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돌아오다
변 대 원
저녁 9시 아내와 승용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얼굴에 열기가 치받더니 사타구니가 따끔거리는 것이다. 전해 없던 증상이라 이상하다 싶어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나 왜 이러지 눈앞이 가물거리고,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것 같아......”
“그럼 차를 잠간 세웠다가 진정되면 가자고…….”
“알았어. 그렇게 하지…….”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를 길가로 붙여 정차하려고 했다. 가슴이 뻐근하며 답답하다.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정신이 가물거린다. 가까스로 차를 세우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잡아당기고 나도 모르게 운전석 왼쪽으로 고꾸라졌다. 오른쪽에 있는 가속장치를 밟아 엔진이 터지라고 웨-에 웽 소리를 낸다. 심장이 멎은 것이다. 깜작 놀란 아내가 흔들어대며 부른다.
“여보, 여보…….왜 그래 왜.....!”
정신을 잃었는데 아내의 부르짖는 외침이 모기 소리만 하게 들린다. 대답하려고 있는 힘을 다했는데 입이 열리지 않는다. 얼마나 용을 썼는지 온몸이 땀에 젖어있다. 편도 2차선이라 정차한 차들이 경적을 울려댄다. 아내는 밖으로 나아가서 길 지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운전석에 나뒹굴어진 나를 사람들이 끌어내어 뒷좌석으로 옮겨 싫었다. 안면 있는 젊은이가 잽싸게 차에 올라 비상등을 켜고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렸다. 5분 만에 응급실에 도착했다. 간호사와 의사들이 재빨리 들것으로 옮겨 응급처치를 마치고 의사가 손전등으로 동공을 비추며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천정이 노랗고 눈앞에 숱한 별들이 뱅뱅 도는 느낌이다. 아내가 사혈 침을 꺼내니 간호사가 위험하다고 저지한다. 막무가내로 내 신랑 내가 알아서 한다며 사정없이 찔러대니 병상의 시트가 붉게 물들었다. 저체온 증에 사지를 웅크리고 아랫니와 윗니가 딱딱 소리를 내며 떨었다. 재빨리 구해온 전기담요로 덮고 수족을 마사지했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입은 의복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눈을 떠보니 여러 개의 링거 줄이 연결된 응급실 병상 곁으로 가족들과 친지들이 둘러서있다. 무슨 말인가 하려는데 목이 메어 눈물만 흘렸다.
정신이 돌아 온 것을 확인한 후에 위문 객들은 다행이라고 말하면서 자리를 떴다. 벽에 붙어 있는 시계를 보니 자정이 훨씬 지났다. 세 시간 반이 지났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난 기분이다. 연이어 경광등을 번쩍이며 사이렌을 울리며 구급차가 들어오고 환자들이 응급실로 실려 온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수고에도 유명을 달리한 가족들의 울부짖음이 애처롭다. 번개가 번쩍거리더니 우르릉 쾅쾅하는 천둥소리가 지축을 흔든다. 창문에 내리치는 비 바람소리에 신경이 간다. 사람들의 왁자지껄했던 소리가 잦아졌다.
시간이 어둠에 잠진 응급실이 어둠침침하고 스산했다. 심박동이 안정을 되찾았다. 정신이 돌아왔다. 병원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은 참기 어렵게 지루했다. 땀으로 젖은 의복을 벗고 가져온 새 옷으로 갈아입으니 개운하다. 링거 줄을 타고 방울방울 떨어지던 주사액이 거의 들어간다. 종종걸음으로 다가온 간호사가 주사바늘을 빼면서 어르신 이제 다 맞았다고 말한다. 언제 쓰러졌냐는 듯 멀쩡한 것 같았다.
“선생님 수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멀쩡한데 지금 퇴원해도 되죠.”
“안될 거요, 아침에 선생님출근하면 병실로 옮길 건데요”
간호사가 뒤돌아 간 뒤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휴 지루해…….아무런 이상도 없는데 지금 퇴원하자......”
“여보 무슨 말씀을……. 괜한 생각하지 마…….”
