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너를 사랑하는 나의 얼굴을 그린다
안현숙
#핀란드 여자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은 핀란드를 대표하는 모더니스트 화가 헬렌 쉐르백의 삶을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 포스터는 헬렌의 얼굴을 전면에 담고 "당신을 보는 나를 그렸어요"라는 부제를 쓰고 있다. 그녀가 독특한 분위기의 다채로운 자화상을 많이 그렸던 때문이다. 그녀의 그림은 사실주의, 인상파, 추상주의 기법까지를 보여주는데 아마도 많은 사람이 화가의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기묘한 아름다움으로 인식되는 그녀의 자화상 그림 한 편 정도는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감독이 헬렌 쉐르백을 '극적인 영화의 완벽한 캐릭터'라고 소개한 이유를 그녀의 자화상에서 찾을 수 있다.
호수의 나라 핀란드에서 많은 그림은 자연주의, 얼어붙은 호수, 고대 핀란드의 영웅 그림이나 신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래전 북유럽을 여행할 때 헬싱키의 반타공항에서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핀란드의 고요한 움직임 속의 매력, 독특한 정서는 자일리톨 같다고나 할까. 영화는 이렇듯 고전적이면서도 단순하고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핀란드의 정서와 풍경을 오롯이 보여준다. 오로라의 나라이자 산타클로스의 고향인 이 나라에서도 여성이 집 안에만 있었던 시대였고 철저한 가부장 사회였다.
자신의 자아를 특출한 재능으로 세상에 알린 그녀의 삶을 보여주는 자화상을 보면서 여성의 삶이 운명의 역사를 따라 여기까지 이르렀구나 생각했다. 별을 향한 신념을 오랫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나와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여성의 모습이 헬렌의 자화상 속에 있었다. 기묘한 자화상의 표정들 때문에 '핀란드의 뭉크'라고도 불리는 그녀, "자화상을 그리는 것은 별이 무수히 반짝이는 하늘을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여성이 자신의 삶을 표출하며 살아가는 것은 거의 모든 시대에서 경이로움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이 반짝이지만 별이 되지 않고는 온전한 자신의 얼굴을 그릴 수 없었던 여성의 삶이다.
#소화 정원의 그녀
영화에 몰두했던 그 무렵에 나는 혼자만의 정원을 만들고 삶을 지키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길을 떠났는데 마치 헬렌 같은, 닮기도 한, 분신인 듯한 느낌의 그녀였다.
비가 온종일 내리는 어느 여름날, 친구를 만나러 먼 길을 떠났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1970년은 전후 베이비붐으로 태어난 백만여 명의 학생들을 교육하느라 나라에서도 애를 먹던 시절이었다. 그녀는 장애인이었던 헬렌처럼 너무나 작았다. 표정도 언제나 처연하였던 것 같다. 실제로 오십여 년 전의 내 기억 중에는 같은 반 급우 중에 그녀를 업고 다녔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동창 모임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눈을 의심할 만큼 쑥 커버린 늘씬한 키에 깜짝 놀랐다. 작고 여려서 안타까웠던 그 친구는 단단하고 야무지고 재주 많은 멋진 여성의 삶을 살았고 지금도 여전히 빈틈없이 자신의 길을 가꾸며 살고 있었다. 그리움의 바탕을 그리는 애잔한 정서 같은 얼굴의 그녀가 나를 반겼다.
서울에서 별도로 자신만의 정원을 가지다니, 소화 정원은 소담한 마을 속의 한 부분에 평범하게 자리하고 있었지만 어찌 평범할 수 있으랴. 그녀의 삶이 오롯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입구 자락에 마을이 들어서기 전부터 있었을 것 같은 큰 나무 세 그루와 소박함을 담고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것 같지만 정겨운 이야기를 따라 한마디 한마디를 연결해 놓은 돌길, 그 옆으로 벽을 타고 오르는 아이는 내 눈에는 분명히 호박잎처럼 보였으나 오이라고 한다. 하긴 나는 아직 오이가 마트 판매대가 아닌 나무에 달려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장독대와 꽃밭과 오래 묵은 키 큰 나무들이 담장을 배경으로 흐르고 있는 모습에다 안쪽으로는 너른 차양을 단단하게 치고 도자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차를 마시는 공간이 단정하게 터를 잡고 있었다.
자연과 마음을 연결해 주는 그 자리에 앉아 우리는 차를 마셨다. 비 내리는 날의 정취와 긴 세월의 이야기들과 도자기와 꽃들에 대해 담소하며 반백 년이 넘는 시간을 정지시켰다. 시간의 결을 가로질러 가면 함께 만나지는 못하였으되, 같은 시공간에서 담아낸 그 시간이 우리를 데려간 길은 비슷하였을 것이다. 엄중한 시간을 넘어 때로는 흐르는 바람처럼 나풀나풀 흘러가 버리기도 했을 그 시간 어쩌랴. 마음을 쥐어짜도 그 흘러가 버린 초원의 빛은 되찾을 수 없었지만 우리가 붙잡으려 애썼던 그 작은 뜨락은 여전히 생생했다.
단지 짧은 언어와 눈빛만으로도 우리는 묵은 시간을 따라 끝없는 감정을 풀어 놓았다. 달이 차고 기우는 동안 우리의 마음의 별이 동쪽에서 혹은 서쪽에서 윤기를 잃지 않고 스스로를 밝혀 빛을 내고 있었으리라. 자신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 별을 향한 헬렌처럼 끊임없이 빛을 잃지 않고 길을 걸어온 그녀의 얼굴은 내 마음에 깊은 자화상으로 남았다.
#너를 사랑하는 나의 얼굴
간결한 언어의 몇 마디만으로 나는 나의 정원을 만들고 싶었다. 함축된 무궁한 감정들을 하늘에 별처럼 쏟아내고 온 하늘에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진정할 수 없는 꿈들을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다. 영원히 홀로였으나 결코 외로워하지도 돌아가지도 않고 나 역시 별을 향해 끊임없이 걸었다. 헬렌처럼.
시공간을 초월하여 언제나 연결되어 있었던 우리 삶의 모습은 비록 한 번도 만나지 못하였으나 서로의 감정에 오래도록 스며들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자화상 앞에 섰을 때 그 찰나의 순간은 오래 그리워한 묵은 시간을 따라 끝없는 감정을 풀어 놓았다. 그녀의 모습을 간직하리라. 나의 자화상 속에, 별을 따라 걸어온 모든 여성의 얼굴에, 그리하여 마침내 별이 된 그녀에게,
너를 사랑하는 나의 얼굴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