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04월24일
산행지;예천 회룡포
산행거리;6.95km
산행시간;03시간46분
날씨;맑음
기온;13도~22도
산행코스;주차장~장안사~223계단~무제봉~비룡산봉수대~용포대~원산성~삼강앞봉~비룡교~삼강주막
11;48 회룡포 주차장
12;23 장안사쉼터(1.86km)1.86km
12;26 223계단(0.13km)2.01km
12;34 무제봉(해발239.0m,0.16km)2.17km
12;36 비룡산 봉수대
12;46 중 식
13;25 중식후 출발
13;40 용포대(0.92km)3.09km
14;12 원산성(1.17km)4.26km
14;49 삼강앞봉(해발176.0m,1.24km)5.5km
14;59 비룡교(0.43km)5.93km
15;17 삼강주막(1.02km)6.95km
회룡포(回龍浦,국가명승 제16호);낙동강(洛東江)의 지류인 내성천(乃城川)이 용(龍)이 비상(飛翔)하듯 물을 휘감아 돌아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높이 190m의 비룡산(飛龍山)을 다시 350도 되돌아서 흘러나가는 (육지속의 섬마을)이다.맑은 물과 백사장이 어우러진 천혜의 경관을 가지고 있으며 비룡산에는 숲속 등산로와 산책코스가 있다.이 산에는 신라시대의 천년고찰인 장안사(長安寺)가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비룡산(飛龍山)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낙동강(洛東江),내성천(乃城川),금천(錦川)이 합쳐지는 삼강(三江)이 보이는데 깍아지르는 듯한 이곳에는 삼한시대(三韓時代)부터 격전지로 유명한 원산성(일명 용주성)이 있다.천혜의 요새로 토석혼축으로 된 성(城)주변에는 많은 고분이 흩어져 있으며 봉수대(烽燧臺)가 남아있다.백제 시조 온조가 남하할때 마한(馬韓)최후의 보루인 이곳 원산성(圓山城)을 점령한 후 백제(百濟)를 세웠다고도 전해지며,원산성이 위치한 용궁 일대는 근초고왕 25년(370)에 백제 영토가 되었다가 512년 고구려 문자왕이 점령하여고구려 영토가 되었다.그 후 진흥왕 26년(565)에 신라의 땅이되어 오늘에 이른다.이러한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원산성은 4세기 말부터 6세기 말까지 백제,고구려,신라의 각축장이였음을 알 수 있다.이 저역 지명에서도 나타나듯 전사한 병사의 피가 강물을 따라 흘러 맞은편 언덕에 엉키어 붙었다 하여 (피묻끝)이라고 부르고 통곡소리가 먼 마을까지 들렸다하여 강 건너 마을을 달읍(達泣)이라 부르고 있다.인근 용궁향교,하마비,황목근,무이서당,삼강주막,산택지,청원정 등이 있으며 헌쳬의 자연경관과 역사적 정취가 살아 숨쉬는 이곳 회룡포 마을에는 야영(野營)과 민박(民泊)이 가능하다.
장안사(長安寺);경북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 비룡산에 있는 절로서 정확한 창건 연혁은 알수없다.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응향전,승방,마룻집,산령각이 있다.향석리 구읍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남산사라 불리우기도 한다.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전설에 의하면 의상(義湘)의 제자인 운명(雲明)이 창건하였다고 하며,(예천군지)에서는 고려때 창건된 사찰이라고 한다.그러나 정확한 역사는 조선 중기 이후의 기록만이 전한다.1627년 (인조5)덕잠(德潛)이 증창하였고,1709년(숙종35) 청민(淸敏)이 범종각(梵鐘閣)을 증수하였으며,1755년(영조31)법림(法琳)과 지묵(智默)등이 증수하였다.1800년(정조24)효일(孝日)이 증수하였고,1867년(고종4)설산(雪山)이 향로전(香爐澱)을 증수하였으며,1872년 설곡(雪谷)이 법당 및 요사채를 증수하였다.1876년 백암[白巖]이 종각을 증수하였고,1881년 백암이 산령각[山靈閣]을 증수하였다 그뒤 응봉[膺峰]이 1896년에 산령각을 증수하였고 이듬해에는 법당을 증수하였다.1925년에는 법당의 기와를 갈고 대방을 증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룡산봉수대[飛龍山烽燧臺);예천군 용궁면 향석리에 위치하며 옛날에 통신수단의 하나로 밤에는 불,낮에는 연기를 이용하여 국방상의 중요한 임무를 도성[都城]에 신속히 전달하였다.봉수[烽燧]는 홰수[炬數]에 따라 1홰[炬]평산시,2홰 적출현,3홰국경접근,4홰 국경침범,5홰 적군교전으로 구분하여 알렸다.비룡산 봉수는 동쪽으로 예천읍의 서암산[西唵山],서쪽은 다인의 소이산[所以山],북쪽은 산양의 가불산[加弗山]봉수와 연락하였으며 설치년도는 고려[高麗]의종[毅宗]3년[1149]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며 1895년 봉수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없어진 것을 예천군에서 사방3.7m,높이2.7m의 정방형 규모로 복원[復元]하였다.