“아냐 괜찮다고…….이봐, 아무렇지 않은데…….”
주먹을 쥐었다 펴보고, 손발을 움직여보이고는 병상에서 잃어나 앉았다. 여기 있는 것이 좀 그러니 사람들 눈에 띠지 않게 가자고 말했다. 원무과를 찾아 막무가내로 퇴원을 요구했다. 당직실 의사가 어르신 사후관찰이 필요하니 며칠 더 입원할 것을 권했다. 아니 이렇게 멀쩡한데 퇴원하겠다는 강경한 주장에 하는 수 없이 허락해주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어둠이 걷히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탈 없이 며칠을 지냈다. 간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해 잔 것 같지 않았다. 목이 갈해 눈을 떠보니 새벽 4시를 가리킨다.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머리가 띵하더니 현기증으로 휘청했다. 나무가 쓰러지듯 선채로 뒤로 벌렁 넘어졌다. 머리가 방바닥에 부딪치는 쿵쾅하는 두 번의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져 갔다. 아내가 흔들며 여보, 여보라는 소리가 모기소리같이 아주 작게 들렸다.
은하수 별빛들이 굵은 소금처럼 희뿌연 해지더니 소용돌이치는 심연으로 빨려 들어간다. 수천 길이나 되는 낭떠러지아래엔 활화산에서 쏟아져 나오는 용암이 이글거린다. 바로 앞에 떡 뻗히고 서있는 소나무 한그루가 있다. 안간 힘을 다해 붙잡고 서있는데, 계곡 건너편에 건장한 젊은이가 떡 버티고 서있는 모습을 보였다. 물보라가 일어 잘은 보이지 않지만, 안개구름사이로 잠간씩 보이는 그 젊은이의 모습이 어데서 많이 본 얼굴이다. 물보라가 걷히고 밝은 햇살이 비칠 때마다. 얼굴이 선명하게 보인다.
형님과 꼭 닮았다. 내가 60인데 40대중반의 젊은이가 형일 수는 없고…….20년 전 4월에 심장마비로 타계했는데…….계곡 건너편 수천 길 절벽에서 꿜꿜대며 떨어지는 폭포수 소리가 요란했다. 큰 소리로 외쳤다.
“여보세요? 내 소리 들여요? 우리형님은 월남 참전용사요…….청룡부대 해군하사로 전역했소…….사남매를 두고…….젖소목장을 경영했어요......”
폭포수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는지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너무나 답답했다. 다시 큰소리로 외칠 때 높새바람이 휘몰아치더니 우렛소리처럼 증폭되어 천지가 진동한다. 40대중반의 젊은이가 손사래 치며 뒷걸음질로 안개 속으로 사라져간다.
방바닥에 쓰러진 것을 보고 당황한 아내가 급하게 전화를 들고 말한다.
“작은삼촌, 형님이 쓰러졌는데 119가 어디지……. 119어떻게 부르지…….”
“형수님 알았어요, 알았어…….”
당황하니까 119로 전화 거는 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곧바로 사이 랜을 울리며 경광등을 밝힌 구급차와 동시에 작은삼촌이 들어왔다.
“환자가 어떻게 됐습니까?”
“형님 어떻게 됐어요.....?”
“예, 감작이 뒤로 뻥 떨어졌어요…….머리 부딪히는 소리가 두 번이나 났었어요.......여기 안방에 있습니다.”
환자를 들것으로 구급차에 싫고 K대학병원으로 경광등을 켜고 사이렌을 울리며 달렸다. 다행히 10분 안에 도착해 응급실에서 처치를 하고 난후에 정신이 돌아 왔다. 정신이 없어 구급대원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도 못 드렸다. 국가의 서비스체계가 고맙다. 멀리 있는 자식들 있으나 마나다. 부모형제들 보다도 가까이 있는 이들이 하나님이 섬기라고 보낸 천사 같은 존재들이 아닌가! 링거를 꽂고, 피를 빼고, 여러 가지 촬영을 마쳤다. 그런데 사지의 움직임이 우둔해지기 시작한다. 의사의 진단으로는 충격으로 추간 판이 탈출했다는 것이다. 제3-4경추 간에 전방접근법으로 디스크를 제거하고 케이지를 이용한 융합 술을 받아야한다는 것이다. 급히 수술하지 않으면 전신마비가 온다는 것이다.
