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그대에게 꽃을
"그 여인의 이름을 겨우 알아냈습니다!"
물안개가 퍼지고 있다. 그 사이로 일점흔의 목소리가 신명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 여인은 혈지(血芝)라고 불립니다. 주공께서 당도하시기를 기다리며 알아낸 바에 의하면, 혈지라는 여인과 혈류흔이라는 자 사이에는 정말 미묘한 것이 많습니다!"
호면에는 쉬지 않고 파문이 만들어졌다.
십여 장 높이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잠룡등천폭(潛龍騰天瀑)으로 인해 만들어진 잠룡소(潛龍沼).
호숫가에는 갈대가 무성히 자라고 있으며, 노자객 일점흔은 손으로 먼 곳을 가리키며 입술을 떼었다.
"혈지라는 여인은 귀족이며, 오백 명의 시위군(侍衛軍)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시위군을 붙여 준 사람은 낙양부사(洛陽府士)라고 하며, 그녀의 주위에는 오백 시위군 이외에도 백 명의 일급무사가 달려 있는데……, 그들은 금봉군(金鳳軍)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
호숫가에는 십일 인이 병풍처럼 늘어져 있었다.
한 명의 황삼청년이 팔짱을 낀 채 물가에 서 있으며, 그 뒤에 안색이 밀랍처럼 흰 여강시(女 屍) 하나가 서 있었다.
또한 그 뒤쪽에는 전신을 흑포로 휘어감은 팔 척 거한(巨漢) 아홉이 살기등등하게 버티고 있었다.
자욱이 일어나는 물안개가 신비로웠다.
사월 이 일.
새벽은 환하게 깨어나고 있었다.
"본래에는 일백 시위만이 그녀를 호위하고 있었는데, 백 일 전에 오백 무사가 충원되었습니다!"
일점흔은 하루 전에 이곳에 당도했다. 그는 백검산이 오기를 기다리는 가운데, 사계화축 근처를 세세히 정탐한 것이다.
백검산이 일점흔보다 늦게 당도한 이유는, 몽중십위(夢中十衛)라 불리는 열 명의 강시들 때문이었다.
떼어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십대강시들. 그 가운데 가장 강한 자는 단시홍이었다.
여인 강시!
그녀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한기(寒氣)를 품고 있었다. 임독양맥이 타통된 사람이 아니라면 그녀의 몸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녀는 처녀 동정지체였고, 그녀의 오른쪽 팔뚝에는 그녀의 순결을 상징하는 핏빛의 수궁사(守宮砂) 하나가 박혀 있었다.
단시홍은 그 덕에 가장 완벽한 여강시가 될 수 있었다.
"……!"
느낌이 없는 눈빛을 흘리는 단시홍, 그녀의 시선은 언제나 백검산 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백검산은 우연히 일으킨 악마화(惡魔花)로 인해 단시홍 이하 십 인의 강시와 심령지주(心靈之主)로 화한 것이다.
"무사들이 충원된 이유는 바로 혈류흔이 그녀 곁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흠……!"
"혈류흔은 일백팔로살영마군을 재교육시키는 가운데 그녀를 발견한 듯합니다. 그는 혈지라는 여인을 만나는 찰나 그녀에게 빠져들었으며, 그 이후 거처를 사계화축에서 이십 리 떨어진 와호담(臥虎潭)에 두고 매일 한 차례씩 혈지 쪽으로 가 보곤 하는 중입니다. 혈지라는 여인은 혈류흔을 막기 위해 거처 일대를 기관매복으로 휘감았으나 혈류흔을 막지는 못했다 합니다."
"그럴 테지, 혈류흔이라는 자는 대나한진(大羅漢陣)이 열 겹 펼쳐져 있다 하더라도 간단히 뚫고 들어갈 자이니까!"
백검산은 일대를 둘러보고 있었다.
'혈류흔은 중원에 머물러 있는 변황인 가운데 가장 강하다. 또한 그는 나보다도 어린 나이이다.'
백검산의 두 눈에서 뿜어지는 한광은 이전보다도 차가웠다.
