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 페소에서 5만이 넘었던 돈은 새벽에 1만 두번이 더 죽으면서 반이 잘렸고 2만 남짓까지 곤두박질 쳤는데 최초 3천의 쫄쫄함에 비하면 아직
풍족한 금액 이었음에도 한없이 쪼가리 처럼 여겨졌다. 옛날 같았으면 아마도 다 퍼붓고 병신, 등신, 쪼다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 갔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달라진것이 있다면 나는 거기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더 생각 할것도 없이 쓰러져 잠들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모색 한다 해도 잃은날 그시각 보다는 나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다음날 정신을 다시 챙기고는 또다시 쫀쫀한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1만을 복구했을때 자리를 털고 호텔로 돌아갔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지지않고 이겼다. 전에는 겜블생활 자체가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수도 없었고 그 때문에 시간과 비용은 기준도 끝도 없었다. 실수는 여전히 존재 했지만 달라졌다. 어떻게 하면 살아 나갈수 있는지 터득한것이다.
욕심을 버리면 그나마 유리하다. 로컬 생활에 1천페소가 얼마나 값지게 쓰여 질수 있는지를 실감했고 전에는 5천 페소를 이기면 그저 한번더 싸울
시드머니가 조금 늘어났구나 하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달랐다. 5천 페소는 일주일도 넘게 고민해야 생길수도 그렇치 못할수도 있는 큰돈이었다.
전에는 하루저녁에 5만 이상은 이겨야 포커가 좀되었네 생각했지만 지금은 하루에 오천씩만 이긴다 해도 한달이면 쉬는날 다 쉬고도 20일이면 10만
페소가 가능하니 이것은 황금 캐는 직업이라고 환상 할 수있다. 다만 나와의 약속을 지키며 욕심을 버렸을때 겨우 가능한 수치에 가까울 뿐이었다.
굳이 이길에 다시 들어선다면 모든것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었고 몇일 묵힌 갈아 입을 옷과 태풍 시즌 비에 젖었던 신발도 갈아 신어야 했으므로 3만
조금 넘는 돈을 잘 챙겨서 집으로 돌아갔다. 몇번 보내준 돈으로 집안 가족들 분위기는 화색이 돌아 있었다. 두살배기 아이는 그새 나보다 따갈로그 어를
더 많이 배워서는 나에게 쓰는데 필리핀 말이 꽝인 나는 못알아 들어 리카가 통역했다. 코로나가 어느 정도 떠나고 리카의 막내 동생 라셀
부터 학교에 입학했는데 내가 국민학교때 머리에 키우던 머릿이 벌레를 달고 들어와 리카가 라셀의 머리에 서캐를 뽑느라 애쓰는데 덩달아 온몸이
근질 거리는것 같아 걱정스럽다. 두살 아들의 머리칼에도 서캐가 몇마리 보여 살짝 짜증 나기에 온라인을 검색하니 사과 식초로 맛사지 하거나
마요네즈를 머리에 바르고 일곱시간 이상 봉하면 박멸 된다기에 리카에게 시켰다. 머릿이가 옮길까봐서 라도 다시 짐을 꾸렸다. 리카는 그일에 눈을 둥그레 뜨고
멋적어 웃었다. 세번 갈아입을 속옷과 겉옷을 챙겨 다시 버스를 탔다. 아무리 포커판 물이 좋더라도 삼사일에 한번은 집에 오기로 마음 먹었다. 리카의 병원비로
가진돈을 다쓰고 나니 식품 판매도 어려워졌고 이제 더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핑계지만 그래서 나는 또 간다. 버스 달리는 길에 포커를 배운다고 지난날
헤메던 어리숙한 일들이 드믄히 드믄히 떠올랐다.
4년전
어느날 1일
나는 모든걸 버리고(버리러니 사실 가진것도 없었고) 필리핀에 포커 학교에 유학을 왔지.... 삼박사일 10-20페소 블라인드 포커룸 의자에 졸고 자며
먹고 죽고를 반복했다. 워낙 죽돌이라서 게임중에 한 시간을 테이블에 졸고 아니 잠들어 있어도 깨우지 않았다. 이미 딜러들과 나는 가족 같았고
포커 테이블은 둥그런 침대처럼 여겨졌다. 격식 갖춰진 지구상 최저 코스트의 포커룸이다. 결국은 올인 되었고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집이 없으니
쇼파가 있는 카지노로 가야 했을뿐이다. 올인되면 20페소를 남겨 씨오디 카지노 가는 버스를 탔는데 그날은 완전히 맛이가서 그걸 깜빡했다.
