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선이 아주 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수많은 대통령 선거를 치뤘지만 이번 대선만큼 혼란스럽고 짜증나고 피곤한 이벤트는 없는 것같아 보입니다. 미국과 별 상관이 없는 한국의 일개 국민입장에서 이런데 미국인들은 얼마나 피곤한 가운데 대선을 기다리는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이번 대선은 유래가 없는 전현직 대통령끼리 리턴매치이다보니 양쪽이 서로의 약점을 잘 아는터라 더욱 그렇습니다. 이번 대선에 후보가 된 미국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와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 모두 이런 저런 리스크를 안고 있습니다. 바이든 후보는 미 역대 최고령이라는 최대 약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트럼프는 바이든보다는 4살 적지만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닌데다 사법 리스크라는 큰 난제를 안고 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독특하고 그야말로 럭비공같은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이 미국 민주당 지지세력뿐 아니라 전세계인들에게 엄청난 우려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전 대선때도 각국에서는 미 대선 후보들의 공약과 그의 성향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강구했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의 정치 경제 외교를 좌지우지하는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국가이기때문입니다. 그런 나라를 이끌 정치적 리더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대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도 많이 다릅니다. 워낙 트럼프라는 인물이 예측 불가한데다 좋게 말하면 천진난만한 어린애같은 성격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자칫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정말 국물도 못찾아 먹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하는 성격이어서 그가 집권했을 당시에는 유럽 그리고 나토와는 상극의 상황을 만들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유럽과 나토뿐 아니라 태평안 연안국가들 다시말해 호주 일본 한국 등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동맹국이라고 하지만 돈과 자국의 이익앞에서는 안면 몰수하는 그야말로 무늬만 동맹국이지 그 속은 비동맹국과 다를 것이 없는 관계였습니다.
그런 트럼프이다보니 유럽연합들은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를 가정해 다양한 정책을 강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4년동안 트럼프 집권시절때 익힌 학습효과입니다. 2016년 미 대선 당시 트럼프라는 인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가 집권하자 일어난 각종 사안들이 얼마나 부담이 됐으며 혼동을 일으켰는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일부 약삭빠른 국가들은 이미 트럼프에 강력한 줄을 대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예전 대선때도 이른바 보험을 든다는 표현같이 비록 당선될 가능성은 상대후보에 비해 떨어지지만 만일에 상황에 대비해 그의 측근들에게 접근해 우호관계를 조성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는 보험을 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트럼프에게 줄을 대는 웃지 못할 상황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각국이 행하는 외교적 행보를 보면 마치 트럼프가 이미 당선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일본입니다. 일본의 2인자라고 하는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가 최근 트럼프를 찾았습니다. 트럼프의 상징과 같은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두 인물의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문제는 일본의 현 총리인 기시다가 미국의 대통령 바이든과 미국에서 정상회담을 한 지 불과 2주만에 이뤄졌다는 데 있습니다. 누가봐도 트럼프가 다시 집권할 것에 대비해 일본 현 총리는 미국 현 대통령을 만나고 일본의 전 총리는 미국의 전 대통령 트럼프를 만나는 이른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일본은 원래 그런 성향의 나라이니 그렇다고 쳐도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트럼프를 찾았습니다. 유럽의 주요 국가 정상과 고위급 관료들도 연속으로 트럼프와의 이런 저런 의미있는 만남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캐머런 영국 외교 장관이 트럼프를 방문했습니다. 미영관계를 볼 때 그냥 편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닙니다. 특히 대통령 바이든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트럼프는 이미 러시아의 푸틴과의 친밀함을 강조했고 북한의 김정은과의 예전 회담을 수차례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대선을 앞두고 이런 광경이 펼쳐지는 것은 이번 대선이 유일합니다. 각국들이 스스로 미국 특정 후보의 당선에 대비한 도상훈련을 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직접 미국으로 날아가 당사자와 만나서 밀도있는 협의를 하는 것은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는 일입니다. 당연히 바이든 후보쪽은 불편합니다. 아니 많이 불편합니다. 나이가 많이 든 바이든 입장에서는 여간 불쾌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현재 대통령인 자신의 앞에서는 갖은 애교를 다 떨다가 돌아서서 쭈루룩 트럼프에게 달려가 교태를 부리는 행위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꺼꾸로 보면 미국의 대선때문에 각국들이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한국도 그러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돌아올 그 보복 그리고 그 해코지를 감안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프랑스는 독일은 그러고 싶지 않아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국처럼 트럼프와도 만나 미리 눈도장을 찍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지금 미국 선거의 양상은 거의 초접전입니다. 한때 바이든이 뒤졌지만 요즘 회복되어 초접전양상입니다. 과연 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될지 현재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과연 일본의 얍삽한 외교가 승리를 할 지는 두고 봐야 할 일입니다. 물론 일본은 바이든이 다시 당선되어도 총알처럼 미국으로 날아가 온갖 아양을 다 떨겠지만 말입니다. 하여튼 미국의 대선 그 가운데 트럼프라는 인물이 전세계 외교전선에 엄청난 피로감과 우려를 낳게 하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2024년 4월 25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