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쌍검은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건 그의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탈명수라대 역사상 이런 강적과 싸워본 적은 없었다. 수라쌍검이 떨리는 자기 오른손을 왼손으로 꽉 잡은 채 말 했다. "육절서생? 서생이라고? 세상이 이 사람에게 속았다. 이자 는 서생 따위가 아니야. 이자가 지친 상태가 아니었다면 죽는 것은 우리였다." 부하들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 "계획대로 서현에서 습격했다면 아마 우린 제대로 싸워보 지도 못하고 죽었을 겁니다." "하늘이 우리를 도운 거지요." 사황성의 포위망 한쪽에서 기현음이 걸아나왔다. "이놈들! 네놈들은 정체가 무엇인데 우리 목표를 함부로 죽이느냐? 그놈은 내 손으로 죽이려 했거늘!" 기현음도 이자들이 마교 사람임은 예상하고 있었다. 아직 은 마교와 함부로 싸울 때가 아닌지라 자제하고 있었다. 수라쌍검이 떨리는 몸을 진정시킨 후 말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짐작하고 있겠지? 그러는 당신 은 누구인가?" "나는 거도음마 기현음이다. 사황성의 장로 직을 맡고 있 지." "호오. 그대가 거도음마로군. 겨우 거도음마 정도로 저 대 단한 주유성을 죽이겠다고?" "뭣이? 네놈들의 허접한 무공으로도 죽일 수 있었던 주유성 이다. 그런 잡놈을 내가 죽이지 못한다?" 수라쌍검은 어이가 없었다. "잡놈? 무림의 누가 감히 그를 잡놈이라 칭할 수 있을까?" "어쨌든 비켜라. 그자가 죽었는지 확인해야겠다. 비키지 않으면 쓸어버리겠다." 수라쌍검이 비웃었다. "등에 베인 검상도 치명상. 가슴에 찔린 관통상도 치명상. 거기에 더해서 나 수라쌍검의 암명일혼장에 정통으로 당했 다. 보통 사람이라면 세 번을 죽었을 상황이다. 그래도 살아 있다면 염라대왕에게 돈이라도 빌려준 인간이겠지." 그 말에 기현음이 화들짝 놀랐다. "수라쌍검? 혹시 그대들은 마교의 탈명수라대?" "교를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는 우리를 아는군." "모를 리가 있는가? 마교 내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 다는 그대들을." 기현음은 재빨리 상황을 계산했다. '확실히 시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부하들 중에 수공이 능한 자를 보내면 되겠지. 하지만 탈명수라대의 수라쌍검? 그의 암염일혼장은 무림의 일절. 그걸 맞고 살아남은 자가 있 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 큰 부상에 더해서 그것에 맞 았다면 죽었다고 보는 게 옳겠지. 그런데 저놈들이 정말로 탈 명수라대일까?' 답은 나와 있었다. '그 정도 되니까 주유성 그놈을 겨우 열 명이서 없앨 수 있 었겠지. 무려 천 명이나 죽인 놈인데. 더구나 이놈들 싸울 때 의 실력은 장난이 아니었어. 진짜가 틀림없다.' 그의 곁에 부관이 다가오더니 급히 보고했다. "기 장로님, 무림맹의 긴급 타격 부대가 고속으로 접근하 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그놈들이 벌써 여기까지 왔다고?" "아직 거리가 조금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만 물러나지 않으며 그놈들과의 접촉을 피할 수 없습니다." 기현음은 더 고민할 수가 없었다. "칫. 아쉽군. 하긴, 거기서 살아남는 인간이 있을 리가 없 지. 어차피 임무는 완성. 물러서자." 사황성의 무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남은 것은 넋을 잃고 서 있는 검옥월과 탈명수라대뿐이었다. 탈명수라대원 하나가 수라쌍검에게 질문했다. "대장님, 저 여자는 어떻게 할까요?" 수라쌍검이 검옥월을 힐끗 보더니 부하들에게 말했다. "나는 주유성에게 맞은 충격 때문에 온몸이 욱신거린다. 어서 조용한 장소를 찾아서 운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는 손목이 부러졌습니다." 서너 대씩 얻어맞지 않은 자가 없었다. 수라쌍검이 다시 검옥월을 보며 말했다. "저 여자의 무공이 만만치 않아. 우리가 지금 이 상태로 붙 으면 조금이라도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어처피 우리의 목 표는 주유성 하나였지. 목표가 아닌 여자는 무시한다." 탈명수라대마저 사라진 뒤에 검옥월만 넋이 나간 채 자리 를 지켰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장소로 무림맹의 긴급 타격 부 대가 몰아닥쳤다. 상황을 들은 긴급 타격 부대는 그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수공에 능한 자들은 바다에 들어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서도 주유성을 찾을 수는 없었다. * * * 북해빙궁의 냉소천 일행이 무림맹에 도착했다. 냉소천의 안색은 별로 좋지 않았다. 냉소미가 냉소천을 보고는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오빠. 어떻게 화정이 하나 못 꼬셔?" 냉소천은 내가 닳아 있었다. "그러게. 중원의 여자들은 뭐가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송화정은 자기네 동네에서 최고의 신붓감으로 칭송이 자자 하던 아가씨다. 