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생소한 슬픈 순례 ― 김명인 詩의 어둠·그리움의 시적 장치 / 김강태 승용차 속의 만남 인터뷰를 작심한 날, 처음부터 나는 시인 김명인金明仁(1946∼현재)에 대해 한 가지 의혹을 품고 있었다. 그의 데뷔작 <출항제>(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를 시집 곳곳에서 발견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아마, 나의 독체험讀體驗과 어림짐작으로 데뷔작을 시집에서 뺀 이는 그가 유일할지도 모른다. 데뷔 원년을 상실한다? 왜 그랬을까. 일단 그에 대해 의심을 품기로 작정한다. 나는 떠듬떠듬 그의 작품을 추억해낸다. 거미가 끊임없이 선을 뽑아내듯이 가능한 한 끈적미끌하게. 김명인,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우선 고향 <후포厚浦>에서 흔적을 찾고 나서 <동두천(연작)>을 가야만 한다. 그리고 동해안 쪽 <영동행각嶺東行脚>을 벌인 다음, 이국땅 <머나먼 곳 스와니>를 찾아서, 그의 눈매에서 <소금>기가 서릴 때 쯤에 모래사막이 2/3지역을 덮은 아메리카 <유타(시편)>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는 <연해주(시편)>를 한없이 낮게 잠행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이 그를 온전히 만날 수 있다. 그는 지금 머언 역정을 돌아온 수부처럼 한국의 한쪽 땅 ‘수원’에서 조용히 가르치며 시를 쓰고 있다. 이어서 계속 우리 일행에게 성급히, 서울로의 짧은 여행을 제안한다. 사당동 어디쯤 좋은 곳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그가 가야할 길이 남은 걸까. 어디쯤 그의 여정이 끝날 것인가. 나는 그와의 어려운 만남에 어울리게 난생 처음(?)으로 2시간여의 특별한 드라이브를 하면서 차 안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구식 뿔테 안경, 다소 촌스러운 웃음의 그. 그리고 아직도 세련되지 못한, 생경한 전문 독자와의 생소한 만남…. 어쩐지 그와는 느즈막이 ‘생소한 사랑’을 나눌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를 보면서 나는 이 제목(‘생소한 사랑’)의 연작시를 계획한다. 낯선 시인, 그러면서도 어디선가 흔히 본 듯도 한 사람, 그런 사람. 젊은 시인 장경기가 뒷자리에서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며 주시한다. 김 시인은 10년 넘은 순고물 쏘나타를 몰았고 나는 옆 자리에 동승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대담을 목적으로 한 대면식에서 그의 진한 눈빛을 직접 볼 수 없음이 상당히 안타까웠다. 대담 또는 대화란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아야 한다. 눈빛을 읽어야 한다. 눈 속에 고인 물 또는 빛, 그들의 흐름─예를 들어 불안·난감·당혹에서부터 쾌·불쾌·기쁨·슬픔 등─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 눈을 보지 않으면, 상대 발화자의 진실한 거짓과 변명을 해도 집어낼 수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발화자의 진솔한 진술이라 해도 그이만의 개성적 울림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의 진술이 목소리─그의 목소리는 약간 짧은 듯한 혀에서 성대 혹은 임파선 수술을 한 듯한, 약간 쉰…. 그리고 무뚝뚝한 듯, 짧은 음성. 그랬다. 허스키는 아닌, 그런 류類의 낮고 묵직한, 미세한 이물질이 낀, 꽤 어눌한 목소리였다. 흔들리는 차 속에서 그의 음성을 듣는 동안 나는 안으로 계속 큼큼거렸다. 말의 틈과 틈바귀 사이에서 나의 잡다한 물음표는 던져지고, 그럴 때마다 그는 묘하게도 정확한 발음을 내며 응해 주었다. 우리는 경쟁이라도 하듯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그러는 중에 그로부터 어쩔 수 없는 소슬·쓸쓸함을 내 안에 쓸어담는다. 흔히들 ‘진실’을 ‘아름답다’고 말한다. 나는 그러나 순순히 수긍(순응)하지 않는다. 숱한 시인들, 당신? 대체 무엇이 진실인가. 우리 곁에 진실이 남아 있는가. 있다면 어디 있는가. 참여에? 자기 탐닉에…? 오늘의 사회적 진실은, 더군다나 시적 진실은 실상 그 용기用器를 채색할 부분만 남은 것인데, 모두가 많은 착각 속에 이루어지고(자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 그래서 발표하고 실력 행사하는 건가. 완전치 못한 것은, 그러므로 반드시 진실하지 못한 것인가. 진실이란 이뤄진 것이 아니라 도달해야 할 향방일 터이다. 이를 이룰 때, 또는 이루었으므로 ‘진실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은 자못 의미로운 듯이 보인다. 김명인은 작품에서 이렇게 ‘진실’을 정의한다. 시집 《東豆川》 23쪽을 보자. 진실은 쉽사리 말해질 수 있을까, 그렇지만 묻어 버릴 수 없어서 눈물이 난다. ─ <베트남 Ⅱ> 부분 진실은 쉽사리 말해질 수 없는 것. 