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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 길 46코스 여행기
20회 조관호
여행의 글귀는 아름다워야 하는가.
누군가 내가 있는 곳을 떠나면 여행旅行이다.
그 여행지의 모습을 상상하고 떠나는 것은 “白聞而 不如一見”이라는 체험을 위한 시작이다. 시간의 봇짐을 메고 떠난다.
여행은 시간이 또 다른 공간으로 유추되어 나가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차창으로 흩어진 듯 뿌려진 듯 들 밭은 푸르다. 만경평야 보리는 노랗게 익어 가고, 도시를 탈출하려는 차량의 숨소리는 방음이 잘된 탓에 들리지 않는다.
버스의 멈칫거리는 브레이크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1. 내가 가는 곳은 해안선이다.
서해안 변산 채석강으로 간다.
평택, 군산 평야를 지나 만경강과 평야, 새만금을 지나 그곳으로 간다. 도로는 자동차의 유입을 막을 수 없다. 자연스럽게 일정이 빡빡해진다. 지루함도 더해간다. 여행은 공간이동이라 감수해야 한다. 푸른 바다 위로 푸른 하늘이 닿은 그곳에
작은 섬들이 어울려 있고, 백사장 뒤로 해송이 버티고 있을 것 이라는 상상은 누구나 한다.
그리고 철 지난 말들을 하다. 그사이 뭐가 생겼다. 더 깨끗하다. 더 더러워졌다. 불친절하다. 여기서 뭘 먹고 사는가. 이런것은 왜 있는지. 그사이 사람들은 인색함을 말한다. 내 자신이 더 인색해진 것도 모르면서. 그러는 사이 바다가 보인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하는 말들이라 생각한다.
산행기, 여행기라고 쓰기엔 너무 빈약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2. 생각을 바꿔 쓰고 싶다.
旅는 旅다. 우리말로 여행이다. 旅는 갑골문에 깃발을 들고 여러 사람이 전진하는 형상이다. 과거 씨족이나, 군단이 출행하는 모습이다. 군의 집합 단위에 旅團여단이라고 한다. 현재도 사용하고 있다. 내가 집을 떠나면 난 客이 된다. 나의 공간을 잠시든 긴 시간이든 떠나면 나는 客이 된다. 객은 피곤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과거의 객은 살 곳과 먹을 것을 찾아 아예 짐을 싸서 공간을 이동하기 때문에 고달프다. 현대사회에서는 旅는 여유이고 자기 도전이다, 때로는 행운을 찾아 나간다.
여행을 떠나 만난 나 아닌 타인들과 宿食을 하고, 나누는 인간의 정도 느껴본다. 그리고 조심하여 그 공간에 접근하고 타향의 감성과 또 다른 문화를 느끼는 것이다.
객은 명예를 얻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얻으러 간다.
여행객이 된다.
산행을, 탐방을, 방문을 하는 것, 이것이 여행객 즉 客이 해야할 일이다.
깃발 아래 모인 여행객 그들은 어디를 보고 있나. 보려고만 한다. 말하려고만 한다. 깃발은 어느새 심하게 흔들거린다.
모두 집중하라는 것이다. 집중하지 않으면 여행은 어렵다는 것이다.
깃발 아래 모여 본다. 사방을 그냥 見, 본다. 그리고 보기만 하면서 간다. 객은 주인을 보고 물어본다. 주인은 설명하기도 하고 웃고만 있다. 때로는 화를 낸 엄숙함을 보인다.
보지 말고 觀하라는 것이다.
즉 생각하면서 보던지, 보면서 생각하라는 것이다. 객은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하고, 지나쳐 버리기도 한다.
주인은 그곳 공간의 주인이다. 바다도 절벽의 해송도 주인이다. 울긋불긋한 단풍도 다 주인이다.
觀은 세상을 보고, 세상의 소리를 들어 보라는 것이다.
불교에서 觀世音, 觀自在란 말을 쓴다.
