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는 통일신라 때 유명한 학자이자 문장가인 최치원(孤雲|海雲 崔致遠, 857~?)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최치원은 어려서 중국에 유학하고 벼슬을 하다가 귀국하여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후삼국시대가 시작되던 즈음인 898년 초 가족 모두를 데리고 해인사로 들어가 거기서 생을 마쳤다. 전해오는 말로는 최치원이 합천으로 가는 길에 해운대에 들러 해운대(海雲臺)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또는 최치원이 여기에 대(臺)를 세우고 머물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본래 대(臺)는 높고 평평한 지형을 가리키는 용어이고, 해운대 역시 달맞이고개와 그 주변을 가리키는 지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해운대가 포함하는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해운대는 조선팔경 중 하나로 오래 전부터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었다. 일반적으로 해운대하면 사람들은 해운대 해수욕장을 먼저 떠올릴 정도로 넓고 긴 백사장을 가진 해수욕장이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해수욕객들이 몰리는 곳, 많을 때는 하루에 100만 명 넘게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달맞이고개와 동백섬, 그리고 해수온천 등으로도 유명하다.
해운대 해수욕장은 유난히 희고 깨끗한 백사장 길이가 1.8km 정도이고 그 폭도 상당하였다. 그러나 인근 지역의 무분별한 매립과 공사 등으로 인해 2004년 조사에 따르면 백사장의 면적 54%, 폭 34%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에도 연평균 5천m2 이상의 모래가 유실돼 모래 속에 있던 자갈이나 조개껍데기 등이 겉으로 드러나, 해수욕장 개장을 앞두고는 다른 곳에서 상당량의 모래를 가져와 백사장 위에 덮는 작업을 매년 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광안리해수욕장, 송정해수욕장 등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해운대 모래축제를 개최해 이 모래를 평탄하게 깔기 전에 모래조각을 하여 전시하고 있다.
요즘은 새해 해맞이를 하기 위해 해운대 해수욕장을 찾지만, 해운대는 달맞이가 대한팔경 중 하나에 들어갈 만큼 유명하다. 현재 달맞이고개는 빌라촌과 카페 등으로 뒤덮여 있지만, 이곳은 달맞이언덕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꼭 달맞이고개로 오르지 않아도 해수욕장에서 맞는 달맞이도 상당히 운치가 있다. 달이 떠오르면서 바닷물에 길게 비치는 금빛 물결은 파도에 넘실거리며 춤을 춘다. 달이 조금 떠오른 후에는 공중에 떠오른 달, 파도에 일렁이는 달, 술잔에 가득 찬 달, 님의 눈동자에 비치는 달을 볼 수 있다.
부산에서 온천 하면 동래온천이 먼저 떠오르지만, 연세 높은 어른들은 해운대온천을 우선 치는 분들도 적지 않다. 동래온천보다 효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운대온천은 통일신라시대 때 구남해수온천(龜南海水溫泉)으로 불렸고, 진성여왕이 이곳에서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한편, 진성여왕이 정사를 돌보지 않고 너무 자주 이곳을 찾는 바람에 어떤 관리가 과감히 이곳을 폐쇄했다고도 한다. 이후 조선시대 때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고, 일제강점기에는 더욱 유명세를 떨쳤으나, 지금은 온천수가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아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구남온천과 함께 해운대를 대표하던 호텔이 하나 있었다. ‘해운대 극동호텔’이다. 1967년에 극동건설에서 지어 개관한 이 호텔은 1989년 문을 닫을 때까지 유명세를 떨쳤다. 해운대로 여행을 온 신혼부부들의 사진 촬영장소이기도 했다. 일반 서민들은 숙박비가 너무 비싸 이 호텔에서 숙박하지는 못했지만, 이 호텔 앞에서 사진이라도 찍음으로써 대리만족을 하는 곳이었다.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2008년 팔레드시즈 콘도가 이 자리에 들어섰다.