안정을 되찾았다. 의사의 진단을 자세히 듣고는 은근히 걱정이 된다. 수술 후에 후유증이 없으리란 명쾌한 해답은 없다. 의사들도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위대한 힘의 작용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을 기적이라고 하던가……. 기적이란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아주 기이한 일로 신의 힘으로 행해졌다고 믿는 일이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수술후유증이 있게 된다면 끔직한 일이다. 물에 빠진 자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다. 수술하기 전에 하나님을 만나야하겠다고 결심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부모가 자식을 돕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기적이 나에게 머물려면 내가 신의 아들이 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성구가 생각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했다. 그러면 지금 내가 자녀의 권세를 받아야지........아내를 불렀다.
“여보 수술해도 100%보장이 없다. 기적만이 필요하잖아…….그러니 지금 나 좀 도와줘 하나님 자녀 되는 권세를 얻도록…….기도해줘…….”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 좋아서 병상위로 올라와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함께 기도했다. 나도 무릎을 꿇으니 두 아들도 따라서 영접기도를 드렸다.
“예수님, 내 마음에 들어와 주세요,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의 주인이 되어주세요, 나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해주시고, 아버지 자녀의 권세로 삶의 현장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눈물이 앞을 가리고, 가슴 깊은 곳에서 뭉클한 뜨거움이 치밀고, 세상의 쾌락인 성, 마약, 부와 명예가 주지 못한 기쁨이 샘솟듯 넘쳐난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린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생명되시니…….한없는 복을 주시고 영원한 기쁨주시니 나의생명 나의 기쁨 주 예수”
아하,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권세요, 영생이구나, 염려근심이 사라지고 위로가 넘친다. 아들이 엄마에게 말했다.
“아빠는 국가유공자니까 서울 보훈병원으로 가자…….”
아들이 그 자리에서 전화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미루지 말고 서울로 가자고 했다.
오후 2시 병원에 도착해 입원실을 배정 받았는데 7층 2인실이다. 입원비 문제로 5인실로 옮겨 달라 했다. 규정상 다음날 오후에 바꿔주겠단다. 병상일지를 작성한 후에 입원실로 돌아와 자리에 누었다. 간호사가 오른쪽 팔에 주사바늘을 찔렀다. 좀 따 금했고 바늘구멍을 통해 붉은 피가 연결된 튜브 안으로 밀려나온다. 수액의 흐름의 양을 조절하니 붉은 피가 다시 밀려들어간다. 여러 개의 수액 팩들이 길게 늘어진 링거 줄을 통해 한 방울씩 떨어져 정맥 속으로 들어간다. 심장마비가 온 것이 군대 가서 얻은 고엽제 후유증인 협심증 때문이다. 당대를 살아온 동년배들이 다 겪는 고통이다. 고진감래라고 누가 인정하든지 말든 우리가 국가부흥의 밑거름이 됐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윤제균 감독의 가족사를 통해 근대사를 조명한 국제시장을 아내와 함께 관람했다. 이 영화는 1950년 겨울 흥남부두를 떠나 부산에 정착하여 가족을 위해 독일 광부와 간호사로, 베트남참전 노무자로, 조국근대화에 공헌한 과거세대의 힘들었던 시대적 배경을 보여준다. 장남으로서의 가장이 가족들을 위해 어떻게 살았음을 보여주고 오늘을 사는 이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이야기로서 감동적이었다. 한편의 영화로 가족들과 보고 느끼면 되는 것을 이를 두고 정치적 편향이라고 비판 선동하는 부류들도 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최빈국에서 세계10대 경제대국이 된 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살아간다. 병상에 걸쳐 앉았다. 수술 마치고 정상으로 회복될 수 있을 거라고 다짐해보지만 마음이 심란했다. 눈을 지그시 감고 내안에 계신다는 주님께 기도했다.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 손등으로 훔치는데 아내도 소리 없이 눈물을 닦고 있다.
