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녕 조씨 시조 조계룡과 선덕여왕은 부부]
다음의 글은 창녕 조 씨 문중에서 전해 내려오는 내용을, 개벽 잡지 2016년 2월호에 '한국의 성씨, 창녕昌寧 조曺 씨'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글입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가져온 글, 부분 발췌)
가. 시조 조계룡(571~651)
창녕 조씨의 시조는 조계룡曺繼龍이다.
계룡은 어릴 때부터 궁에 들어가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여러 관직을 받았고 드디어 부마駙馬가 되어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창성은 창녕의 고호)에
봉해졌다.
당시 신라의 제26대 진평왕은 아들을 못 낳아 딸인 선덕여왕에게 왕위를 계승했는데, 선덕여왕의 남편이 조계룡이라고 한다.
덕만공주(후의 선덕여왕)의 남편을 ‘동경잡기’와 ‘경주김씨선원세보’에서는 김인평金仁平이라고 적고, 「삼국유사」 ‘왕력보’에서는
음갈문왕飮葛文王* 인평仁平으로 적어 김인평이 음갈문왕(갈문왕은 신라때에 왕의 근친에게 주던 봉작封爵)임을 나타내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경주 김씨 김인평과 조계룡이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음飮갈문왕을 이두식으로 읽으면 〈마실〉갈문왕이 되는데 마실은 마을의 사투리나 옛말로 마을 조曺 자와 연결된다. 김인평의 원래 성이 조曺씨이고
나중에 본래 성을 찾았다는 주장이다.
창녕 조씨 족보에 의하면 631년 2월(61세)에 진평왕으로부터 조계룡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벼슬이 ‘보국대장군 상주국 대도독 총지휘제군사 금자광록대부 태자태사輔國大將軍 上柱國 大都督 總指揮諸軍事 金紫光祿大夫 太子太師’에 이르렀다.
그는 왜구가 침입하였을 때 보국대장군으로 이를 물리쳤고 삼국통일의 주인공 김춘추, 김유신 등을 배후에서 지도한 인물이었다고
‘창녕조씨시조기昌寧曺氏始祖記’는 전한다.
그의 묘소는 경북 경주시 안강읍 노당2리에 소재한다.
나. 시조에 얽힌 전설
시조 조계룡의 탄생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창녕현 고암촌鼓巖村에 살던 경주 이씨 한림학사 이광옥李光玉의 집안에 예향禮香이라는 혼기가 찬 딸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복질腹疾병이 있어
고생하고 있었는데 백약이 무효하였다.
창녕 화왕산 용지에 가서 목욕재계하고 기도하면 반드시 효험을 볼 것이라는 어느 신승神僧의 말에 따라 화왕산 용지에 가서 지성으로 기도를
드렸다.
기도 중에 갑자기 운무雲霧가 일어 주위가 캄캄해지면서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몽롱한 지경에 정신을 잃었다가 얼마 후 운무가 걷히면서 못
한가운데서 솟구쳐 나왔다.
그로부터 복질은 씻은 듯이 완쾌되고 태기胎氣가 있었다고 한다.
그 뒤 아들을 낳았는데 겨드랑이 밑에 조曺 자와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하루는 꿈에 장부가 나타나 “그대는 이 아이의 아비를 아는가?
나는 동해신룡東海神龍의 아들 옥결玉抉인데 이 아이의 아비이다.
이 아이를 잘 기르면 후에 공후公候(한 지방을 맡아 다스리는 제후)가 될 것이며, 그렇지 못한다 하여도 경상卿相(조선 시대 판서, 지금의
장관)은 틀림없을 것이다.” 하였다.
이 사실을 이광옥이 진평왕에게 아뢰었는데 왕이 이 아이를 접견하고 보니 풍모가 특이하고 겨드랑이 밑에 조 자의 글무늬가 있음을 보고 조曺라
사성하고 이름을 계룡繼龍이라 지어 주었다 한다.