"그는 스물여섯 군데에 시산혈해를 이룩한 자다!"
"그, 그렇습니다!"
"또한 그가 이끌고 있는 살영마군은 지난 이 년 사이 중원무사 구천을 죽였으며, 이만여 무사를 폐인으로 만들었다!"
백검산의 손에는 책자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만통비록(萬通秘錄)>
천하대상 만통이 휘하세력을 이용해 수집한 모든 정보가 그 책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혈류흔은 십지마련에 속한 자라기보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임!
그 자의 특기는 혈전일자도(血戰一字刀)!
아무도 그의 일 도를 막지 못한 상태임!
그 자의 도에 당한 자의 몸에는 번갯불에 맞은 듯한 데인 자국이 남으며, 시신은 산산조각으로 바스러짐!
중략
혈류흔 휘하 살영마군들은 가장 포악한 자로서, 십지마련의 군사 사군옥이 십지마련의 주군(主軍)으로 영입하고자 하는 자임.
숫자는 일천.
이 년에 걸친 대혈전 가운데 부상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 내외공을 완벽하게 터득하고 있는 자들임.
회색 바람막이 옷을 걸치고 있으며, 그 자들의 병장기에는 극독이 발리어져 병기에 가볍게 스치기만 하더라도 살아남지 못함!>
살영마군에 대한 기록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살영마군은 혈류흔이 여색에 빠졌다 여기고 그를 축출하고자 하는 상태이나 혈류흔은 일당천이기에 감히 그를 베지 못함!
살영마군에 속한 자들 가운데 살려 둘 명분이 있는 자는 전무함!
이상!>
백검산은 만통비록을 자세히 살펴본 다음 숨을 깊이 빨아들였다.
"그들은 세 가지를 알지 못하고 중원에 들어왔다. 첫째, 중원이 넓다는 것. 둘째, 중원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 셋째, 무수한 중원인 가운데 바로 내가 있었다는 것!"
백검산은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등평도수(登萍渡水)를 이용해 잔잔한 호수 물을 밟으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 어디로 가십니까?"
일점흔이 그를 바라보며 묻자,
"싸울 때 싸우더라도, 꽃구경을 잊어서야 되겠는가?"
백검산은 팔짱을 낀 채 걸어갔으며, 단시홍과 몽중구검이 그의 그림자가 되어 뒤쫓아갔다.
안개를 헤치며 사라져 가는 열한 사람. 그들의 머리 위로 사월의 하늘이 잿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백검산이 걷자, 일점흔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백검산을 뒤쫓았다.
"속하, 어찌해야 하는 것입니까? 난데없이 꽃구경이라니요?"
"나는 혈류흔을 아네. 놈은 잔혹하고 과격하나 천하에 다시없는 무도인이네!"
"하, 하긴!"
"놈을 암살할 생각은 아예 없네. 나는 놈을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꺾어 중원무도가 변황무도를 능가한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릴 작정이네!"
"아……!"
"놈이 승부사라면 내 곁으로 올 걸세!"
백검산의 두 눈에서 한광이 폭사되어 나왔다. 그는 천천히 사계화축 쪽으로 가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혈류흔을 패배시키는 것보다, 지금 이 일대에 몰려 있는 악마의 무리들을 모조리 섬멸하는 것이네!"
"예에?"
"혈류흔과 내가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 있네."
"아……!"
"아마도 만통에게 혈류흔의 거처를 알린 자들은 바로 그 자들일 걸세!"
"그, 그렇다면…… 혈류흔은 이미 십지마련에서는 제명이 되었단 말씀이십니까?"
일점흔은 이제서야 백검산의 말뜻을 알아듣는 듯했다.
"훗훗……, 십지마련을 암중에서 조종하고자 하는 사군옥(史君玉)이라는 자는 과거 혈류흔으로 인해 중원무도계를 침묵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네. 옛말에 있듯이, 고난은 같이해도 환락은 함께할 수 없는 법이네. 내 짐작대로라면 십지마련은 내가 혈류흔을 죽여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걸세!"
"아……!"
"일점 노인은 혈류흔에게 이 물건을 전하게!"