“여보 울지 마…….기적이 있을 거야”
우리는 두 손을 꼭 잡고 여보 염려 없을 거야. 병실을 돌아보고 있는데 응급상황발생이란 방송소리가 들린다. 복도에서 웅성거리며 달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의사가 병실로 찾아와 수술 전에 숙지할 내용들을 설명하고 서명하란다. 수술하다가 천 명 중 한명은 사망할 수 도 있고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에 이의 달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동의서가 있어야 수술할 수 있다기에 서명해주었다. 의사가 수술은 내일 아침 8시라고 알려주고 나갔다.
수술시간이 막상 잡혀지니 묘한 기분이다. 저녁식사가 배달되었다. 어설픈 식단을 보고는 한술도 뜰 수가 없다. 늦은 시간인데도 잠이 안 온다. 긴장한 나머지 피곤하다는 아내는 보조침상에 나뒹굴어 깊은 잠에 빠져있다. 응급상황이 발생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코드 블루, 코드 블루 404호실 ”
수술하다 잘못됐나!…….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 한잠을 자는데 간호사가 깨운다.
“아버님 수술실로 가겠습니다. 이침대로 옮겨 누우세요.”
천 명 중 한명은 사망할 수 도 있다는 의사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묘한 기분이다. 간호사가 밀고 아내가 긴장된 모습으로 그 뒤를 따랐다. 이동식침대에 누어 한동안 복도를 지나 승강기를 타고 내려와 3층수술실 앞에 대기 중이다. 수술한 환자가 나오고 들어간다. 이름이 불리는 순번대로 수술할 환자들이 들어가 대기실에서 기다린다. 수술실은 왠지 우중충하고 냉기가 돈다. 수술을 마치고 나온 환자들이 정신이 들 때가지 대기했다가 나오고 들어가는 장소였다. 한참시간이 지났을 때 가족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수술 중 사망자가 발생했나보다.
나의 이름을 부르더니 의사가 다가와 손목에 채워진 이름표를 확인한다. 환자분 본인이냐고 묻더니 이동식 침대를 밀고 가니 수술실 문이 드르륵하고 열린다. 소독약품들의 냄새가 물신 풍긴다. 가운을 입은 협진의사들과 간호사들이 긴장한 모습으로 수술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수술대위로 수십 개의 전등이 달린 둥그런 스탠드와 대형모니터, 산소호흡기, 현미경.......깔끔하게 정리된 숱한 수술기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인턴들이 다가오더니 시트와 함께 들어 수술대위로 옮겼다. 온몸을 시트로 덮고 환부에 소독약을 바른다. 수술을 집도할 과장이 들어와 소독약으로 손을 씻고 장갑을 끼고 다가온다.
마취과의사가 다가와 산소와 마취가스를 혼합한 마스크를 입에 대고 천천히 숨을 깊이 들이마시라고 한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자 뇌와 척수부에 마취효과로 정신이 몽롱해지고 사지가 풀어진다. 한참 후에 의사가 성함이 어떻게 되느냐고, 나이가 몇 세냐고 묻는데 혀가 뻣뻣해지며 말이 안 나온다. 의식이 몽롱해진다. 의사가 다됐다고 말하는 소리가 저 멀리서 모기소리 만하게 들리더니 정신 줄을 놔 버렸다.
“이환자는 마취유도가 상당히 빠르네…….이제 수술하겠습니다.”
수술도구를 손에 들고 대기하고 레지던트들은 과장의 수술을 보조한다.
“이봐 수술부위를 다시 한 번 소독하라고 메스를 이리 줘…….피가 많이 흐르지 않도록 빨리빨리 집게로 집도록 해요…….”
칼로 턱밑부위에 주름진 피부를 조심스럽게 손목에 힘을 주어 세로로 자르기 시작한다.
“야 피가 많이 흐른다. 여기…….아 여기도 …….”
