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궁인] 용비봉무 龍飛鳳舞(2권) 12. 北京의 밤

[ㅎHㅅiㅅi]

第十二章  北京의 밤


북경(北京)의 화려함은 중원의 으뜸이다.
대명제국(大明帝國)의 황실(皇室)이 뿌리내린 후 북경은 공히 천하의 중심지가 되었다.
사통팔달(四通八達)한 거리에는 먼지 한 점이 없을 정도였고 모든 대로는 반듯한 청석으로 포장되어 있어 문자 그대로 탄탄대로였다. 따라서 지나는 마차들은 바퀴 굴러가는 소리만 날 뿐 거의 흔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북경에는 수많은 건물이 밀집되어 있었다. 특히 자금성 주변으로는 금전옥루(金殿玉樓)의 대저택들이 즐비하게 자리잡은 채 추녀와 추녀를 맞대고 있었다.
특히 상가나 객점의 번성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곳에는 사시사철 중원 각처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연일 북적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며칠간 북경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것은 대과(大科)가 불과 보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용소군은 지난 열흘 동안 한 객점의 방안에서 줄곧 책만 읽고 있었다. 창가의 햇살을 받으며 이따금씩 책장을 넘기고 있는 그의 표정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었다. 실제 그의 내심은 그다지 평온하지가 못했다. 따라서 책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책장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소군은 수많은 인파들 사이에서 사위를 둘러보며 걷고 있었다. 그는 북경에 온 지는 벌써 열흘이 되었지만 거리를 구경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번화한 거리와 고구거각의 대저택,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둘러보며 자신도 모르게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천하의 주인이자 북경의 주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행복한 표정이 아니었다.)
용소군의 고개는 절로 끄덕여졌다.
(하긴 일국의 제왕이라고 한들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권력이나 부귀영화란 오히려 무거운 짐일 수도 있다. 황제의 권좌란 겉으로는 화려할지 몰라도 물거품처럼 허망한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그의 눈에 북경루(北京樓)라고 쓴 주루의 편액이 보였다. 그는 무심코 발걸음을 그곳으로 향했다.
용소군이 주루의 이층에 오르자 점원이 재빨리 달려왔다.
[헤헤! 어서 옵쇼, 공자님.]
점원은 눈치가 빨랐다. 자리가 꽉 차 있었으나 얼른 주위를 살피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적당히 합석시킬 곳을 찾아냈다.
그 자리는 네 명의 젊은 선비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용소군은 잠시 후 그곳으로 안내되었다. 선비들도 용소군의 순후한 인상에서 호감을 느꼈던지 합석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용소군은 그들과 통성명을 했다. 그들은 서로간에 고향친구 사이로 모두 이번 대과를 치르기 위해 온 것이었다.
좌중은 곧 이야기꽃을 피우게 되었다. 문사들이라 자연히 대화의 초점은 학문과 예술에 관한 쪽으로 쏠렸다. 문사들은 각자 열을 올리며 토론에 열중이었다. 다만 용소군은 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것은 그다지 흥미가 일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의 대화 내용은 용소군의 입장에서 볼 때에 평이한 수준이었다. 용소군은 묵묵히 경청하는 듯 했으나 어느덧 관심은 그들에게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만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문득 탁자 위에 한 자루의 육중한 철검(鐵劍)이 놓였다.
문사들이 깜짝 놀랐다. 순간 그들의 귀에 한 가닥 청아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오랜만이군요! 얼치기 서생나리?]
고운 음성과는 달리 당돌한 말투였다. 그 바람에 문사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 음성의 주인에게 쏠렸다.
언제 나타났는지 탁자 앞에는 한 명의 당차게 생긴 흑의미녀가 서 있었다. 헌칠한 키에 여염집 여인들과 달리 강인한 인상을 주는 미인이었다.
용소군은 그녀를 보자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반색을 했다.
[아! 백소저.]
그렇다. 그녀는 바로 철접 백빙아였다.
백빙아는 용소군을 내려다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는 특유의 오만함이 깃든 미소였다. 그러나 이때 문사들은 한결같이 넋을 잃고 있었다.
그들은 백빙아의 미모에 한결같이 가슴이 울렁거리는 모양이었다. 물론 백빙아의 정체를 알 리 없는 그들은 단지 그녀의 용모만을 보고 혹한 것이었다. 동시에 그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용소군을 바라 보았다.
