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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오라이버스
‘오라이’ 추억 안고 즐기는 태안 여행
옛날 시내버스에는 안내양이 있었다. 그들은 손님이 다 타면 ‘오라이’를 외쳐 버스를 출발시켰다. ‘오라이’는 ‘올 라이트(All Right)’가 변형된 말이라고 한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정겹게 들렸던 추억의 외침 ‘오라이’. 지금 대부분의 시내버스는 안내양 없이 운전기사 혼자서 운행한다. 그러나 충남 태안군에 가서 시내버스를 타면 7080 시절의 안내양을 만나 세상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태안 오라이버스의 앞모습
[왼쪽부터]오라이버스 승강장 / 태안버스터미널 매표소
관광객들에게 친절한 가이드도 돼주네
우리나라에 시내버스가 처음 등장한 것은 언제일까? 뉴시스 최근 기사에 따르면, 대구호텔 사장이었던 일본인 베이무라 다마치로가 일본에서 버스 4대를 들여와 1920년 7월 1일부터 운행한 것이 우리나라 버스 역사의 시작이다. 당시 첫 운행 구간은 대구역-팔달교-동촌 사이였다. 이때는 정류장이 따로 없고 손님들이 손만 들면 차를 세워 태워줬다고 한다. 2011년 1월 개관한 대구근대역사관에 가면 1929년 7월 1일에 도입된 대구 부영버스를 타고 근대 대구 거리를 체험할 수 있다.
정기적인 노선과 버스정류장 등 시스템을 갖춘 실질적인 최초의 시내버스는 언제 등장했을까? 1928년 4월 22일, 경성부청(현 서울시청)이 20인승 마차형 버스 10대를 일본에서 들여와 서울 시내 주요 간선도로에 투입한 것이 ‘경성부영버스’다.
시내버스 도입 초기부터 버스 안내양이 있었지만 1989년에 배치 의무 조항이 없어지면서 그들의 존재는 서서히 지워졌다. 그들이 떠나간 자리에는 티머니 시스템이 자리 잡았고, 더 이상 서민들은 ‘오라이’라는 외침을 들을 수 없게 됐다. 토큰이니 회수권이니 하는 버스표도 당연히 사라졌다. 사라진 것은 또 있다. 손님들과 안내양이 주고받던 정감어린 대화, 따스한 인정….
그런데 그것을 살려낸 지자체가 전국에 세 군데 정도 있다. 맨 처음 충남 태안군에서 안내양이 부활했고, 뒤이어 충남 보령시와 강원도 정선군에도 안내양이 등장했다. 옛날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명칭의 변화. 젊은 처녀들 대신 가정주부들이 그 역할을 하게 되니 ‘안내양’에서 ‘안내원’으로 명칭이 바뀐 것이다. 안내원들이 지켜주는 지방의 시내버스를 타면 젊은 여행객들은 신기한 듯 사진을 찍기 바쁘고, 중년 여행객들은 실없는 농담을 건네면서 잔잔한 웃음을 주고받는다.
태안군의 경우 태안여객에서 안내원이 있는 시내버스를 운행하는데 앞 유리창 위에 이런 문구가 있다. ‘오라이∼ 추억으로 가는 바다여행’. 서산과 맞붙은 동쪽을 제외하고는 온통 바다에 둘러싸인 고장이니 그런 지형에 잘 어울리는 카피다. 태안군이 안내원 제도를 도입한 것은 2006년. 사라졌던 버스 안내원이 부활하면서 전국적으로 큰 뉴스가 됐다. 그로부터 5~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태안의 ‘오라이버스’는 현지 주민들에게는 다정한 이웃사촌으로, 외지에서 찾아간 여행객들에게는 친절한 관광가이드로 사랑받고 있다.
[왼쪽부터]오라이버스 기사와 안내원 / 차내에서 요금을 받는 안내원
만대포구, 신진도항, 안면도, 만리포 등 네 군데 노선에서 활약
태안버스터미널에서 안내원이 동승하는 오라이버스는 네 방향으로 출발한다. 만대포구, 신진도항, 안면도, 만리포 방면이며 3명의 안내원이 순환 근무하고 있다. 그들의 연령대는 40대 초반에서 후반이다.
지난 11월 15일 오전 11시 40분, 만대포구로 향하는 버스에는 모은숙(41) 씨가 안내원으로 올라탔다. 강원도 인제가 고향이라는데 충청도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태안읍내에서 산 지 6년이 넘어 충청도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하얀 남방 위에 검정 블라우스를 걸쳐 입고, 검은 바지를 입고, 장갑을 꼈으며 운동화를 신었다. 옛날 안내양의 상징 가운데 하나였던, 머리핀으로 고정시키는 빵떡모자는 쓰질 않았다.
어르신들이 버스에 오르자 “안녕하셔유”라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부축해서 좌석으로 안내한다. 운전기사 옆에 요금함이 있는데도 어르신들은 그냥 지나친다. 그러곤 한결같이 좌석에 앉아서 안내원 모은숙 씨에게 차비를 건넨다. 모은숙 씨는 잔돈을 내주고 티머니도 대신 찍어주며 버스 안을 바삐 오간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두 다리에 힘을 주면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쓴다.
