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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레시피] 기다림의 필수 조건은 인내와 준비
매일경제 2021.07.08
한고조 유방. 그의 창업을 도운 참모들 중에는 영웅호걸과 천재들이 즐비했다. 그중에 ‘진평’이 있다. 그는 경력 사원으로 한나라에 입사해 공채 출신들의 견제를 이겨 내고 결국 한나라의 정통을 이어 간 충신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처마 밑에서 해를 기다리고 해가 나면 나가 일을 하는 농부처럼, 그는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기회라는 인생의 삼박자를 절묘하게 이어 나갔다.
▶ 인내는 용기와 가장 비슷하다
36세의 ‘0선’ 젊은 정치인이 원내 102석의 제1야당인 국민의힘 당 대표가 되었다. 바로 이준석 대표다. 그가 노련한 중진 의원들과 경쟁해 컷오프 예선을 거치고 본선에서도 당선될 수 있었던 요인은 많다. 무엇보다 청년, 즉 2030세대의 현실을 잘 대변했다는, 혹은 잘 대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젊은 세대와 같은 호흡을 나눌 수 있는, 그래서 기성 정치인에 일종의 ‘질림’을 느낀 젊은 세대들에 어필할 대안으로서 이준석이라는 존재가 선택지가 되었을 것이다. 또 그에게서 같은 시대를 공유하는, 그래서 청년 세대의 아픔과 고뇌를 누구보다 더 잘 알 거라는 청년 세대의 기대도 했을 것이다.
이준석 대표는 두 번의 국회 의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보통의 정치인이라면 재기가 어려웠겠지만 그는 ‘젊었기에’ 다음 기회를 기다릴 수 있었다. 나이의 이점 외에도 이준석 대표는 10년이라는 짧지 않는 정치 이력에서 다양한 토론의 장, 혹은 방송 패널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잃지 않았다.
물론 서울과학고등학교, 하버드대학교 출신이라는 쟁쟁한 학벌이 그의 정치적 행위나 사회적 활동에서 비교적 ‘논리적 근거’를 갖추었다는 기본 신뢰감을 주고 그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오늘의 이준석 모두를 설명할 수 있지는 않다.
이준석 대표의 36살을 보통의 직장인과 비교해 보자. 대학 졸업하고 취업한다면 직장 생활 7, 8년 차로 대리급이다. 이 연차라면 직장 생활의 깊이나 생리를 이제 막 이해하는 단계일 것이다. 또한 ‘내가 이 직장에 언제까지 다녀야 하나, 혹은 다닐 수 있나’를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시기다.
물론 이준석 대표 또래 직장인들에게 직장에서 제2의 이준석과 같은 도전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직장 물정’ 모르는 소리다. 그럼에도 우리가 직장인으로서 주목해야 할 점은 ‘준비하면서 기다린다. 그리고 기회가 오면 그것을 포착하고 쟁취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점이다.
그 어떤 기다림도 사실은 익숙한 것이면서도 고통스럽다. 기다림은 사람의 일상을 정형화시켜 일견 안정감을 주지만 반면 발전과 변화를 가져오기는 어렵다. 하지만 직장 생활은 일단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한다. 발자크는 “인내는 일을 받쳐 주는 자본이다”라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내는 용기와 굉장히 비슷하다”고 설파했고, 링컨은 “나는 계속 배우면서 갖추어 간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다”라며 기다림과 그 기다림 속에서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짚어 냈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기다리면 때가 온다. 하지만 수백, 수천 명의 직원들 가운데서 가만히 앉아 있는 당신에게 하루아침에 천재일우의 기회가 오지 않는 것 역시 현실이다. 그렇다고 용기에 만용까지 짜내어 사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저에게 회사를 100배 발전시킬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하고 외쳐 봤자 좋은 말로 ‘괴짜’, 현실적으로는 ‘정신 나간 X’ 소리나 들을 것이다.
기회는 찾아오는 것이 아닌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오감을 열고 회사의 방향성, 상사의 관심사를 예민하게 읽어 내야 한다. 다음은 ‘나는 그래도 기다린다’를 선택할지 혹은 회사의 방향성에 몸을 던져 올라탈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직장 생활에서 기다림은 어쩌면 숙명이다. 직장인 각자의 목표가 무엇이든, ‘하루하루 일하다 보니 과장이 되었네’든, 초고속 승진과 성공이 목표든 말이다. 만약 승진이 목표라면 직장 생활의 고단함을 감내하는 것은 마치 훈련소에서 피하고 싶어도 해내야 하는 눈물 쏟는 화생방 훈련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보통의 직장인들은 회사 생활에서 인간관계나 업무로 인해 많은 경우의 수를 겪고 그 답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다.
