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데올로기로서의 유교 및 관료양반의 사회기능
"조선, 선비, 유교정치문화, 양반관료문화, ..."
텍스트들에서 서로 연결되는 개념들을 접하면서 최대한 편견을 배제하려고 애를 썼다.
내 안에 있던 기존 사고가 매우 부정적이었기에, 역사적으로 조선시대에 주도세력이자
향도세력으로 존재했던 선비 및,
유교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하기가 어렵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굽힌 것을 펴기 위해서는 굽힌 것 이상의 힘이 들기 때문에
긍정적 인식에 시선을 맡겨두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의 유교 정치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주제로 텍스트들을 찾고
읽어가면서 한국의 독특한 이론 문화를 발견했다.
그것은 유교에 대한 '전면적 비판'이 의외로 드물다는 사실이다.
맑스주의 계열 같은 경우에는 철저한 부정이 시도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대부분 '사회를 바탕으로 한 유학(學)'의 '요청'이 결론에 포함되고 있었다.
물론 북한에서 나온 자료들은 맹렬한 비판을 하고 있지만, 사회경제사적 시각에
국한되어 있어 학문적 객관성으로 인정하기는 어려웠다.
한편 현대성에 입각한 비판도 유교의 긍정적인 면, 그리고 계승해야 하거나
복원해야 할 장점에 대한 언급과 맞물려서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적 가치]와 병행하고 있는 [유교 자본주의]의 논의는 오히려
본격적인 전통의 긍정과 현대적 적용으로 가고 있다.
심지어 신채호의 경우에 있어서도 유교의 本旨와 타락한 유교를 구분하여
유교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에서 한국의 희망을 예측하기도 했다.
그것은 지식인 문화의 공통분모로 작용하는 유교의 에토스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知行合一이다. 동양, 특히 한국에서는 지식인 각자가 추구하는 것이 공산주의이거나
민족주의이거나, 또는 포스트 모더니즘이거나 해도, 지식인의 '탐구'(내지 수양)와
발언(내지 행동)이라는 기본 구조는 '선비 정신'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한정지어서 볼때도 지식의 소용됨이 어디에 있는가를 분석해보면 유교적 소양을
갖춘 선비들의 학문관, 정치관이 건강한 사회 유지의 기본을 이루도록 역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밀스런 지식을 홀로 지녀 개인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태도나, 세계를 깊이 통찰함 없이
술수와 힘으로만 권력을 움켜쥐려는 태도 모두 대동사회를 방해하는 길이다.
이장희 교수도 '학문면학'과 '行道'를 선비의 긍정적인 면으로 이해했듯이
지식과 도의 실천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기풍은, 현대에 있어서도 지식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는 유교적 심성이고, 따라서 유교 비판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면을
늘 놓치지 않게 만드는 정서적 작용을 한 것은 아닐까?
또한 이는 유교 자체에 담겨있는 이념의 건강성과 진취성이 원인이기도 할 것이다.
유교의 본 모습은 'status-quo'라기 보다는 개혁적, 미래적이다.
왜냐하면 대동사회의 이상은 언제나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교적 지식인으로서의 선비는 현실의 모순, 비도덕성, 패륜에 맞서는
저항적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했고, 그러한 실천적 전형들이
한국인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유교에 대한 우호적 태도가
다양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가 유토피아가 아닌 한 문제점은 존재하기 마련이었고
그 문제점은 또한 인간상에 가장 극명하게 투영되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선비들도 이상적인 측면과 현실적인 한계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眞儒와 俗儒의 구분이 생겨나는 것은 이상적 측면을 목숨을 걸고 지키려했던
창조적 소수자들과 무위도식하며 민중을 호령하던 대다수 배타적 특권계층으로서의
선비계층의 병존 때문이다.
'時中사상'은 다른 말로 '현대사상'이다. 그 현대는 민중의 시대이다.
본디 民本사상의 유교적 바탕에 뿌리를 놓고 있어야 할 현대의 선비정신은
민중의 편에 서서 불의에 맞서는 비판정신과 개혁의지를 회복하여야 하며
그것만이 유교적 정치문화를 창조적으로 변용, 발전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
(1999.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