묻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 그럼에도 궁극에 가서는 묻어버릴 수 없기 때문에 마침내 눈물이 날 수밖에. 밝혀지는 것이 결국은 ‘진실’의 정체라는 그의 지론이다. 예를 들어 ‘진실=정의正義’로 바꾸어 이해할 때, 그 正義가 제대로 밝혀지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이 따르겠는가. 그렇다면 진실을 찾기까지, 진실하기까지는 엄청난 (분량의) 눈물 양산이 절대적이라는 견해도 가능하다. 즉각 ‘혼혈아 학교’라는 사실만으로도 문득 나의 심성은 황폐해지고 만다. 우리의 온갖 치욕의 역사와 아픈 상상이 여러 겹으로 꼬이며 뇌리를 후려친다. 마치 ‘화엄에 오르(다)’는 김명인의 시적 세계 속을 유영하는 듯싶다. 왜 ‘이방인’이 우리 땅에 들어와야 했는가. 유랑자란 거지·떠돌이인 즉, 사실 저들이 보헤미안·노스텔지아·<해변의 길손>이란 어휘를 미화, 양산한 역사를 낳은 게 아닌가. 동질의 담론은 아니지만 내가 쟝 그르니에(그는 나에게 호오好惡의 대상이다)를 선망하면서도 싫어하는 이유는, ‘나는 언제나 이국異國의 도시에 아무 가진 것 없이 홀로 도착하는 것을 꿈꾸었었다.’라는 ‘은밀한 사치’ 감각에 있다. 물론 이런 구절을 두고 치졸스러운 과민반응을 보여도 되는 걸까 마는. 지중해, 그 푸르고 낭만으로 가득찬 듯한 너른 바다호수. 완전한 미지의 세계, 육지 가운데 바다 지중해地中海. 리옹, 엑상프로방스, 알퐁스 도오데, 그리고… 아아. 오래 전에 나는 김화영 교수가 쓴 《행복의 충격》(책세상, 1989)를 통해 지중해를 동경한 적이 있었다. 부제가 ‘지중해, 내 푸른 영혼’이었다. 초간본을 접한 것이 70년대 중반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때 나는 동두천·혼혈아·지중해 사이에서 무엇을 생각했는가. 나는 여기서 김명인의 시적 진실을 그의 생체험이 짙게 드리운 여러 작품에서 불나비처럼 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고 보니 김명인은 온통 눈물자욱과 어둠 의식을 작품 도처에 남긴다. 그는 눈물의 시인이다. 김명인은 명분 있는 눈물을 당당히 쏟는 시인이다. 물, 눈물, 바다…. ‘물’은 신화적 상징으로 보아 풍요와 생명력을 낳는 다. 곧이어 바다 이미지에 젖는데 생명의 원천이나 공간성을 의미하는 바, 그것은 바로 영원성으로 이어진다. 끝간 데가 없다. 한 마디로 외경이다. 하늘과 바다로 평행선을 이분二分하는 극적 구성, 동행同行. 그러면서도 바다는 양면성을 지닌다. 가스통 바슐라르가 지적한 ‘부드러운 물’과 ‘난폭한 물’의 두 가지 이미지. 자살자의 경우, 물(또는 바다)이란 죽음에로의 동경, 그것이 곧 피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모호한 심적 아집이 발동하여 자기 신체를 유실시키려는 혐의를 풍기며 죽음을 시도한다는 유추도 가능하다. 영육의 흔적을 모두 없애야 영원성으로 이어질 테니까. 그러므로 바다란 죽음의 최적지. 일설에 의하면 사람들은 일렁이는 밤바다 물결을 보고 자살 유혹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심연을 향한 접안 렌즈는 황홀한 상징, 자신의 죽음이 미화되는 법. 이때의 ‘죽음 유혹’을 모색하는 대물 렌즈는 직시적이며 족히 현재적이다. 죽음이 꿈틀거린다고? 산 낙지처럼? 바다의 신화적 상징이 눈물의 미지未知의 원초적 이미지(동경)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불교 용어로는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 삶과 죽음이 서로 모두 ‘불이不二’. 그러나 바다의 매력은 신성성神聖性과 무한한 생성성生成性에 있다고 생각한다. <동두천> 연작은 그런 의미에서 시인의 가슴 부위 체온을 감득케 한다. 그의 험난한 길(역정)을 함께 돌아보기 위한 동행, 내게는 마치 시간으로의 짧은 여행처럼 느껴졌다. 그와의 첫 만남은 참으로 독특한 체험이었다. 그의 삶터인 경기대는 생각과는 달리 오히려 한산했다. 요즘 한참 시끄러운 대학가의 살벌함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내게는. 그는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 전혀 따뜻한 아버지 같지 않은 아버지로 인한, 결코 떠올리기 싫은 유년기의 ‘후포’ 시절로부터 청년기의 ‘동두천’이 그랬다. 웬일인지 내가 그와는 유사한 점이 많다. 목포의 야간 특별학급 지도교사 시절, 나 그의 새파란 교사 시절의 <동두천> 연작시를 껴안으며 얼마나 자신을 부끄러워 했는가. 그 이전 동두천 생활의 낯선 체험. 그 이전에 인천에서의 떠돌이 삶…. 이때 문학은 나의 유일한 황홀경 그 자체였다. 시라면, 거기 시의 늪에서 그냥 안락사해도 좋았다. 어설픈 연애도, 당시 유행하던 대마초 흡연도 싫었다. 폼 재는 고전음악 감상도 내게는 정말로 하이 클라식일 뿐이었다. 많이 배고프지만 않으면 되었다. 국문과 시절 자주 접하곤 하던 친구의 죽음, 그들의 자살 시도, 폐질환과 방랑, 그게 나의 70년대였다…. 이미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부모와 떨어져 살았다. 졸지에 집안이 망하자, 아버지께서 나를 조용히 불러 앉히셨다. ‘너 혼자 살아라. 깡패가 되어도 똑똑한 깡패가 되어라. …, ….’ 그리곤 한참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내 방(!)