원산성[圓山城];용궁면[龍宮面]향석리[鄕石理]의 비룡산[飛龍山]에 위치하고 성벽의 둘레가 1,000여미터이며 성벽의 높이는 지형에 따라 약 1.5~3m로 축조된 토석[土石]혼축선[混築城]이다.'따뷔성'이라고 불리는 이 성[城]은 군[君誌]에는 용비산성[龍飛山城]으로 기록되어 있다.성 옆으로는 문경에서 흘러오는 금천[錦川ㅊ],영주에서 오는 내성천[乃城川],태백에서 오는 낙동강[洛東江]이 합류하는 삼강을 배수진[背水陳]으로 하고 절벽이 깎아지는 듯 하며 산의 정상에서 사방을 바라보면 일목요연[一目了然]하게 조방할 수 있는 자연요새[自然要塞]이다.삼한[三澣]시대의 마한[馬韓]이 이 성을 지키기 위하여 전투를 벌이다가 백제[百濟]에 패망하였다고 하며 그 후 신라[新羅]와 백제[百濟],그리고 고구려[高句麗]의 접경지대로서 잦은 격전이 있었다고 한다.망루지 등으로 추정되는 시설물이 확인되었으며 주변에 와편과 토기편이 산포되어 있다.
삼강주막[三江酒幕];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있는 조선말기의 전통주막이다.삼강주막은 삼강나루를 왕래하는 사람들과 보부상,사공들에게 요기를 해주거나 숙식처를 제공하던 건물로서 1900년 무렵 건축하였다.규모는 작으나 본래 기능에 충실한 평면구성으로 건축사적 희소가치와 옛 시대상을 보여주는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12월26일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되었다.2006년 마지막 주모 유옥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방치되었으나 2007년 예천군에서 1억5천만원의 비용을 들여 옛 모습대로 복원하여 현재는 삼강리 부녀회에서 삼강주막을 운영하고 있다.복원 당시 주막 주변에 보부상숙소,사공숙소,공동화장실 등을 함께 지었는데,보부상 숙소는 면적 40.41m²로 방2개와 대청,부엌등을 갖추고 있으며 사공숙소는 면적 21.60m²로 방2개를 들였다.공동화장실은 외관은 전통적으로 꾸미고 내부는 현대식 시설을 하여 편리성을 추구하였다.주막 건물 뒤에는 수령 약500년인 회화나무가 서 있어 옛 정취를 더해준다.
첫댓글 수고하셧습니다 즐거운 하루엿습니다 ㅎ
네네..조용하게 산행하고 몸과 맘이 힐링되는 하루였습니다..
설명까지 대단하십니다 ㅎ
수고많으셨습니다!
주막찬조.토끼빵.승우.성한.예서용돈까지 감사드립니다.!
ㅎㅎㅎ..진행한다꼬 애 많이 쓰셨습니다..^^
연짱 산행하시는 형님이 부럽다ㅎㅎ
힘듬 상당히^^
수고하셨습니다...^^
같이 산행하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수석 산대장님하시느라 고생만네요..
아무쪼록 몸 쳉겨 가면서...
몸 보신도 하시면서...
네네 감사합니다 몸보신도 해야겠습니다^^
전날 긴산행으로 힐링산행....좋으셨죠...
수고하셨습니다~~^^
네 가벼이 하는 산행 너무 좋았습니다
웃음 꽃이 핀 우리 대장님ㅋㅋ 간만에뵈어ㅋㅋ정말 반가웠습니다~^^
ㅎㅎ 그래 타지에서 보니 더 반갑더라
힐링산행 즐거웠습니다~언제 또 기록까지 하셨어요?ㅋ
수고하셨습니다~^^
기록은 나의 일과중 하나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