여야불문 가장 유효한 전략이었다.
양당의 의석분포가 21대 국회와 비슷하니 윤 대통령의 통치여건이 별반 달라진 것 없다는 애처로운 자위론도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결정적 차이는 공천권이나 주요 보직 임면권 등에서 비롯되는 장악력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거꾸로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을 정치적 성장 동력으로 삼는 현상이 여권 내부에서 일상화할 것이다. 함께 미운털이 박혀 급해진 검찰도 더는 호락호락하게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밖으로는 복수의 칼을 가는 거대 야당진영에, 안으론 영(令)이 서지 않는 여권진영으로 둘러쳐진 포위망에 갇힌 형국이다.
물론 출구가 전혀 없지는 않다. 대신 국민의 마음을 돌려세우면 된다. 민심은 늘 출렁이는 법이므로. 지지율을 크게 높이면 정치적 권위도 회복할 수 있다.
윤 대통령도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여기 전제는 철저한 반성과 자기쇄신이다. 그에 대한 반감은 정책보다 독선, 오만, 불통, 불공정과 같은 정의적 요인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그런 모습을 보여야 내각을 전면개편하거나 나아가 거국내각을 꾸려도 진정성을 인정받을 것이다. 관건은 부인을 포함한 주변 문제에서부터 공정을 세우고 국민 앞에 겸손해지는 것이다.
“총선에서 다수당이 못 되면 식물대통령이 될 것”임을 일찌감치 인식하고도 내내 표 떨어지는 언행만 거듭했고, 보수언론에서조차 안타까운 고언을 수없이 쏟아냈는데도 오불관언이었던 그다.
비로소 그 쓰디쓴 후과를 받아 든 지금, 윤 대통령은 과연 변할 수 있을까?>한국일보. 이준희 고문
출처 : 한국일보. 오피니언 이준희 칼럼, 윤대통령이 과연 변할 수 있을까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의 끝 부분에서 당시 임금의 총애를 받는 이완 대장이 허생을 찾아와 청나라와 전쟁에서 이길 방법을 물었을 때, 허생이 답변을 한 것은 세 가지인데 그게 다 너무 혁신적이어서 당시 왕과 조정에서 받아드릴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다 어렵다고 이완이 대답하자, 그럼 무슨 수로 전정을 이기겠다는 얘기냐면서 허생이 칼을 뽑자 이완이 혼비백산해서 도망갔습니다.
지금 형국이 꼭 그런 상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