그로부터 성장하여 진평왕의 사위가 되고 창성부원군에 봉하니 곧 창녕 조씨의 시조이다.
이러한 득성 설화는 조선 영조 때인 1760년대에 제작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창녕조’와 1832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1895년 작성된 〈영남읍지嶺南邑誌〉에 기록되어 있다.
옥결玉抉, 계룡繼龍이라는 용어는 고대로부터 왕과 관련되어 있다.
신라 진흥왕은 창녕가야(빛벌가야=비사벌가야)를 서기 555년에 합병하고 그 왕족에게 김씨를 하사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옥결은 그 왕족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고 본래의 성이 조曺씨라고 한다.
즉 ‘동해신룡東海神龍’의 동東은 조曺를 포함한 글자이다.
그리하여 동해신룡은 ‘조씨 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사받은 성으로 김옥결, 김인평으로 대를 잇고 있었는데 늦게나마 왕이 본래 성을 찾아 주고 이름을 계룡이라고 지어주었다는 주장이다.
설화를 통해 유추해볼 때 조계룡은 창녕 지역의 왕족 출신으로 일찍부터 신라 중앙 정부로 진출한 인물이라 볼 수 있다.
----------------------------------------
2. 창녕 조씨 시조 조계룡과 선덕여왕은 부부
다음의 글은 스토리텔링 작가 임원주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알기쉽게 쓴 글입니다.
블로그에 올려져 있어서 누구나 언제든지 볼 수 있습니다.
blog.naver.com/story4006
《도마복음과 한국 (사진 30장)》
<들어가는말>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사도 도마가 한국에 왔었습니다.
도마행전은 170장까지이며 51~58장까지의 내용이 한국 김해시 봉황동유적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별도 자료)
도마복음에서도 한국과 관련된 내용이 있어서 다음의 자료를 드립니다.
제목: 도마복음 13번째 구절 본문과 해설
(붙임: 창녕 조 씨 시조 조계룡과 선덕여왕은 부부)
글쓴이: 임원주 (스토리텔링 작가, 저서: 허왕후 스토리텔링)
<이 글을 쓰는 목적>
국사교과서에 나오는 삼한시대 천군(天君, 제사장)의 심화학습입니다.
삼한(三韓)은 대한민국(大韓民國) 뿌리이고, 누구나 꼭 알아야 할 내용입니다.
그러나 일본식민사관 때문에 초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는 삼한의 역사가 백지상태입니다.
한국인 중에 상당수가 삼한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습니다.
"삼한시대는 자료가 없고 미신적이고 야만의 시대여서 생각하기도 싫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나온 이후 삼한시대가 알려지고 있습니다.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국립박물관의 삼한시대 유물을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2013년에는 육로, 2015년에는 바다 실크로드 박람회를 열었던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알고보면 한국은 실크로드의 동쪽 땅끝 나라이고, 한국의 고대문화는 그리스나 로마와 같은 수준 이었습니다.
다음의 글에는 삼한에 대하여 새로 밝혀진 고고학과 세계사 자료를 추가하여 글을 썼습니다.
역사적 사실(팩트, facts)을 꼼꼼하게 읽으면 소설보다 재미있습니다.
《도마복음 13구절의 본문과 해설》
도마복음은 총 114구절인데, 오늘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도마복음이라면 벌써 "영지주의 위경이므로 읽지 않아야 한다"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한국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초대 기독교 시기에 정경, 외경, 위경으로 분류 되었습니다.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로 기록된 사본을 심사 하였습니다.
그러나 도마복음은 그 시기에 심사되지 않았습니다.
이집트의 콥틱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외경이나 위경의 분류대상도 아니었습니다.
도마복음을 지금 정경, 외경, 위경의 틀에 넣지 마십시오.
정경과 같이 높이거나 위경으로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도마복음은 도마(Thomas AD 2~72)를 연구하는데 역사자료의 가치가 있습니다.
