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참외
제9회 작품상
송심순
여름 햇볕에 시달린다. 잠시라도 피하고 싶어 시골집으로 달려왔다. 나리꽃, 봉숭아, 접시꽃이 메마른 땅에 햇볕을 원망하듯 지쳐 보인다. 짐 보따리를 팽개치고 사정없이 흠뻑 물을 뿌려주기 시작했다. 사람도 배가 고프면 양껏 먹고 싶은 욕구와 식물도 다를 게 없다 싶어 땅이 질퍽할 만큼 적셔주었다. 축 늘어져 있던 초록 잎이 배가 부르다는 시늉이라도 하듯 꼿꼿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순서에 따라 마음 두느라 깻잎, 블루베리, 다육식물, 무궁화꽃 그 외 잡초꽃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뒤늦게 살펴보니 허기진 배를 채워 달라 구걸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무관심, 차별에 내가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집 주위를 우두머리처럼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 졸참나무, 밤나무, 감나무들이 나의 미흡한 짓에 충고라도 건네는 것인가? 산 중턱에서 간간이 불어오는 무더운 바람 타고 술렁거린다.
한바탕 꽃과 나무들 눈치 보며 타협하느라 땀방울이 등줄기를 적셔 목이 마른다. 이제야 짐 보따리 풀어볼 여유를 갖는다. 노란 참외, 커피, 단팥빵, 김치, 떡, 과자가 요술 보따리처럼 쏟아져 나온다. 먼저 갈증 해결 욕구에 참외를 선택해 샘가로 간다. 물에 헹구어 낸 노란 참외가 햇볕에 반사되어 유난히 고운 빛깔로 자태를 뽐낸다. 아파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껍질과 씨앗들을 샘가에서 털어가며 먹는 맛은 시골집 마당의 특권이다. 마무리는 물 한 바가지 뿌려주면 작은 씨앗 한 톨 없이 씻겨져 내려가니 개운하다.
도시의 번잡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주말마다 찾아오면 몸과 마음을 말끔히 걷어주는 시골집은 쉼터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참외의 달콤함이 입안을 맴돌아 여기는 별천지요, 샘가 의자에 푹 주저앉혀 나를 한가롭게 붙잡아 놓는다.
보드라운 초록빛으로 한 폭의 그림이 앞산 뒷산에 펼쳐져 시선이 고정돼 정지된 상태로 빠져들게 한다. 내 나이를 짚어본다. 인생의 어떤 계절쯤에 와 있을까? 아니 어떤 계절을 맞고 있는 것일까? 내 안에는 숫자에 멈춰 있고 희망 꿈 용기가 서서히 사그라져 가는 게 아닌가 싶어 무색의 계절 겨울 풍경에 비추어 본다. 요란한 매미의 울음이 한순간의 생각이 얕았던 나를 깨워 벌떡 일으켜 세운다.
라디오를 켜 놓고 사람 사는 굴곡진 사연을 듣기도 하고 노래를 들으며 이방 저 방 기웃거려 본다. 마치 거리두기라도 하듯 주말에만 찾는 시골집은 낮 가림을 하고 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오면 편리한 아파트로 돌아갈 생각에 자신을 들볶아 서두른다.
팔월 중순 주말 어김없이 시골집에 도착했다. 샘가에 줄기가 곧게 뻗어 난 새싹이 눈에 띄었다. 일부러 씨앗이나 모종을 심지 않았는데 의문스럽기만 할 따름이다. 곰곰 생각해 알아냈다. 얼마 전 샘가에서 참외를 먹고 물 한 바가지에 씻겨 버려진 씨앗 몇 톨이 싹을 틔워낸 것을. 돌멩이 틈에 줄기 따라 나란히 올라 온 연둣빛 잎이 어찌나 보드랍던지 조심조심 물을 주기 시작했다.
버려진 씨앗이 척박한 돌멩이 틈을 뚫고 겨우 비집고 움을 틔웠을 텐데. 잡초와 민들레 잎을 의지해 옹기종기 뒤엉켜 내 눈앞에 신비스러움을 선사하고 있는 모습에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그 후 참외 넝쿨 안부가 궁금해 애증을 갖고 조급하게 주말을 기다리게 되었다. 몇 주 후 아주 작은 꽃송이가 노랗게 피어나 샘가에서 먹었던 참외가 환생한 듯해 움찔했다.
나는 해마다 가을 국화꽃, 봄에 목련이나 장미 벚꽃에 듬뿍 정을 건넸어도 뜬금없이 참외의 아주 작은 노란 꽃송이에 탄성을 지르고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 열매 맺기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꽃이 진 자리에 연초록 참외가 세 개 달렸다.
늦여름 폭우 태풍이 휩쓸어 이웃 농민들은 벼나 과수원 농작물 피해를. 우리는 참외 두 개가 떨어져 나간 피해를 보았다. 달랑 한 개 남은 참외는 점점 몸집이 커져 어떠한 운명이 오든지 이겨 낼 것처럼 노란빛을 반짝이며 버티고 있었다.