정신이 몽롱하지만 청각은 아직 마취가 안 되었다. 피부 자르는 소리가 쓱쓱 들리고 뼈를 깨뜨리는 둔탁한 망치소리도 들린다.
수술 시작한지 벌써 7시간이 지났다. ‘코드블루’ ‘코드블루’란 방송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호롱불 꺼지듯 정신이 가물거리드니 혼이 육체를 빠져나왔다. 인간의 지적수준과 경이로운 신의 차원 간에는 어마어마한 간격이 있다. 내 혼이 수술대위에 누어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왜 가만히 있지…….저 사람들 이 내 목을 자르네…….어, 목뼈를 망치와 정으로 쪼아내고……. 답답해서 소리를 질렀다.
“저 피 좀 봐 야 이 사람들아 심장 바로 위에 있는 대동맥 궁에서 시작하는 왼총목동맥이 새고 있잖아…….위험하다니까, 위험해........”
바보 같은 놈들.......알아듣지 못하는 게 답답하고 속상해 자리를 떠났다. 내 몸이 공중으로 두둥실 떠오른다. 광활한 우주공간에 나 홀로다. 희뿌연 한 구름이 엄청난 터널같이 뚫려있다. 성층권에 회오리바람이 휩쓸고 지나간다.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군상들이 회색 망토를 걸쳐 입었다. 체념한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블랙홀 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그 안쪽에는 활화산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그마처럼, 용광로의 이글거리는 쇳물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불구덩이 속에는 구더기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쉬파리는 수키로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시취를 맡고 날아온다. 알을 낳고 그 알은 1일 만에 부화하고 1일 만에 교미하고 3일 만에 산란한단다. 보잘것없이 보이는 구더기는 소화액을 분비하여 시체를 분해해 자연으로 돌리는 역할을 담당하는 사명자이다. 지옥에 있는 자들은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구더기로 이불 덮는다. 유황불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물 한모금만 주세요…….내가 이 불 못에서 미칠 것 같아요…….미치겠다니까…….”
눈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데, 큰 구렁이 있어 올수도 갈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회오리바람 속에서 세미한 음성이 들려온다. 두려워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인간에겐 이승의 삶속에서만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한평생동안 참아주었다. 이승에서 심은 열매를 저승에서 거두는 것이 마땅한 것이니라.”
더 이상 자비와 긍휼이란 끈이 한 올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섬뜩했다. 사방을 돌아보았다. 인근에 누가 있을까.....불러보았다. 회오리바람이 일더니 희뿌연 안개 속 저 멀리 낯익은 얼굴이 아른 거린다. 미소 진 얼굴에 후광이 아버지의 젊은 때 모습이다. 11전에 타계하신 아버지가…….생각만 했는데 깃털같이 두둥실 떠 아버지 앞으로 가까이 나아갔다.
“아버지, 아버지......여긴 어떻게.....”
“급해서 왔지......벌써 오면 어떻게 해 할일과 돌봐야할 가족들이 있잖아…….”
“......있지요, 그런데 심장마비로 떨어져 목뼈가 부러졌어요…….”
“그거 나도 알고 있어…….고엽제후유증으로 몸이 망가졌어도 아픈 체도 못했지.....! 네 얼굴 볼 때마다 가슴 아팠다. 부모 모시느라고……. 고생 너무 많았다…….네가 우리 집 대들보니…….홀로된 네 형수도 조카들 부탁한다.”
“아니요, 아버지 저도 죽겠는데 형수와 조카들까지요?......생각해 볼게요.”
“생각은 무슨 생각이냐.......어미 때문이냐......!”
서운한지 말없이 날 바라보며 서있는 모습을 보니 죄송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회오리바람 속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먼지가 날려 눈을 지그시 뜨고 바라보니 해군복을 입은 군인이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이다. 가까이 가려했는데 도무지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내가 앞으로 걸어가는 만큼 뒤로 물러선다. 도무지 가까이 갈 수 없는 거리지만 말소리는 또렷하게 들린다.
“동생…….그러는 것 아냐…….”