백검산은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나뭇가지 하나가 백검산의 소맷자락에서 떨어졌다. 그것은 목련(木蓮) 나뭇가지로, 가지에는 백목련화 한 송이가 피어나고 있었다.
무엇으로 잘랐는지 모르나 매우 매끄럽게 잘려져 있었다.
"이, 이것이 무엇인지요?"
일점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데없이 목련화 가지라니!
"그것은 중원의 명예를 다시 세울 물건이네."
"예에?"
"또한 그 물건은 회색 이리를 미치게 만들 것이고……."
백검산의 신형은 보다 빨라졌다.
파팟―!
백검산은 가공할 속도로 날아올랐으며, 오직 한 사람 단시홍만이 그의 뒤를 유유히 따라갔다. 몽중구검과 일점흔은 점점 뒤쪽으로 처지기 시작했다.
창궁에서 백검산의 목소리가 표연히 흘러내렸다.
"이리(狼)를 차도살인케 하는 자들은 이제부터 바빠지게 될 걸세!"
백검산은 천리전어술로 말하며 절벽을 그대로 날아 넘었다.
단시홍은 그의 그림자가 된 양 일 장 간격을 두고 뒤쫓아갔으며, 일점흔은 한순간 백검산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모를 일이로군!"
일점흔은 수중의 목련 가지를 자세히 바라봤다.
매우 평범한 나뭇가지였다. 특징이라고는 전혀 없으며,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이라면 목련화 꽃송이가 아주 싱싱한 느낌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혈류흔이 승부사라면, 이것을 보고 주공을 찾는다고 하니……."
일점흔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백검산과는 다른 곳으로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쓰으으― 쓰으으―!
도합 십 인은 흐트러지기 시작하는 안개를 뚫고 자취를 감춰 버렸다.
▼
거벽(巨壁).
이상한 한기를 흘리고 있는 거벽은 칙칙한 빛을 흘리고 있었다. 높이는 십오 장 정도이며, 그 형상이 한 마리 와호(臥虎)를 방불케 했다.
휘리리리링―!
미묘한 지형 구조로 인해 거벽 앞에는 살을 에이는 삭풍이 흐르며, 그로 인해 식물이라고는 이끼조차 살아남지 못했다.
모든 것이 죽어 버린 대지 위로 한 줄기 검홍(劍虹)이 솟구쳐 올랐다.
보라! 허공에서 퍼부어지는 붉은 무지개를!
파파팟―!
번갯불이 바위를 때리는 듯한 광경이 벌어지며 거벽은 실로 거대한 도끼에 맞은 듯이 균열되기 시작했다.
정녕 가공스러운 일이었다. 무려 오 장 거리를 격해 도세(刀勢)로써 바위 표면에 다섯 자 깊이의 파흔을 남기는 자가 있다니!
"나의 혈전일자참도(血戰一字斬刀)를 막을 자가 없는 세상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몹시 불우한 일이다!"
도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자의 나이는 이제 열아홉 정도.
그는 도신일합(刀身一合)하여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다가는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그의 두 눈은 잿빛이며 회색 가죽옷을 걸친 그의 몸에서는 죽음의 느낌이 일어나고 있었다.
"야율초 대총사 이외에는 나의 일 도를 막을 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나는 나의 타오르는 피를 식히려고 노력했다. 하나,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를 만나기 전만 하더라도!"
히죽히죽 웃는 자.
다른 사람이라면 웃을 때의 모습이 환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한데 도를 끌어내고 있는 자의 웃음은 너무나도 경직되어 있었다. 한쪽 입꼬리가 묘하게 쳐들리며 잔혹한 숨소리가 흘러나왔으며, 잿빛의 두 눈에서 미광이 뿜어져 나왔다.
바로 혈류흔.
십지마련 제이의 고수자였다. 또한 나이를 따진다면 가히 살아 있는 전설이라 할 수 있으며, 십지마련의 거마들조차 함부로 하지 못할 포악성을 지니고 있는 자였다.