※ 참고 도서: 스티반 데이비스 (조영길 역), 도마복음, 도서출판 동서남북, 2005, p66-67.
1. 예수님은 누구신가?
본문: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니라. 내가 누구와 같은지 비교하고 내게 말하라.
해설: 중요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일까요?
2. 베드로의 대답
본문: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당신은 정의로운 선지자와 같습니다.
해설: 예수님을 선지자와 비교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 제사장, 왕이시어서 일부는 맞는 대답입니다.
3. 마태의 대답
본문: 마태가 예수께 대답하기를, 당신은 현인과 같습니다.
해설: 예수님을 뛰어난 선생님에 비교 하였습니다.
4. 도마의 대답
본문: 도마가 대답하기를, 선생님, 나는 당신이 누구와 같은지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해설: 도마가 예수님을 하나님과 비교하여 말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과 비교하면 신성 모독으로 돌에 맞을 수 있기 때문 이었습니다.
5. 예수님은 선생님이 아니고 메시아
A. 본문: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라. 나는 너의 선생님이 아니다.
해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전도훈련하면서 이 말씀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선생님이 아니라 메시아로 생각해 달라는 것입니다.
B. 본문: 너희는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설: 예수님의 전세계를 향한 전도의 길이 신구약 중간기에 열렸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70여 개의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그 도시에 유태인 디아스포라가 이주 하였습니다.
로마는 1세기에 전세계 무역로를 만들었습니다.
유태인 디아스포라는 전세계 무역로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전세계에 보내어 전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은 세계 실크로드 무역의 중심부인 갈릴리 호숫가의 가버나움에서 제자들을 전도훈련 하였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전세계의 오아시스 중에 최고의 오아시스입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호수의 물을 마시며 전도훈련을 받았습니다.
도마는 가버나움에서 대상들이 들려주는 땅끝(한국)의 소식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C. 본문: 너희는 내게 속하고 내가 널리 퍼뜨린 넘치는 샘에 도취되어 있다.
해설: 예수님의 12제자와 70인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속한 사람 이었습니다.
70인의 제자들은 오아시스의 물을 마시며 전도훈련 하였습니다.
유태인이 살고 있는 70여 개의 알렉산드리아를 다녔습니다.
전도가 되자 기뻐서 예수님께 전도보고 하였습니다.
이를 듣고 예수님은 기뻐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 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눅 10:21)
6. 예수님의 세마디 말
본문: 그 다음에 그는 도마를 잡아 그 옆에 끌어 당겨 그에게 세마디 말을 하였다.
해설: 예수님이 도마에게 말한 세마디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힌트가 있습니다.
첫째, 신성모독으로 들리는 말입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 복음의 말(눅 4:43)입니다.
셋째, 불과 관련된 말입니다. (요 3:1~21)
추론하면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였습니다.
첫째, 나는 불같은 하나님(출 3:1~5)이다.
둘째, 나는 성령(Spirit)의 불이다.
셋째, 나는 너에게 불(거듭난 영, spirit)을 주겠다.
7. 돌에서 나온 불이 사람을 태울 것
A. 본문: 도마가 그의 동료들에게 돌아왔을 때, 그들이 그에게 묻기를, 예수님이 너에게 무어라고 말했는가?
해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1:1 맞춤 전도훈련을 하였습니다.
도마는 실크로드의 동쪽 땅 끝 나라 한국까지 가서 전도하여야 하므로 개인 교육이 필요 하였습니다.
도마가 예수님의 개인지도를 받고 왔을 때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질문 하였습니다.
도마는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행 1:8)이 될 사람 이었습니다.
땅 끝은 이사야 49장 12절에 나오는 시님(Sinim)입니다.
시님은 중국의 진(秦)나라입니다.
그러나 향신료 길로 보면 한반도 남부의 진(辰)나라입니다.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땅끝나라 한국까지 다녀온 대상(隊商)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BC 400년 경부터 기원전후까지 삼한시대였습니다.
