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원님의 글입니다. Lennon:4CD SET은 1990년에 발매된 레논의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대개의 경우 이러한 박스 세트의 경우 화려한 북렛
(booklet)과 큼지막한 케이스에 담겨있어서 겉보기에도 호사스럽게 꾸며져있는 경우 - 박스세트의 무시무시한 가격을 생각해본다면 어쩌면 이정도의 서비스는 구매자 입장에서 당연히 기대해 봄직한 것인지도 모른다 - 가 대부분인데 반해, 이 세트는 무려 4장의 디스크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매우 검소해(?)보이는 종이박스와 수록곡의 가사만이 적혀있는 68페이지짜리 작은 소책자가 들어있을 뿐이다.
포장이라고 하는 측면만 놓고 생각해본다면 아무래도 본전생각(?)이 절실하게 나게 만드는 물건이지만 그 내용물을 들여다 보고 얼마나 알차게 꽉 들어찬 물건인지를 알게 된다면 더이상 이 세트가 단순한 컴필레이션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우선 73곡이라는 수록곡의 양적인 풍족함도 흐믓하지만, 존의 솔로활동
시기의 전기간을, 그의 녹음경력의 거의 모든 부분을 커버하고 있는 질적인 풍부함이야말로 이 세트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후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리스트를 곰곰히 훑어보면, 각각의 수록곡이 단순히 대중적인 인지도나 힛트곡중심으로 선정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나름대로 어떤 일관된 주제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느낄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누가 이
세트의 제작을 진두지휘 했기
에 이런 결과물이 나왔나 하는 의문을 품고
책자를 뒤적이다 보면 낯익은
이름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바로
Mark Lewisohn이다.
인터넷에서는 이미
Beatles Scholar라는 별칭으로 불리우는
그는 이미 여러 종류의 비틀즈CD
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고 (Sgt.Pepper CD의
슬리브 노트를 썼고 Past Mas-
ters Vol. 1 & 2의 조사와 선정, 그리고 해설을
담당했다), Beatles Live,
The Complete Beatles Recording Session,
The Complete Beatles Chronicle등의
저술을 통해 90년대 비틀즈르네상스의
물적 기반을 마련한 장본
인이기도 하다.
이런 그가 직접 선곡을
담당했으니 그 결과물은 그 내용적
충실함을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게 최초의 레논박스세트는 아니다.
레논이 죽은지 일년뒤 일본의 도시
바EMI사가 Live Peace in Toronto 1969서부터
편집앨범인 Shaved Fish까지
장의 앨범을 모은 호화판 박스세트를 발매한
적이 있지만 그건 그저 정규앨범을
모아놓은 것일 뿐 새로운 기획은
아니었다. EMI사가 어떤 의도로
이러한 레논의 박스세트를 기획하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4장의 CD라는 물리
적인 제한하에서 탄생할수 있는 가장 최선의
조합이 바로 이 Lennon:4CD
SET일 것이다.
73곡의 수록을 여기에 다 적는 것은 필자에게는
너무 힘든 노동이 될 것
같아 생략하고 각각의 앨범에서 얼마 만큼의
곡이 선정되었는지만 적겠다.
(Unfinished Music Vol 1, 2 와 Wedding Album
에서는 선정된 곡이 없다.
앞의 세앨범의 성격을 아신다면 이해가 갈 것이다)
앨범명(발매년도) ; [선정곡수/수록곡수]
Live Peace in Toronto 1969(69); [4/8]
Plastic Ono Band(70); [11/11]
Imagine(71); [9/10]
Some Time in New York City(72); [3/10]
(Live Jam); [1/5]
- Some Time in New York City에 들어있는
보너스 디스크
Mind Games(73); [5/11]
Walls and Bridges(74); [9/12]
Rock’n’Roll Music(75); [6/13]
Double Fantasy(80); [7/14]
Milk and Honey(84); [6/12]
Live with Elton John(74?); [3]
- from the single DJS10965
Live in New York City(86); [2/11]
Menlove Ave(86); [1/10]
- 5곡의 미발표곡과 Walls and Bridges에서
뽑은 5곡의 편집앨범
singles [Give Peace a Chance/Cold Turkey
/Instant Karma/
Power to the People/Happy X-mas/
Every Man has a Woman who Loves Him]
우선 몇가지 눈에 띠는 특징들만 집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존의 솔로시절에 관해 이야기할때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 중의
하나가 존의 마스터피스가 과연 Plastic Ono Band
인가 아니면 Imagine인가
에 관한 논란이다. 양자의 차이점이라면
아무래도 후자가 전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성이 강화되어있다는 점 정도
일것이다. 즉 Plastic Ono Band의 거칠은
자기고백이 Imagine에서는 좀더 완곡하게
표현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이미 87년도에 롤링스톤이 자신들의 창간
20주년 기념 기획 (록의 명반100선)에서
두 앨범의 격차를 잔뜩 벌려놓음으로해서
(Plastic...이 4위 Imagine은 61위) Plastic Ono
Band의 판정승을 내린바 있는데
Mark Lewisohn또한 교묘한 방법으로
Plastic Ono Band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Plastic...의 경우 앨범의 전곡을
수록했으나 Imagine은 10곡
중 I don’t wanna be a soldier 한곡을 생략함
으로써 자신의 견해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평론가들에게 집중적인
비난을 들었던 Walls and Brides앨범에서
무려 9곡이나 수록이 되었다는점이다.