문득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도에서 숨소리를 느끼지 못하는 자라면 그의 손길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를 만지기 전만 하더라도……, ㅋㅋ. 나는 타오르는 승부욕을 이기지 못하고 발광할 지경이었다!"
혈류흔은 거벽을 바라보며 히죽이 웃었다.
바로 그때였다. 전신을 회색 천으로 휘어감은 자 하나가 조심스럽게 그의 뒤쪽으로 다가섰다.
"총군주,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조심조심 다가서는 자, 그는 혈류흔이 지난해까지 정면에서 이끌었던 백팔로살영마군의 부군주(副軍主)였다.
혈류흔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너무도 거만하고 독선적인 자, 그는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무적의 무사였다.
"며칠 만이로군, ㅋㅋ……. 듣자니, 사군옥 대형에게서 녹을 받기 시작했다던데?"
"으음……!"
"좋아, 사군옥 휘하로 가려면 가게. 아니, 어쩌면 이미 갔을지도 모르지. 다만 내가 그 사실을 알 경우, 칼부림을 할까 겁이 나서 내색을 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
혈류흔의 몸에서는 언제나 냉기가 흘렀다.
그는 태어나며 버려졌다. 야수와 더불어 소년시절을 보냈으며, 그로 인해 그는 따뜻한 인간의 정을 알지 못했고 알려 하지 않았다.
― 한 자루 칼은 나의 모든 것이다!
― 나를 버린 세상을 내가 버리겠다. 핏물에 빠뜨려서!
그는 천하에서 가장 살기가 짙은 자이다. 그의 수하들이라 하더라도 감히 그에게 말을 함부로 건네지 못한다.
부군주는 켕기는 것이 있는 듯 항변도 하지 못하고 혈류흔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두 가지 일이 벌어졌습니다!"
"무엇인가?"
혈류흔은 권태로운 눈빛을 석벽에 던지고 있었다.
달관이란 바로 권태의 지름길이다. 혈류흔은 지난 겨울부터 애도(愛刀)에 묘한 권태를 느끼고 있었다.
사실 그로서는 무공에 한계를 느낀 셈이었다. 야율초라는 존재는 극기심을 발휘해 그 한계를 청년시절에 넘어섰으나, 혈류흔은 그 한계를 쉽게 넘어서지 못했다.
그의 도는 감각의 도이다. 그것은 지혜 대신 본능에 힘입어 가공할 위력을 발휘한다.
혈류흔은 본능의 무도에 있어서는 절대자적인 위치에 이른 자였으나, 지난해 겨울부터는 본능무도에 한계를 느끼고 미묘한 권태감에 사로잡힌 것이다.
"누군가 사계화축으로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화…… 화축으로?"
혈류흔의 눈빛이 흐트러졌다.
"예. 그는 여종자 하나를 거느리고 있다고 하는데, 무사들을 강기로 밀치며 유유히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화축의 무사들이 그를 막은 것으로 보아, 그는 화축과는 연관이 없는 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흠, 나만큼이나 뻔뻔스러운 녀석이 또 있다니…… 재미있군!"
혈류흔은 묘한 질투를 느끼는 듯했다.
사계화축은 그가 신성하게 여기는 장소였다. 만에 하나, 살영마군 가운데 누군가 그 근처로 다가섰다가는 즉시 혈류흔에게 참살이 될 것이다.
혈류흔은 예의를 모르는 자이나 제 나름대로 혈지라는 여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한데 누군가 화축 안으로 들어갔다니?
"두 번째 재미있는 일은, 총군주 앞으로 몹시 미묘한 물건이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내게 물건이 전해졌다고?"
혈류흔의 얼굴이 다시 한 번 일그러졌다.
부군주는 허리를 넙죽 숙인 다음 말을 이었다.
"나뭇가지 하나였습니다. 버릴까 하다가…… 갖고 왔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부군주는 조심조심 하나의 물건을 혈류흔에게 전했다.
목련화(木蓮花), 너무나도 그윽한 향기를 흘리고 있다. 나무에서 막 잘라 낸 듯 생동감을 품고 있으며, 나뭇가지 하나에 사월의 모든 기운이 포함되어 있는 듯이 일대가 기이한 훈기에 휘어감겼다.
