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단 그룹 B - 지휘 : 에르빈 롬멜
(제 2팬저기갑사단.제 21팬저기갑사단.제 116팬저사단)
야전사령관인 에르빈 롬멜의 육군단 그룹B는 두개의 군단이 포함되어 있었다.
벨기에의 남서쪽해안지대와 세느강의 하구와 둑을 방어하는
한스 폰 살무스 대장이 이끄는 제 15군
세느와 로와사이의 프랑스 해안지대의 방어를 맡은 프리드리히 돌만 대장의 제 7군이다.
애초의 파 드 깔레지역이 15군에 장악되고 에르빈 롬멜원수가 이 두군단을 지휘함에 따라
이 두군단은 더욱더 강해졌다.
15군과 7군에 배속된 3개의 팬저기갑사단은 롬멜이 원하는 대로
연합군의 상륙을 바로 저지할 수 있도록 해안 가까이에 주둔하고 있었다.
1. 제 2팬저기갑사단
제 2팬저기갑사단은 2차대전사 독일군의 가장 오래된 기갑사단중의 하나이다.
1934년 버르츠버그 근교에서 창설되어 2차대전이 발발함으로 부터 독일군의 주요전투에
더의 다 참가하였다.
제 2팬저기갑사단은 1939년 폴란드침공당시 그 선두에 섰으며,
1940년 5월 연합군의 덩케르크철수작전당시에도 상당한 공을 세웠다.
또한 1941년 이 기갑사단은 영국해협에서 모스크바관문까지 이동을 했으며,
모스크바진격전에서 여느 중대유닛이 크렘린장벽을 보았다는 보고를 하였지만,
1942년초 소련의 겨울공세에 밀려 후퇴하였다.
1944년 6월 제 2팬저기갑사단은 파 드 깔라 지역의 아미엥외곽에 주둔하고 있었다.
실레병력은 16,500명으로 기록된 18,000명보다 조금 적었으며,
기갑전력으로는 94대의 마크4전차,67대의 마크5팬더,13대의 타이거전차를 포함하고있었다.
이 기갑사단은 노르망디상륙작전 6일후에 힘겹게 세느강을 지나 겨우 노르망디에 도착했다.
2. 제 21팬저기갑사단
제 21팬저기갑사단은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1940년 제 5경기갑사단으로 창설되었다.
이 기갑사단은 롬멜의 아프리카군단의 공격부대의 일원으로 북 아프리카에 배속되어
토부룩주변의 모든전투와 토부룩전투에 참가하였다.
1941년 제 5경기갑사단은 104팬저그레나디에르 여단을 통합하여 새로운 편성을 하게되고
바로 제 21팬저기갑사단으로 바뀌게 된다.
이 기갑사단은 1942년 11월 엘 알라메인전투에서 영국군을 상대로 상당한 공을 세우고
튀니지아의 캐서린협곡전투에서 미군을 격파하게되지만,
1943년 5월 비제르트항구방어전에서 완전히 전멸한다.
그리하여 두번째 제 21팬저기갑사단은 1943년 가을에 다시 창설되는데,
1940년 노획한 프랑스 소뮤아전차와 장비들이 사용되고 그 전력은 여타 다른 기갑사단에
비하여 월등히 낮았다.
이 사단은 서유럽에 배치된 기갑사단중 유일하게 러시아동부전선에 투입되지않았으며,
1944년 6월 카엥근처의 노르망디해안에 주둔하고 있었다.
소드비치 왼쪽 10마일정도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으며
에드가 푸쉬팅거중장이 지휘하는 이 사단은 연합군은 상륙작전날 처음으로 도착한
유일한 독일기갑사단이었다.
3. 제 116팬저기갑사단
(통칭, 그레이하운드 기갑사단)
116팬저기갑사단은 원래 제 16기계화 보병사단으로 조직되었다.
이 보병사단은 소련침공에 배속되어 전투를 치르면서 16팬저그레나디에르 사단으로
재편되었다.
1942년 이 사단의 정찰중대가 카스피해에 위치한 아스트라칸 20마일지점까지 이동하는등
소련침공당시 전투에 참가한 독일부대중 가장 동쪽으로 멀리 진격한 사단이 되기도 했다.
1943년 쿠르스크대전투이후 16팬저그레나디에르사단은 거의 괴멸되다시피했으며,
남은 잔존병력은 네델란드에 위치한 제 179예비팬저사단과 통합이 되었고,
15군의 일원으로 이 사단은 1944년 6월 파 드 깔라지역으로 이동하여 주둔했으며
이 팬저사단은 7월중순까지도 노르망디 전선으로 이동하지 못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저와 관심사가 같군요. 따로 메일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