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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연으로 인해 인도양의 진주, 5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식민 상태에 있었던 지난한 역사 때문에 '인도의 눈물'이라고도 불리는 스리랑카. 빛이 난다는 <스리>에 섬이란 뜻의 <랑카>가 합쳐진 '빛나는 섬'이란 뜻을 가진 보석같은 나라이다.
몸으로 생각으로 지은 죄, 그 중 제일 직접적이고 큰 죄가 바로 입으로 짓는 설화(舌禍)라고 했다. 입으로 지은 죄를 참회하는 예불문의 정구업진언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의 수리가 바로 스리랑카의 국명, 청정하게 빛난다는 뜻을 가진 <스리>의 범어임을 스리랑카에 간지 일주일쯤 지난뒤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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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 바탕에 노란색 사자는 싱할라인의 상징. 싱할라는 사자의 후예라는 뜻이다. 4개의 꼭지점에는 불교의 상징인 보리수 잎사귀. 왼쪽의 녹색과 오렌지색은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의 타밀족을 나타낸다. 싱할라족(72.9%) 타밀족(18%) 이슬람(8%) 싱할라족과 타밀족간의 내전이 2009년 5월에 끝났다. 맥주도 라이온, 모든 것이 사자다.
스리랑카 국기의 의미가 어떴든 난 자주색과 오렌지색 승복, 보리수 나무의 녹색잎이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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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표는 아누라다푸라에서 만들고 가이드북은 하언니가 귀국하며 주고 간거다. 이렇게 허술하게 다녔다. 왼쪽 동선이 복잡해진 이유는 태국일정을 포기해 갑자기 생긴 스리랑카에서의 일주일 때문...
동양기행2을 읽다 작가가 미얀마에서 만난 보살을 나도 스리랑카에서 만난듯했다. 슈바이 스님과 히말라가 그랬다. 책을 그대로 옮긴 것이니 패스해도 무방하다
------------ '후지와라 신야'의 동양기행2 부분
보살
노점에 앉아 식도락의 꿈에 젖으면서도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노점 의자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지 한 시간이 넘어가는데, 설거지를 하던 두 명의 어린 소년이 내 왼쪽 어깨와 30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곳까지 다가와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 낯선 타지에서 방문한 이 여행객이 신기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 시간이 너무나 길었고, 게다가 그 거리가 무척이나 가까웠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이들과 나의 거리는 더욱 좁아지고, 시선은 나의 등 뒤로 돌아간다. 녹미채 카레를 먹으면서 이 수상한 거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메라를 무릎 위로 옮기고,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 들어있는 120차트(4,800엔)을
주의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아이들이 뭔가 먹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 불편한 상황에 서둘러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고개를 돌려 등 뒤로 서 있는 아이들에게 가다랑어가 들어간 음식을 들어보였다. 필요없다는 식으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쓴웃음을 지으며 아주머니에게 이 아이들을 어떻게 좀 할 수 없어요, 하는 식의 표정을 지어보이자 다나카라는 일본인 이름 같은 나무분말(버마 여성들은 이 가루를 얼굴에 진하게 칠하고 있다. 피부를 예쁘게 해준다고 한다.)을 잔뜩 바른 양쪽 뺨을 일그러뜨리듯 웃으면서 한쪽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것은 랑군 거리의 우거진 잡목들 위로 쏟아지는 오후 네 시의 눈부신 여름햇살이었다.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팔짱을 끼고 미심쩍은 표정을 짓자 식당에서 안마를 받고 있던 남자가 졸음에서 막 깬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저 아이들은 '응달'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잠시 동안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응달'이라니, 뭘 말하는 거죠?" 되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눈을 크게 뜨고 과거의 일본군을 떠올리게 하는 억양으로 말했다.
"요즘 일본 사람은 '응달'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겁니까? 응달은 '해님'의 그늘입니다."
"버마 아이들도 그림자를 만들면서 노는군요?" 하자 남자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 해님의 그늘을 만들어 덥지 않게 해주려는 겁니다."
"아, 그러니까 음식이 부패하지 않도록 그늘을 만든다는 이야기였군요? 그런 일을 하려면 끈기가 있어야겠네요."
남자가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 몸이 뜨거워지지 않도록 저 아이들이 해님의 그늘을 만들어주는 거라구요."
남자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상기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두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부끄러운 듯 살며시 웃으며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아내고 있다. 내 몸 위로 아이들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뚜렷이 투영되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낯선 이방인을 위해 한 시간이 넘도록 태양의 운행을 따라 움직이면서 내 몸에 응달을 만들어준 것이다....... 아연해졌다. 그들의 '행동거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누가 그들에게 이와 같이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쳐준 것인가.
태양인가, 부모인가, 아니면 부처인가, 나의 과거가 누군가를 위해 그림자를 만들어낸 적이 있었던가. 저 타는 듯한 광물의 동양에서 이 같은 그림자를 만난 적이 있었던가. 오늘날의 일본에서, 혹은 미국에서 이 같은 사람의 그림자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버마에서 뜻하지 않게도 희생의 미덕을 감상했다는 기분이 들기는커녕, 그 어린 소년들의 그림자가 꺼림직해지는 것이었다. 태양의 후광을 안고 있는 두 소년의 실루엣이 보살을 대역하는 환영처럼 느껴졌다.
첫댓글 후지와라 신야.. 살아있는 감수성을 가진 작가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야기 속에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있네요..
"태양의 후광을 안고 있는 두 소년의 실루엣이 보살을 대역하는 환영처럼 느껴졌다.."
이 말이 가슴에 울림을 주는군요..
그 동안 선우님의 여행 이야기에 나왔던
아누라다푸라, 폴론나루와, 시기리야, 담불라, 캔디 등의 위치를 지도를 통해서 명확히 알 수 있어서 더 실감(?)이 납니다 ^^