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 시인의 시집을 오랜만에 펼쳤다. 詩가 된, 아니 詩로 변한 엔딩 크레딧을 옮겨 본다.
이런 것도 시가 될 수 있다. 충분히---
제목은 <만든 사람들>이다.
만든 사람들
출연
석환 : 류승완
성빈 : 박성빈
상환 : 류승범
태훈 : 배중식
현수 : 김수현
특별 출연
이장호 고인배 기주봉
제공/(주)엔터테인먼트 공동 제작/(주)콘텐츠 그룹 기획/외유내강
감독 : 류승완
프로듀서 : 김성제
촬영 : 조용규 최영환
조명 : 김성관 김경건 박연일
편집 : 안병근
분장 : 박선지
동시 녹음 : 윤해진 이태규
음악 : 김동규
사운드 디자인 : 김동규 김성연
조감독 : 박정 김경수 김원석 김성수 김재영
기록 : 신진명 이동희
제작부 : 박성일 정재현
음향 : 라이브 톤
네가 편집 : 남나영 이수영
현상 : 할리우드 현상소
색 보정 : 이용기
텔레시네 와이드 비전 옵티컬 쿠알라 홍보 : 윤수정
스틸 : 이상욱
포스터 사진 : 강영호
광고 디자인 : 꽃 피는 봄이 오면 김혜진
―함성호「만든 사람들」『너무 아름다운 병』(문학과지성사, 2001) 111p
이런 게 어떻게 시가 될 수 있느냐고 묻는 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럼, 뭐가 시가 될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하고 싶어지는 詩다.
시가 시다워야 하고, 소설은 소설다워야 하고, 수필은 수필다워야---???
참, 재미없는 얘기다.
재미없어도
너무 재미없다.
그럼 이런 詩는 재미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재미없다.
이쯤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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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장난하는 거야, 라고 따지고 들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렇게 답해 줄 수는 있다.
전자에서, 재미없다, 라고 한 것은 남들도 다 그렇게 생각할 것 같기에 그런 것 뿐이고,
후자의, 재미없다, 라고 한 것은 그냥 내 생각일 뿐이라고---
그러면, 이렇게 얘기할지도 모른다.
그게 그거 아냐?
어떻게 그게 그겁니까?
아--- 돌아버리겠네.
남들도 다 그렇게 생각할 것, 이라는 것과 그냥 내 생각일 뿐, 이라는 게 어떻게 똑같을 수 있죠?
다시, 이쯤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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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지금 나하고 장난하자는 거야, 라며 소매 걷어붙이고, 침을 손바닥에 퉤, 내뱉으며, 멱살을 거머쥘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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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154 쪽을 펼친다.
평론가 정과리는 시인 함성호의 시집에 <목쉰 나무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해설을 붙였다.
지금까지 독자는 아주 이상한 독서의 유량을 겪었다. 이 유량은 서두에서 말한 함성호 시의 음역이 '최저 가청권' 아래에 있다는 진술을 살피기 위해서였는데, 살피기보다는 함께 겪을 수밖에 없는 유량이다. 그 유량 속에서 독자는 함성호 시의 의미(원인과 목적)가 즉각적으로 대답되지 않는 것을 본다. 그것은 시구로 대답되지 않고, 시구들 간의 관계를 통해 유추된다. 그 시구들 간의 관계는 때로는 시들 간의 상호 텍스트 관계에 의해서, 때로는 한 시 내 시구들이 형태적으로 분화하고 기능적으로 연계됨으로써 계속해서 질문을 발생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결핍투성이의 형태로 연장되고 얽혀 나간다. 요컨대, 함성호 시의 기본 문장은 'A는 B이다'라는 원형 은유가 아니다. 그것은 'A는 B가 아니라는 사실에 의해서, A와 B의 관계는 C와 D의 관계를 낳거나 그 관계 속에 삽입된다'이다.
<만든 사람들>과 비슷한 류의 시가 또 있다.