그녀는 여행 중에 음식 솜씨로 사람들의 마 음을 휘감고 부드러운 말과 미모로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냉소천이 그녀와 같이 지내다 보니 이건 정말 북해에서도 보기 힘든 진국이다. 마음이 크게 동한 그는 송화정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들이댔다. 들이댄다고 무조건 여자를 얻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더구나 송화정처럼 주유성이란 게으름뱅이에게 마음을 쏙 빼앗긴 여 자는 더 어렵다.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갖지 못하는 것은 더 가지고 싶다. 더구나 냉소천은 처음에 그녀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것으로 착각했었다. 그런 상태 에서 송화정이 마음을 열지 않자 마치 애인을 잃을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초조해질수록 그의 마음은 점점 송화정에게 넘어갔다. 송 화정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녀는 점점 냉소천에게 차갑게 대했고 냉소천은 더욱더 애가 탔다. 냉소미는 다른 이유에서 냉소천을 부추겼다. 송화정과 같 은 마차를 타고 온 그녀는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그녀가 얼마나 남자들이 원하는 사람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에 주유성이 들어 있음도 눈치 챘다. '화정이 요거, 정말 강력한 경쟁 상대다.' 그녀가 알기로 주유성에게는 이미 경쟁자가 셋이나 붙어 있다. 거기에 하나 더 얹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 서 그녀는 냉소천을 계속 들쑤셨다. "에휴. 시간을 가지고 해봐야지. 아, 내가 여자 때문에 이 렇게 마음고생할 줄은 정말 몰랐다." 바람둥이 냉소천이 임자 만났다. * * * 무림의 소문은 빠르다. 무림에 육절서생 주유성의 사망 소 식이 전해졌다. 무림 객잔마다 그 소문이 화제였다. "이봐 이봐, 소문 들었어? 육절서생이 죽었다는군." "육절서생? 아니, 왜 서생을 죽여?" "이 친구, 소문을 아직 못 들었군. 그는 이제 육절서생이 아니야. 칠절사신이라고 불린다고." "칠절사신?" "사황성이 그를 잡기 위해서 천라지망을 펼쳤다더군. 그 규모가 얼만지 아는가?" "천라지망이라고 하면... 오백?" "이 친구야! 무려 삼천이라더군, 삼천." "사황성이 미쳤군. 한 명을 잡기 위해서 삼천을 동원해?" "그것만으로 부족했지. 그 삼천 명 중에 무려 일천 명이 칠 절사신 주유성에게 죽었어. 그래서 그의 무림명이 칠절사신 으로 변했지." "허억! 그게 정말인가? 대단하군. 그럼 사황성의 나머지 이 천 명에게 그가 죽은 건가?" "아니라네. 마지막에 그를 죽인 건 마교의 탈명수라대라고 하더군. 탈명수라대도 힘에 부쳐 겨우겨우 그를 죽였다고 한 다네. 사황성이 미리 힘을 빼놓지 못했다면 탈명수라대 정도 로는 어림도 없었을 거라는 것이 중론이네." "마, 마교까지? 게다가 탈명수라대라면 마교의 사신이라고 불리는 놈들 아닌가? 마교 장로라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걸리 면 살기를 포기해야 한다던......" "그렇다네. 사황성 삼천 무사에 마교까지 작정을 하고 움 직였으니 그가 살기는 어려웠지." "허어, 듣고 보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군. 그런 실력자가 죽었으니 정파무림으로서는 큰 타격이 아닌가?" * * * 싸움의 결과를 보고받은 사황성도 뒤집어졌다. 혈마가 얼굴이 다 벌게져서 말했다. "주유성 그 새끼를 죽이는 데 천 명이 당했어?" 천라지망을 펼쳤던 기현음이 기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중의 팔백은 여러 잡파에서 끌어 모은 자들로서......" "이백은 우리 성에서 직접 데려간 자들이고?" "그,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의 힘을 빼기 위해서 그 정도 피해는 어쩔 수가......" "잘했다." "예?" 기현음이 의아한 얼굴로 혈마를 쳐다보았다. 혈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우. 원래는 주유성 그놈의 지략이 무림제패에 큰 방해 가 될 것 같아 미리 제거하려고 한 것이지. 진정 잘한 것이군. 그놈이 그런 대단한 무공을 숨겨두고 있었다니. 그 지략에 무 공이 더해진다면 정말 큰 방해가 될 놈이었어. 겨우 천 명으 로 해결봤다면 싸게 먹힌 거지." 기현음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습니다. 겪어보니 실로 무서운 놈이었습니다. 살려두 었다면 정말 큰 후환이 되었을 놈입니다. 비록 마지막에 마교 놈들에게 공을 빼앗겼습니다만......" "아, 그 이야기. 마교도 주유성 그 개자식의 위험성을 알고 탈명수라대를 파견했다며?" "그렇습니다. 무공 수위를 보아하니 탈명수라대가 틀림없 어 보였습니다." "마교 놈들. 아니지, 마뇌. 그놈은 역시 대단한 놈이군. 교 주 직속이라는 탈명수라대를 동원해서라도 주유성을 제거하 려고 하다니. 놈의 위험성을 알았다는 소리잖아. 주유성이 없 어진 지금 제일 방해되는 인간은 마뇌라고 봐야겠지?"