형의 소리가 텅 빈 공간에 메아리쳐 들려온다. 심장마비로 타계했는데......! 베트남에서 귀국한 후 들려주었던 무용담이 생각난다. 1967년 1월10일 추라이 짜빈박 전투이야기다. 기상 악화로 헬기지원이 안되자 짜빈박 마을을 도보로 통과하기로 했다. 오전부터 비가 오는 데도 안개가 짙어 시계가 10미터정도도 안 된다.
오후2시 장비를 개인 휴대하고 비 맞으며 대대전술지휘소를 떠났다. 2개 분대가 정찰도로 맨 앞서 출발했고 그 뒤를 대대전술지휘부 병사들이 후미는 3분대가 엄호하며 계곡에 위치한 짜빈박 마을 개활지를 20분쯤 지났을 때다. 밀림 속 전방과 좌측고지에서 베트콩의 AK자동소총이 콩 볶듯 했다.
기습당한 정찰대원이 2개분대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뒤이어 대대전술지휘부 병사들이 이리저리 몸을 피해 엎드려 M1소총으로 응사한다. 그날의 전투는 삼면이 포위된 채 밤을 지새웠다. 여명이 떠오른다. 전투상황이 종료되고 현장을 수색하며 생존자를 찾는 소리에 눈을 떴다. 가슴팍이 무지근하다. 하다. 손으로 앞가슴을 더듬다가 포켓성경이 만져졌다. 지휘본부를 떠날 때 안주머니에 넣은 것이다. 성경을 펼쳐보니 ‘...내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는 말씀이다. 이 성경이 나를 살려주었구나!……. 숲의 나무를 작벌해도 그루터기가 남듯이, 살아남은 몇 사람이 걸어 나오는 것이 보인다.
그날 아군의 피해는 전사가 31명 부상이 32명으로 치욕의 패배이다. 독사의 독이 오르듯 이를 갈며 전의를 불태웠다. 무엇 때문에…….타국에 와서 죽이고, 죽고 부상당해야하는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세계평화를 위한다고…….저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남북으로 갈라놓고, 누구의 허락을 밭고서 존엄한 인간의 생명을 숱한 사람들을 죽이고 죽고 하는 거야........인간들은 참 이상한 존재들이다.
나라를 만들고 정권을 잡으면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합법을 가장해 백성들을 억압한다. 이런 개 같은 세상이 어데 있어…….이 참혹한 전쟁터에 끌려온 자도 있다. 그러나 나는 돈 때문에 지원했다. 가난한 부모님에게 힘을 보태기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형제가 7남매나 되니까 나없어도 똑똑한 둘째가 있잖아…….
전쟁터에 받은 생명수당을 모아 텃밭 일곱 마지기를 샀다. 소작농에서 자작농으로 신분을 바꾼 것이다. 그 안에 우리가족이…….이만하면 사지에서 최선을 다해 산 것이다. 생각해보니 아버지 말씀이 백번 옳았다. 형이 사라지자 아버지가 말한다.
“아들아 천국은 내 공로로 가는 곳이 아니고 양자로 입양된 이들이 가는 곳이더라. 황금보석으로 지은 어미집 앞마당에 마른고추 대 몇 그루가 있는데 다 뽑았다고 알려 주거라. 시간이 없어 어서 어서 돌아가라.”
말씀을 마치자 오른손을 광명의 빛을 향해 걸어가셨다. 갑작스런 회오리바람가운데서 세미한 음성이 들렸다.
“들어라, 살았을 때는 제멋대로 했는데, 죽은 후에는 생전에 형성되어진 에너지의 주파수를 따라 저승의 삶이 결정된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처럼, 이승의 열매를 저승에서 거두는 것이다. 현생의 삶속에는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있었다. 이 길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이다.
좁은 길은 십자가의 길로 자기희생의 길로 언제나 자기를 쳐 복종시키고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서, 예수의 이름으로 죄용서 받고, 하나님자녀의 권세로 승리의 삶을 사는 자들이 살다가 가는 곳으로 하나님이 존재하는 영원한 안식이 있는 집을 천국이라 한다.