5페소가 꼴랑 있었는데 어떻게 시내로 가야 할까 생각하다가 까치 담배 팔던곳이 생각났다. 한까치에 7페소 팔기에 내담배 세까치를 빼내서
흥정을 했다. 5페소 쳐줘서 15페소 달라고.... 그 아줌마 담배장사 하다가 너같은 거래 그것도 외국인에게 이런 거래는 처음 봤다는 말투와 표정이다.
다행히 20페소가 되어 바클라란 방향의 버스를 탔다. 언제나 그렇 듯 뒷자리에 퍼질러 누웠다.마닐라 버스에는 바퀴벌레도 있다. 상관없다. 그래도간다.
한참을 잠들었다가 깬것 같다. 버스는 아직 달리고 있다. 보통 종점에서 차장이 깨워서 다왔으니 내라라 하는데 이상하다. 느낌이 쐐~에 하다. '헉.!'
어느날 2일
차창을 보니 전혀 알수 없는 곳이었다. 보다 중요한건 아직도 너무 피곤하다. 어차피 목적지는 없고 주머니엔 거스름돈 2페소 뿐이다. 다시 자버렸다.
눈떴을 땐 늦은 오후로 접어든 듯 숲쪽에 그림자가 짙었다. 종점에서 유턴하여 되돌아 가면 될것이지 하며 안일한 마음을 가졌다. 종점인 듯
버스들이 많이 늘어선 어떤곳에 섰을때 사람들은 모두 내렸고 버스는 엔진을 껐다. 차장은 내게 다가와 다왔으니 내리라 했다. 다시 마닐라로 되돌아
갈거라 했더니 오늘 이 버스의 운행은 끝났다고 내리라 했다. 그곳은 볼라칸 이란 곳이었다. 어떻게 되돌아 갈지 막막했다. 어찌 되었든 온김에
거리를 구경했다. 잠을 많이 자서인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철물점에 들러 차고있던 싸구려 시계를 500페소에 사겠냐고 주인에게 물었다.
'노.! 쏘리.!' 했다. '난 땡큐!' 라고 하고 두말 없이 나가는 중에 내 뒤통수에 그가 다시 말했다. "원 헌드레드.!" 나는 "노땡큐.!" 버스를 타고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주면 되겠다. 생각하니 기뻤다.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버스를 타니 불안 하게도 종점인지라 사람이 몇 안되었다. 차장이 운전수와
잡담을 하느라 표끊는 일이 늦었다. 다행이다. 이십여분 달렸을 즈음 급기야 차장이 움직였다. 공포의 매표 타임이다. 맨 뒤쪽의 내게 다가 올때
나는 그를 빤히 쳐다 보았고 그 역시 빤히 날 봤다. 왠일인지 그는 네게 '올레디 보스.?' 하며 엄지척을 들어 올려 보였다. 나 또한 '올레디 보스.!' 로
답했다. 매표는 없었다. 그와 나는 버스안에서 서로 보스가 되었다. 또다시 졸다가 씨오디 카지노를 지나 종점에 가까운곳에 섰을때 차장에게
'기프트 포 유.!' 하고 보잘것 없지만 고마운 마음에 라이터를 건네 주니 고마워했다. 얼른 내렸다. 땀의 꿉꿉함을 달래기 위해 씨오디에 들어선 후
마치 호텔의 귀빈 게스트인 양 당당히 인사를 쳐 받으며 헬스장 샤워실 로 향했다. 비밀리에 그곳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 할때 만큼은 세상의 고됨을 다 잊었다.
어느날 3일
포커를 배우는 중이니 '학비라고 해야할까.!' 또한 살기 위해 돈은 필요했고 빌릴 생각도 없어졌지만 따로 빌릴수 있는 신용과 상환 능력은 이미 없었다.