(이 용형과 저 미녀는 무슨 사이일까?)
한결같은 그들의 의문이었다. 이때 백빙아는 용소군을 향해 입을 열었다.
[몇 달 만이군요. 대체 그동안 어디 있었죠?]
그녀도 퍽이나 반가운 기색이었다. 용소군은 담담히 대답했다.
[여기저기 방랑을 했소.]
백빙아는 대담한 시선으로 용소군을 훑어보더니 가볍게 코웃음쳤다.
[흥! 차림새하고는..... 여전히 피곤한 글벌레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군요?]
용소군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미 백빙아의 성격을 환히 알고 있으므로 조금도 불쾌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백빙아는 힐끗 문사들을 둘러 보더니 말했다.
[앞으론 이 얼빠진 책귀신들하고만 어울리기로 작정했나요?]
그 말에 문사들의 일제히 얼굴이 일제히 구겨졌다.
(얼빠진 책 귀신?)
어쨌든 그들도 명색이 불알 두 쪽 찬 사내로서 그런 말을 고분고분 들어줄 수만은 없었다.
급기야 그들 중 한 명이 벌떡 일어나더니 백빙아를 노려보며 말했다.
[소저, 말씀이 너무 지나치지 않소? 헉!]
서생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그의 눈은 한껏 크게 떠진 채 탁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탁자 위에 젓가락 한 개가 박혀 들어가고 있었다. 백빙아는 한 손가락으로 젓가락을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그러자 젓가락은 단단한 탁자를 뚫고 깊숙이 박혀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백빙아는 손가락으로 젓가락을 흔적도 없이 깊이 박아버리더니 서생의 눈앞에 얼굴을 바짝 갖다댔다.
[뭐라고 했지? 그래서 나와 칼싸움이라도 한판 벌여보겠다는 건가?]
서생은 안색이 핼쓱해지고 말았다. 다른 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만 오금이 저리고 말았다.
(저럴 수가!)
이어 문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슬며시 엉덩이를 들었다. 그들은 언제 따졌나 싶게 그대로 줄행랑을 놓아버렸다. 백빙아는 허리에 손을 척 얹더니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호! 덕분에 쉽게 자리를 얻었군.]
용소군은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백빙아는 그의 앞자리에 앉으며 어투를 바꾸어 말했다.
[호호! 아무튼 당신을 이곳에서 만나다니 의외군요.]
그녀는 고개를 돌려 외쳤다.
[이봐, 점소이!]
점원은 그녀의 고함에 깜짝 놀라 날 듯이 달려왔다.
[여기 소고기 두 접시하고 죽엽청 두 병을 가져와. 죽엽청은 독한 사천산으로. 알아들었느냐?]
점원은 한낱 여자가 일방적으로 하대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손님은 왕이지 않은가?
[예!]
그는 군말없이 주방으로 달려갔다. 이윽고 술과 음식이 나오자 백빙아는 술잔을 들어올렸다.
[자! 우리 건배해요.]
그녀의 태도는 영웅호걸이 무색할 정도로 호탕하기 그지 없었다. 용소군은 빙긋 웃으며 술잔을 마주 들었다.
[소저는 여전히 시원시원하구려.]
그러나 백빙아는 그의 말은 무시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부터 했다.
[그동안 당신은 어떻게 지냈죠?]
용소군은 문득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남자처럼 구는 백빙아가 몹시 편했다. 그녀는 여인이라기보다는 마치 오랜 지기(知己)를 대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죽엽청을 나누며 대화를 나누었다.
용소군은 그동안 경험했던 일들을 숨김없이 이야기해 주었다. 백빙아는 흥미있는 표정으로 그녀답지 않게(?) 경청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은 언뜻 보기에는 한 쌍의 다정한 연인들처럼 보였다. 흡사 정담을 나누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백빙아의 눈썹이 매섭게 치켜 올라갔다. 용소군이 중조산에서 파율을 만난 대목에 이르렀을 때였다.
[파율?]
백빙아는 싸늘하게 코웃음쳤다.
[흥! 그 원숭이 종자가 아직 살아 있었단 말인가요?]
[그렇소. 당시에는.....]
용소군은 그녀에게 중조산에서 있었던 갖가지 일화들을 간략히 요약해 들려주었다. 그런데 희수빈의 이야기가 나오자 백빙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쯧! 별 희안한 여자도 다 있군.]