삼한시대와 신구약 중간기는 일치합니다.
이스라엘 레위지파 제사장들이 한국에 왔었습니다.
소도(도피성)를 다스리던 천군(天君,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신구약 중간기에는 인류를 대표해서 한국민족이 하나님께 제사(예배) 드렸습니다.
이 역사적 사실은 신구약 중간기에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와 이집트를 정복한 것만큼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삼한시대 역사는 일본식민사관 때문에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이 서양의 역사는 신화도 사실처럼 받아들이면서, 한국의 고대사는 역사적 사실도 신화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남 창녕군에 천군이 다스리던 빛나라(불사국, 不斯國)가 있었습니다.
천군은 경상도의 금과 철을 무역하였던 재벌 이었습니다.
천군은 왕이었는데, 성은 조씨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전도할 때 유태인 디아스포라를 먼저 만나라고 하였습니다.
도마는 한국의 창녕에서 천군 조씨를 만났습니다.
도마는 천군과 함께 경상도 26개 지역에 강철 기술을 보급하였습니다.
삼국사기 잡지 3에 불 화(火) 지명과 현장에 흔적이 있습니다.
B. 본문: 도마가 대답하기를, 만일 내가 너희에게 그가 내게 한 말들 중 한 마디를 말한다면, 너희는 돌들을 들어서 내게 던질 것이다.
해설: 유태교인은 신성모독죄로 생각되면 돌을 던졌습니다.
이것은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뿐만 아니라,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도마를 택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교육 하였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 후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주"(요 20:28)로 고백 하였습니다.
도마는 인류를 대표해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한 사람입니다.
도마를 알지 못하면 성경의 핵심을 보지 못합니다.
신약성경 27권 중에 유다서는 도마가 쓴 것입니다.
도마는 쌍둥이라는 별명이고 유다는 호적상 이름으로, 도마와 유다는 같은 사람입니다.
C. 본문: 그러면 불이 돌들로부터 나와서 너희를 태워버릴 것이다.
해설: 신성모독을 하였다고 돌던진 사람들 중에 사울(후에 바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불은 사울을 사로잡았고, 전도자 사도 바울이 되게 하였습니다.
"불이 돌들로부터 나와서 너희를 태워버릴 것"이란 말은 난해구절입니다.
그러나 도마의 행적을 알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도마는 한국에서 불로 돌(철광석)을 달구어 제철을 하였습니다.
도마가 근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때 성령의 불이 임하였습니다.
불이 돌들로부터 나와서 너희를 태워버릴 것이란 말은 "너희 제자들을 성령의 불이 임하여 전도자로 만들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도마는 대구광역시 화원에서 돌(철광석)을 불에 녹여 강철을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성령의 불이 나타났습니다. (불의 혀, 행 2:3, 설화 舌火)
대구광역시 도시철도 1호선 종점역의 이름이 설화(명곡)역입니다.
《붙임: 창녕 조씨 시조 조계룡과 선덕여왕은 부부》
<들어가는 말>
위의 글에서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도마가 한국에 왔었고, 천군(天君, 레위지파 제사장)을 만났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다음의 글은 천군의 후손 이야기입니다.
선덕여왕의 남편 조계룡은 천군의 후손이었고, 창녕 조씨의 시조입니다.
이 글은 삼국사기, 족보 등 역사자료를 사용하였지만, 방대한 내용을 단숨에 읽고 알 수 있도록 썼습니다.
1. 경남 창녕에 뿌리를 둔 천군의 후손
삼한시대에 경상도 지역의 철기를 수출하던
천군(레위지파 제사장)이 경남 창녕에 살았습니다.
창녕 화왕산성(火王山城)에 제철소 본부가 있었습니다.
천군은 도마가 가지고 온 강철 기술을 적용 하였습니다.
가야연맹은 철의 왕국이 되었습니다.
