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맛집(26)] 봄철 강화도 음식 황해도식 '단호박꽃게탕' 구수~한 맛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2012.03.28
4·5월경 대명리 어시장 위어회·위어구이 일품
'연안식당' 꽃게장 바다냄새 물씬
강화읍내 '비빔국수집' 소설가 성석제 예찬
위어(葦魚)라는 물고기가 있다. 웅어(熊漁)라고도 한다. 흔하진 않지만 지금도 봄철이면 더러 볼 수 있다. 위어의 '위(葦)'는 갈대다. 초봄 갈대 사이로 다녀서 붙인 이름인지 아니면 생긴 것이 갈대같이 약해보여서 붙인 것인지 모르나 조선시대 위어의 위세는 대단했다.
궁중 사옹원에서 지금의 행주대교 언저리에 위어소(葦魚所)를 차리고 직접 위어를 잡아 궁궐로 직송했다. 위어 운반에 필요한 얼음도 특별히 관리를 했다. 위어를 잡는 사람들은 군역이 면제되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위어 잡이 공익요원'쯤 되었던 셈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위어 냉장용 창고의 얼음을 두고 궁궐에서 있었던 논란과 고양, 양천, 김포 등의 위어 잡이 민가 숫자에 관한 내용들도 있다.
양천현감을 지냈던 겸재 정선은 이 위어 잡이를 소재로 그림을 남겼다. 바로 '행호관어(杏湖觀漁)'이다. '행호'는 행주산성 언저리의 한강을 이르던 말이다. '행호관어'는 지금의 강서구 가양동 언저리, 조선시대 양천현에서 바라본 행주산성 언저리의 한강과 위어 잡이를 그린 그림이다.
위어는 지금도 봄이면 금강 언저리와 강화도 등에서 만날 수 있다. 봄 나절 강화도 초입 대명리 어시장에서 만나는 위어는 반갑다. 늘씬하게 생긴 큰 멸치 정도로 생각하면 정확하다. 회나 젓갈로 먹어도 좋지만 구워 먹는 것이 가장 낫다. 물량이 그리 많지도 않고 만나는 기간도 그리 길진 않다. 4, 5월 경 대명리 어시장 부근의 식당들에서 위어회, 위어구이를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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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어
봄철이면 강화도에는 은근히 먹거리들이 많다. 강화 읍내 '우리옥'은 아주 오래된 '밥집'이다. 밴댕이젓갈이나 갈치조림, 병어회 등이 별미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잘 지은 가마솥 밥으로 유명해진 집이다.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밥집이었는데 몇 해 전 재개발 되면서 마치 콘센트 막사 같은 건물로 바뀌었다. 밴댕이젓갈, 순무김치 등이 여전히 수준급이다.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밥집'이어서 봄맞이로 강화도에 가는 사람들은 그저 고향집 가듯이 '우리옥'에서 '밥'을 먹는다. 업력 6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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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옥'
강화도에는 은근히 맛이 깊은 한식집, 소박한 '집 밥'을 내놓는 집들이 군데군데 있다. 강화도 화도면의 '연안식당'도 40년 이상 된 업력을 자랑한다. 원래 강화도 냄새가 물씬 나는 밥상이었다. 원 주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현재는 호남출신의 며느리가 운영하고 있다. 강화도 음식에 호남의 손맛이 더해져서 더 좋아졌다는 평도 듣고 있다. 여전히 꽃게장이 일품인데 일정기간 삭히는 호남식과는 달리 즉석에서 바다 냄새가 물씬 나게 무쳐내는 꽃게장이 독특한 맛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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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식당'
강화도는 지금은 인천이고 예전엔 경기도였지만 음식 문화는 황해도와도 가깝다. 백령도도 가깝고 실제 강화도에서 서울(한양)이나 개성까지의 거리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물길로는 황해도 해안과도 그리 멀지 않다.
황해도 음식 중에 '호박김치'가 있다. 익지 않은 애호박으로 담근 김치였을 텐데 현재는 긴 호박, 이른바 주키니 호박으로도 담근다. 호박김치가 시큼하게 익으면 돼지고기와 무청, 두부 등을 넣고 찌개를 끓인다. 바로 황해도 전통음식인 '호박김치찌개'다.
강화도에는 늙은 호박과 꽃게를 넣은 찌개가 있다. '단호박게찌개' 혹은 '단호박꽃게탕'이다. 늙은 호박을 큼직하게 썰어서 냄비 밑바닥에 깔고 그 위에 꽃게를 올리고 각종 나물을 얹은 다음 탕으로 끓인다. 늙은 호박과 꽃게의 단맛과 구수한 맛이 냄비 안에서 어우러진다. 호박과 박을 이용한 음식은 황해도와 강화도를 거쳐서 안면도 등 충남해안까지 나타난다.
서산, 안면도 일대의 특미인 '박속밀국낙지탕'도 결국은 '박+국수(밀국)+해물(낙지)'의 결합이다. 단호박꽃게탕은 강화도의 '충남서산집'에서 만날 수 있다. 강화도의 '호박+꽃게'탕을 파는 음식점 이름이 재미있게도 '충남서산집'이다. 음식과 음식점 그리고 주인은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다. 결국 호박이나 박과 해물을 결합시킨 비슷한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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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서산집’ 단호박꽃게탕
늦가을의 강화도 화도면에 가면 '토가'의 맛있는 '새우젓순두부찌개'를 먹을 수 있다. 봄철이면 지난 가을 수확한 콩으로 두부를 만들고 제법 묵힌 새우젓을 사용한다. 외형으로는 아주 간단한 음식이지만 퍽 오랜 연륜이 쌓인 음식이다. <증보산림경제>에는 '자연포법煮軟泡法'이 있다. '자연포법'은 '두부나 무, 고기 등을 넣고 끓인 맑은 장국'이다.
"연두부를 잘게 썰어 꼬치에 서너 개씩 꽂아 흰새우젓국(白蝦醢汁, 백하해즙)과 물을 넣고 끓인다. 따로 굴을 넣기도 하고 국물에 생강을 다져넣기도 한다"고 소개한다. 간단한 음식이지만, 정갈하고 품위 있다. 두부문화는 조선시대에 더 넉넉했다. 두부꼬치 같은 음식도 있었고, 두부탕 하나를 끓이더라도 새우젓을 넣고 간을 잡았다. '토가'의 새우젓순두부찌개는 바로 <증보산림경제>의 '자연포법'에 등장하는 '연포탕'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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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가'
강화읍내에는 소설가 성석제씨가 예찬한 국수집이 있다. 이름도 간단하다. '비빔국수집'. 성석제씨가 그의 글에서 언급한 후, 이집은 '소설가 성석제가 이야기한 국수집'이라는 꼬리표를 얻었다. 내공은 만만치 않다. 40년의 업력을 넘겼다. 메뉴는 두 가지. 멸치국수와 비빔국수다. 가끔 예고 없이 문을 닫는 경우가 있으니 미리 전화(032-933-7337)해보고 가는 것이 좋다. 대단한 기대를 하면 실망한다. 다만 성석제씨 표현대로 "국수의 맛은 음식과 더불어 그날의 날씨나 국수 먹는 이와 만드는 이의 인생관까지 포함한다"는 이야기를 인정한다면 한번 가보기를 권한다. 북문에서 멀지 않고 흔히 '소방서 옆길'이라고 말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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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국수집’ 비빔국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