특히 산 속 통나무집에서 희수빈이 발작했던 일을 이야기하자 백빙아는 안색이 약간 변했다.
[그런 일이.....?]
문득 그녀는 짖궂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호호! 그럼 그녀의 모든 것을 다 봤겠군요?]
용소군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셈이오.]
[그녀의 몸매는 어떻던가요?]
용소군은 실소를 터뜨렸다. 그는 문득 백빙아의 아래위를 야릇한(?) 시선으로 훑어보며 말했다.
[내가 보기엔 소저보다는 조금 못했던 것 같소이다.]
[뭐예요!]
백빙아는 들고 있던 술잔을 집어던지는 시늉을 했다.
[하하! 농담이오, 농담.]
용소군은 씩 웃고 나서 계속 이야기했다. 그러다 그가 희수빈의 가슴에 새겨진 붉은 거미의 문신을 말하자 백빙아의 안색이 다시 변했다.
[거미 문신?]
백빙아의 얼굴에는 짙은 의혹이 스쳤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만면에 싸늘한 한기가 덮였다.
[어떤 위인인지 정말 고약한 작자로군! 여인의 가슴에 그런 문신을 새기다니.....]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붉은 거미문신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있어요. 그것은 묘강(苗疆) 지방에서 한때 유행했던 것으로, 여자와 관계한 후 그 여자가 자신의 소유라는 징표로서 몸에 새긴다고 들었어요.]
[으음.....]
[하지만 지금은 묘강에서조차 사라진 풍습으로 들었는데 아직도 그런 행위를 저지르는 자가 있었다니.....]
백빙아는 차갑게 말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소유욕의 표현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알고 보면 결코 애정이라고 할 수 없어요. 다만 변태적인 행위의 일환일 뿐이죠. 안 그래요?]
문득 그녀는 입가에 괴상한 웃음을 흘리며 반문했다.
[훗훗..... 그런데 당신은 그녀의 알몸을 안고 뒹굴면서도 정말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요?]
용소군은 그 말에 정색을 했다.
[무슨 말을 하자는 것이오?]
[호호호호.....!]
백빙아는 무엇이 우스운지 허리까지 비틀어대며 마구 웃어제끼고 있었다. 용소군은 문득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백빙아의 대범한 모습에서 기이하게 매력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는 다시 야차성(夜叉城)에 들어가서 벌어진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백빙아는 갑자기 술잔을 턱 내려 놓았다.
[유엽도와 난초 향기?]
용소군은 그녀가 큰 반응을 보이자 급히 물었다.
[아는 바가 있소?]
백빙아는 무거운 표정을 지은 채 두 눈에 곤혹스러운 빛을 띄었다. 그러나 대답을 하지 않았다.
[소저, 짚히는 것이라도 있소?]
[아니예요. 아무 것도.....]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얼버무리려 했다. 그러나 심각한 표정으로 재차 묻고 있었다.
[그 유엽도는 어디에 꽂혀 있었나요?]
[정확히 파율의 목 천돌혈에 꽂혀 있었소.]
[음!]
백빙아의 얼굴에 곤혹감이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용소군은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백소저는 무엇인가 알고 있구나.)
그의 시선을 의식한 듯 백빙아는 씩 웃었다.
[아무튼 당신은 그동안 많은 경험을 했군요.]
용소군은 내심 쓴 입맛을 다셨다.
(말꼬리를 돌리려 하는군.)
그러나 그는 구태여 그녀를 추궁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녀 스스로 입을 열기 전에는 억지로 물어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호호호! 어쨌든 당신은 여복이 터진 사람이에요. 미녀들의 알몸을 그렇게 실컷 구경했으니 말이에요.]
백빙아의 너스레에 용소군은 그저 미소로 답했을 따름이었다. 그는 술을 한 모금 마신 후 물었다.
[그동안 소저야말로 어떻게 지내셨소?]
백빙아는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별 일 없었어요. 게다가 이곳에 온 지 보름밖에 안 됐어요.]
(얘기하고 싶지 않은가 보군.)
용소군은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이때였다.
창 밖으로부터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용소군은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창가의 자리에 앉아 있었으므로 창 밖을 내다 볼 수 있었다.
창 아래는 막바로 관도였는데 지금 한 필의 말이 질주하고 있었다. 마상의 인물을 본 순간 용소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륜교도(金輪敎徒)로군.)