2. 한국에 왔었던 예수님의 제자 도마
도마는 인도 공주였던 허왕후를 김수로왕에게 중매 하였습니다.
AD 48.7.27. 경남 김해시 봉황동유적지에서 혼인식을 하였습니다.
※ 참고 blog.naver.com/story4006
3. 신라에 전해진 한국 고대 기독교
김수로왕과 허왕후 사이에 10남2녀가 있었습니다.
딸 한명이 신라 석탈해왕의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마침 김알지가 경주 계림에서 아기로 발견 되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으로 길러서 신라에 고대 기독교가 전파 되었습니다.
4. 창녕에 살았던 왕손 조씨가 김씨로
경남 창녕군에 비사벌 가야는 천군이 다스리던 소국 이었습니다. (小國, 군단위 지방자치단체)
왕은 천군의 후손으로 성은 조씨였습니다.
그러나 신라 진흥왕 때(AD 555년) 합병되었습니다.
창녕에 진흥왕 순수비(창녕비, 북한산비, 황초령비, 마운령비)가 있습니다.
창녕의 왕족은 신라의 진골로 편입되었고, 조씨들은 김씨가 되었습니다.
신라 법흥왕 때(AD 532년) 경남 김해시 금관국이 합병 되었습니다.
마지막 왕인 김구해(金仇亥)는 다스렸던 곳을 계속 다스렸습니다. (금관국을 식읍, 食邑)
5. 조계룡과 선덕여왕의 출생
천군의 후손 김옥결(조옥결)과 어머니 이례향이 혼인 하였습니다.
김인평(金仁平, 조계룡)이 AD 571년 출생 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진평왕의 덕만, 천명, 선화공주가 출생 하였습니다.
김덕만(덕만공주)은 선덕여왕이 되었습니다.
김천명(천명공주)은 김춘추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김선화(선화공주)는 백제 무왕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6. 조계룡과 선덕여왕의 결혼
신라 진평왕이 579년에 즉위 하였습니다.
김인평(조계룡)의 외할아버지는 한림학사 이광옥 이었습니다.
김인평(조계룡)과 덕만공주가 혼인 하였습니다.
김인평(조계룡)은 창녕의 비사벌 가야 왕손이었고, 철기를 무역하던 재벌 이었습니다.
그리고 창녕지방은 신라의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신라(경주)가 낙동강으로 진출하는 관문이었고, 왜구의 침략을 막는 곳이었습니다.
저(임원주)는 허왕후 스토리텔링이라는 책을 쓰기 직전에 경주에서 청도를 지나 창녕까지 답사 하였습니다.
옛길(지형에 따라 난 길)과 고대역사는 동전의 양면과 같았습니다.
7. 출산(5남2녀) 때는 평범한 가정
김인평(조계룡)은 진평왕의 사위(부마, 덕만공주)가 되었습니다.
김인평(조계룡)과 덕만공주는 5남2녀를 낳았습니다.
이 때까지는 덕만공주가 신라의 왕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김인평(조계룡)은 595년에 출생한 김유신과 603년에 출생한 김춘추를 가르쳤습니다.
김인평(조계룡)과 김유신 나이 차는 24세, 김춘추와는 32세였습니다.
8. 왕자가 죽고 선덕여왕 즉위
김인평(조계룡)은 진평왕과 승만부인 손씨에서 태어난 왕자를 가르치는 태사가 되었습니다.
진평왕의 왕자가 죽자, 덕만공주가 성골이어서 신라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진평왕은 왕위에 오른지 52년째 되던 해, 덕만공주를 왕위에 오르도록 하였습니다.
9. 창녕 조(曺)씨 시조가 된 조계룡(曺繼龍)
진평왕은 덕만공주의 남편 김인평(조계룡)에게 조(曺)씨 성을 주었습니다.
성 조(曺)자는 중국 한자인 무리 조(曹)와 비슷한 글자이긴하나 완전히 다른 한자입니다.
