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뜨 20] 영농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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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수는 올해 62세, 재작년 광명시 수도사업소 계장을 끝으로 30년 공무원 생활을 마감하고 퇴임 전 준비해 놓은 복숭아 밭을 가꾸고 있다. 그는 3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18평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부인은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30년 가까이 해 왔었다. 슬하에는 1남1녀가 있는데 모두들 결혼하여 따로 살고 있다. 복숭아밭은 광명시 외곽 야산에 자리잡고 있으며 완만한 서남향판이라 배수도 잘되고 햇볕도 잘들어 복숭아 재배에는 최적지이다. 크기는 약 1,500평 정도로 퇴임 2년 전에 잡목이 있던 야산을 사서 개간한 것이다. 구입 당시 평당 30만원 즉 약 4억 5천만 원을 주고 샀다. 1,500평 밭에는 약 90그루의 복숭아나무가 자라고 있다. 작년 처음으로 복숭아 이백 상자를 수확하여 700만원의 수입을 거두었다. 앞으로 3~4년 후면 나무가 다 자라 년 이 천 만원의 수입을 기대하고 있다.
박민수는 매달 연금 250만 원에 부인의 유족연금 200만원을 합쳐 도합 450만원을 수령 함으로 혼자 사는 처지라 돈이 궁색하지는 않다. 그래도 할 일이 필요하므로 복숭아밭 가꾸기에 시간을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수확이 끝난 후 가지치기까지 하고 나면 특별이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요지음은 농한기인 것이다. 그는 시간이 나면 동네 헬쓰장에 가서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고등학교때는 유도부에 들어 유단자가 되었다. 지금도 웬만한 젊은 녀석 두셋은 거뜬히 상대할 수 있다. 그는 어느 날 과일을 자동으로 수확하는 인공지능 자률 비행 로봇을 소개하는 팜플렛을 받는다, 과일을 수확하는 사진과 함께 제품 설명서가 게재되어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스라엘 회사인 Tevel Aerobotics Technologies에서 인공지능(AI)을 사용하여 과일을 식별, 선택하고 수확까지 하는 자율 비행 로봇 (FAR)을 개발했습니다.
이 로봇은 사람을 대신하여 과수원에서 과일을 따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밥을 줄 필요도 없고 쉬는 시간도 없고 거주지를 마련해 줄 필요도 없으며 쉬는 날도 없는 놀라운 노동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비행 로봇은 AI 알고리즘을 이용해 과일에 접근해 잘 익은 과일만을 선택하여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과일을 수학합니다. 수학한 과일에 대한 데이터들은 모두 수집되어 농장주에게 전달됩니다. 이 드론은 결코 쉬는 법이 없습니다. 농장주는 더 이상 작업자들이 제대로 수확하고 있는지 걱정할 필요도 없고 생산성도 높일 수 있습니다.」
가격은 대당 2,500만원 이란다. 웬만한 중형차 가격이다. 작년 가을에도 복숭아를 따느라 혼자 끙끙매던 일을 생각하면 앞으로 이 로봇을 구입해 쓰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2
박민수는 아침에는 토스트 두 쪽과 커피 한잔으로 때운다. 점심은 보통 나가서 먹든가 집에서는 라면 한 봉지로 족하고 저녁은 집에서 먹던가 밥하기 귀찮은 날은 동네 해장국 집에 가서 막걸리 한 병 시켜놓고 먹는다. 그는 오늘도 늘 가는 해장국집 문을 열고 들어가며 큰 소리로 말한다.
“ 안녕 하시오”
“ 네,어서 오세요”
해장국집 주인 아낙이 반색을 하며 맞이한다.
열 평 남짓 되는 가게에는 주방과 손님 테이블이 다섯 개 놓여 있다. 주인 아낙은 약간 통통한 몸집에 복스런 용모이다. 나이는 한 오십 중반으로 보인다. 그녀는 늘 명랑하다. 사람들은 그녀를 천안댁이라고 부른다. 친정이 천안인 모양이다. 그는 늘 하던대로 해장국 한 그릇과 장수 막걸리 한병을 시킨다. 우선 막걸리를 한잔 쭉 들이킨다. 속이 시원해 온다. 그 때 남자 두 명이 들어 온다. 한 사십대 중반 정도에 인상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둘은 자리에 앉자 콩비지에 소주를 시킨다. 콩비지는 갈은 콩국물에 돼지 등뼈 삶은 것과 우거지를 넣고 끓이는 것이다. 새우젓에 간해 먹으면 술안주로는 안성맞춤이다. 둘은 어느새 비웠는지 소주 한 병을 더 시킨다. 소주를 마시면서 뭐라고 말다툼을 시작한다. 점점 목소리가 커지면서 온 실내가 떠나가란 듯이 소리 지른다. 천안댁이 불안한 듯 다가가
“아니 왜들 이러세요”
하며 싸움을 말린다.