마상의 인물은 이마 한복판에 금색 종이를 붙이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백빙아가 자리를 털며 일어났다.
[먼저 가 봐야겠어요.]
용소군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태도에 흠칫했다. 백빙아는 생긋 웃으며 물었다.
[당신은 어느 객점에 머물고 있죠?]
[북평객원(北平客院)이오.]
[좋아요. 내일 쯤 찾아가 보죠. 그때는 지난 번 말없이 도망간 것도 따져볼 작정이니 각오하고 있어야 할 걸요?]
말을 마치자 마자 그녀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그녀는 앉은 자세 그대로 창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실로 절묘한 경신술이었다.
마침 그들 쪽으로 걸어오고 있던 점원은 그 광경을 보더니 너무도 놀라 들고 있던 접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귀..... 귀신이닷!)
점원은 안색이 백짓장처럼 창백해지고 있었다.
용소군은 객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창 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치 철의 꽃(鐵花)과도 같은 여인이야. 그녀는.....]
그는 얼마 전에 헤어진 백빙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를 떠올리기만 하면 어쩐지 가슴이 훈훈해지는 느낌이었다.
창 밖은 화원이었다.
그가 묵고 있는 곳은 북평객원의 후원에 위치한 상방으로 다른 객원과는 달리 한적한 곳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정적이 깨지고 말았다. 객점 점원의 곤란해 마지않는 음성이 들려온 것이다.
[안됩니다. 맹수는 객점 안으로 들여갈 수 없습니다.]
그러자 한 가닥 날카로운 교성이 들렸다.
[이것 봐! 그러니까 돈을 더 준다는 것이 아니냐?]
[소저, 아무리 그래도.....]
용소군은 귀를 기울였다.
(귀에 익은 음성인데?)
그는 잠시 생각해 보았으나 음성의 주인이 잘 떠오르지 않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그는 객방을 나서다 말고 멈칫했다. 괴이한 복장을 한 소녀가 점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허벅지와 하얀 팔뚝까지 다 노출된 짧은 옷을 입은 소녀였다. 그녀는 눈처럼 흰털을 가진 표범을 데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용소군은 자신도 모르게 고소하고 말았다.
(바로 그녀였군.)
괴소녀는 표범을 데리고 객점에 묵겠다고 우겨서 점원과 다투고 있는 모양이었다. 주인이 
점원과 말다툼을 벌이는 동안 표범은 곁에 웅크린 채 낮게 크르릉 거리고 있었다.
[정말 안 됩니다. 다른 손님에게 폐가 됩니다.]
소녀는 억지를 쓰고 있었다.
[왜 안 돼? 그렇다면 객점 모두를 세 내면 될 게 아니야?]
양손을 허리에 올린 채 앙칼지게 내지르는 소녀 앞에서 점원은 쩔쩔 매고 있었다. 그녀의 막무가내에도 질렸지만 바로 곁에서 으르렁거리고 있는 맹수로 인해 잔뜩 겁을 집어먹은 그는 내내 울상이었다.
[비록 손님이 한 분밖에 안 계시지만 그 분은 점잖으신 선비님입니다. 그런데 어찌 이제와서 나가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소녀는 점점 더 방약무인이었다.
[임마! 돈을 돌려 준다는데 뭐가 문제야?]
(임마?)
점원의 표정이 황당해졌다. 아무리 점원 생활을 한다지만 근자에 들어 나이 어린 계집에게 이같은 욕은 들어본 일이 없었다.
(으이그, 생각 같아서는 그저 이 계집애를!)
그는 내심 울화가 치밀었으나 한쪽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표범이 눈에 들어오자 금세 움츠러들고 말았다. 단지 으르릉거리는 소리만으로도 오줌이 나올 지경이니 어쩌겠는가?
[점원. 난 괜찮으니 들여 보내도 좋네.]
한 가닥 낭랑하고도 부드러운 음성이 점원의 귀에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점원은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점원과 소녀는 동시에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용소군이 서 있었다.
용소군을 발견한 소녀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어머!]
그녀의 놀란 듯한 소리가 들렸다. 반면에 표범은 그에게 호되게 당한 기억이 났는지 얼른 꼬리를 말고 소녀의 뒤로 숨어들고 있었다.
[당신! 여기 있었군요?]
소녀는 갑자기 껑충 뛰다시피 달려와 용소군의 손을 잡았다. 그러더니 신이 난 듯 잡은 손을 마구 흔들어대는 것이었다.