觀은 낮은 곳에서도 저 높은 곳에도 있다. 높은 산에 올라 저 낮은 곳을 보고 듣고 하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觀하라는 것이다.
觀國之光은 나라의 빛을 보라는 뜻이다. 여기서 觀光이라는 말이 유래 됐다고 한다.
객은 사라진다. 나라(자연)는 그대로 존재하며 영원한 빛으로 남는다.
내가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내려올 때 觀我生하면 즉 자신의 삶을 반추 하면서 내려오면 큰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퇴직 후의 삶은 결국 나의 삶을 스스로 빛나게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라 생각 한다.
우리가 떠난 공간 그곳.
살아남는 것은 산과 들 공기와 태양 빛뿐이다.
도시의 높은 아파트, 고층 건물도 호사한 붉은 벽돌집도 자연의 한 공간을 차지하지만, 그것도 언젠가 사라진다.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은 영원한 객이다. 언젠가 그들도 저 바다로 땅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객은 자만하면 안 된다.
기웃거리며 봤던 그곳, 어깨 너머로 내달리는 바람도 생각하면서 봐야 한다.
각박함이든 여유로움이든 인간에게 다 부자유를 주는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 스스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빨리 결정하려 한다.
다 건강하고 다 잘살 수 있는 것이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희망하고, 인간은 스스로 끝없이 자학하면서 산다.
삶의 의미는 이동 공간에 있다. 혼자 걷는 산책길, 버스, 지하철 안에 삶이 있다. 움직임은 대상을 보고 간다. 내가 움직이면 모든 것이 움직인다.
도시는 하루하루 우리의 시간을 좀먹고 있다.
도시는 인간을 흥분시키지만 비범한 인간을 만들지 못한다.
3. 객이 얻은 것을 비교해 본다.
도심을 떠나 자연을 감상하고 싶어서, 내가 보지 못한 경치를 보러,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서, 체력 테스트를 위해서, 세상의 고뇌를 잊기 위해서, 우정을 위해서,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 이유는 다양하고 사연도 많다.
그러나 주인은 객을 그렇게 쉽게 용인하지 않는다.
내가 얻으려 하면 나도 일정부분 양보하고 이해해야 한다.
고대의 여행은 살기 위해 旅 했으나, 현대인의 여행은 돈을 쓰기 위해서 떠난다. 그 이상을 얻으려 한다. 현실은 대부분 돈 만큼 대접을 못 받는 것이 지금의 여행객이다. 여행객 자체가 더 인색하기 때문이다. 객은 사실상 여유롭지 못하다. 정해진 시간과 공간 그리고 돈. 이 모든 것이 대부분 한정적이다.
그 깃발이 가야 할 방향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부서지는 파도 소리도 갈매기 소리도, 좁은 해안 길 사이 작은 나무들 사이에도 객을 반긴다. 그들은 객을 반기는듯하다.
해안 백사장 위 작은 돌들도 모래만큼 따뜻하다. 어촌 아낙들 아낙이라고 부르기엔 나이 많은 아주머니들의 어망을 손질하는 손길은 시계 초침 소리만큼 빠르다.
작은 포구 귀퉁이에 쌓인 패트병과 어망, 스치로폼, 폐타이어 그것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인데 아무도 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사이 나라가 고속 압축성장을 하면서, 우리의 의식 속에 두꺼운 기름기만 쌓여 누렇게 변해 검어지고 있다. 너무 단단해 스스로 녹이지 못하고 있다.
서해 바다는 앞으로 더 망가질 거다.
서해안의 쓰레기는 누가 버린 것인가?
인간이 최초로 거주한 곳이 대부분 해안가 마을이다.
물론 그 유적들이 내륙과 같이 남아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인간이 가장 거주하기 좋은 환경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 한반도에 고인돌의 분포를 보아도 대부분 서해안선을 따라 남쪽 고창에서 가장 많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특히 어촌의 入鄕祖입향조는 포구 가까이에 살았다. 그다음 타인들이 들어 오면 입향조는 좀더 위로 올라가고 그다음 사람들이 포구에서 살랐다. 그런 반복적인 이동으로 지금도 어촌은 오래된 입향조가 가장 위에서 살고 있다. 전망도 좋고 파도의 위험도 적다. 인구 유입이 많아지고, 방파제가 생기고 현대 화가 되면서, 아래 사는 사람들이 경제적 여유로움이 커졌다.