을 나가셨다. 헌 냄새가 물씬나는, 새 자취방이었다. 노린재, 돈벌레 등이 우글거리고 까스 냄새가 진동했다. 도원동 33번지 둔덕배기, 거기서 나는 죽음 문턱까지 딛었었다. 어느 날 엄청난 양의 일산화탄소를 마신 것이다. 아아 돌이키기 싫은 회억. 물론 김명인은 반半 고아 생활을 했으므로 그와 내가 비교될 순 없지만. 어쩐지 그는 험난한 인생 항해를 20년이나 달려온 뱃사람 오딧세우스 같다는 생각이 미쳤다. 그의 90년대로의 귀환(귀향). 70년대는, 우리들(특히 나)에게 유독 잔인했다. 못내 망각하고픈 정신적 인플레 및 공황恐慌, 그러나 지우지 못할 생체험. (제임스 죠이스의 서사물 《율리시즈》는 호머의 《오딧세이》를 본뜬 건 주지하는 바이다.) 나는 그가 등장인물 중 어쩐지 시인 특유의 기질을 발하는 스티븐 디달러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강박관념처럼─내 머리틀에 인印 박힌다. 20여년의 ‘세월’이 항해의 각종 방해꾼이며 김명인 그가 바로 주인공 오딧세우스다. ‘더러움’과 ‘그리움’ 사이 그는 혈기 왕성할 때에 탁탁, 침을 뱉는 습관이 있었을 것 같다. 20대 초반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휙휙 쏴대며 동두천 읍내를 쏘다닐 때, 적어도 그는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살상용 무기 ‘크레모아’(!)였을 것이다. 그는 첫시집 《동두천》에서 ‘더러움’이란 낱말을 자주 내배앝는다. ‘더러운 그리움’(33·40·82쪽), ‘더러운 사무침’(71쪽), ‘더러운(∼움을 묻어오는) 어둠’(15쪽), ‘더러운 이별’(19쪽), ‘더러운 물빛보다 더욱/부끄러웠다’에서의 ‘더러운 부끄러움’(42쪽) 등. 그의 ‘더러움’은, 그러니까 악에 받친 그것이며 침 뱉을 때의 희고 마른 파편으로 날카롭기 그지없다. 이 촉감은 폭발적인 전율을 수반하지만 쉬 터지지는 않는다. 터뜨리지 않는다. 잠재해 있는 어마어마한 울분의 힘, 이 ‘더러움’은 폐부 저 안쪽에서 촉발하는 그 ‘무엇’이므로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교사 시절 가끔씩 제어력을 잃고 치고받고 취하고 쓰러지고 멱살 잡고 통곡한다. 더러운 그리움이여 무엇이 우리가 녹은 눈물이 된 뒤에도 등을 밀어 캄캄한 어둠 속으로 흘러가게 하느냐 바라보면 저다지 웅크린 집들조차 여기서는 공중에 뜬 신기루 같은 것을 발 밑에서는 메마른 풀들이 서걱여 모래 소리를 낸다 ─ <東豆川 Ⅰ> 부분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그 아이 혼혈아인 엄마를 닮아 얼굴만 희었던 그 아이는 지금 대전 어디서 다방 레지를 하고 있는지 몰라 연애를 하고 퇴학을 맞아 고아원을 뛰쳐 나가더니 지금도 기억할까 그 때 교내 웅변 대회에서 우리 모두를 함께 울게 하던 그 한 마디 말 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 나는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 ─ <東豆川 Ⅳ> 부분 그가 뱉는 하얀 침은 곧 분노와 증오심의 발로지만 금시 ‘더러운 그리움’으로 순치시킨다. 절대로 혈맥과 피부색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나는 돈 많은 아메리카로 가야 된’다는 절규가, ‘더러운 그리움’으로, 치욕의 지워지지 않는 푸른 멍으로 각인된다. 작품 <동두천 Ⅵ>는 유일한 혈육인 누님마저 떠나버리자, 담임 교사 곁을 홀연히 등진 절름발이 소년을 그린 내용으로, 시인은 당시의 뼈아픈 소회를 이렇게 탄식한다. ‘어디로 갔을까 엉겅퀴 자욱한 길을 따라서/해가 지면 하모니카 불며불며 떠도는 바람 속을/뿔뿔이 떠나간 그리움을 좇아서’. 지나친 산문성이 시의 흐름을 장악해도 쉽게 읽혀지는 이유는 그의 독특한 생체험에 기인한다. 이처럼 얼른 보아서 私的인 생활의 파편들을 그대로 끌어다 내놓은 것 같은 김명인의 시들이 남다른 호소력을 가질 수 있게 되는 비밀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간단한 말로 거기에 대답하자면, 그가 시 속에서 펼쳐 보이는 그 자신의 체험이 시인으로서 그가 지니고 있는 탁월한 형상화의 능력에 힘입어 이 어려운 시대를 사는 한국인 전체의 체험에 대한 하나의 상징으로 승격되는 데에 그같은 성공의 핵이 놓여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동하, 《물음과 믿음 사이》, 민음사, 1989, 178쪽. 윗글의 중심은 시인의 ‘탁월한 형상화(의) 능력’이며 그를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체험에 핀트가 맞춰지고 있다. 좋은 견해다. 그러나 김현의 좋은 평문도 있다. <孤兒意識의 詩的 變容>. 그는 ‘추억의 재구성’(《문학과 유토피아》, 문지, 1980, 96쪽)이라고 강조하지만 나는 김명인의 추억(사건)의 삽화적(기능적) 구성력에 끈끈함을 갖는다. 눈물. 다시 싸움. 취함의 연속. 시대는 우리로 하여금 술 마시게 한다? 어린 왕자처럼, 술 마시는 게 부끄럽다? 이를 김현은 ‘깡맥주와 소주의 대립’으로 흥미롭게 명명한다. 그는 ‘어둠을 보는 자와 보지 못하는 자’의 경계를 분명히 긋고 있다. 그러나 ‘비겁’을 종종 확인받는 교육 현장에서 시인과 교사가 할 일이 정말 아무 것도 없음을 자주 절감하는 것이다. 김현은 ‘감동은 고통과 결부된 아름다움에서 나온다’고 멋지게 진술(같은 책, 106쪽)한 바 있다. 