[당신을 찾으려고 북경성을 죄다 뒤졌다구요!]
용소군은 어리둥절하여 되물었다.
[날 말이오?]
[네, 호호! 제 오빠는 지금까지도 열심히 당신을 찾고 있어요.]
[오빠? 그 분이 왜 날 찾는단 말이오?]
소녀는 생긋 웃더니 커다란 눈을 좌우로 예쁘게 굴렸다.
[왜는요? 나 유리가 당신을 찍었으니까 그렇죠.]
(찍었다고?)
용소군은 그만 멍청해지고 말았다. 그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소녀를 바라 보았다.
자칭 유리(琉璃)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괴소녀. 그녀가 나타나는 순간 모든 것은 엉망이 되고 있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왕왕 자신도 모르게 어처구니없는 경우에 빠지게 되는 수가 있다. 용소군이 바로 그런 상태였다.
그는 유리로 인해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지고 말았다.
유리는 뭐가 좋은지 연신 생글생글 웃으며 그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단 한 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용소군은 식사도 마음놓고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식사를 시키면 그녀는 여지없이 그 옆에서 그와 똑같은 음식을 일 인분 더 시켰다.
어디 그뿐인가? 측간엘 가도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이건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예 그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불문하고 따라붙을 심산인 것 같았다.
용소군은 그만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차라리 누군가 그에게 시비를 걸어오기라도 한다면 때리든 맞든 빠른 해결을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도무지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그는 우문사로부터도 이런 경우에 대해서는 대응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는 유리로 인해 머리가 혼란해질 지경이었다.
그날 저녁 무렵, 자칭 유리의 오빠라는 인물이 객원으로 찾아왔다. 그제서야 용소군은 살았다 싶었다. 같은 남자끼리 대화를 하면 고충을 덜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태무렴(泰武斂)이라고 했다.
그는 갈색 피부를 지닌 건장한 청년이었다. 그는 객청에 멋대로 술자리를 마련해놓고 그를 부른 것이었다.
[유리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누이동생이오.]
태무렴은 일방적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는 술잔을 들어 단숨에 마신 후 말했다.
[유리는 어릴 적부터 내가 키우다시피 했소. 따라서 난 지금까지도 그 애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건 다 들어주고 있소.]
용소군은 예의상 담담히 말했다.
[유리는 귀여운 아가씨요.]
그러나 태무렴은 농담이라고는 모르는 사나이였다.
그의 말투는 딱딱하기 그지없었고 표정도 온통 무뚝뚝하기만 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니 정말 다행이오.]
[.....?]
용소군은 웬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다 다를까? 그 예감은 적중하고야 말았다. 태무렴은 호랑이를 닮은 눈으로 그를 똑바로 주시하며 말했다.
[얼마 전부터 그 아이에게 한 가지 문제가 생겼소.]
용소군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떤 문제가.....?]
태무렴은 심각하게 말을 이었다.
[그 아이는 눈이 높아 남자를 너무 고르다 그만 혼기를 놓쳐버린 것이오.]
용소군은 하마터면 술이 목구멍에 걸릴 뻔 했다.
(혼기를 놓쳤다고?)
용소군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혼기를 놓쳐서 뭘 어쩌란 말인가? 그는 유리는 물론 유리의 오빠라는 태무렴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인간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태무렴의 딱딱한 음성이 이어졌다.
[용형도 느꼈겠지만 나나 유리는 중원인이 아니오. 게다가 우리 부족은 여자들을 조혼시키는 풍습이 있소.]
용소군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태무렴은 계속하여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어쨌든 난 항상 이 문제로 고민해 왔는데 용형 덕분에 드디어 해결점을 찾게 되었소.]
용소군은 그만 기분이 이상해지고 말았다.
실상 그가 태무렴을 만나 이야기하려 했던 것은 바로 자신을 귀찮도록 따라다니는 유리를 좀 떼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일은 전혀 엉뚱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오히려 태무렴은 한 술 더 뜨려 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이오?]
용소군이 비로소 정색을 하며 묻자 태무렴은 도리어 눈살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왜 잘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이오?]
그는 화가 치미는지 더욱 퉁명스럽게 말했다.
[유리의 말이 용형이 마음에 든다고 했소. 그러니 오빠된 사람으로 마음이 놓이는 거야 당연하지 않소?]
용소군은 갑자기 피곤이 엄습해 왔다.