성 조(曺)자는 한국의 창녕 조씨만 사용하는 한자이며, 진평왕 때 공식적인 글자가 되었습니다.
성 조(曺) 한자는 창녕(昌寧)의 창(昌)에 십(十)자가를 꼽은 모양입니다.
조(曺)자를 보면 창녕(昌寧)이 생각나고, 십자가가 있는 예배당이 생각나게 됩니다.
창녕박물관에는 불교가 신라에서 공인(527년)되기 전의 유물 중에, 한국 고대 기독교에서 사용했던 성찬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창녕에는 AD 4~6세기 창녕의 기독교인들이 만든 큰 무덤(교동, 송현동)이 있습니다.
진평왕은 계룡(繼龍)이라는 이름도 함께 주었는데, "창녕지역을 다스리는 왕(왕의 상징은 龍)을 계속하라"는 뜻입니다.
김인평은 61세에 조계룡이 되었고, 창녕 조씨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10. 조계룡의 집에서 부르는 이름 조슈아(여호수아)
조계룡(김인평)은 갈문왕(왕 다음 호칭)이 되었습니다.
선덕여왕 남편의 기록으로 음갈문왕(飮葛文王)은, 당시 음(飮)을 조로 발음하여 조갈문왕입니다.
조계룡(김인평)은 천군으로 내려오는 조(曺)씨 성을 78년만에 되찾았습니다.
아내가 신라 왕에 즉위하는 행운으로 천군 가통의 성을 이을 수 있었습니다.
조계룡(김인평)은 천군 후손으로, 집에서 부르는 이름은 조슈아(여호수아)였습니다.
조슈아(여호수아)였다는 것은, 이스라엘 디아스포라 연구 정보입니다.
11. 여자가 왕이 되는 것에 불만 세력
진평왕이 631년 2월 조계룡(김인평)을 갈문왕으로 발표하자, 631년 5월 칠숙과 석품의 반란모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비담의 반란으로 보면, 여자가 왕이 되는데 불만을 가진자들입니다.
또한 진한(경주 중심)계 정치세력과 가야(김해 중심)계 정치세력의 권력다툼입니다.
12. 성골의 대를 잇지 못하는 것에 불만세력
덕만공주가 선덕여왕이 되는데는 반대세력과 불만이 많았습니다.
특히 신라 왕은 성골의 대가 끊어지면 안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진평왕이 632년 돌아가시고, 선덕여왕이 즉위하자 선덕여왕이 성골을 낳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선덕여왕의 진골자식이 5남2녀가 있었지만 성골자식이 없었습니다.
신하들은 선덕여왕에게 삼서지제(三壻之制)를 내세웠습니다.
"선덕여왕이 성골인 김백반, 김용수, 김용춘 등과 사이에서 성골의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백반은 진평왕 원년에 진정 갈문왕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나이 70여세이고 선덕여왕도 50대 중반의 할머니인데 어떻게 아기를 낳습니까?
선덕여왕에게는 함께 사는 남편 조계룡(김인평)이 살아 있어서 삼서지제가 실제로는 불가능 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신라에 성골로 왕의 대를 잇지 못하는 것을, 다른 왕조에서 아들이 없는 것만큼 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여하튼 말하기도 부끄러운 주장과 소문은 고대에도 있었습니다.
13. 선덕여왕의 연호 인평(仁平)은 남편의 이름
선덕여왕은 634년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선포 하였습니다.
조계룡의 이전 이름인 인평(仁平)을 연호로 선포 하였습니다.
조계룡(김인평)이 선덕여왕과 함께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선덕여왕이 왕으로 즉위할 때 김유신은 38세였습니다.
일본이 침략해 오면 조계룡(김인평)이 대장군이 되어 창녕에서 싸웠습니다.
창녕(昌寧)에서 조계룡(김인평)은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 현재 창녕군수) 이었습니다.