하지만 세상사, 직장 일 모두 발생할 수 있는 굵직한 경우의 수는 불과 몇 가지다. 그 밖의 자잘한 것들은 스스로가 만들어 낸 고민과 번민의 결과물이다. 무엇보다 관계와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되면 먼저 문제와 그 원인을 단순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더해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춘다. 거대한 파도에는 저항하지 말고 그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파도를 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겪게 되는 수많은 순간들이 있다. 때로는 억울하고 때로는 분하지만 그 분함과 창피함을 견뎌야 한다. 역사 속 인물까지 굳이 들추지 않아도 우리는 주변에서 이른바 ‘성공했다’는 직장인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성공담에 박수를 보내지만 그가 이 박수를 받기까지 겪어야 했던 ‘인내의 스토리’ 역시 주목해야 한다. 남의 가랑이 밑을 기어갈 수 있는 용기, 모함과 이간질을 견뎌 내는 인내심 그리고 만용에 가까운 객기를 경계하며 준비하는 자세를 말이다.
이 세상에서 모욕과 억울함 앞에서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있다면, 아마도 위대한 성인이거나 바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수모를 호기롭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묵묵히 넘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수모를 잊지는 말자. 수모를 되돌려 주자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위한 자신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직장인들에게 직책, 계급, 기수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작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10년 후 성공한 직장인으로서의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 순간의 수모는 자극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상사의 인사 평가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리더로서의 자질이 있는가’다. 매 순간 파르르 하며 얼굴에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면, 그 직장인의 인사 평가서에는 분명 ‘부적격’이란 빨간 글씨가 써 있을 것이다.
한고조 유방. 그의 창업을 도운 참모들 중에는 영웅호걸과 천재들이 즐비했다. 그중에 ‘진평’이 있다. 그는 경력 사원으로 한나라에 입사해 공채 출신들의 견제를 이겨 내고 결국 한나라의 정통을 이어 간 충신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처마 밑에서 해를 기다리고, 해가 나면 나가 일을 하는 농부처럼, 그는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기회라는 인생의 삼박자를 절묘하게 이어 나갔다.
▶ 고개를 숙이는 용기
진나라 시황제가 죽었다. 시황제의 뒤를 이은 호해는 우매한 군주. 호해의 잦은 실정으로 민심은 진나라를 떠나 천하대란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군웅 중 유방과 항우로 세력은 재편되었다. 최후의 승자는 유방. 유방은 한나라 황제가 되었다. 그리고 토사구팽이 이어졌다. 어제의 공신이 오늘의 역적이 되어 죽어 나갔다.
유방의 3대 공신 중 소하는 권력과 무관한 행정 책임자로 유방의 신임을 이었고, 장량은 권력과 부를 내려놓고 떠났다. 다만 한신은 제나라의 왕이 되어 독립할 꿈을 꾸고 있었다.
진평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형 진백과 같이 살았다. 진백 자신은 궂은일을 하면서도 진평에게는 오로지 학문에 정진하라고 주문했다. 진평의 형수는 책이나 읽는 그를 구박했다. 그러자 진백은 진평을 선택했다. 그는 아내를 내쫓고 진평에게 “다른 일은 신경 쓰지 말고 공부만 하라”고 했다. 진평은 꽃미남이었다.
놀고먹고 책 읽는 것에 지친 진평은 마을 사람들에게 배급된 고기를 나눠 주는 일을 맡았다. 진평은 자신의 능력 중 10%를 발휘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탄복한다. 그는 치우침 없이 똑같은 양으로 고기를 배분했고, 그가 나누는 것에 마을 사람들은 불만을 품지 않았다.
진평은 ‘인생이 모험이라면 결혼도 야망에 도움이 되는 편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근 최고 부자 장목의 손녀를 주목했다. 장목의 손녀는 다섯 번 결혼에 실패하고 친정집에 있었다. 마을 사람이 상을 당했다. 진평은 일찍 상가를 찾아 늦게까지 성실하게 상가 일을 도왔다. 장목은 이를 눈여겨보았다. 그는 진평을 미행했다. 진평의 집 앞에는 수레바퀴 자국이 많았다.
이는 동네 어른들이 타고 다니는 수레가 자주 진평의 집을 찾았다는 의미다. 진평의 학식을 높이 산 장목은 장평을 불러 자신의 손녀를 진평과 결혼시키자고 말했다. 진평 입장에서는 처가 덕을 보자는 노골적인 정략결혼이었다. 진평의 목적은 성사되었다. 이후 처가의 지원을 받은 진평은 많은 사람과 교류하며 식견을 넓혔다.