아우시비쯔 이후에도 우리는 서정시를 쓸 수 있는가라고 한 철학자는 묻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로 혼혈아들인데도 우리는 서정시를 쓸 수 있는가라고 물어야 할 것이다. 그 물음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피할 수는 없다. 물론 그렇다. 그들을 위하여 시인은 서정시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할 수만 있다면 시의 몸이라도 나눠줘야 한다. 나(시인)도 역사를 재창출(?)한 공범자니까!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반시> 동인은 이런 배경으로 탄생한다. 대상은 1973년도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무작위 추출(모임). 쟝르도 가르지 않았다. 패기뿐이었다. 거기서 그는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1973》이란 동인지를 4호까지 만들지만, 너무 방대한 모임으로 쟝르가 파괴되면서 소통이 뜸해지자 이를 해체하고, 1976년 드디어 정호승·이동순·김창완 등과 함께 동인지 《反詩》를 만든다. 제목에서 풍기듯이 일종의 반역과 순리·순응에 대한 모반을 일단 시대적 소명으로 수용한다는 기치를 들었다. 70년대란 우리에게 혼탁한 산업화 물결에 대한 추억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시’에 대한 평론가 구모룡의 지적이 인상적이다. 그는 ‘구체성을 그들 시학의 제일의적 원리로 삼았다’(<추억, 허기와 갈증>, 《물 속의 빈 집》, 미래사, 1991, 139쪽.)고 진술한다. 이 구체성은 김명인의 작품 속에 70년대의 현장으로, 생날이 안겨주는 아픔으로 나타난다. 특히 그의 유년기, 즉 ‘송천동 바닷가 그 고아원’의 추억 공간은 오랜 동안 그의 삶의 뿌리 끝에 혹박테리아로 기생한다. 어머니 장사 떠나시고 다시 맡겨진 송천동 봄날은 골짜기마다 유난히 햇볕 밝게 내려서 날이 풀리면, 배고파지면 아이들 따라 바위 틈에 숨은 게들 잡으러 개펄로 갔다 ─ <머나먼 곳 스와니Ⅰ> 부분 누구도 지켜주지 못한 약속들 아직도 그곳에 남아 더러는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잎들도 줍게 하는가 나 또한 스스로 저버린 기다림과 약속들을 그 배고픔에도 섞어 증오처럼 오래 씹었을 것이니 남은 날들은 살아서 치뤄야 할 죄값으로 속죄하며 슬픈 춤으로 빈 데를 골라 디뎌가야지 ─ <머나먼 곳 스와니Ⅱ> 부분 아버지는 환멸이다. 적개심의 실상. 상대적으로 어머니는 이중의 희생물로 잔상 처리된다. 이율배반적인 두 사람의 동행, 결합할 수 없는 영원한 사이, 폭력과 비폭력의 엄연한 교차―냉담한 의문의 엑스(X) 부호다. 헛것, 그가 바로 유년 시절의 아버지라는 슬프고도 딱딱한 기호였다. 2시집 《머나먼 곳 스와니》는 그의 유년기를 스스로 낱낱이 고발한 시집이다. 제목이 연작으로 이어진 작품은 진정 모든 이의 살점을 에인다. 읽을수록 아픈 살이 돋는다. 김현은 두번째 시집을 ‘죽음·적막에 대한 긍정적 순응’(《행복한 책읽기》, 문지, 1992, 184쪽)으로 보았다. 그러나 나는 최근에 펴낸 남진우 평론집(《신성한 숲》, 민음사, 1995)을 주목한다. 김명인에 대해 가장 본격적인 비평문이라 해도 될 것 같다. 남진우는 일단 ‘삶의 근원적 슬픔을 환기시킴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을 자아낸다’(203쪽)고 적고 있다. 여러 평자의 공통된 견해라면서. 대화 중에 김명인 시인도 그를 꽤 새롭게 인식하는 듯이 보였다. 직접 그로부터 들었지만, ‘시는 내게 있어서 자기 확인의 쓰라림으로 비롯된다’(2시집 ‘후기’)는 고백은 나 자신 매우 직설적이고 그만큼 쓰라리다. 진실로 그가 이루는 궤적, 삶의 진정성이 제대로 육화하여 작품의 살점을 저미고 있는 중인가 아닌가. 다만 아버지의 추억은 분명하다, 아버지는 ‘불구의 가계’를 만든 장본인이므로 어린 날의 김명인에겐 부성父性의 존재 가치가 씁쓸히 찢겨질 수밖에. 송천동 고아원 반半 의탁 생활, 고학, 서울로의 무작정 유학, 교사 생활, 베트남 참전, 대학 선생, 교환교수 생활…. 사실은 이 모든 과정이 온전치 못한 아버지의 자리(위치)탓이 아니었던가. 아버지 비 속으로 가신다, 시간의 굳게 잠긴 빗장을 걷고 빗줄기가 풀어놓은 비낱의 창 너머 무수히 그어지는 텅 빈 골목길로 아버지 걸어가신다, 얼마만큼 좇아가다 내 기억의 비 그쳐 (…중략…) 그러므로 아버지, 제가 여기 있어야 한다면 저는 녹스는 제 몸을 온전히 닦아낼 수 있을까요? 칼날의 시간 작두 위에 세웠던 세월이여 아직도 식지 않는 증오 서리처럼 흐리는 창 너머로 아버지 비 속으로 걸어가신다 ─ <비 속의 아버지> 부분 아버지…. 당신의 진정한 이름은 무엇입니까, 아버지…. 시 <비 속의 아버지>를 훔치면서 나는 여러 번 마음이 젖어와서 한참 망설였다. 그가 아버지를 기억해내는 건 ‘비 속으로 가’시는 뒷모습이다. ‘텅 빈 골목길로’ 가시는 이, 화자인 ‘나’는 그를 ‘얼마만큼 좇아가다’ ‘기억의 비 그쳐’버리는 곳에서 아버지와의 연緣을 완전히 긋는다. ‘기억의 비 그쳐’가 흥미롭다. 아버지를 끝까지 좇지만 이내 절연하는 모습이 전개되는데, 아버지가 행동 주체인지 아들이 주체인지는 불분명하다. 반추할 수 없는, 반추하기조차 싫은 ‘기억’이 빗줄마저 끊는다. 