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물 기운이 넘치고도 넘쳐 장마라는 이름으로 도배를 한다.
그러나 과거, 장마도 때로는 염치가 있어 몇 날은 물난리를 치다가도 그 후 며칠은 햇살을 보여주는 예의가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전 부터는 몰염치로 장마의 대세를 이어가는지 아예 동남아시아의 스콜처럼 변해버렸다.
미친 듯이 지면에 대고 비를 퍼부어대는 것, 그렇게 여름날이 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길을 나서보는 것, 지루하고 짜증날만한 장맛비를 어떻게든 즐겨보자는 속셈에서 나선 길 끝이라
멀리 가지는 못하고 가까이 안성 금광호수 주변의 전통자수 예인이 운영한다는 갤러리 겸 찻집 水雲을 찾아들었다.
“다행히 잠깐 비가 그치고 햇살이 반짝 하네요. 그래도 하늘이 어두운 것을 보면 햇살의 자유는 얼마 가지 못할 것 같은
아쉬움이 있지만 빗속의 무례함으로 보다는 햇살의 기운으로 들어서니 괜히 경쾌한 기분이 들어 차 한 잔의 여유 보다는
창가에 서서 자수를 놓는 류오형씨의 모습을 먼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비가 다시 내리면 조용히 다담을 나눠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서 말 이죠”
“그러게요...전에 있던 금광호수 바로 앞에서는 호수 위에서 노니는 물새 떼들을 보면서 수를 놓곤 하였지만
지금의 자리에서는 온전히 몰입 수준으로 자수를 놓을 수밖에 없는 여건이라 창가의 매력이 조금 반감되긴 했어도
작업하는 곳으로는 천상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마음이 차분해져서 아무 생각 없이
자수틀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즐겁기만 해요. 그러다 누군가가 찾아들면 차 한 잔의 여유를 누리기도 하구요.”
굳게 닫힌 문이 감히 다가설 수 없을 만큼의 견고함으로 서 있는 회색 콘크리트 건물 3층.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음악이 흐르고 깔끔하다 못해 정갈하다 가 떠올려지는 공간.
그 곳에 들어서는 순간, 시선을 어디로 보내야할지 모를 정도로 탄성이 절로 나오는 갤러리 형 찻집 水雲의 매력이
따라가는 시선과 함께 절로 발산되기 시작한다.
더구나 또 한 켠의 공간에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작품들이 찾아드는 발길을 기다리고 있으며
그곳에서 마시게 되는 차 한 잔의 호사는 그냥 호사가 아니다....그야말로 궁중의 다례를 저절로 느끼게 할 만큼
전통 복식과 장신구들로 빽빽하고 그녀의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많은 것들을 만나 볼 수 있는 행운이 기다리고 있다.
차와 전통자수...우리네 것이라는 의미에서는 잘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과거보다는 현재, 미래 지향적으로 보자면
잊혀져가고 즐기는 층이 넉넉하지 않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를 이어가고 있다는 상황에서는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 조화, 개인적으로는 스스로의 자부심이요 찻집 水雲을 찾아들어 보고 즐기는 이들로서는 횡재 수순의 누림이요
보편적이지 않은 격이 있을 터이다.
대중과의 소통보다는 외곬의 길을 간다...그 길을 간다고 마음먹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남들이 외면하고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을 붙들고 자신의 인생을 헌납한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자 도박일 것이나
그녀에게는 대가를 바라기 보다는 그저 일상사로 주어지는 시간을 남들과 다르게 활용하는 것 일 뿐,
오히려 온전히 자신을 바쳐 전통자수를 고집할 수 있음에 기뻐하기도 하고 감사해 하기도 한다.
물론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 덕분에 누구보다도 남다른 어린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음이니
어깨 너머로 바느질을 배우면서 바늘을 쥐게 된 이래로 한참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데야 할 말은 없으나 보통의 장인 정신이 아니라면
꿋꿋하게 명맥을 이어보겠노라 고집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 또 전통자수가 아니던가 말이다.
어쨋거나 바늘과 명주실과 섬세하고 유려한 손끝의 놀림으로 새로운 생명력을 지닌 꽃과 새와 나비와
초자연의 탄생을 보여주는 그녀 류오형은 한때 이름만 대면 알 정도의 산악인이기도 하다.
전국의 명산을 찾아 심신과 체력을 단련하며 전 세계 명산 14좌를 정복하고자 하는 열망을 지니기도 했지만
보통 소시민의 삶으로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간곡함에 이끌려 하산을 하고
다시금 바늘을 잡고 바느질에 몰두하며 시작하게 된 것이 이르지 않은 나이 30에 찾은 차 생활이었다.