여행은 어떤 목적이든 자기희생이다. 경치가 좋고 나쁨이 아니라, 有無 의미는 사실상 큰 의미는 없다. 객이 뭘 보고 뭘 생각하면서 돌아와 나의 공간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의 문제일뿐이다.
부안 변산이 지금도 미꾸라지를 양식하는지 잘 모르겠으나, 추어탕 인구가 늘어나니 당연히 그 어디에 있으리라.
미꾸리지는 메기가 천적이라 미꾸라지 양식장에 메기가 있다.
메기가 먹는 양보다 미꾸라지가 힘이 세지고 크는데 메기의 역활이 크다고 한다.
자연의 법칙을 잘 이용하는 수단이다.
새만금 갯벌은 세계 4대 갯벌이라 했는데 물을 막아 개털이 됐다. 지금이라도 둑을 헐어야 한다. 다가 아니더라도 일부라도 개방하여 물은 자유롭게 흘러야 한다.
새만금 갯벌, 구암리 고인돌, 격포 채석강 적벽강 선운사로 연결되는 비포장 길은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였다. 그 길 따라 일몰을 줄포항에서 봤던 기억이 삼십 년이 훨씬 넘었다.
다시 가보리라 다짐한 시간도 많아졌다. 꼭 올해 해야겠다.
그쪽엔 아픈 기억도 있다. 1993년 격포와 위도 사이에서 서해안 패리호 침몰 사건으로 300명의 목숨을 잃었다.
인간의 욕망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모한 도전 때문이다.
그 뒤로 천안함, 세월호가 인간들의 욕구와 욕망을 절제하지 못해 일어난 비극적 사건이다.
현대사에서 일어난 비극은 통속적 인간들이 지배하는 곳에서 일어났다.
저 서해바다 건너 중동에서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수천 년 동안 지속 적으로 하고 있다.
그들의 통속적 신 때문인가, 서구의 금속 문화가 인류를 멸절 시킬 수 있다는 것이 현자들의 말이다.
다시 침팬치와 공룡의 시대가 오려나 궁금하다. 과학은 혹성탈출의 침팬치를 기억하고 있다.
4. 여행은 기억을 상기시키고 새로운 도전을 약속한다.
변산의 기억은 다시 그곳으로 갈 수 있는 미련을 남긴다.
여행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살아 있어야 몸이 살 수 있다. 체력이 살아있다고 마음이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賢者는 여행은 몸으로 하지 말라고 했다.
노자는 有無相生을 말한다. 내가 있는 곳이 有가 아니고, 無 에 내가 없는 것이 아니다. 陽속에 陰이 있고 陰속에 양이 있다. 상생하지 못하면 내가 양만, 음만 있는 것으로 살다가 간다. 여행은 有無相生 이다. 여행지는 내가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곳으로 떠나고 싶어 한다. 내가 없으나 그곳에 내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자유롭고 거침없는 것은 어쩌면 여행 客의 끝없는 탐구심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자연을 사랑하는 자만이 한반도가 금수강산이라는 것을 안다.
오르고 오른다고 가는 대로 간다고 그것이 현자가 되고 선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풍명월과 관동팔경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 없음을 인지한다면 만물을 사랑해야 한다.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知者樂 仁者壽.
이 말은 공자님의 말씀으로 대부분 잘 알고 있다.
이 말의 근본은 자연과 상생하는 자만이 知者와 仁者가 될 수있다는 말이다. 결국 조화로움이다. 산과 물에 인간이 상생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오래 살지 못한다는 말이다.
공자님께서 知者와 仁者의 덕을 산과 물로 말씀한 것이다.