그러나 아들로서 아버지라는 오이디푸스적 대상은 시인의 중년까지 의식을 장악할 수밖에 없는 운명론의 일. ‘칼날의 시간 작두 위에 세웠던 세월’이 아슬히 흘러갔지만 시적 화자의 의식엔 ‘아직도 식지 않는 증오/서리처럼 흐리는 창 너머로/아버지 비 속으로 걸어가신다’. 오직 뒷모습으로. 정신분석학자Psychoanalyst 레온 앨트먼Leon Altman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직계直系처럼 보인다. 프로이트 씨의 견해로는, 꿈이란 인간의 무의식에 이르는 중요한 창구이자 통로. 앨트먼의 책을 요약하면, 인간의 정신세계나 병리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생물학뿐만 아니라 각별히 심리학을 역설하고 있다. 그의 <오이디푸스 갈등과 꿈>(10장)을 보면 썩 괜찮은 ‘해석’이 보인다. 모든 무의식적인 갈등들은 행동화될(할) 수밖에 없지만 오이디푸스 갈등만큼 숙명적으로 반복되며 행동화되(하)는 무의식적인 갈등은 그 어디에도 없다.(…중략…)‘전이轉移transference’가 오이디푸스적 갈망을 다시 활성화시킬 때 전이 밖에서 그런 갈망을 행동화하는 것은 진짜 중요성을 알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꿈은 오이디푸스적 갈망들이(…중략…) 분석 과정 중의 적절한 장소인 전이 속에서 부활할 수 있게 도와준다. (…중략…)전이에서와 마찬가지로 꿈에서도 오이디푸스적 발달의 드라마는 단순한 지적 훈련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 된다. ― 유범희 역, 《성·꿈·정신분석》, 민음사, 1995, 224∼ 225쪽. 윗글에 의하면 앨트먼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란 숙명적이라고 못 박고 있다. 그것은 우리 의식세계를 평생 지배한다. 또 우리가 경험하는 꿈이야말로 의식과 무의식을 연계하는 유일한(?) 통로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생생한 현실’인 것이다. 순간 나는 김명인이 프로이트의 ‘유아 성욕infantile sexuality’설에 얼마나 해당되는지, 성에 대한 질문 충동이 몹시 일었다. 필연적으로 현재의 ‘성욕’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으나 이 부분은 일부러 유보했다. 그렇다면 김명인의 오이디푸스 이미지는 생생한 현실이되 따뜻한 몽상이기도 하다. (김명인의…) 아버지는 저편에 있다, 아버지는 이 곳에 없다, 아버지는 이 곳에 있다, 과거를 지배하고 현재에 없다가 미래를 장악한다, 아버지는 말초신경을 타고 들다가 자궁의 거대한 우주 속으로 미끌어진다. 아버지는 폭력 그 본체다! 김명인은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버지가 증오의 대상이라 했다. 핼쓱한 어머니, 시적 화자 ‘나’의 어머니를 그냥 문지른다. 아버지 욕설이 나의 욕설과 어우러진다. 서로의 골에 깊게 사무친다. 모질게도 미세한 입자로 개체의 이드id와 자아ego를 넘나드는 그. 오, 존엄한 아버지여. 시적 화자, 이윽고 너는 지친다. 나는 이쯤에서 엉덩이를 슬슬 만진다. ‘비 속으로 걸어가’시는 아버지를, 그는 종내 축출하지 못한다. 내쫓지 ‘않는’ 것이다. 왜. 연민 때문이다. 감출 수 없는, 김명인만의 연민 때문인 것. 그 연민이 상당히 솔직해서 두렵다. 나는 김명인의 초기시를 정신 분석학적 측면에서 바라보고 싶다. 저항·반항의 꿈·급작스런 공격성·리비도·자아/초자아 등의 심리적 요소가 작품에 등장하지는 않는가…. 그런데 내가 여유 없음과 역불급을 느낀다. 어머니가 두 어른의 몫을 하실 때, 증오로 출발한 의식은 지금 어느새 화해하고 있다. 녹아나고 있다. 그것은 결국 ‘화엄에 오르’는 길로 접어든 모양새였다. 그는 죽은 의식을 불사르고 자신을 후려치며 깨운다. ‘화엄’이 장엄한 불꽃으로 누릿누릿 타오른다. 간밤에는 비가 왔으나, 아직 안개가 앞선 사람의 자취를 지운다, 마음이 九折羊腸인 듯 길을 뚫는다는 것은 그렇다, 언제나 처음인 막막한 저 낯선 흡입 묵묵히 앞사람의 행로를 따라가지만 찾아내는 것은 이미 그의 뒷모습이 아니다 그럼에도 무엇이 이 산을 힘들게 오르게 하는가 길은, 누군들에게 물음이 아니랴, 저기 산모롱이 이정표를 돌아 의문부호로 꼬부라져 羽化登仙해 버린 듯 앞선 일행은 꼬리가 없다, 떨어져도 떠도는 산울림처럼 이 허방 허우적거리며 여기까지 좇아와서도 나는 정작 내 발의 티눈에 새삼스럽게 혼자 아픈가 길섶 풀물에 든 낡은 經소리 한 구절 내내 떨쳐버리지 못해 시큰대는 발자국마다 마음 질척거리는데 화엄은 화음 속에서 얼굴 감추고 하루 종일 굴참나무 잔가지에 얹히는 經典을 들어 나를 후려친다 ─ <華嚴에 오르다> 부분 그에 의하면 악천후가 계속된 지리산, 제자들과의 등반길에서 얻은 소중한 체험은 단순한 탐색이 아니었다. (나의 감상으로는 ‘득음得音’이었다.) 화엄사는 마치 법신의 꽃몽올을 머금은 듯 비안개 속에서 피어나고 그 안에서 일행의 ‘막힌 길 뚫기’는 지속된다. ‘그렇다’, 길 뚫기란 ‘언제나 처음인 막막한 (저) 낯선 흡입’이므로 그의 생소한 여정은, 길이 막혔으므로 가고갈 따름이다. ‘안개비→비안개→는개→안개’로의 낯선 여행은 빗줄기가 작아져서 눈 앞이 밝아야 하지만 산행은 갈수록 도리어 험해진다. 그런데 빗줄이 걷히면서 뭉게 피어오르는 안개가 삽상할지 몰라도 모호한 국면의 연속인 것을. 