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에 젖다 / 김만년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오색 천이 만공滿空에 나부낀다. 덩더쿵~, 가을마당에 한바탕 춤판이 벌어졌다. 태평소와 뿔피리 소리에 아이들도 삐삐 풍선을 불며 추임새를 넣는다. 어느새 맘판이 오른 듯 탈춤 행렬이 꽹과리를 치며 마당을 돈다. 구경꾼들도 신명이 났는지 엉덩이를 실룩거리고 꼽추춤을 추며 익살을 부린다. 선비탈은 학춤으로 어적거리고 백정탈은 몽두리춤으로 너스레를 떤다. 부네가 엉덩이를 흔들며 양반탈을 희롱한다. 양반탈이 갈기 눈썹을 치뜨자 초랭이가 해득거리며 비나리를 친다. 추상같은 법도는 있되 삶의 격은 없는 듯하다. 스스럼없는 인정들이 이웃집 토담과 봉당으로 흘러넘친다. 누대를 이어 온 안동 사람들의 호방한 삶의 가락이 이곳 하회에선 지금도 징 소리 쟁쟁한 현재진행형으로 생동하고 있는 듯하다.
끝인가 싶어 골목을 돌면 어느새 길은 다시 시작된다. 길은 마당으로 이어지고 마당은 다시 이웃집 토담을 넘어간다. 길은 사람에 연연해서 실타래처럼 풀리고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초가와 초가, 고택과 고택이 回 자로 돌다가 回 자로 다시 만난다. 하회에선 '밤새 안녕하신가,'라며 부러 대문을 두드릴 필요가 없겠다. 그냥저냥 골목을 돌다 보면 낮은 토담 너머로 집 안의 사정들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소통과 상생을 지향했던 선인들의 후덕한 마음 씀씀이가 엿보인다. 그래서일까. 마을을 돌다 보면 누구나 스스럼없는 사이가 된다. 북촌 댁에서 스친 사람들을 삼신당 골목에서 조우한다. 슬쩍 웃으며 지나치다 충효당 만지송 앞에서 다시 만난다. 어느새 사진을 찍어주며 친근한 마음들을 섞는다. 하회의 조붓한 골목길이 주는 매력이다.
나는 남촌을 빠져나와 솔향기 그윽한 천변을 걷는다. 강물은 암녹색 고택을 띠처럼 두르며 유장하게 흘러간다. 물의 진폭이 넓고 의연하다. 일찍이 동쪽은 평안하다고 하여 안동安東이라 했던가. 병산들판을 말발굽 쳐 가던 삼태사의 푸른 군마가 큰 강을 연 이후, 안동은 민족의 정신적 본류로 도도히 흘러왔다. 강은 청량산 육육봉을 아우르고 도산 유림儒林의 숲을 휘돌아 하회에 다다르니 사람들의 심성은 물과 같이 유하고 덕망은 산처럼 높았으리라. 인의仁義의 필봉을 높이 들어 천 마리의 학을 부르고 만백성의 귀를 열어준 것은 강물의 심성이겠고, 왜구에 쓰러진 산천을 일으키고자 초인의 의지로 '광야'를 목 놓아 불렀던 것은 산의 준엄한 덕망이겠다. 강물은 유필처럼 부드럽게 휘어지기도 하고 때론 선비의 도포 자락처럼 결을 세우며 흐르기도 하니, 저 강물의 뻗침과 휘어짐이야말로 하회 사람들의 심성이 아니겠는가.
"에구 다리몽댕이 뿌러질라 언간하거덩 엉데이 쫌 붙였다가시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부르며 천변에 털썩 주저앉는다. 할아버지는 뚱한 표정으로 먼산바라기를 한다. 피식 웃음이 난다. 저 노부부의 사이는 늘 저랬을 성싶다. 먼 듯 가깝게 헛기침 같은 세월을 정붙이며 살아온 듯하다. 치맛단을 올리며 열 걸음 뒤처져 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흑백 영사기처럼 느리게 돌아간다. 하회에서는 물만 돌아가는 게 아니라 사람도 돌아간다. 에둘러 가는 강물에 보폭을 맞추다 보면 마음의 유속도 강물처럼 느려진다. 지친 마음 한 자락 깔고 강가에 앉으면 하회의 둥근 마음이 보인다. 만곡선으로 휘어져가는 강 자락에 어머니의 너른 품이 보인다. 객지에서 돌아온 자식의 다친 상처를 씻어주듯이 강물은 시큰한 발등을 어루만진다. 강물은 부용대를 들어앉히고 나는 다시 강을 마음에 들이며 걷는다. 탈춤 가락의 여흥이 아직 가슴 한쪽에서 콩닥거린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천변을 걷는 발걸음이 부네의 버선발처럼 가볍다.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힌" 저 푸른 강물이 바쁜 나그네의 마음을 한정 없이 붙든다.