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총관이 끼어들었다. "그 건에 대해서 보고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뭔가?" "마교에서 마뇌가 숙청되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혈마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다 이내 환해졌다. "그게 정말인가?" "좀더 확인이 필요하지만 권력을 잃은 것 자체는 사실로 보입니다." 혈마가 크게 웃었다. "으하하하! 주유성에 이어서 마뇌까지 사라져? 하늘이 나 를 돕는구나. 이봐, 총관. 그럼 마교를 싸움에 끌어들이는 것 은 더 쉬워지겠지?" "이미 천마는 싸움을 시작하려 하고 있습니다." "크하하하! 무림이 내 손에 있구나!" 혈마는 정말로 무림을 손에 쥘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 * 천마도 보고를 듣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그러니까 탈명수라대가 겨우 제거했다고? 주유성 따위를?" 마뇌가 없는 상황이라 장로 하나가 나서서 보고했다. "전서구를 통한 보고에 의하면, 그나마도 사황성의 무사 일 천여 명을 죽이느라 힘이 빠진 상황이어서 가능했다고 합니 다." 천마가 아쉬운 듯이 말했다. "아깝군. 그 정도 놈인 줄 알았다면 내가 직접 상대하는 것 을. 싸우는 재미가 솔찮게 있었을 텐데 말이야." 장로 하나가 즉시 아부했다. "교주님의 일 합도 받아내지 못했을 겁니다." 천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 정도라면 몇 합 정도는 즐겁게 겨뤘을 거야. 유흥거리로는 더없이 좋은 상대였는데. 아쉽구나, 아쉬워." 다른 장로가 마뇌의 험담을 했다. "이게 다 마뇌가 그자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때 문입니다. 마뇌가 제대로 했으면 교주님이 지금 아까워하지 않으셨을 텐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앞으로는 저희가 그 런 일이 없더록 적극 보좌하겠습니다." 마뇌가 있음으로 해서 발생된 부작용 중 하나가 이것이었 다. 최고의 참모진을 가지고 거의 완벽에 가까운 두뇌 역할을 하는 그가 오랫동안 마교를 지휘했다. 더구나 마뇌는 자신의 경쟁 상대가 될 만한 자들은 일찌감치 견제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장로들은 무공 위주로 선발되었다. 대신 에 지략 면에서 꽤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래도 몇 명 정도는 지략이 뛰어났지만 대세는 무공 높은 장로들 편이었다. 그들이 천마의 곁에 붙어 아부를 늘어놓았 다. 기분이 좋아진 천마가 말했다. "괜찮아. 그놈은 여흥거리일 뿐이지. 검성과 혈마, 그놈들 을 쳐 죽이는 것이 가장 재미있을 거야. 준비는 끝났겠지?" * * * 주유성의 사망 소식은 주가장에도 전해졌다. 처음 소식을 들은 주가장은 경악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 다.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사천나찰 당소소였다. "흥, 헛소문이야. 유성이가 죽어? 불가능해. 내 아들을 죽 일 수 있는 인간은 없어. 천마나 혈마가 나서더라도 충분히 도망칠 수 있어."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녀의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주가장주 금검 주진한도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유성이가 죽다니. 차라리 일성이마가 몰살했다고 하는 게 믿을 만하지. 말도 안 되는 소리. 무림에는 원래 헛소문이 많아. 나는 반로환동의 고수가 돌아다닌다는 헛소 문까지 들은 적이 있지." 진무경이 급히 덧붙였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잖습니까? 무림맹의 수색대가 그 일대를 싹 뒤졌어도 시체는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게으른 녀석, 분명히 어딘가에 숨어서 게으름 피우고 있는 것이 틀림 없습니다." 당소소의 얼굴이 환해졌다. 눈물까지 글썽였다. "그렇지? 그것 봐. 시체가 없다잖아. 그럼 산 거야. 그럼. 그렇고말고." 서현 전체도 충격에 휩싸였다. 주유성이 서현 지역 경제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중에서도 서현의 시장 사람들에게 주유성의 의미는 엄청나다. 꼬치구이 가게를 운영하는 당찬 아가씨 밍밍은 그 소문을 듣고 처음에는 피식 웃었다. "흥. 오빠가 죽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러나 같은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자 그녀의 얼굴은 점점 하얗게 변했다. 옆 가게 주인이 그녀가 걱정되어 다가왔다. 그녀가 밍밍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밍밍아, 소문 들었니?" 그 작은 충격에 밍밍은 풀썩 쓰러졌다. 그녀는 이미 까무러 쳐 있었다. * * * 소식을 들은 무림맹은 뒤집어졌다. 검성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뭐가 어쩌고 어째? 유성이가 죽어?" 그의 내력 깃든 소리에 회의실이 부르르 떨렸다. 장로들은 평소에 허허거리고 있던 검성의 진짜 내력을 느끼고 기겁을 했다. 