실로 평범한 나뭇가지였다. 그런데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으으…… 으으……!"
혈류흔의 잿빛 눈빛이 돌연 거칠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의 숨결은 뜨거워졌으며, 애도를 쓰다듬을 때 빼놓고는 떨리지 않던 그의 손길이 격렬히 떨리기 시작했다.
"누, 누가 이것을 전했는가?"
그의 두 눈에서는 감히 바라보지 못할 정도로 강렬한 안광이 폭사되어 나왔다.
강철을 녹일 듯한 눈빛은 여인에게 미쳤다고는 하나, 혈류흔은 역시 혈류흔이었다. 십지마련을 통틀어 본다 하더라도 그를 능가할 만한 고수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대체 누가 이것을 전했는가?"
혈류흔은 덥석 손을 내밀었고, 부군주라는 자의 곡지혈(曲池穴)이 혈류흔의 손아귀에 거머쥐며 탈골(脫骨)되는 소리가 우두둑 울려 퍼졌다.
냉혈의 승부사 혈류흔이 이렇게 놀라워해 보기도 처음이었다.
나뭇가지 하나로 인해 그의 차갑던 피가 끓어오르다니?
"어이쿠우!"
부군주의 등줄기가 굵은 땀방울로 인해 축축이 적셔지기 시작했다. 그는 팔이 바스러지는 듯한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사지를 바들바들 떨면서 입술을 달싹거렸다.
"보, 보낸 자를 보지는 못습니다."
"못 봤다고?"
혈류흔의 눈빛은 더욱 흉흉해졌다.
"예. 그는 이것을 혈류흔에게 전하라. 이런 말을 전리전음으로 하면서 나뭇가지를 던지고 사라져 갔습니다. 지극히 빠른 신법을 가진 자였기에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
혈류흔은 천천히 손아귀를 풀어 주었다.
그의 다섯 손가락에는 뜨거운 핏물이 묻어 있었다. 손을 어찌나 세게 거머쥐었는지 그의 다섯 손가락이 부군주의 팔뚝 속으로 세 치 깊이 파고들었던 것이다.
"……."
웃는 것일까? 아니라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뇌하는 것일까?
혈류흔의 표정이 너무나도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놈은…… 검도의 대가이다."
그는 나뭇가지를 들고 있었다.
꽃이 피어난 목련 나무, 혈류흔은 기진이보를 보고 있는 듯이 눈빛을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세 가지 기흔(氣痕)이 서리고 있다. 아아, 그리고 그 하나 하나의 흔적은 모두 절대절정이다."
세 가지 흔적이라니, 나뭇가지에 대체 어떠한 흔적이 머물러 있단 말인가.
"철기(鐵氣)도, 목기(木氣)도, 석기(石氣)도 나타나지 않는 단면은 놈이 선천검도(先天劍道)에 들었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또한 꽃이 아직 피어나고 있다는 것은, 놈의 검도가 사검도(死劍道)와는 극성이 되는 생검도(生劍道)의 절정검(絶情劍)이라는 것을 뜻하며……."
혈류흔의 눈빛이 무섭게 타올랐다.
그가 잃어버리고 있던 승부의 본능에서 뿜어지는 눈길은 차라리 순수해 보였다.
"나뭇가지 표면에는 내가고수도 알아보기 힘든 세흔이 천여 개 남아 있다. 그것은 놈의 검도가 패검도(覇劍道)와는 완전히 다른 교검도(巧劍道)라는 것이다."
부르르르―!
혈류흔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중원에서 이런 검도를 시전할 자는 오직 하나이다. 바로…… 바로 대륙혼뿐이다!"
혈류흔의 하이얀 이가 햇살에 반짝거렸다.
차디찬 피의 승부사, 그는 시선을 천천히 부군주 쪽으로 돌렸다. 부군주는 너무나도 엄청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무릎을 땅에 꿇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혈류흔은 그를 바라보며 소년처럼 히죽 웃었다.
"자네, 잘하면 소원을 이루겠네?"
"무, 무슨 말씀이신지요?"
