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문학기행

[하령]

2013년 4월 26일(금)

한국문학예술에서 하동 문학기행을 떠났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토지문학제>가 열리고

매월 음력 보름이면 최참판댁 안마당에서 벌이는 문학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떠나는 길이다

하동 평사리문학관에서 주최하고 하동군과 하동신문사, 한국문협 하동지부에서 후원하는

평사리 달빛 낭송회는 이번에 특별한 행사로 마련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하동이 낳은 정공채 시인의

 5주년 추모식을 겸함이었으니 시인을 존경하는 문학인들에겐 더더욱 의미있는 기행이리라

하동을 가는 길에 남원에 잠시들러 최명희 작가의 혼불문학관을 방문했다 .

짧은 일정인지라 혼불 문학관 고방석 팀장님의 짧은 해설만 듣고 돌아설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혼불문학관에서>

서울서 하동까지는 긴 여정이지만 즐거움의 시간은 늘 짧기만 한지라, 어느 틈에 섬진강이 보이더니

구례 화개장터다.구례와 하동이 섬진강으로 만나는 곳, 조영남의 노래로 유명한 섬진강변의 화개장터

는 북적이는 인정으로 늘 정겹다. 잠시 버스에서 내린 문인들이 급한 물살처럼 솨아아 ~ 장터로 흘러

들어가더니 시골 아낙들이 친근한 무릎으로 내놓는 수북한 산나물을 욕심껏 산다.

하긴 문학인도 먹어야 사니까~ 훗

드디어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문학관에 도착한 문우들의 들뜬 마음이 신록처럼 푸르다

<평사리문학관>

토지문학제와 달빛 낭송회를 개최하며 해설과 함께 박경리<토지> 길을 상시 운용하고 전국 청소년

한옥체험 및 문학교실도 열고 문학기행 및 수학여행단 문학강연과 전국 학생 백일장 개최도 하는 등

참으로 많은 일을 하는 평사리문학관이다.

<최참판댁>

솟을대문 당당한 최참판댁의 위용과 서민들의 애환이 저리도록 밴 거멍골의 모습을 한 초가 마을

윤씨 부인,별당아씨,서희,길상,봉순이,용이,월선이,강천댁,임이네,윤보,김평산,봉순이 등등.....

소설속 인물들이 한꺼번에 저 문으로 쏟아져 나오며 반기는 듯한 착각에 잠시 현기증을 느낀다

<최참판댁 별당>

소설 <토지> 속에서 가정 인상 깊었던 장소인 별당에 서니 지금도 울고 있는 서희가 보이는 듯하다

최참판댁의 유일한 혈육인 서희가 어머니인 별당아씨가 할머니 윤씨부인이 낳은 불륜의 아들 구천

(김환)과 야반도주를 하자 엄마 찾아내라고 길상의 등에 업혀 울며 신경질을 부리는 모습으로 오버랩

되어 가슴 짠하게 한다. 6살 어린 서희는 찢어지는 슬픔을 날 것으로 감당할 때면 저 연못 속의 물고기

를 하염없이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무심한 봄꽃이 소설속 핏빛으로 낭자하다.

어둠이 깔리는 최참판댁을 이리저리 혼자 거닐어 보다 최치수가 기거하던 사랑채 마루에서 갑자기

무섬증이 엄습한다.최참판댁의 당주인 최치수는 불륜에 대한 죄의식으로 냉엄해진 어머니에 의해

온갖 신경질과 우수가 감도는 모습으로 철저하게 스스로를 거부하는 눈빛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곤

 하는데 그 최치수의 혼백이 어둠이 깔려 컴컴해진 사랑채의 방문을 벌컥 열고, 내 발목을 거며쥐며

당장에 눈을 부릅뜨며 고함을 지를 것만 같은 공포에 모골이 송연해져 급히 돌아나왔다.