다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거지 취걸개가 즉시 반박했 다. "맹주! 유성이가 죽다니. 그놈이 얼마나 영악한데 죽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시오!" 검성이 마음을 조금 진정하고 말했다. "그렇지. 유성이가 죽을 놈이 아니지. 그놈을 죽일 놈이 있 을 리가 있나. 하지만 방금 보고에서 마교 놈들의 탈명수라대 에 당했다며!" "시체는 안 나왔다니까! 다른 놈이라면 몰라도 그놈은 시 체가 없으면 죽은 게 아니란 말이오!" 검성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 그렇지. 시체가 안 나왔지, 시체가. 그럼 당장 수색대 를 파견해서 더 철저히 뒤져야지! 어디 다쳐서 쓰러져 있을지 도 모르잖아!" "이미 그러고 있소. 우리 거지새끼들이 떼거지로 몰려갔단 말이오!" 무림맹주와 무림장로는 급수가 차이가 난다. 검성과 취걸 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원래부터 말이 걸걸한 취걸개였다. 게다가 둘 다 심하게 충격받은 상태라 서로 맞먹고 있었다. 그들의 싸움을 보면서 군사 제갈고학과 적명자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예상보다 더 큰 성과다. 사황성 놈들을 천 명이나 죽이고 죽다니. 그야말로 최고의 결과로군. 역시 내 계략은 뛰어나. 주유성, 마지막에 웃는 것은 결국 나란 말이다. 흐흐흐.' '잘 죽었다. 그놈이 드디어 죽었구나. 속이 다 시원하다. 흐흐흐.' * * * 중소 규모 중에서 제법 잘나가는 정파 중 하나로 도곡문 이 있었다. 도곡문이 있기에 인근 마을들은 사파들의 위협에 서 어느 정도 안전한 편이었다. 사황성의 힘이 넘치는 만큼 일반 사파들은 그 세력이 약했 다. 도곡문과 오랜 세월 경쟁하는 사파가 녹흑파였다. 녹흑파 는 도곡문을 누르기 위해서 사황성과 협조 관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다른 사파들처럼 녹흑파 역시 재능있는 제자들의 상 당수를 사황성에 빼앗긴 상태였다. 그런 세월이 길다 보니 녹흑파의 힘은 상당히 약해졌다. 이 제 그들의 힘만으로는 도곡문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녹흑파의 문주가 멀리 있는 도곡문을 보고 이를 갈며 말했 다. "그러나 그런 치욕의 세월은 이제 끝이다. 보아라, 진명아. 저 도곡문은 곳 지워질 것이다." 녹흑파 문주의 곁에는 그의 대제자였다가 여러 해 전에 사 황성에 빼앗겼던 위진명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위진명은 최 근에 일단의 무사들을 데리고 늑흑파로 돌아왔다. 위진명은 사부의 앞이지만 꽤나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훗! 겨우 저 정도 문파에 치욕이라니. 녹흑파도 많이 약해 졌군요. 그리고 사부님, 기왕이면 혈향백리대장이라고 불러 주시지요." 혈향백리대는 사황성의 수많은 전투 부대 중 하나였다. "허, 험. 그래, 혈향백리대장. 뭐 하느냐. 어서 너의 혈향 백리대를 끌고 가서 단숨에 저놈들을 쳐부수지 않고. 이 사부 는 기다리느라 목이 다 빠지겠구나." 위진명이 싸늘하게 웃었다. "제 혈향백리대는 사황성의 정예 전투 부대입니다. 이런 일에 소모할 수 없지요." 녹흑파 문주는 당황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이냐? 이놈, 사부의 말을 무시할 것이냐?" 위진명은 콧방귀를 뀌었다. "흥! 사부, 사사로이 보면 내가 사부의 제자이지만 공적으 로 보면 나는 혈향백리대장. 사황성이 직접 녹흑파로 파견한 전투 부대의 대장이란 말입니다. 당연히 녹흑파에서 상전으 로 모셔야 합니다. 험험, 그래도 사부의 문파이니 내가 예의 를 차리는 겁니다." 위진명은 오랜 세월 사황성에서 지냈다. 사황성은 그들을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그와 함께 일반 사파를 무시하는 교육 을 철저히 했다. 그렇게 여러 해를 산 위진명이다. 이제 그는 다른 대부분의 사황성의 무사들처럼 녹흑파 같은 출신 문파 를 자기의 소속 문파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녹흑파 문주의 얼굴이 분노로 조금 타올랐다. "네, 네가 어찌 나를 이리 대할 수 있다는 말이냐?" "어허. 그래도 사부니까 이만큼 대접해 주는 거지. 내가 다 른 문파로 파견을 갔다면 이리 좋게 이야기하는 줄 압니까? 그곳 문주의 멱살을 잡고 일을 시킨단 말입니다. 쓸데없는 소 리 말고 일단 녹흑파로 먼저 저놈들을 공격하시죠. 우리 혈향 백리대는 그 뒤를 따라갈 테니." "이놈, 저들은 바로 너의 사제와 그 제자들이거늘!" 위진명은 콧방귀를 뀌고 있었다. 당장 아쉬운 것은 녹흑파다. 녹흑파 문주는 이 싸움으로 얻 을 이익을 먼저 생각했다. '그래. 도곡문만 없으면 이 근처의 패권은 우리 녹흑파가 차지한다. 참자. 대제자 따위 죽었다고 생각하면 그만.' 녹흑파 문주가 할 수 없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뭣들 하느냐? 어서 공격하지 않고!" 녹흑파의 무사들이 그의 명령에 따라 도곡문을 향해 우르 르 달려들었다. 잠시 후 도곡문에서 요란한 호각 소리가 터져 나왔다. 녹흑 파의 무사들이 그들을 덮쳤고 도곡문은 즉시 반격했다. 애초에 질이나 양 모두 도곡문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녹흑 파다. 처음에는 기습의 효과로 재미를 좀 봤지만 시간이 지나 자 녹흑파의 무사들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도곡문주가 호통을 쳤다. "이 사파 놈들! 