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로는 장마가 막 시작되었다 하면서 큰비가 내릴거라 하기도 하고 또 일요일쯤은 잠깐 비가 들거라는 소식도 있어 출발하는 오늘 아침까지 종잡을 수가 없었지. 어제밤 까지만 해도 실제 많은비가 내리고 있어 다음날 행사가 어떻게 될까? 비가 오던 안오던 준비된 행사니 그대로 강행이 된다해서 우의와 우산을 준비해 가지고 가야 할까?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지. 그렇다고 온 나라가 긴 가뭄뒤에 오는 단비를 안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것도 체면없는, 욕먹을 일이었지. 어디 일하는것도 아니고 놀러간다고 농민들 타는 가슴 외면하고.. 하여튼 그렇게 걱정 끝에 출발한 야유회가 하루종일 우려했던 따가운 여름햇살도 비도 내리지 않아 정말 다행이였다고 할까? 고향에 황산사, 언제부턴가 봉황사라고 이름이 바뀌었지. 일부는 옆길을 타고 애기봉을 등산으로 넘어서 가고.. 차량은 그 황산사를 거쳐 무실앞과 웃박실을 올라 아기산 뒷자락, 험한 길을 구비구비 돌아 지례 예술촌은 설렁설렁 구경하는동 마는동 하고는 도연폭포가 있었던 마을, 거기서 마지막 차를 내리고.. 물가 언덕빼기에 서서 친구는 저 아래 임하호 수면 내려다 보면서 가물어서 들어난 바위가 있는곳이 옛날 도연폭포 자리고 그 옆에가 물길이 돌아가던 자리, 그 물 이쪽에 큰 은행나무가 있었던 자리로 수몰당시 나무를 옮겼다하고 70년대말 박대통령이 서거땐가는 3일인가 몇일을 두고 나무가 보은의 눈물을 흘리고 소리를 내면서 울었다면서 도시 믿기지 않는 말도 하고.. 하긴 믿거나 말거나겠지. 다들 직접 보지 않았으니 가타부타 토를 다는 이도 없고.. 그리고 물가를 따라서는 옛날길이 있었던 곳이고 물길따라 위로 쳐 올라가면 국나이, 덜게이 아래로는 악새와 사이 뭐 어디라 하면서 장황한 설명에 침 튀기고.. 그 정도야 뭐 다 거기서 살았던 사람들인데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야외식당과 무대에서 오후 한나절을 실컷 마시고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 보냈지. 내가 6학년때 담임선생님이셨던 류정희 선생님도 우리가 졸업한 후에 부임해 왔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는 이싯골 문수부 선생님도 그리고 그 뒤에 중학교에 있었던 류회붕 선생님도 그 외 향리 형님뻘 경태씨도 챗거리에 살았다하는 선배님 몇 분도 함께 만나는 자리였지. 이 어른들도 다 연세가 70~80대이신데도 불구 우리 또래 못잖게 건강하시고 누가 보면 같이 늙어 가시는것 같았지. 저녁늦게 집으로 돌아 오는길, 놀기는 잘 놀았다 해도 비 안오고 날 든게 세상에는 어째 마이 미안한것도 같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비였는데 비 안와서, 날씨가 좋아서 잘 놀았다고 감히 말하겠는가?
첫댓글 대구 향우님들 야유회를 고향에서 했군요.
오랜 가뭄에 단비가 내려 다행입니다만
오를은 비가 오지 않아 야유회 하는데 지장은 없었겠네요.
여러 선생님들 전부가 우리 학교 다닐때 은사님이신데 건강하시다니 다행입니다.
고향에서 즐거운 하루 만끽했네요.
난 사람들 모이는덴 잘 안가는데.. 어쩌다 보니 자꾸 다니게 되고..
긴 글을 공유코자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사진이랑 한번 올려보니까 보통 일이 아니더라구요.. 잘 읽고 댓글 올립니다.
그렇게 수고해서 쓴건 아니고요..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들 낙서처럼 써서 올리고 있지요. 힘들게는 못하고 또 머리 쥐나는 일도 할수가 없고요.
잘 생기셨던 류정희 선생님도 아직 건재해 계시군요?
6학년때 육성회비를 못내서 졸업식날 슬푼 추억을 주고받았던
문수부 선생님은 얼마나 변하셨던지요?
유난히 얼굴이 하얗고 미남이셨던 문수부 선생님을 한번 찾아뵈야 하는데....
그 선생님은 말로만 들었지 얼굴 뵙기는 금번이 처음이었지요. 아주 정정하시고.. 얘기하신대로 지금도 미남이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