넓은 길이란 자기중심의 길로, 자기영광을 위해, 물질과 명예, 권력, 섹스 ,마약, 도적질, 시기, 미움, 분쟁, 원망, 살인으로 점철된 삶을 살고, 용서받지 못한 삶을 사는 것으로 영원한 벌을 받는 귀신이 존재하는 집이 지옥이라는 것이다.”
회오리바람 속에서 다시 들려오는 소리다.
“들어라.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것은 내가 심판하는 것이 아니다. 이생에서 선택할 권리를 모두에게 주었노라. 죽고 나면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행한 대로 대가를 받는 것이다. 영생이든지 영벌이든지 자의적으로 택한 길의 종착역이니 원망 하지 말거라. 삶과 죽음은 하나이며 이승과 저승 또한 우주라는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 자신의 의식구조와 가장 유사한 영계로 빨려가 영생과 영벌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내가 안에 있었는지 밖에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하나 분명한 것은 내가 지금 수술대에 누어있는 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영계의 경험은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는 양자 물질이 신경시스템을 이용해 우주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영혼은 세포내 마이크로관이라는 구조 내에 존재하는데 의식 활동은 양자인력으로 인해 나타나는 조화객관 환원이라 한다. 수술실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어, 이것 봐라 동맥을 건드렸나 출혈이 안 멎잖아.......”
“선생님 혈압이 급속히 떨어져 위험해요, 간호사 빨리 빨리 혈액 공급해요…….”
수술실 팀원들이 과장의 지시대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야 인마, 대동맥 궁에서 시작하는 왼총목동맥이 새고 있잖아 빨리 집게로 잡아…….”
“잡았는데도 심장 박동이 안 올라요 어떡하죠......”
“제세동기……. 제세동기 사용하라고......”
“심장이 되돌아왔어요!…….되돌아와.......정상으로 회복되었어요!”
“긴밀하게 움직이라고 시간이 지연됐잖아…….”
“환자, 회복실로 옮기고 출혈이나 혈압관리 잘하도록…….”수술을 집도한 P과장이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며 말한다.
“8시간이 넘었네!…….선생님들 수고했어요.…….정리하고 휴식하라고”
수술실 문이 열린다. 신경외과선생이 피곤해 지친 모습으로 나온다. 대기실에 앉았던 아내가 일어나 물었다.
“수고 하셨습니다. 수술 잘됐어요......”
의사가 우물쭈물 하면서 그런대로 잘 되었다고 말하며 자리를 성급하게 피한다. 왠지 궁금하고 불안하다. 먼저 들어간 환자들도 벌써 나왔는데.......안절부절 별별 생각이 다 난다. 옆에 앉아 자리를 지키던 막내아들이 말한다.
“엄마, 아빠가 누군데 걱정하세요! 아빠 괜찮아요. 괜찮아…….”
“응 그렇지 그래 괜찮을 거야......!”
여러 차례 재채기를 하면서 깨어났다. 형언하기 힘든 한기가 몸을 움츠리게 한다. 내가 지금 어데 있지……! 건너편 병상에서 늙은이가 아파 죽겠다고 소리 지른다. 파도 한가운데 선 듯 현기증에 주위는 노랗고 위아래로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다. 여러 겹의 모포를 덮었는데도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떨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불안하다. 아내는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오후 5시 네……! 아홉 시간이나.......수술실 문이 열리며 간호사가 부른다.
“B씨 보호자계세요.”
“예, 여기 있어요.”
“환자가 깨어났어요.……. 모시고 나오겠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가갔다. 간호사들이 이동식침대를 밀고 회복실을 나온다. 잔뜩 웅크리고 바람에 사시나무 떨 듯 한다. 걱정스러워 웬일이냐고 묻는 말에 간호사가 대답한다.
“수술환자가 깨어나면 다들 그래요, 병동에 가서 이불 덮고 온몸을 조심스럽게 마사지 해주세요.”
