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받은 아주 비싼 선물

[예림]

                                      스승의 날에 받은 아주 비싼 선물

새 학기가 되면 어느 학교나 그렇겠지만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교사 청렴과 관련된 가정통신문을 각 가정으로 보낸다.

학부모는 교직원에게 어떤 명목의 금품을 보내는 일이 없어야하며, 학교 발전을 위해 기금이나 물품을 희사하려면 ‘학교발전기금창구에 접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가정통신문이다.

그리고 5월15일 스승의 날을 며칠 앞 둔 시점에서는, 아이들에게 꽃이나 물건을 사 오지 말라고 학급 담임들은 지도한다.

매스컴에서 하도 많이 떠들어서 그런지 몇 년 전부터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승의 날에 교사에게 선물을 가져 오지 않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회풍토가 이제는 정착되었다고 본다.

내 기억으로 10여 년 전까지는 스승의 날이 되면 편지와 함께 선물을 들고 오는 아이들이 학급에서 3분의 1가량은 되었다.

일 년 중 단 한번 있는 스승의 날에는 담임께 꽃도 드리고, 바디샤워 하나, 혹은 스타킹 한 박스라도 들고 오는데, 그럴 때면 그 아이는 아침부터 신이 나서 들떠 있었고 무슨 큰 선물이라도 하는 양 뻐기면서 선생님께 드렸고, 이걸 받는 담임교사는 그 물건의 가치를 떠나서 아이들의 정성을 생각하며 무슨 대단한 선물이라도 받는 것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어느 때 부터인가 스승의 날에 ‘선물 절대 가져 오지 않기’, ‘꽃 갖고 오지 않기’가 대한민국의 중대한 법률처럼 반포되었고, 모든 학교에서는 가정통신문을 발송하고, 그것도 모자라 학교 관리자는 아이들의 알림장에 까지 쓰도록 교사들에게 지시했다. 심지어 알림장에 정말 잘 썼는지 검사하는 교감도 있었으니.......

나 역시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기에 명령에 따르긴 하면서도 마음이 씁쓰레하기도 하고 슬픈 생각이 드는 것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학부모가 담임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들여 포장한 선물을 아이들 손에 들려 보내는 것을 국가에서 엄격히 금한 것이다.

그 선물들이 어떤 것들인지, 청와대 상좌에 계시는 분들이 포장을 뜯어서 보기나 했을까?

나는 부유한 계층이 다닌다는 사립학교나 강남 쪽 학교에 근무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아이들 손에 들려 온 선물들 중, 단 한 번도 고가품을 본 적이 없다.

스승의 날 아침에 내 교탁 위에 수북이 쌓인 선물을 풀어보면 대충 이런 것들이다.

엄마가 손수 만들었다는 사탕꽃다발이거나 비누 3개가 든 상자, 혹은 샴푸 한 세트, 핸드크림 한 개, 양말 한 컬레,.....

참으로 눈물겨운 선물들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스승의 날 선물금지령이 얼마나 완강한지 지금은 이런 시시콜콜한 선물은 물론, 생화 한 송이도 갖고 오지 않는 사회가 구축된 것이다.

대단히 청렴한 국가다.

그런데 아주 간혹, 담임교사 말을 제대로 안 들었는지, 학부모가 자기주장이 강해서인지, 요즘도 카네이션 생화를 갖고 오는 아이가 한 두 명 정도는 있다.

올해도 우리 반에는 두 명의 아이가 조그마한 카네이션 화분을 갖고 왔다.

사람들 대부분 그렇겠지만 나는 조화를 무척 싫어하고 꽃도 꺾은 것은 싫어한다.

그 반면에 화분이나 화단에 심어져 있는 꽃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화분을 갖고 온 아이를 야단치기에 앞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며 받았다. 그리고 교실 뒤 사물함 위에 얌전히 올려놓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내 교탁 위에는 아이들이 쓴 편지와 카드가 쌓여 있었다.

어제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선생님께 카드나 편지쓰기 숙제를 내어 주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편지나 카드를 갖고 온 것이 신기하다.

맞춤법이 틀리고 문장이 제대로 된 편지가 아닐지라도, 그리고 카드 속에서 웃고 있는 담임인 내 모습이 정말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있어도, 아이들의 정성이 담긴 것이라 나를 흐뭇하게 한다.

그런데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작년에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쪼르르 몰려 왔다.