불나방처럼 덤벼들다니! 이번 기회에 이 근 처 사파의 씨를 말려 버리겠다!" 그때 위진명이 장내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오며 말했다. "흠. 그 정도 전투로 벌써 반이 훨씬 넘게 당하다니. 녹흑 파 이거 약해도 너무 약하잖아? 쯧쯧. 내 부하들이 싸우기 전 에 정파 놈들을 더 제거했어야지." 위진명을 발견한 도곡문 무사 하나가 달려들었다. "죽어라!" 도곡문이 완전히 승기를 잡은 상황이라 그 무사는 겁이 없 어진 상태였다. 위진명의 검이 가볍게 흔들렸다. 그 끝에는 무사의 목이 걸 려 있었다. 단번에 피가 튀었다. "커윽!" 위진명의 무공이 심상치 않음을 발견한 도곡문주가 그에 게 달려들며 외쳤다. "네놈은 누구나!" 위진명이 그 공격을 걷어내며 말했다. "사황성 혈향백리대장 위진명!" 도곡문주는 기겁했다. "허억! 사황성? 사황성이 개입했다고? 이놈들, 무슨 속셈이 냐!" 위진명이 검기 서린 검을 휘둘러 도곡문주를 밀어붙이며 말 했다. "당연히 성주님의 무림제패가 속셈이지. 그사이에 나도 명 성 한번 제대로 떨쳐 보고 말이야. 그동안 사황성에서 수련만 하느라고 질렸거든." 도곡문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맙소사! 정사대전!" * * * 무림맹이 뒤집어졌다. 회의장은 난장판이 됐고 심지어 장 로들끼리 멱살잡이까지 하고 있었다. 무림맹주 검성 독고진천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다들 좀 닥치시오!" 사람들이 그 서슬에 찔끔 놀라며 말싸움을 멈췄다. "진정들 합시다. 우리가 진정하지 못하면 누가 이 사태를 해결한다는 말이오!" '유성이 녀석이 그립구나.' 사람들이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군사 제갈고학이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아직 사황성이 정사대전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증거는 없 습니다. 이건 다만 그들의 무력 행사일 가능성이......" 취걸개가 벌떡 일어서며 고함을 질렀다. "닥쳐라! 군사쯤 되는 놈이 상황 판단이 그렇게 안 돼? 이 건 일으키려고 하는 게 아니야! 벌써 정사대전이 시작된 거라 고! 수많은 정파가 공격받고 일부는 멸문했다!" "단지 그런 일로......" "더구나 그 공격의 전면에는 사황성의 전투 부대들이 끼어 있다. 약화되었던 사파의 세력, 그건 다 거짓이었다. 진짜는 전부 사황성에 웅크리고 있었어. 정파들은 그 공격을 막아내 지 못하고 있다고!" 제갈고학도 그건 안다. 그러나 그는 정말로 이 공격이 정사 대전이 아니기만 바라고 있었다. '내가 주유성 그놈을 처리하기 위해서 쓴 수작이 이번 일 의 계기가 된 건 아니겠지?' 그는 그것이 두렵다. 사황성이 정사대전을 일으킨 계기가 자신이 벌인 수작 때문이 아닐까 하는 걱정에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다. '내가 그렇게까지 하는 걸 보고 우리 무림맹이 얼마나 엉 망인지 깨달은 걸지도 몰라. 그래서 만만하게 보고 정사대전 을 시작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아직 마교가 있다고. 혈마는 바보가 아니야.' 제갈고학이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혈마가 정사대전 같은 미친 짓을 지금 벌일 리가 없습니 다. 마교, 그들이 있는데 우리와 먼저 싸우다니요. 이건 가위 바위보라고 한 사람도 있잖습니까? 먼저 싸우는 자가 집니 다." 청허자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 가위바위보 이야기는 유성이가 해준 거였지. 하지만 이제 유성이는 없군." 그때,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리며 무사 하나가 뛰어들어 왔 다. 그가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마교가 움직였습니다! 그들이 중원을 향해 진군하고 있다 는 보고입니다!" * * * 사황성과 마교가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는 소리는 정보가 빠른 편인 상인 주진한에게도 전해졌다. 그는 소식을 듣자마 자 벌떡 일어섰다. "무경아, 장원의 무사들을 전부 모아라. 돈은 전부 챙기고 장부도 모아. 장원에는 도둑놈을 방지하기 위한 몇 명만 남겨 둔다. 그리고 내 검을 가져와라." "사부님, 어디로 가시려고 하십니까?" 주진한의 눈이 이글거렸다. "무림맹. 무림맹에 가서 사황성과 마교를 치겠다. 감히 내 아들을 위험에 빠뜨린 그 두 놈들. 용서하지 못한다. 박살을 내버리겠어." 사천나찰 당소소도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일어서며 말했다. "천마나 혈마 모두 갈아 마셔 버리겠어요." 즉시 주가장의 유동자산에 대한 정리 작업이 시작되었다. 기존에 주가장이 보유한 상가들은 그대로 영업하도록 두었다. 그런 상가에는 무공을 모르는 자들도 다수 근무하고 있으니 다 털어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황금이나 비단처럼 쉽게 현금화가 가능하고 부피가 작은 물건들은 차곡차곡 상자에 넣어졌다. 그런 상자가 여러 수레 나왔다. 그리고 진무경과 당소소가 훈련시키고 주진한 이 몇 수 가르친 주가장의 모든 무사들이 움직였다. 일 관계 로 외부에 나가 있던 무사들까지 모두 불러들였다. 