138 쪽을 펴 보면 <괴로움>이란 시가 실려 있다. 어떤 시냐 하면 '--註'가 나열된 구조다.
138~141 쪽까지 이어져 있는데 일부분만 옮겨 본다.
이것만 봐도, 어떤 詩인지 안다.
안 봐도 비디오다.^^
괴로움
--註
1) iti samaya rgya rgya : 이상으로 마친다를 뜻하는 봉인의 만트라
2) 未濟掛
3) 모미 :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窓과 그 창 밖과 다르면서도 같은 창 안을 의미하는 한글 상형 문자. 窓과 窓의 원리(易)를 형상화하고 있다. 나는 새벽 3시의 모니터에서 ^^,-_-;^^;,*^^*, 이런 '표음 상형 문자'를 본다.
4)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에셔의 판화와 네르비의 경우가 보여주듯 이 또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 세계를 이루고 있는 그 무한이 열린 가능성 때문에 나는 괴롭다
5) "정교한 양식을 갖추고, 명쾌하고 포괄적으로 건축된 쇼펜하우어의 철학 체계는 안락함을 두루 갖춘 현대식의 멋진 호텔이지만, 실상 이 호텔은 無와 無意味라는 벼랑 끝에 서 있으며, 편안하게 즐기는 성찬과 예술 작품 사이에서 매일매일 몰락해가는 세련된 안락함에의 긍지를 높일 뿐"이라는 루카치의 「그랑호텔 무너지다Grand Hotel Abgrund」(1993)에서, 그렇다면 나는 아마도 그랑호텔의 오랜 투숙자일 것이다. 너무 오래 그 벼랑을 내려보았더니 이젠 여기가 그 끝 같다
6) 「시편」137편 1절. 또한 예젤키엘 전서 27장 1절에는 예언자 예젤키엘이 바빌론 수인 생활 때 조국 광복을 그리면서 애절하게 읊은------
---------<생략>---------
여하튼 註는 13)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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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하자는 거야?
뭐하긴요? 詩를 읽자는 것이죠.
이게 詩야?
그럼요.
세상 살다 살다 별 꼬라지 詩를 다 보겄네.
별 꼬라지, 라고 그랬습니까? 그 말 책임지실 수 있습니까?
그래, 별 꼬라지------ 이게 별 꼬라지가 아니고 그럼 뭐야? 세상에 이런 꼬라지도 없구먼. 별---
그래서, 숙고한 끝에
이 글의 제목을 <별 꼬라지>로 정해기로 했다.^^
(이렇게 정하게 된 건 내 생각이 아니다. 순전히 당신 생각일 수도 있다)
첫댓글 어렵네요;;;;;
이하동문입니다.^^
오히려,
쉽네요;;;;;
라고 했으면, 무척 난감할 수밖에 없지요.^^
함성호, <벚꽃 핀 술잔>을 썼던 분이죠.
위 시집 61쪽엔 백과사전에 수록된, 지식, 지식 계급, 지식 산업 등에 대한 풀이를 그대로 옮겨놓은, <고귀한 모험을 찾아서>
그리고
오래 전엔, 아버지의 호적 초본을 그대로 복사하여 발표한 적도 있지요.
제목은 <우울한 지도>
첫번째 시집 <56억 7천만년의 고독>에 보면,
"사실 모든 시는 다 실험시다"라고 했습니다.
중간 중간 이런 시를 삽입한 것은,
읽으라는 것보다,
환기하는 측면이라고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환기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요.^^
아! 괴로워
정말 별꼬라지다. 후다닥
먼저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
괴롭게 해드려서---^^
별꼬라지---
그 말 책임지실 수 있습니까? ^^
2000년대 미래파가 나오기 전,
1990년대에도 포스트모던을 이끌던 분들이 있었죠.
함성호, 허수경, 그리고 장정일 등등
80년대엔 황지우, 박남철의 해체시가 있었고,
이러한 시가 시대 별로 생성된다는 건,
어쩌면 어떤 경직성을 깨뜨리고 싶어하는 간절함이겠지요.