(정말 어쩔 수 없는 남매로군. 날이 새도록 이야기해 보았자 입만 아프겠다.)
그는 여러 가지로 벗어날 궁리를 해보다가 마침내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
(할 수 없군! 최후의 방법을 쓰는 수밖에.....)
이런 일에는 달리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그는 삼십육계의 최후책을 떠올리고 있었다.
태무렴은 다시 술을 한 잔 단숨에 비우며 말했다.
[난 원래 신강의 융새(隆塞)란 곳에서 왔소. 융새의 소람고원에 있는 적룡사원(赤龍寺院)이 바로 나의 고향이오.]
용소군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적룡사원? 맙소사! 그렇다면 큰 일이 아닌가?)
그는 내내 귓전으로 상대의 말을 흘리다가 문득 정신이 번쩍 들고 있었다.
적룡사원은 이른바 환희불(歡喜佛)을 모시는 사원으로 남녀간의 음양화합을 교리로 신봉하는 사교의 집단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교세는 변방과 천축에 널리 퍼져 있었다. 적룡사원은 바로 그들 집단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태무렴은 사뭇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내 아버님은 적룡사원의 대활불(大活佛)이시오. 그러나 난 아버님 슬하를 떠나 융새의 최대기인이신 신승 팔사파(八斯杷) 존자를 모시고 무공을 사사하였소.]
용소군은 아무런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 년 전 적룡사원으로 돌아가 아버님을 대행하여 사원의 일을 돌보았소. 하지만 이번에 중원에 들어오게 된 것은 단지 유리 때문이오. 그 아이가 하도 중원구경을 하겠다고 졸라 특별히 아버님께 허락을 구했던 것이오.]
용소군은 내심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래저래 도망칠 이유는 확실해진 셈이군. 더구나 이 무뚝뚝하고 고지식한 위인이야말로 동생을 끔찍히도 아끼니, 원.....)
이야기하는 동안 벌써 태무렴이 비운 술의 양은 대여섯 말이나 되었다. 그는 술이 떨어지면 즉각 점원을 불러 다시 시키곤 했던 것이다.
마침내 용소군은 서서히 진이 빠지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태무렴의 술친구가 되어 그의 재미없는 말을 들어 줄 의욕을 잃고 말았다.
결국 그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일어나며 그는 일부러 비틀거렸다.
[죄..... 죄송하외다. 술이 약해서 오늘은 이만 자야겠소.]
태무렴은 그를 노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럼 오늘은 쉬시오.]
용소군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 친구 아마 내가 유리를 버리면 잡아먹으려 들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소? 난 당신같이 무서운 처남을 가지고 싶지 않단 말이오.)
그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순간 그는 흠칫 굳어지고 말았다.
옆방에 불빛이 흘러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곳은 욕실이었다.
[호호호..... 안 돼, 그러지 마.]
욕실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은 유리의 음성이었다.
[아이, 아파! 너무하잖아.]
달콤하고 애교있는 음성과 함께 촤아, 하는 물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주인 없는 방에서 목욕을 하다니.....)
용소군은 어이가 없다못해 은근히 분노마저 일어났다. 유리라는 소녀가 허락도 없이 그의 방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였다. 욕실로부터 문득 숨 넘어가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호호호..... 안 돼! 거기는 하지 마.]
용소군은 그만 얼굴이 화끈거렸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그러나 욕실로부터 흘러나오는 소리는 점입가경이었다.
[아이, 너무 핥으면 기분이 이상하단 말이야.]
용소군은 그만 분노를 금치 못했다.
(맙소사! 어린 나이에!)
그는 고개를 흔들며 입술을 짓씹었다.
(적룡사원 출신이라더니 어쩔 수가 없구나.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것이라고는 한결같이 그렇고 그런 일일 테니.....)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문득 마음을 굳혔다.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거절할 구실이 마땅치 않았는데 중원의 법도를 내세워 이번 기회에 확실히 떼어낼 수도.)
용소군은 욕실의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
순간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가 본 것은 그의 상상을 완전히 벗어난 장면이었다.
욕실 안에서는 예상하던 풍경과 전혀 다른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그는 유리가 웬 남자와 함께 목욕을 하며 수상한(?) 짓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유리가 함께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백표범을 목욕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용소군은 그만 엄청난 착각을 했던 것이다.
유리는 그가 들어오자 활짝 웃으며 반색을 했다.