진평은 출사해 위나라 왕 위구를 모셨다. 하지만 위구는 의심이 많고 귀가 얇아 부하들의 참소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위구 밑에서는 뜻을 펼칠 수 없다고 판단한 진평은 항우에게 간다.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은왕 사마앙 공격. 진평은 항우에게 반기를 든 사마앙을 위기에 빠뜨리는 데 성공한다. 항우는 공을 높이 사 진평을 도위에 임명한다. 얼마 후, 유방의 공격을 받은 사마앙은 바로 유방에 투항한다. 항우는 진노했다. 항우는 “어찌 유방에게 저항 한 번 안하고 투항하느냐?”며 의심을 품고 은나라 모든 관리를 죽이라 명했다. 진평은 자신도 항우의 의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판단하고 항우의 곁을 떠난다.
망명길에 오른 진평이 배를 탔다. 사공은 비단옷을 입은 진평이 돈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진평이 비단옷을 던져 버리고 알몸으로 노를 젓기 시작했다. 사공이 보니 허울만 멀쩡한 거지가 아닌가. 사공은 진평을 죽여 재물을 취할 욕심을 버렸다. 순간의 선택이 진평의 목숨을 살린 것이다.
명분과 체면이 중요한 시대, 진평의 행동은 파격이다. 다섯 번 결혼한 여자를 선택한 것,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어 던지는 것 등은 보통의 배짱과 확고한 목표 의식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 진평은 꿈을 위해 체면과 형식은 버릴 수 있고 그 과정의 고단함은 감내하는 인물이었다.
진평은 유방의 참모 위무기의 추천을 받았다. 유방은 추천 인물 9명을 한 번에 면접했다. 잠시 후 유방은 “됐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다 일어났지만 진평은 자리에 남아 유방과 독대 면접을 했다. 진평에게 감탄한 유방은 진평을 호군중위에 임명했다. 호군중위는 장수들을 감시하는 중책. 유방은 진평을 총애했다. 진평의 뛰어난 계책과 용병술이 전투에서 효과를 발휘할 것은 당연했다. 유방은 진평의 성실함과 영민함을 높이 산 것이다.
그러자 유방 가신들의 불만이 커져 갔다. ‘위구와 항우를 배신한 주제에 우리를 감시한다’는 것. 누군가 유방에게 “진평은 주군을 배반한 전력이 있고 뇌물도 받는다”고 모함했다. 유방이 진평을 불렀다. 진평은 “위구를 떠난 것은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고, 항우는 사람을 신임하지 않아 떠난 것입니다. 뇌물을 받은 것이 아니라 금을 받아 군자금으로 썼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진평에 대한 유방의 신임은 더욱 깊어졌다.
항우에게 대패하고 유방은 형양성으로 철수했다. 지원군이 오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항우는 형양성으로 물밀 듯이 쳐들어왔다. 유방은 항우에게 강화사절을 보냈지만 항우는 거절했다. 진평이 나섰다. 진평은 재물을 초나라 진영에 뿌리며 소문을 냈다. 범증과 종이매, 용저가 항우를 배반한다고. 이 소문은 항우의 귀에 들어갔고 의심 많은 항우는 진격을 멈추었다. 그리고 유방과 강화 협상을 시작했다. 진평은 꾀를 냈다.
항우의 사자가 도착하면 한 상 가득 차려 놓고 대접하다 갑자기 “범증이 보낸 사자가 아니고 항우가 보냈네” 하면서 상을 거두고 보잘것없는 음식을 내놓았다. 사자는 항우에게 그대로 보고했다. 항우는 범증이 다른 마음을 품었다고 확신했다. 범증은 항우에게 형양성을 공격하자 했지만 항우는 범증의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을 의심하는 항우의 마음을 읽은 범증은 항우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다 화병으로 죽고 말았다. 진평의 계략이 항우 책사 범증의 목숨을 빼앗은 것이다.
▶ 기다림에도 유통 기한이 있다
유방은 천하를 통일하고 공신을 숙청했다. 목표는 한신. 유방은 한신을 공격하자 했지만 진평은 유방이 지방 순례하는 자리에 한신을 불러 사로잡자고 제안했다. 진평의 계책으로 한신은 사로잡혔다. 한신을 제거하고 정세가 안정되자 유방은 진평에게 상을 내렸지만 진평은 자신을 천거한 위무기에게 그 공을 돌렸다. 유방은 한신을 포함한 팽월, 영포 등의 공신을 숙청했다. 장량도 떠나고 유방 옆에는 진평만이 남았다.