썩은 물과 썩지 않는 프라스틱, 공기 속에 부유하는 먼지와 바이러스 수천 년 전 현자들은 예고했다.
客은 스스로 다짐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5. 여행지를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국내 여행이든 해외여행이든 우리나라 사람처럼 말이 많고 막말과 비하를 집에 개 나무라듯 한다. 이해하지 못하면 그곳에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왜 공자님은 知者라 했나, 공자도 10년 넘게 중국을 주유했다. 즉, 여행을 했다.
客이 되어 비, 눈도 맞고 냉대도 받고, 죽을 뻔도 했다. 살아서 노나라에 다시 올 수 있었던 것은 가는 곳마다 알아 처신했다는 것이다. 그곳의 풍습과 문화를 배우고 가르치면서 함께 했다는 것이다. 백인한테 왜 피부가 저런가 따지면, 중국 사람은 더럽다. 아프리카는 사는 것이 우리 60년대 수준이라든가, 좌우지간 말이 많다.
그런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그렇게 말해야 자부심을 느끼는 것인지 모르지만,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다.
적응하지 못하면 仁者가 될 수 없다. 자신의 집이라도 잘 지키면 그나마 성공한 것이다.
6. 인생은 여행이다.
멋지고 행복한 삶이란 어떤 절차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배는 바람으로 돛대로, 때로는 노를 저어 가는 것이다.
준비되어 있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것을 그때 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다.
때로는 바람 때문에 돛대 때문에 노 때문에, 방향을 잃고 목적지에 갈 수 없다.
그래서 있고 없음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配慮배려 하라.
배려는 서로에게 희망이 된다.
받는 사람은 힘을 얻고 주는 사람은 덕을 받는다.
激勵격려 하라.
격려는 상대에게 자부심을 준다.
받는 사람은 더 나갈 수 있고, 하는 사람은 더 좋은 삶이 온다.
容恕용서 하라.
용서는 새로운 신뢰가 생기고 받는 사람은 세상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배려하고 격려하고 용서하면 허물이 없고 삶이 吉길 하다.
7. 여행은 공간과 마음의 移動이다.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청원 산악회 선 후배 동문 들이, 이십 년 넘게 몸과 마음을 이동하며 지금까지 건강하게 유지한 것은 선배님들의 열의와 열정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천하는 이분이지. 즉 춘분과 추분, 동지와 하지를 말한다.
현재 내가 二分二至 어디에 서 있는지를 보면서 하루하루 건강한 삶을 추구한 훌륭한 선후배 동문님들의 배려와 격려로 지금까지 지속적 결속 관계를 유지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끈끈한 여행 동지들이 더 늘어 날 수 있도록 기원합니다.
인생은 아픔과 즐거움이다 (life is pain and enjoy)는 것을 알면서. 그것을 산악회에서 녹여온 그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산책길 바람 소리가 잎새를 비추고, 내려오는 빛의 소리가 아름답다.
2024년. 5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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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관호 친구의 해박한 지식과 사유가 깃든 여행기를 즐감하였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조 선배님의 박학다식한 글 잘 읽고 감명 받아 갑니다.
만나 뵐 때 마다 항상 좋은 말씀으로 바른 삶을 유지토록 독려해 주시는 우리 조관호 선배님!
이글은 산행기가 아니고 세계적 석학들에게서나 들을 수 있는, 귀중한 동양철학 강의입니다.
인륜을 중시한 공자 사상에서 부터 자애의 부처사상과 인본근원의 중요함을 논한 노자의 빈배(empty ship) 사상까지 쉽고 편히 접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배님 덕분에 우리 청원 까페가 한층 더 지적으로 성숙해져 갑니다.
지금처럼 자주 방문하시어 좋은 글 많이 많이 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조관호 후배님 문장솜씨가
보통이 아니시군요 20회는
훌륭한 분들이 많군요
노년의 삶은 나이로 살지
말고 생각으로 사는 것이라
했습니다
늘 좋은 생각만 하시면서
즐겁게 지내시고 언제나
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