[어마! 이제 오시는 거예요?]
그녀는 발딱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티없는 웃음이 만개한 유리의 얼굴을 대하자 용소군은 슬며시 부끄러운 느낌이 들어 그만 외면하고 말았다. 그가 몸을 돌리자 유리는 쪼르르 따라오며 말했다.
[죄송해요. 기다리다 하도 심심해서 뭘할까 고민하다가 마침 물이 있기에 백아를 목욕시키는 중이었어요.]
백표범은 물 속에서 머리만 내밀고 용소군을 응시했다. 그 놈의 눈에는 여전히 겁먹은 빛이 깃들어 있었다.
유리는 용소군의 방으로 따라 들어오며 종알거렸다.
[아이 참! 백아놈이 장난치는 바람에 옷이 다 젖었버렸어요.]
문득 그녀는 옷을 훌렁 벗어제끼는 것이 아닌가? 미처 용소군이 만류하고 말고 할 사이도 없었다. 그녀는 상의를 순식간에 벗어버렸다.
놀랍게도 유리는 속에 아무 것도 입지 않고 있었다. 그 바람에 소담스런 두 개의 유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녀의 유방은 그리 크지는 않았으나 두 알의 오디 열매같은 젖꼭지는 제법 익은 채 간들간들 매달려 있었다.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용소군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너무도 놀라 일시지간 아무런 말도 못하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 보았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유리의 다음 행동이었다. 그녀는 짧기만한 치마마저 벗어 내리려 하는 것이었다. 
[유..... 유리소저! 지금 뭐하는 것이오?]
유리는 조금도 꺼리끼는 기색없이 대답했다.
[옷을 말리려고요.]
용소군은 얼른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더듬거렸다.
[그런데 왜 하필 여기서.....]
유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제 방으로 가면 당신과 얘기를 할 수 없는 걸요.]
용소군은 기가 막혔으나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라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남자 앞에서 옷을 벗는다는 것은 예의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오.]
유리는 그 말에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했다.
[우리 적룡사원에서는 남녀가 함께 목욕해요. 또한 환희대불께서 제를 참관하실 때는 아무도 옷을 입지 않아요.]
그녀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오빠하고는 매일 같이 목욕했는데.....]
(끄응! 말을 꺼낸 내가 어리석지.)
용소군은 그만 질려 버린 듯 입을 다물어 버리고는 문 쪽을 향해 걸어갔다. 어차피 말이 통하지 않는데다가 상반신을 벌거벗고 있는 유리를 면전에 두고 보기가 민망했기 때문이다.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소.]
[같이 가요!]
유리가 냉큼 따라나섰다.
용소군은 그만 두 손을 번쩍 들어보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등을 돌린 채 놀란 음성을 발했다.
[아니, 옷도 입지 않고 말이오?]
유리는 오히려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왜요? 옷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용소군의 등에서 식은 땀이 솟아났다.
[다른 사람들이 소저의 알몸을 봐도 상관없단 말이오?]
[그게 어때서요?]
말과 함께 유리는 용소군의 앞으로 재빨리 돌아왔다. 그 바람에 용소군은 바로 코 앞에서 아래 위로 크게 흔들리는 유리의 젖가슴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만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맙소사! 뭘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그러나 그의 내심을 알 리 없는 그녀는 허리에 두 손을 올린 채 따지듯 노려보고 있었다.
(가엾은.....)
용소군은 차라리 연민지심이 들어 친절하게 말해 주었다.
[소저, 여기는 중원이오. 적룡사원이 아니란 말이오. 만일 소저가 옷을 벗고 다니면 사람들이 모두 우습게 볼 것이오.]
유리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당신도 그런 가요?]
용소군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그럼 할 수 없군요. 전 방에서 옷을 말리고 있을께요.]
용소군은 내심 한숨을 토하며 밖으로 나왔다. 서늘한 밤바람을 쏘이자 그는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야. 어째서 내겐 이런 일만 벌어진단 말인가?)
그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때였다. 문득 귀에 익은 여인의 음성이 뒤에서 들려왔다.
[호호호! 당신은 주로 옷 잘 벗는 여자들과 인연이 있나 보군요?]
스슷! 하는 옷자락 날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앞에 한 인영이 떨어졌다. 그 인영은 바로 다름아닌 백빙아였다.
[아! 백소저.]