진평에게 위기가 닥친다. 유방의 정비 여태후와 후궁 척부인과의 싸움. 유방은 번쾌가 척부인의 소생 유여의를 죽이자 했다는 말을 듣고 격노한다. 진평과 주발을 불러 번쾌를 참수하라 명령한다. 진평과 주발은 고민한다. 번쾌가 누구인가. 유방의 고향 친구이고 동서지간이며 건국 일등 공신. 즉, 여태후의 동생 여수가 번쾌의 부인이다. 성급하게 번쾌의 목을 쳤다가 유방이 후회하거나 여태후가 원한을 품는다면 그 화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진평은 번쾌를 압송한다. 진평은 번쾌의 포승을 풀고 대접했다. 그리고 천천히 이동했다. 수도 장안이 지척에 다다른 순간 유방이 죽었다. 진평은 바로 여태후를 찾아가 번쾌를 살리려 노력한 사실을 알린다. 이는 진평이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진평은 누군가 자신보다 먼저 여태후에게 보고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는 첫 보고와 독대 보고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것. ‘문고리 권력’은 중요하다. 직급에 상관없이 최고 권력자를 만날 수 있는 권한을 장악한 비선의 힘을 말하는 것으로, 진평은 여태후의 문고리 권력들이 사실을 왜곡할 것이 두려워 미리 손을 쓴 것이다.
여태후는 권력을 장악했다. 유방의 뒤를 이은 혜제는 명목상의 황제로, 승계 8년 뒤 혜제가 죽었다. 여태후는 황제를 여 씨로 할 것을 결심했다. 상국 왕릉은 반대했고 진평은 주발과 함께 여태후의 뜻에 찬성했다. 여태후는 심복 심이기를 우승상에 임명했다. 모든 정사는 심이기가 결정하고 여태후에게 보고된 뒤 진행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일제히 왕릉을 칭찬하고 진평을 비난했다. “진평은 위구와 항우를 버렸던 것처럼 이번에도 유 씨를 배반했다”고.
진평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기다렸다. 그를 노리는 인물이 있었다. 번쾌의 부인이자 여태후 동생 여수가 옛날 유방의 명으로 번쾌를 죽이러 갔던 진평을 여전히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여수는 여태후에게 진평이 술이나 마시고 부녀자를 희롱한다고 모함했다. 이 소식을 들은 진평은 술 마시고 쓸데없는 농담이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역시 진평이 보인 인내심의 또 다른 표현이다. 만약 그가 기개를 내보이고 영리한 재상 노릇을 했다면 아마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8년 후, 여태후도 병들어 죽었다. 모든 관리들이 눈치를 보고 있는 사이, 진평은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창업 공신들을 모아 궁궐을 점령하고 여 씨 일족을 숙청했다. 그리고 유방의 후예 유황을 새 황제로 모시니 이가 바로 문제다. 하룻밤 만에 일어난 거사였다. 문제는 진평을 우승상으로 임명하려 했지만 진평은 “주발이 공이 있고 능력이 있다”며 사양했다. 이처럼 진평은 유방이 주는 상은 자신을 천거한 위무기에게, 문제의 상은 주발에게 양보하면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얻었다.
얼마 후 주발이 물러나자 진평은 우승상이 되었다. 위구와 항우에게 쫓겨나다시피 떠나고, 유방 휘하에서도 공채 출신들의 모함과 견제를 당했던 진평. 그가 결국엔 한나라 황실의 정통을 이은 충신으로 역사에 기록된 것이다.
진평은 형세 분석에 탁월했다. 그는 빠른 판단으로 새로운 주인 유방을 찾아 측근이 되었다. 또 유방이 적에게 포위되어 사지에 빠졌을 때는 계책으로 유방을 지켰다. 진평의 최고의 판단은 여태후 치하에서다. 만약 진평이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한 황실 복원을 기치로 군사를 일으키는 기개를 부렸다면 진평은 목숨을 보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진평은 항상 기다렸다. 유방 밑에서는 인정받기 위해 기다렸고, 여태후 치하에서는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수모를 견디며 기다렸다. 물론 기다리는 자는 정확히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날카롭고 객관적인 상황 판단이다. 진평은 민심이 유 씨에게 있음을 알았기에 대담하게 거사를 감행했다.
기다림에서 또 중요한 것은 기한이다. 그것은 기다림의 끝을 판단하는 것이다. 진평이 위구 밑에서, 항우 밑에서 ‘언젠가는 나를 알아주겠지’ 하고 기다렸다면 진평은 위구와 항우 아래의 평범한 참모들 중 하나로 그쳤을 것이다. 진평에게 우리가 배울 점은 기다림과 기다림을 멈출 줄 아는 판단이다.
글 박기종(커리어 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언스플래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87호 (21.07.1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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