카지노로 가야만 했다. 열사람과 마주치면 한사람 정도 친근감으로 무료 하다가 이야기를 걸어 왔다. 말벗이 필요한 이와 만났을때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면 되었다. 비록 얻어 먹었지만 요구하지 않았다. 마지막 자존심이었나 보다. 따라서 많은 수입이 생길 수도 없었고 최소한의 필요한 돈
3천페소를 서너 사람에게 나누어 얻면 족했다. 돈이 많아지면 자만하게 되고 포커공부에서 더 멀어지는것 같은 미련한 생각이었다. 탐탁치 않게 생긴
돈은 게임 결과도 나빴던 듯 하다. 어설픈 경험에 내게 여유가 많이 생기면 난 포커를 영원히 깨닫지 못할거라 생각했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미약하게
나마 깨닫기를 포커는 누구나 칠수있고 누구나 알수있는 것이며 나보다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는것이다. 다만 내 자신과의 싸움에 지게되면 상대에게
우스게가 되고 상대가 나를 누르는것이 아니라 그간 내 자신이 자멸했던 것이다. 카드치는 법과 여유로운 뱅크롤 그것은 당연히 있어야 될 최저의
기본 조건이고 실력은 자기 자신의 관리에서 나오는것 그간의 인고의 시간에 그 인내력을 극복하고 또 극복하려 모자란 나 자신과 싸워 나가고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카지노 에서는 돈이 있으면 에이젼시 돈이 없으면 앵벌이 그 또한 인고의 과정이 되었다. 카지노 손님이 필요로 할 때
호텔, 음식, 환전, 유흥 등 그들이 필요한 걸 연결해 주고 약간의 수고비를 받았다. 먼저 말을 걸기보다는 상대가 말을 걸어 올때를 기다리고 필요치
않으면 지나치고 대여섯번 마주칠때 쯤 먼저 말을 걸어 오기도 했다. 그렇게 만났고 그렇게 헤어졌으며 뭔가 차별된 것을 선사하고 싶을땐 돈이 없어
나만의 커피를 만들어 주었다. 편의점의 플라스틱 커피컵에 네스카페 캔커피를 4분의 1쯤 넣고 태양성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칵테일 하면 나름
수준급의 커피맛이 났다. 그것을 손님에게 주었을때 무슨 커피인지 맛있다며 재주문을 하기도 했다. 3천페소가 생기면 다시 포커룸으로 갔다.
버스를 탄 후 그곳에 갈때 항상 건너는 마닐라 중심부의 파씩강이 있는데 오늘을 시작으로 꼭 뱅크롤 3-5-10만을 만들어 다시 버스로 이강을 건너지
말자고 나 자신에게 다짐했지만 다짐 뿐이었다. 미니멈 200페소를 바이인 하여 열두번의 리바이온을 할 수 있었고 배고플때 60페소 정도면
맛나는 필리핀 푸드와 강하게 매운 칠리를 비벼 먹었다. 그렇게 대략 3일 이상을 살아 남으면 올인 되어도 식비와 경비 쓴것을 따지면 본전은
찾은셈이 되었다. 주변에 호텔은 비싼 값이라 절대 갈수 없었고 기절 할 정도로 피곤해지면 근처 미용실에 갔다. 미용사 대부분이 빠끌라(반만남성)
이므로 같은 남자끼리 눈치주고 하는일이 없어 편했다. 다만 지네들이 여자라고 생각하고 날 건드릴때만 조심하면 되었다. 카지노 푸드 바우쳐가
생겼을때 빵이나 고급과자 케익등을 미용실에 가져다 주어서인지 그 미용실의 VIP 대접을 받았다. 머리 샴푸를 하는 금액이 60페소 인데 웃돈
얹어 150페소를 먼저 주면 미용사들이 빨리 누워서 한숨 자라고 발톱 소지하는 접이식 마사지 쇼파에 자리를 치워 주었다. 서너시간 자고 또 포커
플레이를 반복했다. 그 미용실의 목이 안좋았던지 장사가 시원치 않아 한산하던 그곳에 가면 모두 나를 반겼다. 그곳은 나에게 특급호텔 이었지만
왠지 결국은 망했다. 가방을 잃어버린 후 포커 테이블에서 근 6개월 휴대폰도 없었기에 매우 무료했지만 반면 그들의 표정과 칲을 만지는 손짓 묘연의
느낌들을 살피고 살피기 좋았다. 경험이 많이 쌓였을때 컨디션 까지 좋은날은 상대의 배팅과 표정에 그들의 감춰진 카드 두장이 느껴지고 그 카드의
무늬까지도 보이는 듯 했다. 이런 시간을 보낸 후에 느꼈다. 이렇게 치더라도 쉽지 않은 거라는걸....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처절한 살아남기 포커였군요.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