그 수가 모두 합쳐 백여 명이었다. * * * 주가장의 이동 소식은 사황성에도 전해졌다. 그 보고를 받은 혈마가 가볍게 말했다. "주가장이 돈이 제법 많다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현금 보유량은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 을 겁니다. 대부분 장부에 기록되어 있겠지요." "그게 무림맹에 넘어가면 골치 아프지?" "물론입니다. 그는 하남십대상인 중 하나입니다. 재산을 통째로 무림맹에 넘긴다면 그들의 군자금이 크게 늘어나는 효과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것이 꺼려져서 주유성을 암살 하지 않은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규모는 어느 정도야?" "무사 숫자가 약 백여 명 정도라고 합니다."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놈들이 감히 나를 치겠다고 무 림맹으로 가?" "일단 그곳의 가주가 금검이라는 고수로, 그의 아내가 사 천나찰 당소소입니다. 하남은검 진무경이라는 신진고수도 있 습니다. 그중에 당소소는 독왕의 딸입니다." "그래봐야 겨우 고수 셋이지.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다. 독 왕의 원한 같은 것에 신경 쓸 필요 있나? 당문도 결국 없애야 할 곳이니까. 전투 부대를 보내서 그놈들을 몰살시키고 돈을 빼앗아. 장부는 태워 버리고." "알겠습니다." * * * 주가장주 주진한은 장원의 무사들을 모조리 끌고 이동했 다. 현금화가 가능한 것도 모조리 가지고 움직였다. 그에게 고용되어 있던 일반 상인들은 주가장에 얼씬도 못 하게 했다. 주가장에는 고용한 무사 몇 명을 두어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도둑놈들을 경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차피 텅 빈 장원에 관심을 기울일 자는 없었다. 일행은 전원이 무공을 익힌 사람들이다. 그러나 예외가 한 명 있었다. 밍밍이었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주가장이 무림맹으로 간다는 소식을 들 었다. 그리고 주가장에서는 아무도 주유성의 사망 사실을 믿 지 않는다는 소리도 전해 들었다. 그녀는 주유성의 무공이나 능력을 제대로 모른다. 그녀가 아는 주유성은 서현 시장에서 먹을 거나 찾으러 다니는 게으 름뱅이다. 그리고 자기가 아주 어렸을 때 그녀의 집을 구해준 은인이 기도 하다. 무림에서 명성 좀 얻었다고 들었지만 끝에 '서생' 자가 붙었으니 무공 실력은 고수들과 비교하면 그저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그녀는 주가장에서 주유성이 살았다고 하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었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주진한이 그런 위험한 곳에 밍밍을 데려갈 리가 없다. 그러 나 그녀는 울며불며 매달렸다. 하도 그 울음이 처량해서 주가 장의 사람들은 마음이 약해졌다. 무사들 중에 간부급인 장사석이 나섰다. 그는 예전에 주유 성이 처음으로 무림맹으로 갔을 때 동행했던 무사다. "장주님, 사실 우리 일행 중에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사람 은 아무도 없습니다. 장원의 요리사들은 무공이 약해 데려가 지 않잖습니까?" 주진한이 당당하게 말했다. "어차피 객잔에서 사 먹으면 돼." 장사석이 씁쓰레하게 웃었다. "이 년 전에, 유성이와 함께 무림맹에 갈 때 일이 기억납니 다. 그때 우리는 노숙을 연달아 해야 했는데 아무도 요리가 가능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 그랬다고 했지." "그 덕분에 정말 쫄쫄 굶으면서 갔습니다. 참 고통스러운 기억이었습니다. 그리고 배가 고프니 전투력이 많이 약해지 더군요." 주진한이 서럽게 울고 있는 밍밍을 힐끗 보고 말했다. "자네 말은 저 아이를 식순이로 쓰자는 뜻인가?" "밍밍이의 꼬치구이 솜씨는 장주님도 아시다시피 유명하지 요. 다른 음식도 못할 리가 없습니다." 밍밍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흑흑. 주 대인, 저 밥도 잘해요." 그 모습을 보던 당소소도 마음이 약해졌다. 어렸을 때 주진 한을 일방적으로 쫓아다니다가 마음 상했던 기억들이 떠올랐 다. 밍밍이 불쌍해졌다. "가가, 우리 유성이를 저렇게 생각해 주는데. 그리고 저렇 게까지 말하는데 그냥 데려가요. 적어도 무림맹은 안전한 곳 이잖아요." 주진한을 한 손에 쥐고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여자가 당소소 다. 그녀의 말은 즉시 약발이 먹혔다. "허험. 그럼 데려가도록 할까?" 밍밍이 즉시 인사를 했다. "당 마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상재에 밝은 밍밍은 이 집안의 최고 권력자가 누구인지 확 실히 깨달았다. 그녀는 허락한 주진한이 아니라 당소소에게 연신 인사를 했다. * * * 무림맹 수뇌부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무림맹주 검성이 말했다. "현 상황으로 볼 때 이미 정사대전은 시작됐다고 보는 것 이 좋겠군." 제갈고학이 슬며시 반론을 내밀었다. "시작될 가능성이 높기는 합니다만 아직 시작됐다고까지 는......" 검성이 제갈고학을 쏘아보았다. 