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어리석은 질문이기도 하지만 도대체 왜 전쟁을 할까요? 처음 누가 일으키는 겁니까? 어찌 보면 아주 간단히 이야기해서, 없는 자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한다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전쟁은 있는 자가 일으키는 것입니다. 있으면 자기 있는 것으로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인생이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없는 자는 있기를 바라지만 있는 자는 더 있기를 바랍니다. 그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새로 만들 것 없이 있는 자의 것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대부분 없는 자가 나가서 목숨을 겁니다. 힘이 없으니 복종하지 않으면 죽기 때문입니다.
인구가 많아지고 나라가 커지니 국가 간의 전쟁의 규모도 커집니다. 많은 사람 곧 병사들이 동원되고 그와 더불어 여러 가지의 장비들이 구비됩니다. 전쟁터로 이동하면서 그에 따른 문화와 문명이 이동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인간사의 발전하는 계기도 됩니다. 수많은 사람이 이동하면서 그에 따른 부수적인 문제들이 생기고 해결되고 발전하는 것이지요. 엄청난 희생이 동반하지만 다른 면에서 그만큼 또 발전하게 됩니다. 아무튼 역사 속에 전쟁으로 말미암아 희생된 인생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인류사의 발전 속에 뿌려진 그 희생의 보답으로 우리가 여기까지 왔구나 생각하면 찡한 마음이 듭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문화와 문명이 거저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유명한 전쟁들이 있습니다. 잘 아는 대로 가까이 1,2차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아주 멀리 유럽의 페르시아 제국이 벌인 전쟁은 꽤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대 제국과 아테네, 스파르타 연합군 사이의 전쟁입니다.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페르시아 대제국의 엄청난 군사력과 그리스 소규모 두 도시국가의 연합군이 대결한 것입니다. 물론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위치한 그 지역이 유럽으로의 관문입니다. 그러니 자기 영향력을 넓히고 싶은 페르시아 제국으로서는 탐나는 곳입니다. 그냥 무릎 꿇고 내놓을 리는 만무하고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행하게 됩니다. 이미 중동 아시아 지역을 제패한 마당에 그 힘을 가지고 밀어붙이면 얼마든지 가능하리라 판단하였습니다. 저항해보았자 별수 없으리라 생각했겠지요.
잘 아는 대로 전쟁은 보이는 수와 양으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지도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양상이 매우 다르게 나타납니다. 커다란 전쟁 속에서 우리는 참 영웅을 만납니다. 그리스 도시국가와 페르시아 간의 전쟁은 마라톤 전투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십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육지와 해상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집니다. 마라톤 전투, 테르모필레 전투, 아르테미시온 해전과 살라미스 해전 등. 그 중에서도 테르모필레 전투는 영화 ‘300’으로도 유명해졌습니다. 잘 아는 대로 이 전쟁들을 치르며 페르시아 제국은 결국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많은 인명과 물자를 잃고서 어찌 오래 견디겠습니까? 얼마 후에 알렉산더 대왕에게 멸망을 당합니다.
영화는 바로 시발인 ‘마라톤 전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라톤’하면 바로 마라톤 경기를 떠올립니다. 승리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기나긴 여정을 쉬지 않고 달려 임무를 완수합니다. 그것을 기념하여 마라톤 경기는 올림픽의 꽃이 되었습니다. 평화롭게 살던 아테네 도시에 외적의 침입이라는 소식이 전해져옵니다. 항상 그렇지만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습니다. 더구나 내부의 적은 결정적 순간까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미 독재를 자행하던 지도자로 현재 쫓겨난 히피아스가 적과 한 패가 되어 침략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부에서 그를 도와 권력을 쟁취하려 도모하고 있습니다. 적이 안팎으로 있는 상황입니다.
반역자가 있으면 또한 애국자도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위기 때에 애국자가 되는 일은 자칫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손가락 하나 가지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손가락으로는 힘도 달라지고 다양한 능력도 생깁니다. 아테네나 스파르타가 각자의 능력으로는 페르시아를 대적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여태 적대시하며 경쟁하고 지내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매우 긴박합니다. 각자의 능력만 가지고는 각각 순서대로 망할 것이 뻔합니다. 그러니 함께 살기 위하여 연합합니다. 이야말로 국난의 때입니다. 각각의 이익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이유는 하나, 살기 위해서입니다.
아주 오래 전 만들어진 영화인 듯합니다. 1950년대 정도는 되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케이블 TV에서 보았는데 영화정보도 찾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역사 이야기 속에 흔히 하듯 사랑 이야기를 가미했습니다. 이야기 자체는 그러려니 하지만 오늘날의 영화 기술에 비하니 마치 어른과 유치원생 정도의 차이를 느낍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그렇다 치고 당시의 기술로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다지 길지 않은 상영시간이 다행이다 싶습니다. 영화 ‘마라톤 전투’를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