이젠 소설 속에서 빠져 나와 우리의 문학 잔치인 달빛 낭송회를 즐겨보자

오늘이 며칠인가? 음력 삼월 보름인가? 지붕 위로 둥실 뜬 보름달이 너무나 좋다

이번 달빛 낭송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바로 하동이 낳은 정공채시인의 5주년 추모식을 겸한 것이다

평사리 문학관에서 술과 음식을 준비하여 한국문학예술 회원들을 정성스럽게 대접하니 감사하다

처음으로 먹어보는 햇가죽나물의 부드럽고 향긋한 맛이 막걸리 주전자를 급하게 끄덕이게 한다

흰 달빛 아래 고소한 두부는 따스한 속살로 보시하니 술꾼이 아니라도 그 넉넉한 흥취에 절로 취한다

달아 높이 눈으로 돋아들라

노래여 너울너울 귀로 스며들라

먼저 간 시인의 넋을 이 자리에 청하니

시인의 혼은 온 팔을 벌린 춤사위로 평사리에 가득하라

이토록 흥겨운 추모식이 그 어디 또 있으랴

떠오르는 달,등불로 흔들며 초혼가를 부른다

만공에 가득한 만월이 저리 두터우니 저 창 불빛은 언제 꺼질꼬?

우리 모두 누군들 최참판댁의 사람이 되어 이 밤을 마음껏 가져본다

평사리를 두고 떠나는 아침, 밤새 훌쩍 큰, 저 느티나무는 수령이 600년이라던가?

늙은 몸에 돋는 새순이 장난꾸러기 아기처럼 노오란 유채꽃과 마주 보며 손마중을 친다

길로 비켜선 채 수줍어 나직한 섬진강의 팔을 끌어 사진 한 장 남긴다.

<정공채 시인의 묘소 참배길>

1934년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 출생의 정공채 시인은 1957년< 현대문학>에 "종이 운다"외 3편으로 박두진

선생 추천으로 등단했다. 많은 문학상을 휩쓴 "주먹 센 사나이"로 통했던 시인은 열혈남아였나 보다, 불

의에 항거한 시인으로도 이름 높다

연세대학교 정외과를 졸업하고 부산일보, 민족일보, MBC 제1기 프로듀서로 <전설따라 삼천리>를 1회~

3회 집필하였고 군정시절인 1963년 장시<미 8군의 차>를 현대문학에 게재하여 반공법 위반으로 필화를

 당함으로 문단의 양심을 숫돌에 뉘인 전설이 된다.

미 8군의 차/

"미 8군의 차바퀴가

달리는

길가의 찻집이나 이층의

.........

오늘날 몇몇 개 안되는

공주 있는 나라가운데

우리나라는 오늘

참 많은

공주의 나라

.....

헌시와 헌화와 노래로 시인을 추모하고 돌아보니 시인의 앞마당에 온통 다도해가 너르게 펼쳐졌다

이렇게 좋은 곳에 누운 시인의 행복은 자신의 의지대로 된 것.

폐암으로 세상을 뜨기 전에 정공채 시인은 제 3의 문학' 주간인 안익수 시인에게 두 가지 유언을 남겼다.

하나는 자신의 시 전집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화장을 하지 말고 섬진강 가나 남해 바다가

보이는 곳에 묻어 달라는 것이었단다.이에 선산이 없는 정공채 시인을 위해 조유행 하동군수가 남해

바다를 바라보며 하동의 명산인 금산을 우러러볼 수 있는 영당공원 묘원으로 장지를 마련해 주었단다

시인의 유언이 살뜰히 이루어졌으니 기쁜 마음으로 그 분의 시를 한 수 읊어보자.