지금은 2학년이 된 아이들이다.

작년 1학년 때보다는 조금 컸다고는 하지만 내 눈에는 아직도 어려 보이기만 하는 귀여운 아이들이다.

저마다 손에 편지나 카드를 들고 환히 웃는 모습으로 왔다.

2교시 수업이 끝난 뒤의 쉬는 시간에도 지금 2학년 아이들이 몇 명 더 왔는데, 한 아이는 엄마하고 같이 만들었다는 조그마한 액자 한 개를 선물이라며 갖고 왔다.

그리고 또 한 아이는 뜻밖에도 책을 한 권 갖고 왔다.

김채희라는 아이인데, 수줍음이 많아서 발표는 잘하지 않지만 수업태도가 바르고 학교생활을 성실히 하던 아이이다.

아이가 갖고 온 책 제목은 ‘우수 창작동화 모음집’이고, 두께는 얇았다.

“채희야, 이 책 엄마가 사서 내게 주라고 보냈니?”하고 내가 물으니, 아이가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면서 “아니요.”라고 했다.

“그럼?” 나는 놀라워하며 물었다.

“제가 샀어요.”

“네가 서점에 가서 골라서 샀다는 말이야? 돈은 어디서 났어?”

내가 묻자 채희는,

“제가 샀어요. 제 용돈으로요.”라고 했다.

“아, 채희가 모은 돈으로 선생님께 책 선물을 하려고 산 거구나.”하며 웃으니, 아이도 즐거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지 석 달된 아이가 지난 해 담임선생님을 생각하고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는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몸집도 다른 아이들보다 작은 편이고 여리기만 한 아이가 어찌 이런 생각을 했을까?

나는 아이를 꼬옥 안아 주었다.

“채희야, 이 책 잘 읽고 선생님이 오래도록 간직할 게.”

이 날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하교 한 후, 혼자 빈 교실에 앉아 채희가 준 책을 읽었다.

좀 읽다말고 책장을 덮는데 문득 뒷 표지에 ‘값 7,000원’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7,000원!

아이의 7,000원은 어른의 7만원과 같다고 본다.

어른들도 7만원 짜리 책을 사서 친지에게 선물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에 그 어린 아이가 자기가 모은 용돈으로 책을 사다니!

아침에 교실에 왔다가 간 채희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작년에 그 애가 우리 반이었을 때 내가 몇 번 채희를 칭찬했던 일이 떠올랐다.

채희는 공부 잘하고 학교 규칙 잘 지키는 착실한 아이이기도 했지만, 특히 일기와 글을 참 잘 썼다.

작년에 1학년 2학기 때부터는 틈을 내어 반 아이들에게 동시 짓기나 생활문 쓰기를 조금씩 지도하곤 했는데, 채희가 쓴 글들이 눈에 띄게 좋았다.

그래서 채희가 지은 동시나 글을 앞에 나와서 읽어 보게 하기도 하고, 내가 대신 읽어 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채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채희는 글을 참 잘 쓰는구나. 나중에 문학가가 되면 좋겠어. 문학가는 시인이나 소설가 같은 사람을 말해.”

그 때 가만히 앉아서 내 말에 귀 기울이던 채희 모습.

아이는 그 때 내 말을 마음 깊이 새겨 놓았을까?

그래서 그 때부터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고, 올해 스승의 날에 내게 책 선물을 한 것일까?

나는 오늘 아침에 아이에게 그걸 물어 보지는 않았는데, 지금 그 애가 주고 간 책을 보고 있노라니 채희 마음을 알 것 같다.

책 겉표지 제목 위쪽에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힌 게 눈길을 끈다.

‘mbc 창작동화 수상작’

나는 마음 속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듣는다.

‘채희는 나중에 커서 훌륭한 문학가가 될 것입니다.’

작년 1학년 때 담임교사였던 내게 여린 손으로 골라온 책 선물!

스승의 날에 이보다 값진 선물을 받은 스승이 어디 또 있을까?

                                                          2013. 5. 15  김문희.

[해맑음]

선생님은 눈에 디지 않는 학생의 인성과 소질을 개발하여 키워 주는 역활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 진지하게 잘 읽었습니다. 귀감이 가는 선생님이시네요.

[예림]

오랜만에 글 남기셨네요. 반갑습니다. ^^*

[김남식]

어려서 부터 성실하고 참한 모습이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