나룻배를 타고 부용대로 향한다. 부용 초입에 이르자 옥연정사가 풍화에 젖어 고요하다. 일찍이 세상사 강 건너로 물리고 서西 벼랑에 움을 틀고자 아호마저 서애西厓라고 했던가. 나는 옥연서당 뜰을 거닐며 고요한 상상에 잠긴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율원栗園에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멀리 닭 홰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싸리울을 친 초가들이 보이고 물동이를 이고 가는 옛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며칠째 내린 눈이 옥연정사 솟을대문 위에 소복이 쌓였다. 촛불이 휘어지는 밤, 대감은 사랑채에 꼿꼿이 앉아서 유서 같은 《징비록》을 쓴다. 매운 눈발이 온 산천을 휩쓸어 임금은 파천播遷하고 백성들은 시름에 겹구나! 노 충신의 장탄식 눈물이 칠 척 견지를 적신다. 부용대 단애는 망국의 분을 삭이지 못해 결기를 곧추세우는데 뜰 앞 버드나무는 유柳 대감의 애진 곡조가 동성同姓의 설움인 양 삭풍에 울고 섰다.' 후대를 염려하는 대감의 우국충정이 사백 년을 거슬러 와 하회의 푸른 물에 닿는다.
바람 건듯 부는 부용대에 오르니 발아래 눈썹달 같은 마을 하나 떠있다. 어찌 부용에 오르지 않고 하회를 보았다고 하랴. 베네치아가 물 위에 세워진 인공 도시라면 하회는 물이 빚어낸 자연 마을이 아닐까. 세월과 비바람의 조력을 받아 강물이란 도공이 조탁해낸 천혜의 작품이 하회 마을이지 싶다. 베네치아에서 산타루치아, 돌아오라 소렌토로가 연상된다면 이곳 부용대에서는 누군들 아라리 한 소절 흩뿌리고 싶지 않으리. 하회는 한반도 지형으로 보면 백두대간의 푸른 발등이 쉬어가는 쉼표 같은 곳이요, 정서적으로 보면 백의민족의 숨결이 곡진하게 묻어 있는 영남의 정신적 요람 같은 곳이 아닐까? 고단한 세월을 굽이굽이 넘어오다가 한 사나흘쯤 묵어가도 좋을, 하회는 나그네의 주막 같은 곳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과거와 현재, 유형과 무형이 공존하는 곳, 지금도 입을 헤벌린 인간문화재들이 메마른 우리네 삶에 추임새를 불어넣어 주는 곳, 물이 돌아 사람도 돌고 우리네 팍팍한 인생도 신명으로 돌아가는 곳이 하회河回이다,
수림낙하樹林落霞! 수림에 비친 노을을 밀고 가는 강물의 모습이 참 유정하다. 한 점 연꽃 위에 징 소리 아련한 하회를 띄워 놓고 흘러가는 강물, 지극히 선한 것은 물과 같다고 했으니 강물은 저 선함으로 다시 칠백 리 낙동강을 굽이쳐 갈 것이다. 때론 육자배기 가락으로 사람살이 얽힌 매듭도 풀어주고, 가다가 지치면 영남루 난간에 기대어 <밀양아리랑> 한 곡조 풀어내기도 할 것이다. 하회의 노래도 그처럼 흘러가리라. 껄껄한 웃음, 탈춤 흐드러진 풍악소리로 갈라진 인정人情들 하나로 아우르며 흐르리라. '손에 손을 잡고 늴리리야 늴리리 노래 부르며 살아라. 각박한 인생길 마음에 흥 한 소절씩은 담아두고 살아라. 어느 가슴에나 고요히 젖어들어라,' 그렇게 살라는 듯 하회의 푸른 물이 일필휘지, 내 마른 가슴에 부드러운 획을 그으며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