종이 운다 3 /

시원히 햇빛이 스미우듯

옛날의 무덤을 파헤친다

안으로만 엉키고 맺힌

목매 죽은 이야기를 밖으로 버린다

핏빛같이 서러운 울림이여

깊은 산 계곡으로부터 전원으로 흘러서

수 타는 노을이 익은 서산 넘어

고향으로 안겨 가버린다

가앙

가앙

그림자가 나리는 어두운 산길에서

혼자서는 들을 수가 없는 눈물이다

저물어가는 무덤

천년을 익은 가슴이여

고전면 성평리엔 대중가요 작사가로 유명한 정두수 시인도 있다

바로 정공채 시인의 친동생인 정두수 시인으로서 남진이 불러 유명해진 "가슴 아프게"와 나훈아가

부른 " 물레방아 도는데" 하춘화가 부른 "하동포구 아가씨" 등 헤아릴 수 없는 히트작을 작사했다

정공채시인이 한국 시단의 별이라면 정두수시인은 대중가요 작사자로서의 별일 터이니

걸출한 두 시인을 배출한 성평리 마을의 풍수지리를 엿보고 싶을 정도이다

나지막한 산자락 포근한 햇살 아래 게으르게 누운 실개천

저 실개천을 끼고 외로 돌아드는 둑방길에 비렁뱅이로 남루한 아이 하나가 걸어온다

몇 날 며칠, 밤이면 풀섶에 숨어 자고, 낮이면 햇볕 아래 먼지를 끌며 이 길을 걸어왔다

아이의 얼굴은 온통 풀벌레에 쐬여 퉁퉁 부어 가려운 손등조차도 수북하다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니 평사리에 묻힌 엄마의 산소에 간다고 한다

아이의 이름을 묻자 한복이라고 대답한다

<한복이>

아버지는 최치수를 죽인 살인자,어머니는 그런 남편의 죄를 위해 목매달아 죽고 말았다

용이 아저씨의 등지게로 산에 묻힌 엄마가 너무도 그리워 해마다 엄마의 제삿날이 가까워지면

몇 날 며칠을 걸어서 고향에 온다. 동네 아이들은 살인자의 아들이라고 돌팔매질을 하지만 아이는

해마다 풀벌레와 풀독에 퉁퉁 부은 얼굴로 고향을 찾아오는 어린 방랑자가 된다

소설 <토지>를 관통하며 나는 이 어린 한복이의 손을 부여잡고 얼마나 울었던가!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지금도 그 뭉클한 감동이 살아 있음이 고맙기만 하다

한민족의 가슴에 깊은 울림으로 살아있는 민족문학의 텃밭

평사리 문학기행과 정공채 시인 추모 낭송회를 마치고 떠나는 창 밖을 내다보며

저 아름다운 문학의 꽃을 피운 위대한 텃밭 하동의 자양분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억센 한반도의 등줄기인 태백산맥이 그 거친 뼈마디를 펴 너른 품으로 주저앉은 지리산이

그 어머니의 속살을 헤쳐 흰 젖줄기 같은 섬진강으로 오백 리 젖줄 되어, 문학의 자양분을

공급하니, 하동의 아름다운 문학의 꽃피움이 어찌 우연이라 하겠는가

가늘게 눈을 감고 음미하는 하동 문학기행의 여운이 지금도 향긋하다

한국문학예술 취재기자

임하령/

[은새암]

함께 한듯하네요
평사리에서 서희를 만났고 한복이도 용이도....
사람과 사람의 만남 속에서 참으로 맛깔스러운 만남은
마음과 마음을 함께 할 수 있는 만남이지않나 하네요
갑자기 인사동에서의 만남이 생각나게하는 시간입니다
지금.....한 밤중입니다 2시 37분....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깨어있는 시간입지요
그 곳 한국 빼고....^^ 잘 지내시지요 보고싶구요

[하령]

은새암님도 잘 지내시지요?
만남 사이에 녹아드는 그리움
저두 보고프네요
어떻게 핑계꺼리라도 만들어 저 바다를 건너 오시지요 ^^

[서하 이소연]

분위기 파악 제대로 꼼꼼하게 챙기셨네요.
2013 여름호로 옮겨갑니다. ^&^

[하령]

네~평사리문학관에 감사한 마음을 전해주세요 ㅎㅎ ^^

[도니(윤형돈)]

하령감자의 위상이 고조되는 순간입니다

[하령]

감사해요 도니님~^^

[길빵]

참말로 똑 떨어지게 쓰셨습니다.
그냥 늙기에 너무도 아까운 하령님
세월이여 비켜가시라 .

[하령]

오호 ~ 길빵님 아름다운 입술에 복 있을진저..ㅎㅎ
덕분에 세월이 쫄았을려나?
세월아 비켜라 ~ 우리 모두 그리 될지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