제갈고학이 그 기운에 화 들짝 놀랐다. 검성이 싸늘하게 말했다. "군사, 그대가 군사의 자질이 있는지 슬슬 의심이 드는군." "무, 무슨 말씀을......" "아직도 전쟁이 시작되지 않았다? 이미 여러 군소정파가 사황성에게 멸문당했고, 마교까지 내려오고 있지. 이런 상황 에서 전쟁이 시작되지 않았으니 기다리자?" "제, 제 말은......" "시끄럽소. 맹주령으로 전 무림에 총동원령을 내리겠소. 우리 무림맹에 소속된 문파는 가능한 많은 무사들을 무림맹 각 지부에 보낼 것을 명하는 바이오." 무림맹주의 총동원령이 떨어졌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지대하다. 적명자도 말을 슬쩍 꺼냈다. "맹주님, 그렇게 하면 정말로 전쟁은 피할 수가......" "적명자 장로는 정파가 다 죽고 나면 그때 가서 전쟁을 하 자는 말인가?" 적명자의 목도 쑥 들어갔다. 그도 검성의 기세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유성이가 끌어들인 세 곳의 세외문파, 북해빙궁과 남만독곡, 그리고 남해검문에도 연락을 넣으시오. 가능하면 지원군을 좀 보내달라고." 이번에는 청허자가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그들이 우리를 지지한다는 선언을 하게 만든 것도 유성이 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들이 지지 선언으로 끝내 지 않고 병력을 보내줄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알고 있소. 하지만 혹시 모르잖소. 그러니 연락을 넣읍시 다." "알겠습니다. 가장 빠른 전서응을 이용해서 연락하겠습니 다." "또한 검각과 신녀문에도 지원을 요청합시다. 신녀문은 몰 라도 검각은 마교가 쳐들어온다고 하면 반드시 응원군을 보 낼 것이오." "즉시 조처하겠습니다." 검성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 무림에 위기가 닥쳤소. 이제 우리 손으로 무림을 지켜야 하오. 모두 각오를 단단히 해주시오." * * * 유명 고수 세 명에 무사가 백 명인 일행이라면 어지간한 산 적들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더구나 그 일행 중에 사천나찰 당소소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산적들은 십 리 밖으로 도망가기 바빴다. 그러나 그들의 여행이 끝까지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그 들이 주가장을 떠나 무림맹으로 반쯤 왔을 때였다. 일행의 앞을 수십 명의 무사들이 막아섰다. 그 앞에는 커다 란 도를 든 험상궂은 남자가 서 있었다. "으하하하!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이제부터는 다른 길로 가야 할 게야." 주유성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게으름 편인 주진한 이 검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다른 길?" "저승 가는 길이지.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할 게다." 그들의 후미에 다시 수십 명이 우르르 나타났다. 그 꼴을 본 주진한이 사내를 보고 말했다. "너, 소속이 어디냐?" "당연히 사황성이지. 나 같은 영웅이 소속된 곳이 사황성 말고 어디 또 있다는 말이냐? 나는 사황성 음혈진격대의 대장 음혈마도 고묵호다." 주진한의 얼굴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주유성이 흔히 짓는 것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두 표정은 느낌이 달랐다. 주유성이 입꼬리를 올리면 그 미색과 꽤나 어울려 상대를 강하게 자극,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주진한의 것은 그 험악한 외모와 어울려 섬뜩함을 느끼게 했다. 주진한은 주유성의 실종 사건 때문에 심사가 편치 않다. 언 제나 널널하게 살던 인간이지만 지금은 분노가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혈마가 그러라고 시키던?" 음혈마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히 성주님을! 어차피 죽을 놈이라지만 곱게 죽기 싫은 모양이구나. 네놈들을 잡아다 고문하며 하나씩 죽이겠다. 거 기 있는 두 여자는 우리 부하들에게 던져 준 후 죽여주마. 버 릇없는 네 입을 후회해라!" "무림명이 음혈마도? 사황성은 정말 개나 소나 마검이나 마도를 붙이는구나." 주진한이 검을 뽑았다. 결혼 전에는 상당한 게으름뱅이로 서 무공 수련을 수없이 빼먹었지만 그래도 제법 강했던 그다. 당소소와의 결혼 후에는 그녀에게 수없이 구박을 받으며 무 공 수련을 했다. 실력은 일취월장해서 당문의 소문주를 비무 를 핑계로 두들겨 패고 인정받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은 싸움의 전면에 나설 일이 거의 없었다. 대 부분의 경우 그가 움직이기 전에 당소소가 먼저 설쳤다. 그렇 게 활동이 없는데도 금검은 하남십대고수일지도 모른다는 소 문이 돌았다. 그런 그가 진심으로 싸울 마음이 들었다. 주진한이 앞으로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다 쓸어버려!" 주진한이 경공을 펼치며 음혈마도에게 달려들었다. 음혈 마도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헉! 