그러는 중에 나는 절감한다. ‘길은, 누군들에게 물음이/아니랴, 저기’ ‘의문부호로 꼬부라져 우화등선해 버린 듯 앞선 일행은/꼬리가 없다’. ‘이 허방 허우적거리며 여기까지 좇아와서도/나는 정작 내 발의 티눈에’ ‘혼자 아픈가’ 라고. 일행(!) 중 타인들은 이미 저 의문부호를 벗고 화엄의 세계로 간 듯한데 시적 자아인 ‘나’는 현실의 ‘티눈’(=肉可視的 삶) 앞에서 아직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티눈 때문에 도저히 발걸음을 옮길 수 없는 상황인 것. 그래도 어쩌다 부처가 ‘길섶 풀물’에 슬쩍 떨군 ‘낡은 경소리 한 구절’을 가슴에 주워 담아봤더니 ‘화엄’이란 녀석이 글쎄, 자기는 현현하지 않고 ‘굴참나무 잔가지에 얹히는 경전을 들어 (냅다)(나를) 후려친다’. 나타懶惰한 정신을 쇄빙선이 소리소문없이 쩡, 갈라대는 것이다. 얼얼하다. 나는 무심코 화엄아, 라고 부른다. 곁에 ‘화엄이’가 있을 리 없다. 내가 잃어버린 화엄 세계 앞에서 나는 입욕도 하지 못하고 문턱에서 아직도 머뭇거린다. 그런데 내가 무슨 지고至高의 길을 가랴. 주제에. 한 가지, 이 작품에서 놓칠 수 없는 점이 ‘화엄’과 ‘화엄사’의 병치에 따른 김명인의 교묘한 정치精緻다. 화엄사 경내로부터 출발한 화자는 지금 화엄경의 외곽에서 입초하고 있다. 안개 속 돌올한 자태, 화엄. 김명인은 그때 시의 경전이라 할 상징적 문답서 <유마경>을 읽은 건 아닐까. 완전한 화엄은 절정이며 성취다. 득도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화엄에 오를 수 없다. 시의 화자만 등정이 가능한 것이다. 멋대로 까불면 ‘굴참나무 잔가지’로 당신들의 후두부를 패버릴 테다.) 지금 김명인은 생체험의 기억에서 추체험의 여로를 트는 중이다. 바로 지금이 적기適期. 그래서 시인 오세영은 이 작품을 ‘자연철학적 영역’이란 언어로 칭찬한 걸까. 이 <華嚴에 오르다>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그 해 여름쯤, 이 작품이 《현대문학》에 실린 걸로 기억한다. 전원책 시인과의 약속이 있어 그의 사무실을 들르니, 마침 그가 이 작품에 열심히 줄을 긋는 게 아닌가. 나도 좀 전에 전철에서 읽은 김명인의 이 작품을 그와 나누려던 참이었다. 우리는 따슨 공감을 느끼며 잔잔히 감동했고, 그는 시낭송 자리가 있다며 이 시를 열심히 암송하고 있었다. 지나친 산문성은 여전히 문제점으로 남지만, 그 해 가을 김명인은 서정과 서사의 구미가 당기는 이 작품으로 문학사상사로부터 <제7회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한다. 1992년 가을이었다. 다시, <동두천> 혹은 <머나먼 곳 스와니> 그렇다면 남은 우리가 아메리카를, 그 무지한 외인부대를 욕하고 손가락질할 자격이 있을까. 당시 아메리카족을 향해 옐로우 카드나 레드 카드는 커녕, 지금처럼 ‘빠떼루를 줘야 한다!’를 맘대로 외칠 수도 없는 특수보호지역, 어느 누구도 철저히 외면한 극한지極寒地 동두천 한켠에서 젊은 일선 교사가 소신을 갖고 수행할 책무가 과연 있었을까. 낡은 교과서가 혼혈아 그들을? 교재의 도덕성이 핏줄을 꿰차고 그들을? 이러다가 그는 한껏 ‘어둠 이미지’에 젖는다. 작품 도처에 도저한 어둠이 서려 있음을 쉽게 발견한다. <동두천> 연작 9편 중에서 ‘어둠(밤)’이란 단어가 빠진 시는 ‘Ⅴ번’ 한 편뿐. 얼추 숫자를 헤아리니 열댓 개도 넘는다. 그러나 그는 울분을 터뜨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아마 어둠만 거론하고 밤 속에 파묻히는 자아를 일관되게 그렸다면 이 작품은 실패작이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연작시 마지막 편은 시적 자아가 아픈 상처를 열심히 닦아내며 희망이란 간판을 골똘히 제작했다. 그러면 나라여 한 밤은 외로 새우고 한 밤은 절름거려 떠돌며 머리 위론 저렇게 내리는 기차들 고삐도 없이 헐떡거리며 찬비에 이끌리며 개울에서 개울로 떨어지는 이 욕된 살들을 흘려보낸다 무엇을 듣겠는가 이곳이 말 못할 때 부끄러운 빗줄만이 흐느끼며 네 뼈를 풀어가나니 벗어 둔 한 벌 옷마저 챙기고 새벽이 올 때까지 밤새도록 빗소리를 닦고 또 닦는다 ─ <東豆川 Ⅸ> 부분 마지막 두 행이 우리 시선을 끈다. 시적 자아의 내면의 몸짓이 느릿느릿 소리없이 드러난다.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치욕의 상흔―코리아의 전쟁사를 비롯한 역사는 ‘외로 새우고 한 밤은 절름거려 떠’도는 시간축이요, 또 ‘걸어가면 발바닥에 돋는 피’의 역사役事 과정인 것. 짧게 말해 극복의 요체라 하겠다. 시인은 깨닫는다. 나라 땅이 이렇게 젖어 패이는 건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이었노라고. 다분히 비극적인 귀결이지만 시인은 거부·항거의 손짓에서 역사를 순순히 수용하는 미덕을 보인다. 그간의 인고가 곪은 살집을 해치우는 순간이다. 능욕당한 시간을, 개인사를, 혼혈의 문신을 아프게 아프게 ‘밤새도록 (빗소리를) 닦고 또 닦는’ 행위를 지속한다. 이것은 사물과 친화親和의 증빙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왜 이리 허전한 것일까. 우리가 <동두천>을 접할 때는 선행 과제가 있다. 반드시 혼혈아의 얼굴 및 피부 색깔을 생각하며 읽자.) 개인사를 대표하는 시는 <아우시비쯔>라고 생각한다. 