“내리실 분 안 계시면 통과혀유?”
짐을 든 어르신들은 태안 오라이버스에 안내원이 있다는 것에 대해 매우 고마워한다.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주고, 집안 사정까지 이것저것 물어가면서 말동무를 해주니 며느리나 딸이 따로 없다. 여행객들도 마찬가지다. 만대포구 노선은 최근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처럼 ‘솔향기길’이 나면서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모은숙 씨는 그들에게 “꾸지나무골 나씨민박 앞에서 내리면 두 시간 반이나 세 시간 만에 만대포구까지 갈 수 있으니 즐거운 여행하셔유”라고 친절한 안내를 곁들인다.
[왼쪽부터]솔향기길 지도 / 만대포구
[왼쪽부터]조개구이 / 솔향기길 종점
솔향기길 걸어보실래요?
태안읍내를 출발한 지 50분 만에 버스는 종점인 만대포구에 닿았다. 여기서 30분간 휴식을 하고 오후 1시 정각에 버스는 다시 태안읍내를 향해 달려간다.
가로림만을 사이에 두고 서산시 벌천포와 마주한 곳이 태안의 만대포구다. 태안읍에서 603번 지방도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이원반도가 나타난다. 그 반도의 최북단에 만대포구가 자리 잡고 있다. 태안읍에서 31km 정도 떨어져 있어 태안의 땅끝마을이라고도 한다. 만대포구 주변은 온통 굴양식장이다.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내내 굴을 채취한다. 바다낚시꾼들 사이에서는 만대포구가 제법 알려져 있다. 고깃배를 빌려 바다로 조금만 나가면 물 좋은 포인트가 많다는 것이다. 조개구이나 활어회 등 별미를 즐기려는 여행객들은 운영수산(041-675-3048) 등에 자리를 잡고 가로림만 갯벌의 정취를 감상한다.
또 만대포구는 솔향기길의 종점이기도 하다. 솔향기길 1코스는 꾸지나무골해변-여섬-당봉전망대-만대포구(10.2km), 2코스는 꾸지나무골해변-가로림만-볏가리마을-희망벽화(9.9km), 3코스는 볏가리마을-당산-밤섬나루터-새섬리조트(9.5km), 4코스는 새섬리조트-임도-청산포구-갈두천(12.9km)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1코스가 가장 인기를 끌고 있다.
만대포구를 출발한 오라이버스가 터미널에 되돌아온 시각은 오후 1시 55분. 안내원 모은숙 씨는 마지막으로 내린 어르신에게 “오늘은 약주 많이 들지 마셔유”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왼쪽부터]신진도항 낙조 / 안면도 꽃지해변 일몰
낙조가 아름다운 신진도항과 꽃지해변
태안버스터미널에서 신진도항으로 가는 오라이버스를 타면 멋진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안흥내항 입구에서 1993년에 개통된 신진대교를 건너면 신진도의 안흥외항이 나온다. 항구의 풍경과 낙조를 함께 감상하려면 외항 부둣가에, 등대와 낙조의 조화를 보고자 한다면 신진도와 마도를 잇는 방조제도로를 건너 마도의 하얀 등대 방파제에 자리를 잡는다. 서해안의 멋진 해넘이 광경을 찍으려는 사진가들이 소문내지 않고 찾는 촬영 포인트이다.
신진도의 안흥외항 부둣가에 서면 집어등을 환하게 밝히고 멸치를 부리는 고깃배와 멸치 비린내를 좇아서 날아든 갈매기 떼가 항구에 활력을 더한다. 그 뒤로는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저 멀리에는 수평선 위에 올망졸망한 섬들이 좌우로 점점이 떠 있다. 하루를 따뜻하게 밝혔던 해는 황금빛에서 진홍빛으로 차츰차츰 빛깔을 달리해가며 하늘을 물들이고 여행자들의 얼굴마저도 달아오르게 만든다.
안면도행 오라이버스는 여행객들을 낙조 감상 명소로도 이끈다. 안면도 서쪽에는 바다 풍광을 감상하기 좋은 해변이 12곳이나 된다. 그 중에서도 안면읍 꽃지해변이 일몰 여행지로 널리 알려진 이유는 그 바닷가에 태안8경 중 하나인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꽃지해변 외에 방포항으로 넘어가는 꽃다리도 촬영 포인트.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를 배경으로 해가 지는 모습은 누가 찍어도 작품 수준의 사진을 건질 수 있다고 한다.
낙조를 감상하며 한적한 해변을 산책할 수 있고, 주차장 사정이 넉넉하며, 횟집과 숙박시설 등이 풍부하니 각처에서 여행자들이 모인다. 부지런한 여행자들은 연말연시가 되면 이곳 꽃지해변에서 일몰을 감상하고, 그 잔상이 사라지기도 전에 밤새 동해안으로 달려가서 일출을 맞기도 한다.
꽃지해변에서 일몰을 감상하고 얼어붙은 몸은 일송꽃게장(041-674-0777)에서 한약재로 맛을 살린 간장게장이나 뜨끈한 꽃게탕을 맛보면서 녹이도록 한다.
이용정보
태안군청 관광마케팅 담당 041-670-2147
태안여객 041-675-66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