몰론 시작은 쉽게 시작하게 된 커피였으나 어느 순간 우리 것을 찾고 좋아하게 된 시점부터
차의 묘미에 빠져 탐닉의 순간을 지니기도 했지만 지금은 차와 커피를 병행하며 현재를 즐기는 중이다.
“찻집을 운영하면서 시간을 내어 무엇을 한다는 것, 그것도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전통자수를 한다는 것은
거의 극기에 가까울 일 일 것 같아요. 잠자는 시간이 겨우 4시간 정도라니 말할 것도 없지만
시간만 나면 또 틈틈이 짬짬이 수틀에 앉아 있으니 류오형씨 에게 전통자수란 무엇일까요?”
“수를 놓는 시간이 만족스럽고 행복하고 내 열정과 영혼과 삶이 농축되어있는 집합체라고나 할까요?
때론 무엇 때문에 이 길을 고집하고 남과 갖지 않은 길을 가는 가 생각해보았지만 후회보다는 즐거움,
스스로 해낸다는 뿌듯함 갖은 것이 저를 계속 전통자수에 몰두하게 하는 것 같아요.
남들 보기엔 집념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니고 그저 좋아서 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늘 곁에 차가 있어 힘들고 어렵고 그만 두고 싶을 때 울컥 하는 심사를 달래줄 차가 없었더라면
이 길 또한 오래가지 못했을 것 같아요.”
햇살 좋은 날, 차를 마시면서 눈을 들어 벽면을 바라보자면 그저 현재형의 순간이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회상의, 과거의, 조상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정감이 있다면 그것 또한 차 한 잔의 여유 일 터...세련되지만
과거와 공존되는 그런 공간이 나 혼자 품어가거나 자신만이 누리는 것이 아닌 공존의, 공생의 것으로
세상 밖으로 나온다 는 것, 그런 공간이 가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그저 고맙다.
다시금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차의 향연을 펼치자니 그녀의 삶 조각이 찻잔에 머물고 혼자이고 싶지 않은 인생이었으나
차와 전통자수를 만나 혼자 일 수밖에 없게 된 지금이 아쉽지나 않을까 염려스러웠으나 그 또한 기우에 불과하다.
아주 당당히 그러나 독신주의는 아니지만 인연의 짝을 기다리기 보다는 정진하며 골몰한 전통자수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여
반 쪽 인생에 대한 허무감이나 고독, 고단함이 그녀의 삶 자락에 끼어 들 틈이 없는 것으로 보아
완성되지 않은 듯해 보이는 삶의 단면이 부족해 보이지는 않는다.
혼자이면서도 풍요롭고 완전해 보인다 는 말...그녀 류오형 에게 어울리는 말 같다.
그렇게 인생을 저당 잡힐 만큼 바느질이란 것이 어느 종류를 불문하고 본래 한번 시작하면 인내와
끈기 없이 시작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놓기도 쉽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더더욱 쉽게 바늘을 잡을 수 없다는 전통자수이고 보면
누구나 편편히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묵묵히 그 길을 가고 있는 그녀에게 멋진 소망이 있다.
그녀가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그래서 인생의 모든 것을 농축시켜 완성시키는 그녀 작품을
어디엔가 기증하여 많은 사람들이 잊혀져가는 우리 전통자수에 대한 또 다른 관심과 애정, 새로운 개념이 접목된
그리고 신세대의 생각이 조화를 이뤄서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너도 나도 도전했으면 좋겠다 는
작은 바램...그 바램이 한 개인만의 중차대한 문제가 아니고 보면 국가적으로도
혹은 지방자치의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배려 또한 필요할 것 같다.
이제 장마도 그칠 것이다.
폭염이 자연의 순리로 찾아들 것이며 순환의 논리 또한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와 같이 그녀 역시 “대한민국전승공예 대전”을 위한 마무리 준비가 끝나게 될 것이고
그 이후로 좋은 소식도 들려올 것이다.
그리하여 중요 무형문화재 80호 이수자로서의 진면목을 충분히 드러내 보이고
전통자수가 함께 하는 갤러리 형 찻집 水雲 또한 우리 곁에 오래도록 머물면서
우리네 것에 대한 자부심을 충족시켜주길 희망한다.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금광리 99-2.
2,4주 월요일 쉼. 031-673-3679
첫댓글 한때는 저도 자수 참 좋아해서 수놓기 무척 즐겼었답니다~!
아름답네요~! 정성스런 한땀 한땀이 우아하기도 하고~!
잘 다녀오셨습니까?
비 피해는 없었구요?
여행기도 기다릴게요...
안성에는 유형, 무형의 문화재가 시, 군별로는 많이 있다던데
유오형선생도 그 수준에 가까이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오로지 전통자수만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더랍니다만
문화재 장인 인증받기가 쉽지만은 않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