어머니, 나는 평화 오는 길목에 드러누워 배고픔도 잊고 흐려 안 보이는 어린 날도 모두 잊어버리고 모르는 것들은 아직도 몰라서 사무칠 적에 더욱 괴로운흐르는 물소리를 짚어 보다가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가 지나가니 영영 만나야 할 당신, 당신은 어느 아우시비쯔에서 죽으셨나요? 그 철조망 가에도 패랭이꽃은 왜 피는지 나는 아버지가 앉았던 자리에 돋은 궁둥짝만한 이 땅을 포개고 앉아 서러운 서른 살에 아이를 낳게 되어서 불다 만 풀피리를 가르칩니다 ─ <아우시비쯔> 부분 어머니는 평화다, 사랑의 실체다. 무능에 가까운 아버지, 그는 전혀 아버지다운 데가 없었다. 김명인에겐 철저한 부정否定과 증오의 대상일 따름이었다. 그의 끊임없는 망설임은 유년기 탓일 것. 나는 김명인의 심리 속으로 컴퓨터 키를 조정한다. 사이버 통신? ‘어린 明仁이’ 시절과의 사이버식 데이트? 추가로 특징 하나, 소월 이후 나는 ‘돈’에 대한 시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한때 나는 대학 등록금을 마련 못해 사흘 낮밤을/꼬박 울며 지샌 적이 있다’고 실토한 후, 시적 화자는 ‘두 분 형님께서도 포기한 대학을/내가 끝까지 마쳤던 것은 돈에 대한/맹목의 복수심 때문’임을 진실하게 공개(<머나먼 곳 스와니>, 16쪽)한 적이 있다. 이만한 용기는 과감성일까, 모질음의 배려일까. 이 시집 해설에서 평론가 김주연은 단적으로 이렇게 매듭한다. ‘시가 지나쳐온 순간순간에 이어지는 추억과 회상으로부터 그의 상상력을 공급받는 것이라면, 과거에 대한 기억 역시 시의 싱싱한 샘이 아닐 수 없다.’ 시집 《동두천》에서 《물 건너는 사람》까지 김명인은 ‘추억과 회상’(대개 ‘쓸쓸함’이 요소마다 자리한다)이 사람과 작품의 전면을 휩싸고 있다. 시집 《동두천》 99쪽도 나는 사뭇 기웃거린다. 폐광되자 광산은 빚만 남겨서 어머니, 밥집 닫으시고 다시 허구헌 날 막내 업고 장터 떠도시었다. 가도 끝없는 날들 찬 물결 무심히 구겨지는 모랫벌 따라가면 어디서 밀려 온 오징어 뼈 몇 개. (…중략…) 늦가을까진 형님조차 소식이 없고 웬 배고픔에도 기대 그리움도 나 혼자 하릴 없어서 그 뼈 부숴 흰 가루로 바다에 뿌리면 돌아와 물가장마다 뿌옇게 진종일 붐비던 파도, 안개여. ─ <오징어 뼈> 부분 선한 생활인의 관념이 잘 밴 서정시다. 그런데 하마터면 궁상일 이 고백이 강렬하게 우리들 가슴을 때리는 것은 왜일까. 한 마디로 김명인의 시적 따스한 진실眞實 때문인 것. 김명인은 이렇게 자신을 억압하는 총체적 비극성을 즉물적으로 표방키 어려운 ‘그리움’으로 닦고 또 닦아낸다. 극복과 반격의 대안으로. 시집 《물건너는 사람》의 <유타詩篇> 동해바다, 칸델라 빛. 오징어, 바닷바람 이는 울진 부근 ‘후포’ 이 곳을 기자 출신 김 훈이 자신의 푸른 물감으로 그렸다. 바다는 여전히 안녕하다고. 그렇지만 나와의 약속 파기는 아직 이르다. 약속이란 내가 일방적으로 후포의 비밀을 캐내는 것. 다음이 물 건너 유타를 찾은 김명인, 그의 내적 잠언을 통해 광막한 모래펄의 본 뜻을 캐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모래밭에서조차 마른 눈물을 흘린다. 김명인은 ‘눈물’에 무장(武裝)의 갑옷을 입히지 않는다. 모든 눈물은 스스로 눈물이기를 거부하는 모순의 힘을 갖게 마련이다. 김명인은 그 눈물을 눈물로서 온전히 간직하고 끌어안으려는 노력에 의하여, 언어에 의하여 무장화된 눈물보다 더 큰 힘을 행사하고 있는 것 같다. ─ 김 훈, 《내가 읽은 책과 세상》, 푸른숲, 1989, 22쪽. 기교가 서렸지만, 김명인의 눈물에 대해 비교적 정확성을 기한 지적이다. 아래 작품에서 화자의 ‘행각’은 얼마나 섬뜩한가. 맞으면 치명적인 작살을 ‘옆구리에 잠자코 받’고 있으니. 나는 이 작품도 비극의 한 정점에 가져다 놓는다. 누군가 동행하지 않는, 허구렁 세상이 ‘나 혼자(서)’는 무섭기만 한데. 그렇다 해도 도시 김명인은 무엇하러 영동 지역을 갔을까. 어린 시절 후포에서 오징어를 건조시키던 기억과 만나려고? 유리창에 빗줄 하나 흔들리고 그 너머 밤배 하나 흐른다. 나 혼자는 무섭고 너희들도 함께 침묵하는 이 밤에는 무엇이든 놓아 버리고 싶다. 흩어진 암초에 엎드리고 옆구리에 잠자코 받는 작살. ─ <嶺東行脚 Ⅶ> 부분 아메리카 ‘유타주州’라는 지역. 이 곳 앞에서는 김명인의 시적 체험에 의하면 우리들로 하여금 ‘삭막索莫’과 ‘사막砂漠’이란 두 단어를 혼돈케 만든다. 사막은 쓸쓸함을 연상시키며 ‘삭막’은 더 가혹한 살벌함을 연상케 한다. 삭막한 사막, 하면 더 이상 잔존할 게 없을 것도 같다. 지평선 하나 제대로 뵈지 않는 우리 땅에서 지명知命의 나이를 거치는 동안, 오로지 그에게 유일한 이상향을 발견할 곳은 어릴 적 체험의 수평선뿐이었으리. 그가 당도한 곳 유타 저 광막한 모래벌판에서 읽은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누군가를, 사물을 생각할 겨를이나 그 ‘무엇’이 있기나 했을까. 근거·존재 유무의 패러다임? 외롭게 떠도는 것은 나그네뿐만이 아니다 끝없는 너른 고요 위에 늙은 낙타처럼 푸푸거리며 차가 멈추면 바다도 없는데 사막 한 가운데로 어디선가 날아와 저만큼 내려앉는 갈매기 한 마리 ─ <유타詩篇Ⅱ> 부분 매운 정신 하나 번개치듯 아직도 마음 한사코 맨살로 벗겨지므로 몸이 몸을 그리워하듯 너를 그리워하겠다 ─ <軍 浦> 부분 이 외로움. 그리고 뜨거운, 기막힌 그리움. 김명인 시인께 다시 반갑습니다. 첫만남부터 하 수상한 단추를 끼우다 보니 약간은 황망했지요. 며칠 사이 별 일 없으셨지요? 지금, 싸인 받은 시집을 넘기면서 이 글을 씁니다. 