1930년대, 이상의 <오감도>도 그렇고---
마르셀 뒤샹의 미술 작품이나, 앤디 워홀의 팝 아트 등등도---
후다닥---
그렇게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입니다.^^
별 꼬라지,
그냥 책임 지시면 됩니당.^^
별 걸로 사람 괴롭힌다고 하면
시인은 화를 낼까요?
아니면 경멸을 보낼까요?
그도 아니면 못 들은 척 멍한 눈빛으로 하늘을 볼까요?
함성호 시인이 시집 맨 마지막에 실은 <괴로움>이란 시는,
각주를 모아놓은 것입니다.
그 각주를 본문 바로 밑단에 달지 않고,
맨 뒤쪽에 한꺼번에 모아 놓은 것이지요.^^
13개의 각주를 그렇게 모아, 한 편의 시로 만든 것인데요.
어떤 시어를 찾기 위해 생각을 후벼 파고,
그 마땅한 시어를 시 속에 배치하기까지
고뇌가 깊었을 줄 압니다.^^
그런 데서 온 괴로움이라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 시인이 화를 낼 일도, 경멸할 일도 없는 것입니다.^^
보통 각주를 본문 아래에 달고,
독자의 이해를 돕게 하는 편인데,
그걸 몽땅 모아, 맨 뒤로 밀어붙여, 시라고 우길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리고 <만든 사람들>은
류승완 감독이 2000년도에 제작한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엔딩 크레딧입니다.^^
함성호 시인이 그 영화를 보고,
아니면 보다가 잠이 들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그러다가 잠이 깼을 때, 실링라이트에 불이 들어오고
엔딩 크레딧이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그 영화를 봤을 것이고,
그 영감을,
이렇게 근사하게(?) 표현한 것이지요.^^
그 영화의 줄거리보다,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더 경이(?)로웠는지도 모릅니다.^^
암튼, 내막은 그렇습니다---^^
윤남석의 <찢어진 청바지 틈> 함성호 버전이네요^^^
(그럼 윤남석은 '별 꼬라지' 원조? ^^^용서 하시길...)
저는 시인 함성호 보다 건축가 함성호가 더 매력적이더군요.
직접 설계한 자신의 집을 '소소재'로 이름하고
그 집에서 어부인인 시인 김소연과 얼마나 재미나게 사는지요.
함성호를 좋아한다면 그가 선택한 여자, 김소연을 한 번 읽어 보세요.
김소연이 쓴 <마음사전>은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과 감각을 펼쳐 놓아
읽는 기쁨의 마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책입니다.
<찢어진 청바지 틈>은 그냥 잡문집일 뿐입니다.
함성호 시인이 추구하는 포스트모던과 비교하기엔 초라하죠.
별 꼬라지의 원조,
그리 듣기 나쁘진 않네요.^^
포스트모던, 그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지도 벌써 50년이 넘었군요.
그럼에도 포스트모던 자체를 이질감이랄까, 그런 시각으로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이제 정착 되어야 할 때인 데도 불구하고 생소하게만 보는 경향이 많다는 건,
그만큼 예술이나 문학을 고답적인 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일 겁니다.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시각으로 보는 걸, 예술가들이 우선 싫어하기 때문이겠죠,
예술, 하면 뭔가 고상하게 보여야 된다는 속물 근성이 팽배하다고 볼 수도 있고
그래서 다수 예술가들이 터부시하는 지도 모릅니다.
문학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요.
건축가 함성호,
직접 자신의 집도 짓고---
김소연 시인과는 '21세기 전망'동인에서 만났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소소재' 를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암튼, 거창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예전에 사라 수산카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요.
그녀도 건축가이자 작가지요. 그리 크지 않은 집을 추구하는 <마음이 사는 집>
'소소재'의 느낌은 뭐랄까, 소박하다는 것과는 동떨어진 느낌이랄까요.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은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구매할 목록에 체크해놓아야겠습니다.
저도, 읽는 기쁨의 마력을 느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