간호사가 잰걸음으로 침대를 민다. 복도를 지나 환자용승강기를 타고 병실로 옮겼다. 좁은 공간이지만 비워둔 병상 옆으로 침대를 가지런히 세웠다. 간호사들이 침대시트의 양쪽 끝을 당기어 누운 채로 들어 병상으로 옮겼다. 수술환부가 뜨끔 하는 통증에 반사적으로 아아 악하며 비명을 질렀다. 간호사들이 놀라서 수술부위를 살핀다.
“아버님 어디가 아프세요…….”
몸을 웅크리고 덜덜 떨며 힘들여 갈한 소리로 말했다.
“목 오옥 뒤 부분으로 피가 흐르는 것 같은데요.”
“예, 뭐라고요…….”
말하기가 힘들어 손으로 목 부분을 가리켰다. 간호사가 탈착기브스를 조심스럽게 푸른 후 살펴보더니 놀라며 말한다.
“어마나! 봉합사가 터졌네…….”
병상위에 있는 비상벨을 눌렀다. 인턴과 간호사가 처치기구를 들고 황급히 달려왔다. 응급처치를 마치고 걱정하지 말라며 나갔다. 새우등처럼 웅크리고 턱을 딱딱 떨고 있는 나에게 모포를 가져다 덮어준다. 상면부지의 얼굴들 이라 서먹했지만 모두들 가족같이 우호적으로 대해주니 너무 감사했다. 세상은 살벌한데도 이곳만은 살만한 다른 세상 같다. 저체온 증에서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흉추디스크를 제거하고 케이지를 박았다. 목에다 보조 깁스를 한 모습이 외계인 같아 보인다. 여보, 사실은 수술할 때 내 영혼이 빠져나갔었다고 말하니 깜작 놀라 묻는다. 병실의 사람들이 귀를 쫑긋하며 궁금해 한다.
“정신 몽롱해지더니 영혼이 몸속에서 빠져나가 수술대위에 누어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거야, 너무 신기한 거야”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목을 칼로 자르고 목뼈를 망치와 정으로 쪼아내고…….케이지를 넣고 봉합하다 놀라 소리 질렀어...”
“무슨 소리를 질러요”
“당황해하면서 지혈이 안 된다고 큰일 났다고, 야단 법성이잖아…….”
“그래서 내가 가르쳐줬지 저 피 좀 봐 야 이 사람들아 심장 바로 위에 있는 대동맥 궁에서 시작하는 왼총목동맥이 새고 있잖아…….위험하다니까, 위험해........빨리 그 동맥을 집게로 집으라고…….소리 질러도 알아듣지 못하는 게 답답하고 속상했어!……. 내 몸이 공중으로 두둥실 떠오르더니 광활한 우주공간이 나 홀로 서있는데 희뿌연 구름 안으로 터널이 뚫려있다. 회오리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는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군상들이 회색 망토를 걸쳐 입고, 체념한 듯 공포에 질려 유황불이 이글거리는 블랙홀 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거야…….”
환우가족들은 신기한 듯 경청하고 아내는 물었다.
“진짜 그랬어요.…….소름이 돋네요.…….그 뒤로는 요…….”
“잘 들어봐! 그 안쪽에는 활화산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그마처럼, 용광로에서 녹아 흐르는 쇳물인데,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모습이었는데 그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지……. 물 한모금만 달라는 거였어…….아휴, 힘들다. 회오리바람 속에서 나는 음성도 듣고…….돌아가신 형님도, 아버지도 만났어....! 신기한 것은 하늘나라의 황금보석으로 지은 당신 집 앞에, 고추대가 대여섯 개 남아있는 것을 아버지가 뽑아 버렸데…….”
“여보 진짜 해안하다. 아버님이 그렇게 말씀했거든....! 한기에 벌벌 떨면서 돌아 왔는데 그때 심장이 뛰기 시작한 거야…….당신 다시 만나 너무 좋다. 여보 진짜 사랑하고 수고했어.”
“아니요…….당신이 더 수고 하셨어요!……나도 사랑해요”
말을 많이 했나 피곤하고 졸려.... 이불을 끌어올리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