이 편지에 담을 말이 참 많은데, 아까 앞에서 데뷔작에 대한 언급에 대해 두서없이 펼쳐드리지요. …아마 그랬을 겁니다. 당신의 생체험으로 볼 때 자신의 데뷔작 <출항제>가 단지 등단용이었고, 부끄러운 과정이자 별로 달갑잖은 추억―관념시인 셈이라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체질적인 것이 못되었다고 보면 당신의 내성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물론 전혀 미체험적 생산물은 아니었지요. 작품의 배경에는 형님이 원양어선 선장이라는 추체험追體驗이 따르긴 했으니까. 실상 우리들의 70년대는 그랬습니다. ‘아침·출항·새벽’에 시의 깃발을 들면 일단 ‘신춘’의 의미가 화사하게 존재했던 게 사실이지요. 늘 회의하는 사람 김명인으로선 그것을 감당키 어려웠을 겝니다. 그에 대한 약간의 부끄러움은 20년이 훨씬 지난 오늘까지도 가슴 한쪽에 미진하나마 남아 있더군요. 그건 적어도 생래적인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 또한 당신의 감추어진 매력이기도 합니다. 시가 아름다운 것은 당신의 조용한 순례 때문이며, 그 수행 중의 고행이 안으로 땀 흘려 시우詩友들에게 친근한 친화력으로 나타나더군요. 나는 이를 당신 나름의 ‘정신주의’라고 명명해 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당신에게 큰 불만이 있습니다. 솔직히, 거칠게 말씀 드려서 3시집 《물 건너는 사람》 이후, 출간된 4시집 《푸른 강아지와 놀다》까지는 <화엄에 오르다>가 준 감명을 주고 있지 못합니다. 적어도 ‘文知 詩人’이란 안정(?)된 닉·네임이 출판사에 튼튼히 부착된 까닭인지, 아니면 안정된 교수직이 당신의 미래를 보장하기 때문인가요. 물론 그렇진 않겠지요, 적어도 김명인 정도의 시인이라면. 그의 시집들은 나의 오독일 수도 있으나 작품집에서 생생한 체험 현장이 사라지면서 당신 특유의 눈물이 빛바랜 느낌입니다. 설마, 설마 하니, ‘굴참나무 잔가지에 얹히는 경전으로 후려치기’가 당신에게 또 필요한 건 아니겠지요. 《푸른 강아지와 놀다》는 하응백의 말을 옮기면 ‘혈육과 이웃의 삶을 재구성’(시집 해설, 104쪽)했고, 《물 건너는 사람》은 ‘욕망과 도식, 허무와 부정’이라는 큰 두 가지 대립점 사이에서 망설여왔다(시집 해설, 109쪽)고 했지요. 후자에서 김인환은 ‘사막의 길은 그 길을 가는 사람도 그것이 정말로 길인지 알 수 없는, 길 없는 길’이라는 훌륭한 전언(105쪽)을 남겼습니다. 그래요, 당신은 남진우의 지적대로 삶의 연장선으로서의 바다 속을 차분히 딛는 중인지 모르겠습니다. 남진우는 당신을 위한 평문에서 중심 이미지를 ‘물(액체성)과 모래(고체성)’라고 했지요. 많은 공감대를 발견할 수 있었지요. 그릇된 해석이 많은데 자기 작품을 제대로 읽어주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다만, 아주 부분적이라 해도 ‘사회역사적 고민’이란 표현은 조금 거부감이 입니다.) ‘물의 불투명성’(215쪽) ‘물과 죽음의 상관성’에 대한 피력(218쪽), ‘소금의 상상력’에 관한 기술(228∼229쪽) 등은 음미할 만했지요. 당신이 삶 자체의 모범 답안화는 싫다고 역설했고, 계속해서 ‘기교 없이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고해성사도 스스로 하셨으니 염려할 일은 아니겠군요. 변화를 두려워 해서도 안 된다는 말씀, 다시 우회하여 첫번째로 돌아가는 중이라는 발언은 자못 믿음직했습니다. 홍정선의 ‘고향으로부터의 고향에로의 길’이란 평문을 은근히 자랑하던 모습이 눈에 찹니다. 마치 비밀을 들킨 듯한 묘한 웃음을 짓더군요, 당신. 긴장감이 만약에 고무줄처럼 늘어난다면, 앞으로 책임지세요. 어쩌다 괜찮은 출판사에서 시집이라도 나오면, 급기야 (멍청하게도) ‘중견’임을 자처하고 부추겨주는 우리네 문학판을 볼 때, 당신같은 생체험의 소유자가 그들에게 지난 아픔을 골고루 나눠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회 인식의 치열한 접근 문제는 오늘의 주제가 아니라서 묶어둡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미 이해했다구요. 참 고마운 일입니다. 산문화 경향도 지나친 언어 정제가 가져다줄 역효과에 대한 반감을 갖다 보니 자꾸 잔가지 치기가 어렵다는 것도 알았고…. 그러나 나는 당신이 대학생 때 닥치는 대로 수천 편의 시를 읽고 일부는 옮겨적었다는 그 열정에 홀딱 빠지고 맙니다. 역시 김명인 당신은 그리움의 시인입니다. 그리움을 찾아 훨훨 떠난다는 즐거움, 진정 최상의 환희가 아닐는지요. 더구나 아련한 비극성이 작품에 서려 있다면. 언제 다시 만나 못 마신 곡차라도 나누고 싶습니다. 각별한 만남, 잊지 않겠습니다, 승용차에서의 신성한 인터뷰도…. 건필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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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작품집에서 생생한 체험 현장이 사라지면서 당신 특유의 눈물이 빛바랜 느낌입니다. 설마, 설마 하니, ‘굴참나무 잔가지에 얹히는 경전으로 후려치기’가 당신에게 또 필요한 건 아니겠지요/김강태선생님을 생각하며 잘 읽었습니다.
당신같은 생체험의 소유자가 그들에게 지난 아픔을 골고루 나눠줘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