조용필의 노래 ‘꽃피는 동백섬’이 크게 히트하면서 더욱 유명해진 동백섬은 해운대 해수욕장 백사장 서쪽 끝과 연결된 조그마한 섬이다. 옛날에는 섬이었는데 자꾸 모래가 쌓여 육지와 연결되었다고 한다. 동백나무가 많이 심겨져 있어서 동백섬이라고 이름붙였다고 한다. 동백섬 입구에 위치한 웨스틴조선 부산호텔(옛 조선비치호텔) 옆 도로가에는 150년 이상 된 동백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한때는 다른 해안과 마찬가지로 일몰 시간 이후로는 출입이 금지되기도 했다.
조선비치호텔 앞에서부터 동백섬 순환도로가 시작되는데 전체 길이는 약 930m에 불과하다. 빠른 걸음으로는 10분이 걸리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 섬에는 볼거리가 제법 있다. 우선 길을 따라 가다보면 왼쪽에 최치원 동상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그늘진 길을 따라 정상(해발 53m)에 오르면 최치원 동상과 해운정(海雲亭) 등이 있다. 해운정은 아예 문을 닫아놓았다.
내려와 다시 길을 따라 걸으면 오른쪽에 누리마루가 보인다. 누리마루는 2005년 APEC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누리마루 맞은편에는 조그마한 정자가 하나 있어 전망대 구실을 한다. 또한 누리마루 바로 옆에는 등대 모양을 한 구조물을 중심으로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 오른쪽을 보면 누리마루와 그 뒤쪽에 광안대교 등이 보인다. 멀리 오륙도도 보이고, 정면으로는 맑은 날이면 일본 대마도가 보이기도 한다고 안내해 놓았다. 이 근처에 오래 전에는 고아원이 하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시 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해운대석각(石刻)’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조금 내려가 보면 바위 위에 ‘海雲臺’라고 음각해 놓은 글씨를 볼 수 있다. 이 석각은 고운 최치원이 쓴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지만 확인할 방법은 전혀 없다. 이제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상당 부분 마모되었다.
조금 더 길을 가다보면 바다 풍광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닷가 바위를 따라 나무 데크로 산책로를 만들어놓았다. 이제 그 길을 따라간다. 밑을 바라보니 바다 갯바위에는 고기 잡는 낚시꾼들의 모습도 보인다. 앞으로 가는 길에 백사장이 보이면서 저 멀리 미포 쪽에는 높다란 빌딩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는 아파트단지를 짊어지고 있는 달맞이고개도 보인다.
툭 튀어나온 바위 언덕에는 조그마한 구름다리가 걸려 있다. 그 구름다리를 건너면 바다와 맞닿은 바위 위에 세워놓은 황옥공주 인어상이 보인다. 본래 이 근처에는 1974년 5월에 세워진 인어상이 있었다. 안데르센의 동화에 나오는 인어상을 모티프로 한 청동 조각물이었다. 그런데 1987년 7월에 이곳을 강타한 태풍 ‘셀마’ 때 파도가 이 인어상을 삼켜버렸다. 이후 1989년 2월에 전설 속의 황옥공주를 모티프로 한 인어상을 제작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산책로 끝 부분에 이르면 백사장 뒤편의 건물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2019년에 준공한 높이 411.6m, 101층의 엘시티 더샵 건물이, 달맞이고개의 아파트 단지와 함께 눈에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엘시티 바로 옆의 팔레드시즈 콘도나 파라다이스호텔 등은 당시 고도제한 때문에 높게 지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높이가 비슷비슷하다. 엘시티를 지을 때 이 고도제한을 해제했다고 한다.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서 나무 데크를 내려서면 조선비치호텔 정문 뒤편, 바닷가쪽이다. 조선비치호텔은 1978년에 개관했는데, 당시 박정희 정권의 특혜를 받아 이곳에 호텔을 지을 수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호텔은 1995년 신세계그룹이 인수하면서 웨스틴조선 부산호텔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호텔이 들어서기 전 이곳은 멋진 해송 몇 그루가 파란 하늘과 바다, 그리고 파도소리와 어우러져 빼어난 풍치를 자랑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