선택되지 못한 나머지 3곡들이 매우 짧은
곡이거나(Ya Ya-나중에 R’n’R music앨범에서
다시 불렀다),
엘튼 존과의 어설픈 장난(Beef Jerky)
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앨범 전체가 수록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추측컨데 비평가들의 견해와 달리 이시기
레논의 음악세계가 전혀 후퇴한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강변하기 위한
의도적인 기획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시도가 최초의 것은 아니다.
Menlove Ave에서도 Walls and Bridges
의 복권(?)이 시도되었었지만 실패했었다)
물론 Lewisohn 자신의 개인적인
취향의 결과일 수도 있다.
Walls and Bridges가 과잉 삽입된데 비해 Some
Time in New York City는
엄청난 푸대접을 받고 있다. 이 세트가 전반적으로
고른 편집을 보여주고
있지만 Some Time...의 경우에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생존율(?)을 보이고 있다.
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
/New York City/John Sinclair
단 3곡만이 이 컴필레이션 세트를 위해 선택되었을
뿐이다.
물론 이 앨범이 비평가들과 팬들
그리고 언론의 집중포격을
받기는 했지만 급진적인
정치가로서의 존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앨범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쉬움이 없지않다.
단 이 세트의 철저한 Anti-Onoism(실제로 이
세트에서는 오노 요코의 목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다)을 고려할때 Some Time...앨범
에서 오노의 보컬비중이 낮은 곡을 골라내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경우의 박스세트가 미발표곡이나 희귀한
트랙들을 삽입하여 자신의
상품적 가치를 높이는 경우가 많은데 레논의
경우 그러한 종류의 트랙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그런 보너스는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단 이
박스 세트에도 비슷한 성격의 트랙이 있기는
있는데 바로 74년 뉴욕에서
엘튼 존과 가진 콘서트의 실황이 그것이다.
모두 3곡이 실려있는데 70년대
싱글로 한번 발매된 이후에 CD화 되기는
이 세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한다. 첫곡은 이미 Walls and Bridges앨범에서
한번 호흡을 맞춘적이 있는
Whatever Gets Thruthe Night.
이어지는 것은 엘튼 존이 부르는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세번째 곡은 다소
의아스럽게도 폴의 곡인 I Saw
Her Standing There이다. 아무리 자료적 가치가
있다고는 하지만 엘튼 존
목소리만 나오는 Lucy in the Sky...를 굳이
수록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4번째 디스크는 재기이후에 발표한 두장의
앨범 (Double Fantasy / Milk
and Honey)에서 14곡을 뽑은 것인데
재미있는 것은 이 중 13곡은 이 두
앨범에서 순수한 레논의 작품,
그러니까 오노의 작곡이나 보컬이 들어간
곡을 제외한 레논 창작품의 총합이라는 점이다.
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세트의 철저한 레논중심주의를 엿볼수 있다.
또한 위의 두 앨범을 듣기는
들어야 겠는데 오노요꼬는 도저히 체질에
안맞는다 하는 분에게 아주 적합
한 편집방식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아쉬운 점은
86년도에 나온 컴필레이션 앨범인
Menlove Ave에서 존의 오리지널인
Here We Go Again이나 Rock’n’Roll
People을 제치고 올디스 넘버인 Angel Baby가
선택되었다는 점이다. 이 곡
은 존의 리메이크 앨범인 Rock’n’Roll Music을
위해 녹음되었으나 정작
그 앨범에는 실리지 못하였었다.
따라서 Rock’n’Roll Music앨범에서는
실질적으로 7곡이나 이 세트에 수록된 셈이다.
아마도 자료적인 가치보다는 존 레논이라는
아티스트에 대한 이해를
충실히 하는게 이 세트의 기본
적인 편집방향인듯 하고 거기에 맞추어 존의
음악적인 토대와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러한 선곡이 이루어진 듯하다.
LENNON: 4CD SET은 한마디로 매우 경제적인
앨범이다. 이 4장의 CD를 통
해 레논의 음악세계에 입문에서부터
마스터까지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히 금전적인 맥락에서도
그러하다. (단 4장의 가격으로 7~8장의
CD를 구입한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세트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그런 지엽적인 이유에서가 아니
다. 이제는 더이상 발전할 수 없는 레논의
음악활동을 비판적으로 회고하
는 성격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고, 개별 앨범이라는
형태로 나뉘어져 있는
그의 창작물들이 인간 존 레논이라는 가장
큰 테마로 엮여져 있는 유일한
총체적인 앨범이라는 점이 진정으로 이
박스세트를 비범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레논이 생전에 말했던 것처럼 Beatles를
절대로 믿지 아니하며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정신의 소유자라면 한번쯤
이 레논의 현란한 사상전집(!)
에 심취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