"ㅋㅋ……, 대륙혼이 왔다. 모르긴 해도 그 자가 여기 온 데에는 사군옥 나으리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크크……, 하여간 좋아. 그가 대륙혼이건 달마조사이건 대명의 천자이건, 나를 들뜨게 하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혈류흔은 손바닥으로 머리카락을 빗어 넘겼다.
그의 얼굴에는 상처 자국이 무수했다. 그 자국은 이빨 자국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얼굴을 늑대에게 물어뜯겼으며, 그로 인해 그의 얼굴에는 무수한 흉터가 남게 된 것이다.
"그가 죽든, 내가 그를 죽이든…… 오늘의 승부는 실로 오랜만에 피가 끓는 승부가 되리라."
혈류흔은 도를 안은 채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는 거의 찰나적으로 하나의 연(鳶)처럼 날아올랐다.
직후,
"대, 대륙혼이라고? 그가 나타났단 말인가?"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쓰러져 있던 부군주는 혈류흔이 까마득히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며 다시 한번 전율했다.
십지마련에 속한 자라면 대륙혼을 알고 있다.
암살 서열 제일위(第一位).
대륙혼은 십지마련의 자객들에게는 노림의 대상이었고, 십지마련의 지배자들은 대륙혼이란 말만 들어도 몸서리를 떨 정도였다. 개중의 어떠한 자는 대륙혼으로 인해 불면증을 앓기 시작했으며, 어떤 자는 거처를 수시로 바꾸어 대륙혼이 자신을 찾지 못하게 안배하고 있었다.
공포의 대명사 대륙혼.
드디어 그가 제오(第五)의 인물 근처로 나타난 것이다.
일각 후, 검은 옷자락에 검은 방립을 쓴 무리들이 사계화축 일대의 십팔 개 지역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전신에서 사악한 기운을 푹푹 뿜어내는 자들, 그들의 옷가슴에는 하나의 흉칙한 그림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것은 머리를 풀어 흩트린 마귀의 얼굴이었다.
아아, 그 문양은 바로 십지마련에서 숫자상 가장 방대하다고 알려진 천외천마전(天外天魔殿) 소속 무사들의 독문기호가 아닌가.
숫자는 수백이고, 몸을 날리는 데에도 불구하고 파공성을 거의 내지 않았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는 만면에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드디어…… 천하에서 가장 재미있는 유희가 시작되는 것이다."
번쩍―!
두 눈에서 시퍼런 섬망을 뿜어내는 자.
그는 사계화축의 청와 지붕 쪽을 바라보며 하이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계집에 미친 혈류흔과 살인에 미친 대륙혼이 드디어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크크……, 역시 대군사(大軍師)의 지혜는 천하에서 가장 뛰어나시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존명(尊命)!"
"핫―!"
수백여 무사들은 포검(包劍)한 채 허공으로 훌훌 날아올랐다.
무사들은 너무도 삽시간에 사라졌다. 그들은 일대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들었다.
나뭇가지 속으로 스며드는 자, 화원에 깊이 은잠해 들어가는 자, 호수 속으로 잠수해 들어가는 자, 그리고 개중의 어떤 자는 지둔술을 써서 땅 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천외살망검진(天外殺網劍陣).
천외천마전에서 가장 자랑하는 검진이다.
그것은 죽음의 덫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으며, 그 안에 갇혀 살아남은 자는 하나도 없다는 무림계의 전설을 갖고 있다.
살기마저 대기에 감추는 극악무도한 검진이 펼쳐지자, 사계화축의 대기 속으로 살기가 솜에 물이 배이듯이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매우 먼 곳에서는 열 개의 그림자가 조용히 나타나고 있었다.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외팔이 노인은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소리 없는 웃음을 연방 흘렸다.
'바로 그것이었다. 주공은 스스로 폭풍의 눈이 된 것이다. 훗훗……, 폭풍은 기세가 포악하고 거치나 폭풍의 중심지는 오히려 조용하다. 지금 나타난 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일점흔, 그는 몽중구검과 더불어 천외천마전 무사들의 배후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잼 납니다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