절정의 초상비!" '칼 좀 쓰는 상인이라더니 듣던 것보다 더 고수다!' 음혈마도는 몸을 피할 여유도 없었다. 그는 급히 자신의 도 를 휘둘러 주진한을 견제했다. 주진한의 검이 수많은 검광을 만들기 시작했다. 주진한은 분광검법을 익혔다. 삼백 년 전에 무림십대검법 에 당당히 올랐던 무공이다. 음혈마도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검광이 수없이 그의 도를 두드렸다. 그는 주진한의 공격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 다. 본능적으로 도를 휘둘러 수비에 집중했다. '이런 쾌검이라니.' 검보다 도가 무겁다. 그러나 주진한의 내공이 훨씬 강력했 다. 그의 검이 도를 연달아 때리자 음혈마도는 기혈이 다 뒤 집어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당한다!' 음혈마도가 독한 마음을 먹었다. 그는 수비를 포기하고 즉 시 일도를 뻗어 공격을 하려고 했다. 공격하지 못하면 어차피 죽는다는 거을 깨달았다. 다만 공세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면 어떻게든 방법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 공격이 전환되는 순간, 그 틈에 주진한의 검이 파고들었 다. 빛이 스치고 지나가자 음혈마도의 심장이 단숨에 두 조각 이 났다. "커억!" 음혈마도는 짧게 비명을 질렀다. 그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 들었다. '이런 고수였다니......' 주진한이 음혈마도를 덮치고 그를 죽이는 데까지 물 한 잔 마실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고수가 아닌 무사들은 둘 사이 에 검광이 화악 일어나다가 음혈마도가 나가떨어지는 것만을 볼 수 있었다. 사황성의 고수들은 그 잠깐 사이에 얼마나 일방적으로 싸 움이 이루어졌는지 봤기에 일반 무사들보다 더 질렸다. 주진 한의 쾌검은 그만큼 빨랐다. 음혈마도가 쓰러지는 것에 맞춰 당소소가 마차를 박차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녀의 양손에서 암기들이 비처럼 쏟아 졌다. "싸그리 죽여 버리겠다!" 당소소의 무공에 대한 재능은 대단히 높다. 당문의 비전을 하나도 전수받지 못했어도 처녀 시절 사천나찰이라는 명성을 얻었을 정도다. 거기에 더해서 당문 문주인 독왕의 딸이라는 신분에 걸맞게 친정에서 빼앗아온 고급 암기와 극독을 잔뜩 가지고 있었다. 그런 암기와 독이 아낌없이 뿌려졌다. 평소에는 아까워서 쓰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 공격에 당한 음혈진격대의 무사들 이 우수수 쓰러졌다. 진무경도 날뛰기 시작했다. 그는 주진한에게 주가장의 무 공의 정수를 배웠다. 그리고 당소소가 확실하게 훈련시켰다. 덤으로 그 자신도 무공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움직임에 빈틈이 없었다. 원래 있던 빈틈은 주 유성과의 대련으로 대부분 사라졌다. 적어도 일반 무사나 어 정쩡한 고수가 그의 잘 보이지도 않는 빈틈을 노릴 수는 없었 다. 그것은 일 대 다의 싸움에서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하남삼견을 순식간에 무찌른 그다. 하남은검이라는 무림명 이 오히려 부족한 고수다. 음혈진격대의 무사들도 그의 상대 가 되지는 못했다. 그의 검에 사황성 무사들의 목이 연달아 떨어졌다. 상황은 호랑이와 암표범, 그리고 늑대가 양 떼 속에서 날뛰 는 꼴이었다. 더구나 음혈진격대의 대장인 음혈마도는 이미 죽었다. 주진한은 그의 예민한 기감을 이용해서 음혈진격대의 고수 들부터 찾아 죽였다. 음혈마도마저 순식간에 당했는데 다른 고수들이 그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싸움이 일방적이 될 때까지 잘 훈련된 주가장의 무사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주진한과 당소소, 그리고 진무경을 신뢰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오자 주가장의 무사들이 음혈진격대를 덮쳤다. 주가장에 삼류무사는 없다. 적이 많은 당소소가 그렇게 만 들었다. 주유성이 이 년 전에 처음 무림맹으로 갈 때, 그를 따라갔 던 일반 무사가 청성의 후기지수 마해일의 기습적인 일장을 막아냈다. 비록 몇 걸음이나 물러서는 열세를 보였었지만 그 정도만 해도 삼류무사가 보여줄 수 있는 무공은 아니다. 주가장의 무사들은 당장 음혈진격대의 고수가 공격해도 단칼에 당하지는 않는 수준은 되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고 수는 없지만 그건 무가가 아니라 별로 싸울 일이 없어서다. 고수라 불리기에 부족하지 않은 사람은 여럿 있었다. 그런 주가장의 무사들 백여 명이 음혈진격대를 덮쳤다. 고 수들은 표나는 행동을 하자마자 주진한에게 제거되고 당소소 의 암기와 독이 사방에서 날아다녔다. 진무경이 곳곳을 휘저 으며 대열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거기에 주가장 무사들의 검 이 싸움터를 온통 뒤덮었다. 사황성의 전투 부대 음혈진격대는 완벽하게 몰살당했다. 별로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
첫댓글 즐독입니다
즐독합니다
즐감 하고 갑니다
ㅎ늘 감사 히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