둘은 들은 척도 안하고 계속 말다툼을 한다.
혼자 술잔을 기울이던 박민수가 참다못해 한마디 한다.
“좀 조용히 하시오. 여기가 뭐 당신들 안방이요?”
그중 하나가 박민수를 노려보며 거칠게 한마디 내뱉는다.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참견이요?”
박민수도 지지 않고 한마디 한다.
“당신들이 남의 영업집에서 너무 떠들며 싸우니까 한마디 한 게 뭐 잘못이요?”
“뭣이 어째? 이자가 맛을 좀 봐야 정신 차리겠나?”
놈이 벌떡 일어서면서 두 주먹을 쥐고 박민수 앞으로 다가온다.
박민수는 가만히 앉아 놈의 행동을 지켜본다.
놈이 박민수의 멱살을 잡으며 한마디 한다.
“당신 사과하지 못해?”
적반하장이다.
멱살을 잡힌 박민수가 잠시 뜸을 들인 후
“으라차!”
기합 소리와 함께 놈을 업어치기로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어이구 어이구”
하며 한동안 엎어져 있던 놈이 엉금엉금 기어 밖으로 나간다. 다른 한 놈도 슬금 슬금 눈치를 보면서 밖으로 도망친다. 천안댁은 술값 받을 생각도 안 하고 박민수에게 다가와서 어디 다친 데 없냐며 상냥하게 묻는다. 박민수가 씩 웃으며 괜찮다고 한다. 다만 남방 앞 단추 두 개가 떨어졌을 뿐이다. 천안댁이 핸드백에서 바늘과 실을 꺼내 단추를 달아 준다. 고개를 숙이고 단추를 달고 있는 천안댁의 머리카락 냄새가 상큼하다. 천안댁이 박민수에게 핸드폰 번호를 가르쳐 달란다. 만약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가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며 말이다.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박민수는 얼핏 이 여자와 하룻밤 자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3
어느 날 박민수의 집에 전화가 왔다. 무슨 부동산이라며 과수원을 팔지 않겠냐는 것이다. 시세보다 가격을 잘 쳐줄 터이니 과수원을 팔란 것이다. 얼마를 주겠다는 거냐고 물었다. 평당 40만 원씩 쳐 6억 원을 주겠단다. 알았으니 생각해보고 답을 주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 박민수는 잠시 생각해본다. 4억 5천 만원에 산 땅을 6억 원에 팔면 차익이 1억 5천이니 우선 괜찮은 거래인데 6억을 가지고 무얼 할까에는 마땅한 답이 없다. 퇴직 후 소일거리로 과수원 가꾸기에 시간을 보내왔는데 그까짓 6억원 받아 뭐하겠는가 생각이 여기 미치자 박민수는 땅을 팔지 않기로 작정한다. 그 후 여러 달이 지났다.
어느 날 신문 방송에 5기 신도시 개발계획에 광명.시흥이 들어있는데 정부는 이곳에 서울 도심까지 20분대로 접근이 가능하도록 철도 중심의 대중교통 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란다. 특히 남북 방향으로 신도시를 관통하는 도시철도를 건설해 지하철 1·2·7호선, 신안산선, 광역급행철도(GTX)-B 등과 연계하고 북쪽으로는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남쪽으론 KTX 광명 역 및 신안산선 학온 역으로 연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란다
쾌적한 주거환경을 위해 여의도 면적의 1.3배(380만㎡) 규모 공원·녹지도 꾸미고 지구 내 목감천을 따라 길이 7.1㎞짜리 수변공원과 호수공원도 조성할 계획이며 주변에 사업 추진 중인 광명테크노밸리와 연계해 자족 기능도 강화할 방침이란다.
광명·시흥 일대가 신규 택지지구로 지정될 거란 얘기에 구석진 임야도 매매가격이 보름새 10~15% 오르고 나온 매물도 들여놓는 등 부동산 가격이 급등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광명.시흥 일대 개발소식에 박민수는 땅을 팔지 않기 잘했다고 생각한다. 요지음 신문 방송에는 온통 LH직원들이 개발정보를 입수하고 부동산을 차명으로 사들여 투기를 했다고 떠들썩하다. 이런 일에 아랑곳하지 않고 박민수는 봄철이 되자 복숭아 나무에 비료를 주고 주위를 고르는 등 과수원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부동산 투기 이야기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딸과 처남 이야기도 나오고 문재인 대통령 자신도 퇴임 후 양산 사저 마련을 위해 인근 전답을 매입하면서 영농경력 11년이라고 써냈다고 말들이 많다. 박민수는 나야말로 진짜 영농인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첫댓글 마음이 악하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법!
착하고 성실하게 살면 복이 넝쿨채 굴러 들어온다는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