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 1927~)는 대중적인 요소는 배제하고 전통적인 쿠튀르 하우스의 전형이던 우아하고 구조적인 이브닝웨어를 재탄생시킴으로써 클래식하면서도 세련된 스타일을 완성한 디자이너로 잘 알려져 있다. 지방시의 시그니처는 ‘베티나 블라우스(Bettina blouse)’라 불렸던 화이트 면 셔츠 블라우스와 그의 뮤즈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의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 LBD)’로 구현된, ‘심플하고 세련된 우아함’이라 할 수 있다. 배우 오드리 헵번과의 연계는 영화와 패션의 공생관계의 시초가 되었을 뿐 아니라 다양한 헵번 스타일을 창출하였으며, 디자이너 발렌시아가(Balenciaga)와 함께 다져간 지방시 스타일은 보다 절제된 단순성을 통한 시간을 초월한 완벽한 미감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심플하고 우아한 지방시 스타일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ncc.phinf.naver.net%2Fncc02%2F2011%2F11%2F9%2F89%2F17.jpg)
1927년 프랑스 보베(Beauvais)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예술적으로 풍요롭게 성장한 위베르 드 지방시는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으며, 유년기부터 패션디자이너로의 진로를 결정하였다. 이후, 1940년대 말과 50년대 초에 걸쳐 쟈크 파트(Jacques Fath), 뤼시앵 를롱(Lucien Lelong), 로베르 피게(Robert Piguet),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의 쿠튀르 하우스에서 보조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익힌, 뉴 룩(New Look)의 시대를 포괄한 로맨티시즘(romanticism)의 감각은 그 후 40년이 넘는 동안 그의 디자인에 영향을 미친다.
지방시는 1951년에 자신의 쿠튀르 하우스(The House of Givenchy)를 오픈하고 이듬해 프랑스 일류 모델이었던 베티나 그라지아니(Bettina Graziani)를 기용해 첫 번째 컬렉션을 개최하였다. 여기에서 발표한 그 모델의 이름을 딴 ‘베티나 블라우스’ (Bettina blouse) - 화이트 면 셔츠감(shirting)에 블랙과 화이트 브로드리 앙글레즈(영국자수, broderie anglaise)로 장식한 종 모양 비숍 슬리브(bishop sleeves)가 달린 심플한 블라우스-는 선풍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켜 지방시는 ‘파리의 신동’으로 불리게 된다. 이로부터 지방시는 당시 파리 쿠튀르를 지배하고 있던 디오르의 보수적인 디자인과 반대되는 젊은 혁신성으로 특징지어졌으며, 심플한 소재와 깨끗한 라인은 그의 주된 특징이 되었다(1952년 <라이프>에 실린 베티나 블라우스 :
지방시의 또 다른 특징은 별개의 요소들이 상호보완을 이룰 수 있도록 조합하는 혁신적인 재능에 있었다. 즉, 세퍼레이츠(소재나 무늬가 다른 상·하의의 조합, separates)를 통한 믹스 앤드 매치(mix and match)를 허용함으로써 도시적 세련미를 표현하는 디자이너로 칭송받았다.
고전적이고 기품 있는 디자인을 통해 진정한 쿠튀르 스타일을 표방한 지방시의 스타일은 신체를 따라 흐르는 실루엣과 장식을 배제한 단순미를 보여준다. 지방시의 의상들은 형태의 단순함과 구조적인 안정감을 기본으로 하여, 고전미를 나타내는 볼륨과 현대미를 표현하는 비대칭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소재들에 매료되어 있던 지방시는 소재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였다. 그는 실크, 면, 크레이프(crêpe) 등 다양한 소재들을 사용해 고급스럽고 섬세한 디자인을 발표하였고, 주로 벨벳(velvet), 태피터(taffeta), 오건디(organdy) 등 전통적인 고급소재와 트위드(tweed), 울(wool)과 같은 무게감 있는 소재의 특질을 잘 살려 시대를 초월한 우아하고 클래식한 스타일을 확립하였다. 지방시 스타일은 과시적이라든가 공격적인 혁신을 추구했다기보다는 외형적인 단순함과 우아함, 그리고 세련됨 그 자체로, 여성이 옷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옷이 여성을 돋보이게 하는 그의 패션 철학을 담고 있다.
지방시의 뮤즈, 오드리 헵번과 영화 의상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ncc.phinf.naver.net%2Fncc02%2F2011%2F11%2F9%2F89%2F17.jpg) 지방시는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의 사적, 직업적 의상의 대부분을 디자인했던 것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1954년 영화, [사브리나(Sabrina)]의 촬영을 위한 오드리 헵번과의 첫 만남은 지방시의 삶에서 매우 결정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었는데, 이 만남을 통해 여배우를 중심으로 한 영화와 패션의 공생관계가 시작되었다. 오드리 헵번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신화론 (Mythologies)]에서 “명성의 거래, 옷의 창조자와 그것을 입는 자 사이의 신화적 아우라”라고 말한 현상의 핵심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바르트는 “이 세상 언어로 묘사할 수 있는 형용사가 부족한 창조물인 오드리 헵번은 1950년대에 위베르 드 지방시의 옷을 전 세계적으로 칭송받게 했고, 지방시는 이를 통해 자신의 천재성을 인정받았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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