신라에서 가야세력은 창녕의 조계룡(김인평)과 김해의 김유신이었고, 김춘추가 합류 하였습니다.
고구려 백제와 전쟁이 심해질수록 가야세력은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전쟁에서 꼭 필요한 것이 군량미였는데, 김해와 창녕의 곡창지대에서 많은 군량미가 나왔습니다.
14. 삼국통일의 숨은 주역 조계룡
조계룡(김인평)과 김유신과 김춘추는 선덕여왕을 주축으로 삼국통일을 꿈꾸었습니다.
조계룡(김인평)은 김유신과 김춘추의 스승이었고, 삼국통일의 숨은 주역 이었습니다.
선덕여왕이 647년 돌아가셨습니다.
성골이어서 진덕여왕이 즉위 하였습니다.
15. 당태종과 김춘추의 만남
김춘추는 648년 중국에 가서 당태종을 만났습니다.
당태종은 기독교(경교, 景敎, 동방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삼국사기 열전 제1에 보면 당태종은 김춘추에게 김유신에 관하여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진실로 군자의 나라다"라고 하며, 소정방 장군과 군사 20만 명을 허락 하였습니다.
"군자(君子)의 나라"라는 의미는 "삼한시대에는 천군(天君, 제사장), 삼국시대에는 기독교의 나라였다"라는 뜻입니다.
당태종과 김유신은 기독교를 공통점으로 통했습니다.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하여 삼국통일을 이루었습니다.
16. 당나라에서 받은 성경
또한 김춘추는 당태종으로부터 성경을 받아 왔었습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덕여왕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제(御製) 온탕비(溫湯碑) 및 진사비(晋祠碑)와 아울러 새로 편찬한 진서(晋書)를 하사하였다."
새로 편찬한 진서는 638년 번역을 끝내고, 왕희지 필체로 쓴 한자 성경입니다.
온탕비는 세례(침례)소를 표시한 팻말, 진사비는 성경을 보관하는 신사(神祠)의 팻말로 당태종이 직접 쓴 것입니다.
진사비의 사(祠 사당사)자는 일반 역사서적을 보관할 때는 사용하지 않는 한자입니다.
17. 조계룡 81세로 소천
조계룡(김인평)은 김춘추가 한국으로 가지고 온 성경을 읽었습니다.
선덕여왕의 남편 조계룡(김인평)은 651년 81세로 소천 하였습니다.
<맺는 말>
이 글에서는 조계룡(김인평)의 신화를 생략 하였습니다.
조계룡(김인평)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족보 등에 기록되어 있고, 실존했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조계룡(김인평)의 뿌리를 찾는 것처럼, 다른 성씨들도 뿌리를 찾아서 자긍심을 되찾아야 합니다.
한국인의 뿌리를 찾아서 초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반영하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은 종교인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이어서 한국사 교과서의 역사부도에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 도마도 종교인이지만, 사도 바울 못지 않은 역사적 인물입니다.
한국에 왔었던 도마를 한국사 교과서의 역사부도에 넣어서 가르쳐야 합니다. (2021. 4. 25.)
《추가 기록》
천군의 후손, 왕손의 피를 물려받은 조국현 이사장님 존경합니다.
뿌리를 찾아 진리를 증거하는 이사장님의 행보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으실 것을 확신합니다.
(이승렬: 시조시인, 고등학교 영어교사, 2021.5.6.)
당태종이 김춘추에게 동진과 서진의 역사서 등 많은 책을 주면서, 특별히 성경을 직접 전해주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성경을 신사(神祠)에 따로 보관하도록 당태종이 직접 신사의 팻말을 준 것은, 당태종이 성경의 복음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세계문화사의 퍼즐을 맞추는 핵심이고, 한국의 고대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조은빛, 대구세계문화엑스포 이사, 직장인, 2021. 5. 9.)
위 글을 전달하는 사람: 대구세계문화엑스포 이사장 조국현 010 4391 4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