용소군의 반색에 백빙아는 묘한 표정으로 이죽거렸다.
[흥! 부럽군요. 오늘은 또 청순하기 그지없는 미소녀의 알몸을 보았으니 말이에요.]
용소군은 고소를 지으며 물었다.
[모두 보았소?]
백빙아는 짖궂게 웃었다.
[그래요. 하지만 당신의 재미를 깨뜨릴 것 같아 방해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용소군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흔들었다.
[재미? 그런 소리 마시오. 난 지금 도망갈 길만 찾고 있는 중이오.]
백빙아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그게 뜻대로 될까요?]
[무슨 말이오?]
백빙아는 여전히 재미있다는 듯 비아냥거렸다.
[당신은 저 두 남매의 무서움을 잘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이오?]
[호호! 저 두 남매의 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거죠. 저들로 말하자면 융새 최고의 마승인 팔사파의 독술(毒術)을 이어받아 독에 관한 한 천하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거예요.]
(으윽! 잘못 걸렸군.)
용소군의 표정이 무참하게 구겨지는 것을 보며 백빙아는 배꼽을 쥐고 웃었다.
[호호호! 당신은 꼼짝없이 말려 들었다구요. 더구나 유리란 계집은 겉으로는 순진한 척 하지만 영악하기 짝이 없어요. 이미 당신 몸에 천리향(千里香)을 발라 두었거든요?]
[천리향?]
[그건 그들만의 독문수법으로 일종의 향(香)이에요. 하지만 말이 향이지, 그것은 당신이 어디를 가더라도 그들을 벗어날 수 없게 하죠. 그들은 천리향의 냄새를 맡고 하늘 끝, 땅 끝까지라도 당신을 찾아낼 수 있단 말예요.]
[맙소사!]
용소군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태무렴과 유리는 당신을 완전히 옭아매려고 작정을 했어요. 그들은 의외로 음흉하고 끈질긴 자들이에요. 호호호! 안 됐지만 당신은 이제 고생문이 훤하게 열린 셈이죠.]
[끄응!]
용소군이 이마에 손을 얹으며 신음을 발하자 백빙아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골치 아플 게 뭐 있어요? 당신이 유리와 결혼하면 그만 아닌가요?]
용소군은 비로소 정색을 하며 말했다.
[백소저, 지금 농담하는 것이오?]
[호호홋!]
백빙아는 그의 눈을 주시하며 불쑥 물었다.
[그럼 내가 도와 줄까요?]
용소군은 귀가 번쩍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말이오?]
[천리향 냄새를 지워 드리죠.]
용소군은 반색을 하며 말했다.
[정말 지울 수 있소?]
[물론이에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용소군은 어떤 조건이라도 마다할 처지가 아니었다.
[말하시오. 어떤 요구라도 들어 드리겠소.]
백빙아는 눈을 반짝이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간단해요. 오늘 하루만 날 좀 도와 달라는 거예요.]
[좋소.]
용소군은 흔쾌히 대답했다. 그러자 백빙아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같이 가요.]
[자, 잠깐! 백소저, 천리향은.....]
그러나 그녀의 다음 말은 용소군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안심해요. 내가 벌써 지워 버렸으니까요.]
(아이쿠! 첩첩산중이로군.)
용소군은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서는 도시 그녀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기만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아무튼 여자들이란 믿을만한 존재들이 못 되는군.)
하긴 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여자들을 만났다. 그러나 그녀들로 인해 한 번도 고충을 겪지 않은 적이 없었다.
용소군은 먼저 신형을 날리고 있는 백빙아를 바라보다 할 수 없이 뒤따라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은 신형을 나란히 한 채 객점을 벗어나고 있었다. 문득 백빙아가 그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용공자, 한 가지 명심해 둘 게 있어요.]
[무엇이오?]
[난 다른 여자들관 달라요. 이 점 결코 오해 없기 바래요.]
용소군은 어리둥절했다. 
[무슨 뜻이오? 오해라니.....?]
[다시 말해 당신이 만난 여자들처럼 아무 데서나 옷벗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뭐요? 으하하하핫.....!]
용소군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일단 대소를 터뜨리고 나자 그는 비로소 마음이 풀어지며 유쾌한 기분이 되었다.
휙휙.....!
두 사람은 나란히 북경의 밤을 가로질렀다.

[여여풍]

감사합니다.

[슈퍼맨]

잼 납니다

[얼음골]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