구월 말쯤 잎이 갈색으로 오그라들며 넝쿨이 바스락거려 수명이 다한듯 싶어 안쓰러웠다. 집 앞을 지나는 마을 어르신들이 별것도 아니라는 말투로 넝쿨 걷으라고 재촉하신다. 살아있는 식물을 겉만 보고 죽음으로 인정하기 싫어 다음 주까지 기다려 보기로 하고 민들레 이파리 몇 개를 겹쳐 참외 밑에 폭신한 이불처럼 깔아주고 돌아왔다.
가을 준비를 알리는 절기 중 백로 추분을 지나 한로에 이르렀다. 한로엔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할 시기로 기온이 더 내려가기 전에 농촌에서는 추수 수확을 끝내야 하므로 한창 분주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을 어르신들이 한몫 거들어 나도 따를 수밖에. 한로를 넘겨 드디어 넝쿨을 걷어 냇가 둑에 던져버리고 노랗고 튼실한 참외 한 개를 수확해 보드라운 천에 돌돌 감싸 안고 돌아왔다. 친구 지인들에게 가을에 참외 한 개 수확했다는 사진을 보냈더니 각자 느낌을 보내와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무거워서 어떻게 옮겨 왔나요, 어머나 파란색이 정말 노래졌나요, 늦게 철들었으니 효도 해야 되는데, 맛이 궁금해요, 서리 내리기 전에 잘 따왔네요.’ 그중 한 친구는 외국에 살던 친구를 15년 만에 동창들과 만난 자리에서 철없는 참외 한 개가 모두에게 웃음을 선물해줘 자연에 고맙다며 먹기도 아까울 것 같다는 애증을 곁들였다.
문득 어른들 말씀이 떠오른다. 마을 누구네 자식은 잘 먹이지도 잘 가르치지도 못했는데 부모에게 더 효도한다는 소문에 칭찬을 아끼지 않던 수확시기도 아닌 가을 수확으로 무관심 속에 ‘철없는 참외’가 기쁨을 선사했으니 나도 여기에 꿰맞춰 보려 한다. 삼 일 내내 예쁜 그릇에 담아 왕자님 대접으로 모셔놓은 참외를 어찌해야 할까. 꽃으로 수놓은 조각보에 옮겨 몇 번을 토닥거리다 용기 내어 살며시 잘라 접시에 가지런히 얹어 사진을 찍고 한입 깨물었다. 유년 시절 고향에서 먹었던 토종참외의 진한 달콤함과 야릇한 향이 어우러져 옛 맛을 되찾아 탄성이 절로 점점 높아만진다.
소독도 안 했지, 비바람 견뎌냈지, 오로지 햇볕만을 의지했던 완전 무공해. 철없는 참외가 여러 사람에게 환영받아 웃음을 선물했으니 효도 왕관을 쓸 자격이 있다고 본다.
자연의 정직함에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냈던 여름과 가을 사이 버려진 씨앗 한 톨에 바라는 것은 줄이고 비워야 행복이 커진다는 비결을 배웠다.
첫댓글 보드라운 초록빛으로 한 폭의 그림이 앞산 뒷산에 펼쳐져 시선이 고정돼 정지된 상태로 빠져들게 한다. 내 나이를 짚어본다. 인생의 어떤 계절쯤에 와 있을까? 아니 어떤 계절을 맞고 있는 것일까? 내 안에는 숫자에 멈춰 있고 희망 꿈 용기가 서서히 사그라져 가는 게 아닌가 싶어 무색의 계절 겨울 풍경에 비추어 본다... 버려진 씨앗이 척박한 돌멩이 틈을 뚫고 겨우 비집고 움을 틔웠을 텐데. 잡초와 민들레 잎을 의지해 옹기종기 뒤엉켜 내 눈앞에 신비스러움을 선사하고 있는 모습에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그 후 참외 넝쿨 안부가 궁금해 애증을 갖고 조급하게 주말을 기다리게 되었다. 몇 주 후 아주 작은 꽃송이가 노랗게 피어나 샘가에서 먹었던 참외가 환생한 듯해 움찔했다...달랑 한 개 남은 참외는 점점 몸집이 커져 어떠한 운명이 오든지 이겨 낼 것처럼 노란빛을 반짝이며 버티고 있었다. ..살아있는 식물을 겉만 보고 죽음으로 인정하기 싫어 다음 주까지 기다려 보기로 하고..
수필이란 이런 느낌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글을 읽고 생각해봅니다. 생명, 노란 참외 한 알, 관심갖는 이 없어도 철없이 씩씩한 참외 한 알에서 삶을 배웁니다. ^^~ 늘 감사드리며 !
려원 선생님
감상문까지~관심 고맙습니다
거듭 두 해 여름 그자리에서 참외 한알이 끝까지 매달렸었는데~올 여름이 궁금합니다
씩씩한 삶을 늘 동경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